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스밍

칼럼니스트 한동윤의 플레이리스트
세계 무대를 연 다섯 감각
한국 대중음악이 약진에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빌보드 차트에서 우리 아이돌 가수들의 이름을 보는 것은 이제 예사가 됐다. 영국의 『엔엠이(NME)』, 미국의 『피치포크(Pitchfork)』 같은 유명 웹진들도 한국 아이돌 그룹의 음반 평론을 자주 내보낸다. 방탄소년단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erican Music Awards)> <빌보드 뮤직 어워드(Billboard Music Awards)> 등 미국 대표 대중음악 시상식에서 여러 차례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서구 음악 시장에서 ‘케이팝(K-Pop)’이 어깨를 쫙 편 상태다.

아이돌 가수들만 잘나가는 것이 아니다. 외국 음악 관계자들은 인디 신도 주시하고 있다. 특히 국악인들이 러브콜을 은근히 많이 받는다. 전통음악의 특색과 남다른 정서가 깃든 덕분이다. 기본적으로 음반 제작 제안이나 공연 출연 요청이 들어오는 것은 그 아티스트의 개성이 충만하고 음악성이 특출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외국 음악계 종사자가 인정한 뮤지션들이 속속 세계에 진출하고 있다.

고래야(Coreyah)

고래야는 2010년 ‘21세기 한국음악 프로젝트’ 참가를 목표로 결성됐다. 해당 경연에서는 장려상에 만족해야 했으나 고래야는 이후 웅비한 나날을 맞이한다. 2012년 벨기에 ‘스핑크스 믹스드 페스티벌(Sfinks Mixed Festival)’을 시작으로 2013년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Edinburgh Festival Fringe)’, 2017년 미국 ‘서머스테이지(SummerStage)’ 등 30여 개국을 돌며 공연을 펼쳤다.
2020년에는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국 NPR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에도 출연했다. 2017년 씽씽이 한국 가수 최초로 출연하기도 했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는 아델(Adele), 콜드플레이(Coldplay), 메건 디 스탤리언(Megan Thee Stallion) 같은 세계적인 스타도 여럿 다녀갔다.
외국인에게 고래야의 음악이 낯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중음악과는 다른 멜로디, 처음 보는 악기가 이루는 생경함은 오묘함이라는 매력으로 바뀌어 전달된다. 동양의 이채로운 월드뮤직인 셈이다.
신선하다고 해서 모든 노래가 괜찮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음악은 보편성도 띠어야 한다. 고래야는 음악에 절충이 잘돼 있는 팀이다.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서 부른 ‘날이 새도록’은 음악의 보편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그루브, 쉬운 선율, 확실한 강약과 휘몰아치는 구간을 겸비한 덕에 처음 듣는 이도 흥겹게 느낄 만하다. 해외 초청이 잇따르는 근거는 색다름과 대중성의 공존이라는 특기가 꽉 쥐고 있다.

페기 구(Peggy Gou)

인천에서 태어난 김민지는 열네 살에 부모님의 권유로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열여덟 살에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몇 달 뒤 다시 영국으로 떠났다. 이번에는 패션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패션 스쿨을 졸업한 뒤 그녀는 여성 패션 전문지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한국판의 영국 특파원 에디터로 지냈다.
2009년 친구로부터 디제잉을 접한 김민지는 2013년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다. 2016년 정식으로 싱글앨범을 발매하면서 디제이 페기 구로서 활동을 본격화했다. 2017년에는 미국 투어를 시작했으며, 이듬해에는 전자음악과 힙합으로 유명한 영국의 레이블 ‘닌자 튠(Ninja Tune)’과 계약했다. 2019년에는 수십 년의 역사를 지닌 디제잉 믹스 음반 시리즈 「DJ-Kicks」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하우스를 주 장르로 하는 페기 구는 세련된 음악을 들려준다. 악기와 소리 소스를 적절한 순간에 적당히 곁들임으로써 아기자기한 변화를 도모한다. 지난해 발표한 ‘I Go’ 또한 전자음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율동성을 높였다. 더불어 다양한 소리를 넣어 경쾌함도 확보했다. 마음이 무거운 요즘 젊은 세대가 공감할 만한 가사도 노래를 돋보이게 한다.

