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다섯

김경호의 박봉술제 ‘적벽가’
오랜 시간 겸손히 다져온 소리
사사 내력과 수상의 영광으로 명창의 반열에 올랐지만 여전히 소리가 무섭다는 소리꾼이 있다. 언제나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갈고닦아 온 소리꾼 김경호다. 16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들여 쌓아 올린 그의 ‘적벽가’에는 그간의 고민과 노력이 모두 녹아 있다.

겸손한 자세로 다져온 소리길

명창 김경호는 1987년 서울예술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판소리를 학습했고, 1996년 성우향 명창에게 김세종제 ‘춘향가’를 사사했다. 성우향 명창의 작고로 미처 완성하지 못한 ‘춘향가’를 김영자 명창에게 배우며 마무리한 후, 차례로 정광수제 ‘수궁가’와 강산제 ‘심청가’를 학습했다. 그리고 김일구 명창에게 박봉술제 ‘적벽가’를 사사했다. 본격적인 판소리 입문은 다소 늦은 감이 있었을지 모르나 학창 시절 농악과 아쟁을 연마한 덕에 국악과는 친숙한 그였다. 또한 명창 부부인 김일구·김영자의 자제답게 타고난 음악성도 있어 2001년 ‘시험 삼아’ 나가본 임방울국악제에서 판소리 명창부 대상을 받으며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타고난 목소리가 얇고 높은 편인 그는 경기민요를 배워보면 좋겠다는 주변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어쩐지 탁하면서도 정제되지 않은 판소리 창자들의 목소리, 그 구성진 소리가 내는 다채로운 판소리의 음악이 좋았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이자 스승인 김일구 명창의 ‘적벽가’ 무대를 보았을 때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고, 무엇보다 창자의 소리에 감응해 관객들이 자유롭게 터트리는 추임새, 그와 함께 소리꾼이 그려나가는 소리판의 세계에 매료됐다.
하지만 그에게 소리 학습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다. 맑은 목소리로는 판소리의 세계를 충분히 드러낼 수 없다는 생각에 구성진 목을 갖고자 목을 무리하게 혹사했고, 그 과정에서 몇 번이나 심각하게 목의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김영자 명창과 김일구 명창은 스승이면서도 또한 부모였기에 오히려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는 것이 어려웠다. 그는 스승의 다른 제자들의 소리 공부가 끝나야만 비로소 소리를 배울 수 있었다. 따로 레슨을 받는 시간이 정기적으로 확보되지 않아 동료들이 공부할 때 귀동냥으로 소리를 배우기도 했다. 스승의 칭찬과 격려 속에서 소리를 다져야 하건만 칭찬에도 인색한 스승이었다. 2001년 임방울국악제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조차 “운이 좋았던 거다”라고 말했다는 스승들. 54년간 제대로 된 칭찬을 받은 적이 없다며 호탕하게 웃는 명창은 그렇기에 그저 묵묵히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2010년 김경호 명창은 전주전통문화센터에서 처음 ‘적벽가’ 완창을 했는데, 그 당시 그는 “아버지의 소리를 닮아가려 노력”하겠다는 말을 한 바 있다. 하지만 갈수록 소리가 어렵고 무서워, 지금 생각은 과연 아버지를 닮아갈 수 있을까, 흉내라도 내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라고 한다.
김일구 명창은 2009년 즈음 김경호 명창의 ‘적벽가’ 무대를 보고 “이젠 밥 먹고 살겠다.”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 말이 그렇게 힘이 됐다는 명창의 말에서 부모이자 스승인 김일구 명창이 아들에게 반드시 가르치고 싶었던 것은 타고난 음악성도 자신의 소리 스타일도 아닌 끊임없이 스스로를 살피고 낮추는 겸손한 예술가의 태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웅호걸들의 이야기를 묵직하게 담다

