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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남해웅의 박봉술제 ‘적벽가’
해방감 건네는 소리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한다.”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닻을 올린 콜럼버스가 자신에게 외쳤다는 말이다.
이 말은 남해웅 명창의 의지를 대변한다. 스승을 얻고자 백방으로 연락하고, 어떤 상황에도 의지를 꺾지 않았으며,
그 끝에 마주한 소리에서 해방감을 느꼈다는 남해웅 명창의 소리로 2023년 <완창판소리>의 문이 열린다.

스스로 찾아 나선 소리 길

2023년 계묘년 첫 <완창판소리>의 포문은 국립창극단원 남해웅 명창이 연다.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남해웅은 소리꾼으로서는 다소 늦은 나이인 열아홉 살 무렵에 판소리와 인연을 맺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읊던 송서와 제사 때의 축문 소리가 좋아 흥얼흥얼 따라 하던 그였지만 판소리를 비롯한 국악을 접할 기회가 실상 있진 않았다. 주변에 소리를 배울 수 있는 명인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의 고향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1리에 전기가 들어온 때가 그의 나이 열두 살 무렵이었으니, 우리 음악을 배우고 즐기기는 어려웠다.
그가 판소리와 국악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한 시기는 고등학생 때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국립국악고등학교의 존재를 알게 돼, 교장 선생님에게 그 학교로 전학하고 싶다고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뒤늦게 돌아온 답변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한 잡지에서 오정숙 명창의 주소를 알게 돼 소리를 배우고 싶다고 편지를 보냈다. 그때 오정숙이 소개한 사람이 바로 당시 대구에 있던 원광호 명인이다. 남해웅은 큰마음을 먹고 누이를 설득해 수업료를 마련한 후 울진에서 대구까지 원광호 명인을 찾아가 단가와 ‘춘향가’의 몇 대목을 배웠다. 그리고 대학입시를 준비했지만 그만 좌절하고 말았다. 이후 어려운 형편으로 더는 소리 공부를 하기 힘들어 고향에서 시절을 보냈지만,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마음에 무작정 누이가 있는 서울로 갔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한편으로 판소리를 배울 방법을 찾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남해웅은 우연히 국악 동호회인 ‘한소리회’를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다시 ‘판소리보존회’를 알게 돼 조상현 명창이 주관하는 일반인 강습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체 수업으로는 아쉬움이 많아 그곳에서 만난 김수연 명창에게 개인지도를 요청했고, 이후 성우향 명창을 소개받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바탕소리를 다질 수 있었다. 1987년, 그의 나이 스물한 살 때였다. 남해웅의 소리 입문 과정을 보면, ‘스스로, 열심히’ 찾아다녔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음악으로 향하는 여러 여러 갈래의 길을 걷고 걸어, 비로소 스승 성우향 앞까지 간 것이다.

“나는 목이 타고난 것도 아니고, 음악성이 타고난 것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소리에 대한 열정, 그것은 누구 못지않아요. 자랑할 수 있어요.”

필자는 가끔 명창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생각한다. 그 생각은 예술가는 어떻게 탄생하는지로 이어지기도 한다. 타고난 재능과 주위의 좋은 여건은 한 명의 예술가를 만드는 훌륭한 토양이 된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중요하지는 않을 터이다. 스스로 나의 운명과 나의 길을 찾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느리더라도 꾸준히 실행하는 용기. 이것이 없다면 결코 예술가는 탄생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남해웅의 소리 길을 보면 그와 같은 마음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적벽가’가 주는 카타르시스

이번 완창에서 남해웅이 들려줄 소리는 박봉술제 ‘적벽가’이다. 조선 후기 가왕 송흥록에서 송광록·송우룡·송만갑을 거쳐 박봉래·박봉술, 그리고 현재 김일구·송순섭으로 전승되는 소리로 정통 동편제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주지하다시피 ‘적벽가’는 영웅호걸의 패권 다툼을 다루는 이야기다. 따라서 인물의 장중하고도 굵은 성음과 전투 장면에서 드러나는 긴박하면서도 우렁찬 소리가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 이런 점 때문에 소리꾼 사이에서 ‘적벽가’는 “힘이 많이 든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음악으로서 소리뿐만이 아니다. 현대에는 익숙하지 않은 사자성어, 한자어 표현 등도 많아 사설의 어려움도 한몫한다. ‘적벽가’가 괜히 ‘난도 높은 소리’ ‘명창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소리’ 같은 별칭을 갖는 것이 아니다. ‘적벽가’는 바로 그 점에서 사설의 기품이 있다. 해학적인 면모도 있긴 하나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진지함과 엄숙함이 큰 매력이다. 음악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힘 있는 고음이 필요하기에 단단한 내공이 아니면 소화하기 어렵지만, 소리꾼이 터득만 한다면 관객에게 상당한 울림을 전달한다. 장판교 싸움과 불 지르는 대목, 화용도 대목 등에서 영웅들이 외치는 단단하고 강인한 소리는 웅장함을 선사한다. 말 그대로 등줄기에 전율이 느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남해웅이 소리를 배우고, 터득하는 어려운 과정에서 끝까지 판소리를 놓지 않은 이유는 판소리가 주는 해방감에 있다. 마음속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판소리의 힘이다. 그는 여러 스승에게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모두 배웠지만 ‘적벽가’를 특히 좋아한다. ‘적벽가’의 웅장함과 호탕함, 그리고 정직하게 질러 내는 소릿결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지고, 소리를 마치고 나면 무엇인가를 다 쏟아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소리꾼으로서 그는 ‘적벽가’에서 가장 시원한 해방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적벽가’는 그야말로 부르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소리가 주는 웅건함 자체로 충분한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는 작품이다.

첫 완창, 다져온 내공을 드러낼 시간

남해웅은 김일구 명창에게서 ‘적벽가’를 사사했다. 혹자는 그의 소리 스타일이 스승의 것을 많이 닮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스승에게 배운 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적벽가’를 만드는 길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스승의 삶과 나의 삶은 다르고, 스승이 보여줄 수 있는 내면과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내면은 다르지 않겠느냐고. 소리꾼이라면 누구나 내 삶이 투영된 나의 소리를 하길 원하는데, 자신 역시 그 길을 가고 있다고 말이다.
남해웅에게 이번 <완창판소리>는 생애 첫 완창이다. 2012년 제13회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에서 명창부 대통령상을 받은 이후, 그에게 완창은 소리꾼으로서 언젠가 꼭 한 번은 서야 할 무대였다. 그간 여러 사정으로 이를 실천하기가 어려웠는데, 이번에 기회가 된 만큼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남해웅에겐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목표 하나를 이룰 무대가 될 것이고, 관객에겐 꾸준히 실력을 다져온 명창의 재주를 충분히 감상할 시간이 될 것이다. ‘적벽가’를 통해 남해웅의 해방감이 마음껏 드러나길 바라본다. 이번 완창 무대에는 국립창극단 기악부장 조용수와 제38회 전주대사습놀이 명고수부 장원 수상자 고정훈이 고수로 함께하며, 고려대학교 유영대 명예교수가 해설·사회를 맡는다.

글. 송소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20세기 창극의 음반, 방송화 양상과 창극사적 의미」(2017)로 박사 논문을 제출하고 판소리와 창극 관련한 연구를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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