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유니버설발레단 <코리아 이모션>
한국적 감성의 재발견
달랐다. 클래식 발레에 빠졌거나 자유로운 형식의 컨템퍼러리 발레의 실험성에 흥분한 적이 있거나,
스토리라인을 따라 주인공의 선명한 캐릭터와 만나는 드라마 발레를 사랑하는 관객도 이날 공연에서는
분명 기존과는 다른 발레의 감흥과 맞닥뜨렸을 것이다.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은 특별한 줄거리 없이 음악과 댄서들의 움직임 조합에 초점을 맞춘 네오클래식 발레 형식에 가까웠다. 안무가는 발레 작품에서 흔히 보이는 움직임을 특별한 선곡과 댄서의 감성적인 춤 해석을 통해 전혀 다른 색채로 구현해 냈다.

‘국악 크로스오버와 네오클래식 발레의 만남’을 표방한 유니버설발레단의 <코리아 이모션은> 2021년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초연됐다. 인간의 보편적 감정인 분노·사랑·정을 주제로 한 세 개의 작품으로 짜인 <트리플 빌> 공연을 통해서였다. 작품은 인간의 번뇌와 희망을 다룬 <파가니니 랩소디>, 중국 고전 설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연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다룬 <버터플라이 러버즈>에 이어 마지막으로 공연됐다. 이때 안무가가 선택한 음악 네 곡이 작품의 전체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21 트리플빌1> 홍향기, 강민우

안무가의 영리한 선택

안무가 유병헌(유니버설발레단 예술감독)은 작품 전편에 OST 음악으로 유명한 작곡가 지평권의 음반 「다울 프로젝트」(2014)에 수록된 국악 크로스오버 ‘미리내길’ ‘달빛 영’ ‘비연’ ‘강원, 정선아리랑 2014’ 네 곡을 발췌해 사용했다. 그는 25분 남짓한 창작 발레 작품의 뼈대를, 14명의 무용가를 통해 한국적인 색채가 농후한 음악과 춤의 교합으로 설정했다. 프레임은 별반 새로운 것이 없었다. 하지만 몸으로 체화시킨 손유희와 이현준의 빼어난 춤의 질감과 2명씩 짝지은 무용가의 춤은 2인무·군무·남녀 6인무로 변주됐고, 이러한 춤의 조합은 앞서 트리플 빌로 묶여 공연된, 서양음악을 사용한 2개의 작품과는 확연히 달랐다. 과도한 무대장치나 화려한 기교 대신 무용가의 앙상블과 남녀 메인 댄서의 안정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농밀한 감정의 교감이 만들어내는 감성적인 춤에 방점을 두었다.

필자가 <코리아 이모션>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메인 무용가의 2인무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선곡된 음악에 따라 2인무의 내용을 상반되게 배치, 같은 무용수에 의한 다른 감성의 춤과 개개 음악이 갖는 차별성을 조합해 낸 안무가의 특별한 감각에 있다. ‘미리내길’에서는 죽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그리움을, ‘달빛 영’에서는 반대로 죽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그리움을 형상화한 것이 그런 예다.
‘비연’을 사용한 장면에서는 네 쌍의 남녀 무용수가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지치지 않는 인간의 기상과 의지를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강원, 정선아리랑 2014’는 국악·성악·클래식과 발레가 함께 어우러지는 가슴 뭉클한 대미를 장식하는 데 사용됐다. 이날치밴드 멤버인 소리꾼 권송희와 소리꾼 정주희 그리고 소프라노 신델라가 피처링을 맡았는데, 빠른 템포의 춤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코리아 이모션> 중 메인 무용가의 2인무는 2022년 제12회 대한민국발레축제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CJ토월극장)에서 먼저 공연됐다. 국악 크로스오버 음악에 실린 손유희와 이현준의 유려하고 농밀한 춤, 독창적인 음악에 녹아든 댄서의 지체와 한국적 감성의 2인무는 화려한 기교와 다채로운 색깔의 춤이 즐비한 발레 갈라 공연에서, 그 차별성을 확연히 드러냈다. 한국적 정서의 창작 발레 작품이 컨템퍼러리 발레 작품으로서도 경쟁력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무대였다.

<2022 더 발레리나-군포> 강미선, 이현준

시즌 개막작으로의 확장

<코리아 이모션>은 3월, 국립극장 무대에서 25분 길이를 62분으로 확장한 장편 작품으로 재탄생된다. 2023년 유니버설발레단의 시즌 첫 개막작이자 ‘2022~2023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 작품으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코리아 이모션>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고유의 정서 ‘정’을 토대로 구성됐다. 안무가 유병헌은 “20년 넘게 한국에 살면서 느낀 ‘정’에 대한 감정을 표현했다. 미운 정, 고운 정과 같이 다양하게 쓰이는 한국인의 ‘정’이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라며 “감수성이 뛰어나 섬세한 감정을 지닌 한국인 특유의 ‘정’을 작품에 투영해 보고 싶었다”라고 초연에서 밝힌 바 있다.

그는 음악에 비중을 두고 다양한 구성의 춤과 영상을 매칭했다. 음악과 안무 모두 한국적이지만, 표현 방식만큼은 현대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았다. 초연에 비해 배 이상으로 공연 시간이 늘어난 만큼, 3월 공연에는 출연 무용가 역시 14명에서 24명으로 대폭 늘어나고 새로운 음악도 더해진다.

