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다섯

국립국악관현악단 <정오의 음악회>
정다운 선율 타고 찾아오는 새봄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정오의 음악회>가 올해 15주년을 맞았다.
한 극장에서 무려 15년 동안 한 기획 공연이 이어졌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공연예술은 분명 일반 서비스 상품과 구별되는 특별함이 있겠지만, 그래도 대중에게 외면받는다면 무대에서 존속성을 갖긴 어렵다. <정오의 음악회>는 2009년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상설 레퍼토리로 처음 소개됐다. 국악을 낯설게만 느끼는 대중을 위해 친숙한 음악을 올리고, 해설자의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여 누구나 쉽게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기획했다. 지금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시즌 프로그램에 이름을 올리며, 어느덧 국립극장 대표 스테디셀러 공연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다정한 봄바람이 불어오면 <정오의 음악회>가 다시 관객을 찾는다. 이번 해에는 15주년을 맞아 더욱 신선한 기획 코너를 마련했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2021년부터 해설자로 함께하는 방송인 이금희가 이번 시즌도 친근한 목소리로 공연을 매끄럽게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해 <정오의 음악회>가 매번 다른 지휘자를 초청했던 것과 달리 이번 2023년 상반기에는 박천지 지휘자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지휘봉을 든다. 지휘자 박천지는 중앙대학교에서 타악과 작곡을 전공하고,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타악 수석으로 활약한 바 있다. 이후 동 대학 대학원에서 지휘 공부를 이어갔으며, 동국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주시립국악단 상임지휘자를 지냈으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음악원의 총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봄기운이 완연한 3월, <정오의 음악회>에 스며든 햇살이 겨우내 움츠렸던 관객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줄 예정이다. 새 기운을 가득 담은 3월의 <정오의 음악회>를 살펴보도록 하자.

지휘 박천지

신설 코너,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다

<정오의 음악회>는 시즌을 거듭하며 다양한 코너 구성을 통해 변화를 꾀했다. 이번 상반기에는 15주년을 맞아 새로운 코너 두 개를 준비하고 있다. 음악회 시작을 여는 ‘정오의 3분’은 2020년 첫선을 보인 이후 3년 만이다. 지난해 국립극장 <이음 음악제>에서 선보인 <2022 3분 관현악>에 소개된 젊은 작곡가 10인의 위촉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리는 코너다. 국악을 포함한 현대 음악계에서 불거지는 큰 이슈는 초연으로 선보인 작품 중 대다수가 재연 기회를 얻지 못하고 생명력을 잃어버린다는 것. 대다수 현대 음악제에서 작곡가들은 죽을힘으로 신작을 선보이지만, 실상 그 작품들을 다시 무대에서 볼 기회는 허망하게도 극도로 적다. 창작 생태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오의 음악회>가 두 팔 걷고 나선다.

이번 ‘정오의 3분’은 지난해 <2022 3분 관현악> 무대에 올랐던 홍민웅 작곡가의 ‘화류동풍’으로 문을 연다. ‘화류동풍’은 꽃과 버들, 봄바람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생명의 충만함을 표현하기 위해 작곡가는 이 단어를 제목으로 사용했다. 곡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우아한 봄바람을 느낄 수 있는 전반부와 자연의 역동성을 담은 리드미컬한 후반부로 나뉜다. 홍민웅 작곡가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적은 수상집隨想集처럼 곡을 구성했다. 대체로 경쾌한 흐름으로 전개되는 이 곡에는 하나의 존재를 이뤄내는 한 생명의 부지런함이, 국악관현악이라는 거대한 숲과 소리의 자연을 통해 표현된다. 다가오는 새봄에 들으면 여러 영감을 불어넣어 줄 음악이다.

