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하나

국립무용단 창단 60주년의 의미
변화와 회귀를 통한 확장
국립무용단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제외할 수 없는 장르가 한 가지 있다. 바로 무용극이다. 그것이 창단 60주년을 맞이한 국립무용단이 그간의 변화를 통해 성장하고 확장한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무용극을 선택한 이유다.

1962년 창단한 국립무용단은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관통하며 시대적 소명을 함께했다. 1970~80년대에는 해외 문화사절단으로 한국의 문화예술을 알렸고,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개최 등을 통해 한국춤으로 세계와 소통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한편으로 1980년대에는 ‘무용극’을 통해 한국춤의 극 형식 무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는 한국 창작춤의 영역을 확대하고 국립무용단의 위상을 ‘국립’답게 자리매김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국립무용단 송범 단장

송범이 일으킨 물결

국립무용단은 송범 단장을 시작으로 조흥동·최현·국수호·배정혜·김현자·윤성주·김상덕을 거쳐 현재 손인영 예술감독에 이르고 있다. 국립극장이라는 대형 무대를 중심으로 50여 명의 국립무용단원과 지난 60년간 100여 회가 넘는 정기공연을 통해 무용계를 대표할 수 있는 대작을 발표해 왔다. 9명의 역대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은 송범의 20년 재임 기간에 단원으로 활동하며 안무가로 성장한, 이른바 ‘국립 출신’이라 말할 수 있는 조흥동·국수호·윤성주·손인영·김상덕과 1980년대 한국 창작춤 시대를 이끈 대표적인 두 여성 예술감독 배정혜·김현자로 구분 지어 볼 수 있다. 특히 배정혜 예술감독은 창단 39년 만에 첫 여성 단장으로 재임과 연임이라는 기록을 남기며 송범 이후 국립무용단의 예술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다시 말해 송범의 무용극 시대가 가진 영향력과 한국 창작춤의 거대한 물결이 국립무용단과 만나 국립무용단의 작품 세계를 확장하는 새로운 역사를 창출해 냈고, 현재의 국립무용단은 세계적인 안무가와 만나며 성장해 나가고 있다.

국립무용단 <허도령>(1964) ⓒ공연예술박물관

변곡의 지점을 만들어낸 작품들

지난 60년간 국립무용단 작품 세계의 변곡점이 된 지점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초창기 국립무용단부터 현재까지 국립무용단이 추구한 작품 세계의 변화를 바라보는 관점은 대동소이하다.
유인화는 『국립극장 60년사』에서 국립무용단 단장 및 예술감독의 춤 철학을 바탕으로 한 한국춤의 맥(脈)을 4기로 구분 지으며 소개하고 있다. 1)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국립무용단의 작품 세계를 정리해 보자면, 제1기는 1962년부터 1969년까지 사회적으로 무용 인구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무용단으로서 구체적인 구성이나 조직이 미약했고, 작품 단위의 ‘헤쳐모여’식으로 운영하던 시기였다. 유인화는 이 시기를 “발레와 단위별 한국 무용을 정립한 시기”로 정의했으며, 이 시기 작품으로 <허도령> <열두무녀도>를 꼽았다.

1) 유인화, 『국립극장 60년사』, 태학사, 2010. p.305.
국립무용단 <왕자 호동>(1974) ⓒ공연예술박물관

제2기는 1973년부터 1986년까지로 국립극장이 장충동으로 신축·이전한 때를 시작으로 한다. 직업무용단의 면모를 갖추어 “이야기 중심의 무용극 시대”를 안정적으로 펼쳐나간 시기다. 이 시기에는 <별의 전설> <왕자 호동> <원효대사> <마음속에 이는 바람> 등 6편의 무용극이 발표됐고, 재공연까지 포함하면 11회의 정기공연 중 7회가 무용극으로 이뤄졌다.
제3기는 1987년부터 2010년까지로 춤극의 다양한 형태가 시도되었다. 특히 송범 시대에서 조흥동·최현·국수호까지 안무 세계를 조명하는 기획으로 만들어진 <4인 4색, 나흘간의 춤 이야기>(2000년 4월 19~22일)는 국립무용단 창단 38년 만에 처음으로 유료 관객 비율이 80%를 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시기 <강강술래> <무천의 아침>으로 역사의식을 드러냈고, <오셀로(무어랑)> <동양 3국 북춤> 등을 통해 한국춤의 세계적 보편성을 추구했다고 밝혔다. 특히 유인화는 이 시기를 ‘역사의식의 추구(1987~1994년)’, ‘춤의 세계적 보편성 추구(1995~1999년)’, ‘춤의 세계화와 대중화 확립(2000~2010년)’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 중 2000년부터 2011년까지는 배정혜와 김현자 예술감독으로 이어지는 시기다. 배정혜 예술감독은 김현자 예술감독 이후 다시 재임되고 연임하면서 국립무용단의 예술 세계를 안정적으로 확장해 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은 동시대 감각이 중시된 한국 창작춤을 선보였으며, 국립무용단의 축적된 테크닉을 바탕으로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여 세계화와 대중화에 박차를 가했다.