이번 완창 무대에서 김경호 명창이 들려줄 판소리는 박봉술제 ‘적벽가’다. 송흥록·송광록·송우룡·송만갑·박봉래·박봉술·김일구를 거쳐 전승된 정통 동편제 소리로, 호방하면서도 거친 통성으로 내지르는 장중한 성음, 장단과 사설이 꼭 맞아떨어지는 대마디 대장단의 동편제 매력이 넘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일찍이 고(故) 박동진 명창은 “자고로 명창이라면 적벽가를 잘해야 한다.”라고 했는데, 그만큼 ‘적벽가’는 ‘명창’이라는 이름 앞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바탕소리 가운데 하나다. 과거 송흥록·모흥갑을 위시한 쟁쟁한 대명창들의 특장(特長)이 거의 <적벽가>였다는 점은 이 곡의 위상을 보여준다. 또한 박봉술이 ‘적벽가’가 매우 어려움을 역설하며 자신의 목청이 상(傷)한 점을 특히 안타까워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적벽가’는 원래 그 이름이 ‘화용도 타령’이었던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 부분에서 조조의 화용도 패주까지 다룬 것이었다. 뒤에 여기에 도원결의와 삼고초려 부분이 추가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대에는 익숙하지 않은 어려운 한자어들이 여전히 사설로 노래되고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것과 동시에 전쟁의 장면이 다루어지다 보니 ‘적벽가’는 『삼국지연의』의 내용을 모른다면 모든 장면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 표현하는 창자 역시도 남성 영웅들의 세계를 음악적으로 그려내야 하기에 힘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내들의 명분과 전쟁터의 변화무쌍한 양상은 진중하고도 무겁게, 때론 박진감 넘치게 그려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부모, 자식과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전쟁터에 나온 사내들의 슬픔 또한 절실히 담아내야 한다.

김경호 명창은 ‘적벽가’의 사설을 장악하지 못하면 이면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문 공부도 다시 하고, 『삼국지연의』도 수차례 읽었다. ‘군사설움 대목’의 경우, 언뜻 보면 슬프고 눈물 나는 장면이지만, 사실 전장에 참여한 남성들의 비장한 마음 역시 담겨 있기에 슬픔을 표현하는 계면으로는 그 장면을 온전히 그려내기 힘들다. 전장에서 목숨을 건 전투를 앞둔 사내들의 슬픔을 어떻게 형용할 것인가. 김경호 명창은 ‘적벽가’는 이런 고민을 끊임없이 던져준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매력적이라고 한다. ‘조자룡 활쏘는 대목’의 경우도 동남풍 비는 부분부터 차례로 이야기가 쌓여가는 부분이 재밌지 않으냐고 말한다. 기실 이 대목은 사설의 길이가 비교적 길고 급박한 장면에 사용되는 자진모리장단으로 표현되는데, 공명의 신출귀몰한 재주와 더불어 앞날을 내다보는 그의 예지력, 공명을 두려워하는 주유의 모습과 이를 단번에 처치하고자 하는 결단력, 그리고 공명을 끝까지 지켜내는 조자룡의 충성과 용맹함이 흥미진진하게 드러나는 눈대목이다.
김경호 명창은 박봉술제 ‘적벽가’를 학습하는 데 16년이 걸린 듯하다고 한다. 왜 이토록 오래 걸렸느냐는 필자의 물음에 자신의 소리가 부족했으니 그러지 않았겠느냐고 하면서도 덧붙여 이렇게 이야기한다.

“<적벽가>는 언제나 힘들고 무서운 소리였습니다. 그렇지만 소리하는 사람으로 제 이름 앞에 ‘아 저 사람 <적벽가>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은 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혹독하게 매달린 듯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오랜 시간 쌓아 올린 김경호의 박봉술제 ‘적벽가’가 기대된다. 사설의 상당 부분이 한문투니 이참에 『삼국지연의』의 내용을 살펴보고 공연장에 가면 좋지 싶다. 그래야 김경호 명창이 오래 고민하며 그려낸 주요 장면별 이면에 더욱 공감하며 소리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참고자료
최동현, 유영대 편, 『판소리 동편제 연구』, 태학사, 1998.
정병헌, 「판소리 <적벽가>의 <삼국지연의> 수용 양상」, 『한중인문학연구』 16, 2005.
글. 송소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20세기 창극의 음반, 방송화 양상과 창극사적 의미>(2017)로 박사 논문을 제출하고, 판소리와 창극 관련한 연구를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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