또 다른 새 코너 ‘정오의 여행’은 여러 나라의 다양한 풍광과 문화를 담은 영상과 함께, 그 국가의 전통음악을 국악관현악으로 재해석해 선보인다. 이번 3월 공연에는 베트남 관광청이 이번 코너를 위해 제공한 아름다운 베트남 경치 영상과 국악관현악 라이브 음악을 동시에 즐긴다. 2017년 설립된 주한 베트남 관광청 대표부는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지, 언제든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기억되도록 베트남의 다양한 관광 상품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고심해 베트남의 색채를 잘 묘사할 수 있는 곡을 골랐다. 이번에 감상할 작품은 박한규가 편곡한 ‘매화 꽃 축제’이다. ‘매화 꽃 축제’는 ‘행복한 꽃 축제’를 뜻하는 베트남 민요 ‘믕 호이 화 봉’과 우리나라 민요 ‘매화타령’ 엮은 곡이다. 완연한 봄, 해오름극장에서 국악관현악 선율을 타고 따듯한 기운이 가득한 베트남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변하지 않는 정체성, 전통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정오의 음악회>의 성공 비결은 전통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프로그램으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흥미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국악관현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다양한 협연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지난해 <정오의 음악회>에서 준비한 ‘정오의 협연’은 특히 트럼펫, 4중창, 피아노 등 서양음악과의 협연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주목을 받았다. 이번 3월에는 좀 더 특별하게 작곡가 김창환에게 위촉한 협연곡이 무대에 올라갈 예정이다. 현재 강원도립국악관현악단 부지휘자로 있는 김창환은 우리에게 공항철도 환승역 및 종착역을 알리는 음악을 만든 작곡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판소리 뮤지컬 <적벽>의 음악을 작곡하는 등 전통예술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2020년에는 KBS국악대상 작곡상을 받으며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국립국악관현악단과는 <상주작곡가 마스터클래스>와 2019년 <3분 관현악>으로 맺은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번에 그는 대금과 거문고를 위한 이중 협주곡 ‘발함發喊’을 선보인다. 정악을 대표하는 모음곡 ‘영산회상’의 군악 중 ‘권마성勸馬聲’을 주제로 쓴 곡이다. 여기서 권마성이란 임금이나 고관이 행차할 때 행차의 위엄을 더하기 위해 소리치던 것을 의미한다. 기세등등한 소리가 대금과 거문고, 이를 아우르는 국악관현악의 음색으로 어떻게 재현될지 기대를 모은다.

  • 협연 오경자(거문고)
  • 협연 장광수(대금)

‘정오의 협연’ 외에도 ‘정오의 관현악’ 역시 전통성에 초점을 맞춘 코너라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국악관현악의 매력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레퍼토리를 선곡하는데, 이번에는 작곡가 박범훈의 국악관현악 ‘신내림’을 연주한다. 이 곡은 흥겹고 독특한 경기 지역의 무속음악을 소재로 작곡됐다. 염불·허튼타령·굿거리·당악 등 대표적인 경기도당굿 음악을 모체로, 무속 장단에 피리 선율이 더해져 경쾌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를 동시에 자아낸다. 1995년 국립국악관현악단 초대 단장을 지낸 작곡가 박범훈은 그동안 국악관현악을 비롯한 합창곡과 실내악을 작곡하며 한국음악 창작의 기초를 다졌다. 흥겹고도 세련된 국악관현악의 정수를 이번 <정오의 음악회>에서 느껴보길 바란다.

반면 ‘정오의 스타’는 국악이 생소한 대중을 위해 준비한 코너로, 매회 장르 상관없이 인지도가 높은 음악가를 초청해 친근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오는 3월에는 단단한 보컬, 독보적 음색으로 인기를 끈 R&B 가수 정인이 함께할 예정이다. 그가 대중에게 처음 강렬한 인상을 각인시킨 건 리쌍의 앨범 수록곡인 ‘사랑은’의 피처링을 맡으면서다. 이 곡은 정인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중심이 되는데, 그래서인지 리쌍이 아닌 정인의 곡으로 인지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번 무대에서 그는 자신의 데뷔곡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랑은’을 부를 계획이다. 이어지는 곡 ‘오르막길’은 윤종신이 진행한 월간 프로젝트에서 발표하며 대중에게 사랑받은 노래다. 마지막으로 희망적인 가사로 긍정 에너지를 불러오는 ‘살다가 보면’을 부르며 새 계절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관객에게 북돋아 줄 예정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정성스레 준비한 한낮의 음악회를 즐기며 산뜻한 기분으로 새 계절을 맞이하길 바란다.

협연 정인
글. 장혜선 음악 칼럼니스트, 바른 시선으로 무대를 영원히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월간 국립극장> 구독신청 <월간 국립극장> 과월호 보기
닫기

월간지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 구독 신청

뉴스레터 구독은 홈페이지 회원 가입 시 신청 가능하며, 다양한 국립극장 소식을 함께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또는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편리하게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회원가입 시 이메일 수신 동의 필요 (기존회원인 경우 회원정보수정 > 고객서비스 > 메일링 수신 동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