미리보기다섯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시나위오케스트라 易(역)의 음향’ 프리뷰
역동하며 변화하는 국악관현악
‘易(역)’이라는 한자는 다음의 뜻을 지닌다. 바꾸다, 고치다, 교환하다, 전파하다, 새로워지다. ‘역’이라는 글자의 기원을 추적하다 보면 초기 상형문자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을 만날 수 있다. 하나는 이 형상이 그릇을 기울여 무언가를 비워내는 모습을 그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에 따라 빛깔이 다르게 보이는 도마뱀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릇과 도마뱀은 사뭇 다른 형상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그 안을 가뿐히 비워냄으로써 새로운 것을 담아낼 수도 있고, 혹은 상황에 따라 다른 빛깔로 그 표면을 바꾸어낼 수도 있다. 즉 여기엔 ‘유연한 변화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오는 9월 25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선보일 ‘易(역)의 음향’에는 바로 그런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내재한다
‘易(역)의 음향’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최근 예술감독 원일과 함께 과감한 시도를 선보여 왔다. 극장 안팎에 구성된 스테이지에서 공연의 매 순간을 선택해 나간 ‘메타 퍼포먼스: 미래 극장’, 전자음악 프로듀서 및 미디어아티스트와 함께한 ‘시나위 일렉트로니카’, 단원들이 여러 팀을 구성해 꾸린 ‘新(신), 시나위’ 등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분명 까다로운 실험이었을 여러 기획을 충실히 구현해 왔다. 이외에도 레퍼토리 공연이나 21세기의 시대정신을 담겠다는 야심만만한 목표 아래 만들어진 ‘21세기 작곡가’ 시리즈도 있었다. 방향은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은 새로운 질문을 만드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앞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할 곡을 찾아내는 데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ㄱㅕㅇㄱㅣㅅㅣㄴㅏㅇㅟㅇㅗㅋㅔㅅㅡㅌㅡㄹㅏ ⓒㄱㅏㅇㅌㅐㅇㅜㄱ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강태욱

이번 ‘易(역)의 음향’도 이런 일련의 흐름 안에서 만들어진 공연이다. 역동성과 창조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된 이 공연에서는 김성국의 ‘공무도하가’, 김대성의 ‘열반’, 손성국의 ‘울돌목’, 정일련의 ‘혼’이 연주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작곡가 대부분이 기존 작품을 개작해서 선보인다는 점이다. 작곡가들은 이번 공연에 앞서 곡을 꼼꼼히 다듬었고, 곡의 음향을 더욱 섬세하게 조형하는 것은 물론 작곡가들이 갈고닦아 온 ‘지금’의 감각을 곡에 불어넣었다.

또 이번 공연은 음악가이자 작곡가,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NEC)의 즉흥음악 교수로 활동 중인 앤서니 그래드 콜맨(Anthony Grad Coleman)과 협력해 만들어질 예정이다. 미국·네덜란드·오스트리아·폴란드 등 여러 나라의 음악계를 경험해 온 그는 작곡·연주·앙상블 활동 등 다양한 각도에서 즉흥음악을 바라봐 왔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콜맨의 협업이 어떤 확장된 감각을 불러일으킬지 살펴보는 것도 이번 공연의 기대 요소 중 하나다.

네 개의 국악관현악곡

첫 곡은 김성국의 ‘공무도하가’로 동명의 고대 가요를 바탕으로 한 곡이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죽었으니, 장차 임을 어찌할꼬.”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노래한 이 시를 바탕으로 곡을 쓰며, 김성국은 시나위의 음악 어법을 관현악 편성에 녹여냈다. 2012년 초연 이후 8년 만에 개작 초연되는 이 곡은 최근 다채로운 형태의 ‘시나위’를 경험하고 있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만나 근사한 시너지를 만들어낼 듯하다.

김대성의 ‘열반’에서 작곡가는 범패와 서도민요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해탈에 대한 열망을 이 곡에 담았다. 그간 김대성은 2001년의 첫 버전 이후 ‘열반’을 여러 차례 다듬어왔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여창가곡 독창과 국악관현악 편성으로 다시 한번 개작해 ‘한 구도자의 노래’를 통해 깨달음을 향해 가는 모습을 그려냈다. 이 곡이 개작되는 과정은 열반이라는 곡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음악에 완벽한 완성형이란 없고 깨달음에도 마침표가 없듯이, 작곡가가 곡을 꾸준히 다듬어나가는 과정이 곧 열반으로 향하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손성국의 ‘울돌목’은 2020년 아르코창작음악제에서 초연된 곡이다. 울돌목이란 한반도 남서쪽의 끝자락에 있는 좁은 해협으로, 조류가 빠른 곳으로 유명하다. 한자로는 ‘명량’이라 불린 이곳은 이순신 장군이 대승을 거둔 ‘명량대첩’이 벌어진 장소이기도 하다. 대금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이 곡에서는 좁은 영역을 관통하는 듯한 대금 소리와 강한 물살처럼 빠르게 휘몰아치는 국악관현악의 소리가 가득하다. 변화무쌍한 이 곡이 해오름극장에서 어떤 음향의 흐름을 만들어낼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마지막 곡 ‘혼’은 한국음악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창작을 지속해 오고 있는 정일련의 작품이다. ‘혼’은 사물놀이와 국악관현악이 함께하는 대편성 곡이자 인간과 자연을 위한 일종의 ‘의식’이기도 하다. 보통 낮은 음역을 보완하기 위해 서양 전통악기인 콘트라베이스·첼로로 낮은 음역을 연주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보유한 ‘대대아쟁’을 활용할 예정이기 때문에, 서로 더 긴밀한 친연성을 지닌 악기들로 이루어진 폭넓은 음향층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추동하는 흐름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하나둘씩 만들어온 공연에는 각기 또렷한 지향점이 있었다. 하지만 더 넓게 보았을 때 이들의 시도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 안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은 다양한 가치와 환경이 급변하는 이 시기에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음악가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틀과 부속들을 재조정하고, 그 안에서 다시 전통음악과 음악가들이 지닌 고유한 힘을 되찾고자 한다.

이번 공연 ‘역의 음향’ 또한 같은 곳을 바라보는 듯하다. 국악관현악이라는 그릇 안에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작곡가들은 그 안에 무엇을 담아낼지, 무엇을 바꾸어낼지, 혹은 그 표면의 음향을 어떻게 바꾸어나갈지 고민하고 있다. 예술감독 원일이 한 인터뷰에서 남긴 이 말은 이번 공연에 대한 어떤 단단한 선언처럼 보이기도 한다. “저는 이 순간을 ‘한국음악의 혁명’이라고 생각해요. ‘역의 음향’을 남겨야 되는데… 저는 이것이 그 기대에 대한 적극적 실천이라고 생각해요.”

글. 신예슬 음악 비평가, 헤테로포니 동인. 동시대 음악에 관한 호기심으로부터 비평적 글쓰기를 시작했다. 음악학을 공부했고, 단행본 ‘음악의 사물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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