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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정동극장 예술단 <초월(超越)>
초월의 세계로 떠난 광대
현실 세계를 초월한 존재들의 움직임은 본질적이고 원초적이다. 이들의 춤과 연희는 지난한 삶을 위로하고 우리 삶을 온전히 살기 위한 가치관을 보여준다.

한국춤의 핵심은 악가무일체(樂歌舞一體)였다. 외국의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종합예술의 극치를 보이는 이러한 정신을 반영해 한국무용·사물놀이·타악 등 다채로운 전통예술이 어우러진 연희 단체를 지향하는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의 세 번째 정기공연이 화려하게 열린다.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의 정기공연 <초월(超越)>은 국립정동극장이 아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공연을 통해 색다른 인상을 줄 예정이다.

한국인의 초월적 미의식과 세계관을 감각적으로 그려내다

신작 <초월>은 감각적인 안무와 연출로 컨템퍼러리 한국무용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김윤수가 연출을 맡아 기대를 모은다. 그는 전통춤의 근간을 중시하면서도 이를 해체한 다양한 춤사위로 탈경계의 성향을 또렷이 드러낸다. 연출로서 전체를 아우르면서 공동 안무를 맡은 신세대 안무가 표상만·권교혁·방가람과 맞추는 호흡도 주목할 만하다. 세 사람 모두 유망 안무가로 각종 콩쿠르에서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은바, 젊은 패기와 능수능란한 움직임으로 작품에 활력을 제공한다. 연희감독 안대천과 그가 이끄는 연희집단 ‘The 광대’ 멤버들은 곳곳에 흥겹고 활기찬 연희적 요소를 더해 작품을 풍성하게 한다. 또한 다양한 작품에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른 서희숙 음악감독과 유수의 무대미술·조명·영상·음향·의상 전문가들이 조화를 이뤄 표현해 낸 초월적 세계는 작품의 완성도를 배가시킨다.
‘초월’이란 “어떠한 한계나 표준을 뛰어넘음, 실존철학에서는 무자각적인 일상적 존재의 입장에서 철학적 자각의 입장으로 넘어서 나아가는 일”을 뜻한다. 즉, 기준을 벗어나는 일 혹은 자각으로의 이행인 초월은 작품에서 땅과 하늘,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넘나듦을 의미한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한국인의 초월적 미의식과 세계관을 절제된 서사와 감각을 자극하는 초현실적 구현으로 그려냈다. 이를 통해 오감을 넘어선 초월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무명(無名)의 한 광대가 있고, 비록 종이로 만들어진 인형이지만 그가 함께 춤추며 자식처럼 아끼는 종이 무동이 있다. 현실 세계 광대의 그림자이자 동시에 무의식의 주인인 그림자 광대 여명(黎明)이 현실 세계의 광대가 자식처럼 아끼는 종이 인형에게 살아 숨 쉬는 생명을 주기 위해서 그 인형의 그림자이자 인형에 깃들어 있는 존재인 무동과 함께 깊은 무의식의 세계, 초월의 세계로 밤 여행을 떠난다. 조그만 광대 인형이 한국적 미의식을 지닌 존재로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이에 동화되며 내면에 잠재된 예술적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1시간 10분여의 공연은 여덟 장면으로 구성돼 있다. 각 장면마다 구체적인 캐릭터의 설정과 한국적 정서를 풍부하게 담아낸 춤이 뒤따른다. 땅줄춤과 오광대의 놀이·재주·버나·바라춤·부포놀이·강강술래·농악무·승무·학춤의 변용 등 수많은 춤의 향연과 각종 연희, 소리의 하모니는 스펙터클하고 인상적인 이미지로 공간을 채운다. 한 무대에서 이처럼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장면 구성에 자신감을 보인다는 방증이다. 수미쌍관(首尾雙關)의 형태를 보이는 전개에서 관전 포인트는 단연 4장 ‘초월’ 10분일 것이다. 빛과 색, 음과 양, 흑과 백으로 표현되면서 적막한 어둠 속에서 태어난 붉은 태양을 부포놀이 군무로 형상화한다. 태양의 기운과 그 열기를 묘사하며 남녀 중심 무용수와 군무가 펼쳐지는 장면으로 가장 많은 인원이 출연해 좌중을 압도할 것이다.
드라마틱한 전개를 위해 <초월>은 작품 속에 한국춤과 연희가 지닌 낙관적이며 자연주의적인 세계관이 세대를 초월해 장구하게 전해져 왔고, 그것이 나라는 개인을 넘어서 다음 세대로 이어져 우리 정체성의 일부가 됨을 담았다. 이를 위해 우리만의 춤과 연희를 보기 좋게 엮어내어 그 의미를 돌아보고 나아가 지난한 삶에 위로가 되기를 희망했다. 더불어 지나친 개인주의와 현실주의에 치우친 듯한 삶의 가치관이 균형 잡는 데 일조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진솔하고 세심하게 풀어냈다. 무의식과 현재의 교차, 한국춤과 연희가 지닌 낙관성, 자연친화적 세계관을 다룸에 있어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을 부연 또는 대변하기 위해 영상과 오브제가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배치된다.

최소한의 서사, 시어를 닮은 춤과 연희의 집중적 묘사

표상만·권교혁·방가람이라는 새로운 세대를 위한 젊은 안무가들의 역량을 선보인다는 신선함이 눈에 띈다.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이 그간 선보인 작품은 주로 무용극이었고, 그 장르의 특성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춤과 연희가 보조적 표현 수단으로 존재하는 면이 있었다. 그러나 <초월>에서는 춤과 연희가 만나기 위한 최소한의 서사를 바탕에 두고 춤과 연희, 소리와 움직임 자체가 전면에 드러나는 핵심 주제가 되도록 구성했다. 움직임과 서사의 상호의존관계를 조금 내려두고 시어를 닮은 춤과 연희의 본래 모습을 시공간에 집중적으로 묘사해 장면을 엮어나간다. 따라서 우리는 무대 위 출연진의 순수한 몸짓을 눈여겨봐야 한다. 세부적으로 현실 세계의 인물과 성격이 다른 무의식 초월 세계 존재들의 움직임은 인문학적 성격과 물리적 성격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설정에 따라 본질적이고 원초적이다. 그러면서도 캐릭터들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움직임으로 드러난다.
연극적 표현과 움직임으로 대중성을 가진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의 예술적 정체성과, 은유와 상징적 표현이 주를 이루는 추상적 한국춤을 추구하는 김윤수와의 만남은 특별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몸으로 회귀함에 따른 진지한 접근과 질문이 담겨 있는 <초월>은 오랫동안 이러한 주제와 작법의 작품을 갈망해 온 예술단 단원들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 변신의 과정을 통해 다른 이로 대체하거나 타 단체가 모작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국립정동극장 예술단만의 예술철학과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비전을 제시할 것이다. 감각적인 안무, 따듯한 정서와 스토리를 명확하게 보여줄 미장센, 뛰어난 기량으로 관객의 감각을 만족시킬 출연진의 노력이 만들어낸 <초월>은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이 그간 제공한 무대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풍성한 가을, 동시대 예술의 정취(情趣)를 맘껏 느껴보자.

글. 장지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했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춤과 사람들 주최 평론상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등단, 현재 웹진 『댄스포스트코리아』 편집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국립정동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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