국립무용단 <묵향>
국립무용단 <시간의 나이>

심정민은 『국립극장 70년사』에서 이 시기의 활동을 “신작 창작과 더불어 국내외적으로 국립무용단의 브랜드네임을 높여줄 만한 레퍼토리의 확립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2) 시기로 보고 있다. 또 2013년부터 2019년까지의 윤성주와 김상덕 예술감독의 재임 시절 활동을 “창작의 컨템퍼러리화(化) 속에서 한국춤의 고유성과 균형잡기”라는 제목으로 정리하고 있다. 3) 현대무용가 안성수와 패션디자이너 정구호의 <단>, 윤성주의 <신들의 만찬> <묵향> <토너먼트> <제의>, 핀란드 현대무용가 테로 사리넨의 <회오리>, 프랑스 현대무용가 조세 몽탈보의 <시간의 나이>, 조흥동·정구호의 <향연> 등을 대표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2) 심정민, 『국립극장 70년사-역사편』, 2020, p.328.
3) 위의 글, p.329.

수용·변화·시스템의 전환

국립무용단의 작품 세계는 크게 세 단계의 전환점을 맞았다. 첫 번째 전환은 한국 창작춤은 시대 흐름의 상황 속에 있었고, 이를 수용하며 변화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국립무용단이 무용극을 정립하던 시기에 한국 춤계는 ‘창작춤’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시대 흐름은 역사적 소명과 궤를 맞춰가는 두 개의 커다란 톱니바퀴가 어느 순간 합을 이뤄 국립무용단이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제시해 주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기 시작한 예술감독은 국수호였다. 무용극을 춤극으로 용어를 재정립하며 창작적 영역을 확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구체적 변화는 한국 창작춤 시대를 이끈 배정혜와 김현자에 의해서다. 국립무용단의 춤 세계를 역사적으로 정립(定立)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는 시도에서 배정혜 예술감독은 국립무용단 4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21세기 국립무용단의 향방’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심포지엄에서 국립무용단의 비전을 국립무용단 주최로 무용계와 함께 고민해 보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이 심포지엄에는 독일 안무가 피나 바우슈(Pina Bausch)의 「나의 무용단 운영철학」 발표를 비롯해, 프란시엔 메울(당시 주한프랑스대사관 문화예술담당관, 「프랑스 춤 정책과 국립무용단의 운영체계」)과 김태원(무용평론가, 「21세기를 향한 국립무용단의 운영개선방안」) 등의 주제 발표가 이어졌다. 2부에서는 「원로무용가들이 말하는 국립무용단 40년」이란 주제로 원로 예술가 강선영·김문숙·송범을 초청해 이야기를 들었다. 김현자 예술감독 역시 국립무용단의 창작 방향에 대한 포럼을 개최했고(2003년), 「21세기 춤 환경과 국립무용단의 창작 방향」4) 등이 발표됐다. 하지만 국립무용단의 예술 세계는 예술감독의 변화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무용극에서 출발해 시대 흐름을 수용하며, ‘오늘의 창작춤’ ‘컨템포러리화’를 동시대적 창작 언어로 삼았기에 가능했다. 대형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우수한 작품을 제작하는 단체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두 번째의 전환은 무용수의 변화다. 무용극 시대의 무용가에서 한국 창작춤 시대의 교육을 받은 무용가로 교체되고 있다는 지점이다. 무용가의 기량이 어떤 목적으로 훈련받고 연습하느냐에 따라 안무가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식이나 정도가 달라지므로 그에 따라 작품 세계가 달라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그 결과 국립무용단의 대다수 단원이 이제는 ‘극’ 중심에서 ‘창작’, 더 나아가 장르의 ‘융·복합’을 지향하며 다양한 측면을 수용하는 열린 구조의 작품 세계와 표현을 추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립극장 운영 시스템의 변화다. 2000년대 책임 운영 기관으로의 변화와 2012년 안호상 극장장의 시즌제 도입 등을 주요하게 꼽을 수 있다. 기획부서의 전문성 강화로 마케팅·홍보의 적극적 지원과 협업의 가능성을 열어 새롭게 거듭나는 국립무용단의 작품 세계를 지원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4) 김말복, 「21세기 춤 환경과 국립무용단의 창작 방향」, 『무용예술학연구』 Vol.12, 2003. 21~52쪽.
국립무용단 <그 하늘 그 북소리>(1991) ⓒ공연예술박물관

새로운 비전이 될 무대

국립무용단은 창단 60주년 기념공연으로 <2022 무용극 호동>을 선보인다고 한다. <왕자호동>은 송범 단장의 ‘무용극’ 시대를 연 1974년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90년·1991년 <그 하늘 그 북소리>로 다시 공연되기도 했다. 무용극의 현대적 재정립을 통해 국립무용단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를 미래의 전통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겼다. 60년간 겪어온 국립무용단의 다양한 환경 변화가 ‘미래의 전통으로 확장’을 추구하며 새롭게 거듭날 것이기에 이번 무용극에 사뭇 기대가 크다. 국립극장의 홈페이지에 소개된 <2002 무용극 호동>의 화려한 스태프 구성이 돋보인다. 손인영 예술감독을 필두로 한국을 대표하는 연출가 이지나가 대본과 연출을 맡고, 국립무용단 정소연·송지영·송설이 감각적이면서도 고전의 기품을 지키는 안무를 선보인다. 깊이 있는 음악 세계로 정평 난 음악감독 이셋(김성수), 세련된 미장센을 완성할 디자이너 민천홍·박은혜 등 정상의 창작진이 함께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국립무용단이 <2022 무용극 호동>을 통해 국립무용단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앞으로 국립무용단 100주년을 기록할 때 국립무용단의 ‘전통’이 될 수 있는 물꼬를 새롭게 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창단 60주년을 맞는 국립무용단에 다시 한번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글. 이송 2000~2006년 2월까지 국립무용단 총무로 활동했으며, 이후 2010~2015년까지 정동극장 공연기획팀 전문위원으로 공연 콘텐츠 개발, 대본 작가로 공연 관련 일을 해왔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동국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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