“국악과 성악, 클래식 발레가 함께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마무리” (세계일보)
“음악과 함께 녹아든 전체 그림은 아름답고 따뜻하게 울림을 전했다” (서울신문)

확장 공연을 위해 앙상블 시나위 음반 「영혼을 위한 카덴자」(2010)에서 두 곡, 「시간 속으로」(2012)에서 한 곡을 추가하고, 피터 쉰들러의 「정」(2001)에서 두 곡을 추가해 총 9곡을 사용한다.
앙상블 시나위는 장단에 기반을 두고 즉흥으로 연주하는 시나위를 기초로 전통음악의 다양한 장르를 그들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풀어낸다. ‘동해 랩소디’는 2012년 발매된 음반 「시간 속으로」의 첫 번째 트랙으로 자진모리장단과 드렁갱이장단의 선율을 주고받으면서 자유롭게 연주되는 즉흥 연주곡이다. <코리아 이모션> 공연의 프롤로그에 사용된다. 안무가는 “이 곡에 맞추어 총 16명의 무용수가 한국인의 흥을 담은 군무로 화려하고 힘 있게 무대를 열 예정이다”라고 귀띔했다. ‘달빛유희’는 경기 도당굿의 6박 도살풀이장단을 기본으로 가야금과 아쟁이 선율을 주고받는 곡이다. 깊은 밤 차가운 달빛처럼 조화와 대비, 절제와 분출을 여성 4인무로 드라마틱하게 표현한다. ‘찬비가’는 조선 중기의 문신 임제(1549~1587)가 쓴 시조 ‘한우가寒雨歌’를 소재로 만든 곡으로 자유 구조에 의한 즉흥 변주로 구성된 이 곡이 춤과 어떻게 매칭될지 기대된다.
「정」에 수록된 ‘Tristesse D` Amour사랑의 비애’와 ‘Prelude서곡’는 각각 순우리말로 ‘사랑’을 뜻하는 2개의 ‘다솜’ 장면에 사용된다. 첫 번째는 남성 2인무로 형제간의 정을, 두 번째는 여성 2인무로 자매·모녀간의 정을 슬프도록 서정적으로 그려낼 예정이다. 초연 때 사용한 ‘미리내길’과 ‘달빛 영’은 부부의 정을 아름답게 담아낸 2인무에 사용된다. 안무가는 이 곡을 이용해 남녀 간의 정을 그려낸다. ‘강원, 정선아리랑 2014’는 이번 작품에서도 피날레 음악으로 사용된다.

줄거리 없이 1시간이 넘는 공연 길이의 작품을 창작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5분 길이의 작품에서 받은 호평이 오히려 안무가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작품 구성의 마무리로 한창 바쁠 때 안무가와 한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새로 작품을 짜는 거면 오히려 쉬웠을 텐데 이미 일정 부분 만들어진 상태에서 하는 작업이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로 선택한 음악이 퓨전 성격이 더욱 강한 만큼 움직임뿐만 아니라 영상과 의상 등에서 더 현대적인 감각을 살려내는 작업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작품에 주목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유니버설발레단의 올해 정기공연 라인업을 보면 유독 창작 발레 작품이 다수 포함돼 있음이 눈에 띈다. 3월 <코리아 이모션>을 시작으로 5월 <심청> 등 상반기에 공연되는 두 작품 모두 유니버설발레단에 의해 초연된 작품이다. 1986년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심청>은 기획 단계부터 세계 춤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제작돼 적지 않은 업그레이드 작업을 거친 유니버설발레단의 간판 작품이 됐고, 이번 유니버설발레단의 <코리아 이모션> 확장 공연은 아래 세 가지 측면에서 무용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첫째, 이 작품이 유니버설발레단이 꾸준하게 추진하는 한국적 소재의 창작 발레, <심청> <발레 춘향>을 잇는 레퍼토리로서 구축될 수 있느냐다. <심청> <발레 춘향>과 달리 줄거리가 없는 작품으로 충분히 유니버설발레단의 레퍼토리로서 차별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한류 열풍을 타고 소위 ‘K-발레’로서 상품성을 가질 수 있느냐다. 국악 크로스오버 음악과 영상 등이 매칭된 만큼 예술적인 완성도가 따라준다면 시청각적 요소나 공연 제작 규모 등에서 해외 춤 시장 진출을 위한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기 위해 영상이나 의상 등에서도 어떤 변화가 이루어질는지 두고 볼 일이다.
다음으로 창단 4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유니버설발레단이 공공기관과 함께 마련한 협력 작업이 어떤 가시적 성과로 이어질지에 대한 기대다. 국립극장이 외부 발레단과 협력해 질 높은 예술작품 제공과 예술 장르의 균형감을 통한 공공성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이번 작업이 특히 주목받고 있다. 결국 이런 모든 기대는 <코리아 이모션>의 예술적인 완성도에 달려 있다.

이 작품은 그동안 <발레 춘향> <트리플 빌>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안무와 연출력을 인정받아 온 유병헌 예술감독의 안무작이다. 초연 때 메인 무용가의 2인무에서 한국적 감성의 춤이 갖는 특별한 매력을 감지했던 만큼 춤 전문가나 발레 마니아 사이에서 이번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역시 높을 수밖에 없다. 또한 전통음악 장르의 영역 확장이 두드러지는 요즘, 우리 음악과 발레의 만남이란 면에서도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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