블랙스트링(Black String)

1992년 출범한 독일의 ‘액트 뮤직(ACT Music)’은 재즈 전문 레이블로 유명하다.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은 2008년 한국인 최초로 이곳과 계약하고 「보이지(Voyage)」, 「세임 걸(Same Girl)」 등의 앨범을 냈다. 블랙스트링도 ‘액트 뮤직’을 통해 1집 「마스크 댄스(Mask Dance)」와 2집 「카르마(Karma)」를 발표했다.
블랙스트링은 2016년 데뷔하자마자 국내외 음악 관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1집은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연주’ 부문을 수상했다. 2018년 영국 대중음악 잡지 『송라인스(Songlines)』가 주최하는 ‘송라인스 뮤직 어워드(Songlines Music Awards)’에서는 ‘아시아 앤드 사우스 퍼시픽(Asia & South Pacific)’ 부문 우승자로 호명됐다.
블랙스트링은 리듬과 선율을 알맞게 배분한다. 이로써 곡들은 구성이나 템포를 달리할 때에도 안정감을 잃지 않는다. 재즈의 즉흥성, 자유로운 연주를 담는다고 해도 어수선함이 없다. 곡 자체는 틀에 얽매이기를 거부하지만 바깥으로는 세밀한 구성과 체계적인 질서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이따금 황민왕의 소리로 한국 전통음악의 색채를 뚜렷하게 나타내는 것도 블랙스트링의 무기다.

잠비나이(Jambinai)

네덜란드의 대중음악 에이전시 ‘어스비트(Earthbeat)’는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들을 발굴하고 활동을 중개하고 있다. 이 회사를 설립한 제롬 윌리엄스(Jerome Williams)가 2013년 잠비나이의 ‘소멸의 시간’ 영상을 보게 됐고, 음악에 매료돼 잠비나이를 영입했다. 그해 핀란드의 ‘월드 빌리지 페스티벌(World Village Festival)’을 시작으로 잠비나이는 순방의 여정에 오른다. 이듬해에는 세계 최대의 종합 예술 행사인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 SXSW)’에 참가했으며, 유럽 14개국 투어 공연을 진행했다. 그 뒤로도 나라 바깥에서 한층 더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음악 팬들과 업계 관계자들은 일제히 잠비나이의 격정적인 음악에 홀렸다. 해금·거문고·피리 등의 국악기로 빚어내는 세찬 사운드에 많은 이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당연히 우리 전통악기의 음색에 신선한 인상도 받았을 것이다. 평생 들어본 적 없던 악기들이 폭발력을 나타내니 잠비나이의 음악은 더욱 강렬하게 다가갔을 듯하다.
잠비나이의 음악에는 근사한 을씨년스러움도 존재한다. 분명히 차갑고 기괴한데, 부담스럽지 않다. 3집 「온다(ONDA)」의 동명 타이틀곡도 마찬가지다. 피리와 해금이 이끄는 간주는 합주라기보다 두 악기가 충돌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어 느리게 부르는 후렴은 밝은 가사와 달리 어두움을 증대한다. 잠비나이는 곡의 수축과 이완, 악기들의 분산과 응집을 통해 기괴함을 그들만의 멋으로 만든다.

해파리(Haepaary)

작곡가 겸 프로듀서 최혜원과 전통 가곡 이수자 박민희로 구성된 해파리도 ‘어스비트’와 계약했다. 지난해 온라인으로 열린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에 참가해 외국 음악 팬에게 차차 존재를 알리고 있다. 같은 해 NPR의 온라인 뮤직 쇼 <올 송스 콘시더드(All Songs Considered)>에서는 진행자 밥 보일런(Bob Boilen)이 해파리를 아이디어가 넘치는 팀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곧 외국 여기저기에서 부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해파리의 음악성을 알아봤다. 올해 열린 ‘한국대중음악상’에서 해파리는 「Born by Gorgeousness」로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을, ‘경포대로 가서(Go to GPD and Then)’으로 ‘최우수 일렉트로닉 노래’ 부문을 수상했다. ‘올해의 신인’ 후보로도 올랐다. 언더그라운드에서는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해파리는 자신들을 얼터너티브 일렉트로닉 그룹이라고 소개한다. 이들은 국악과 전자음악을 조합해 테크노, 앰비언트, 드림 팝 등 여러 갈래를 선보인다. 「Born by Gorgeousness」에서는 종묘제례악을 바탕으로 묵직하고 침침한 음악을 들려줬다. 하지만 ‘경포대로 가서 (Go to GPD and Then)’에서는 전에 없던 밝은 모습을 보였다. 독창성과 실험성, 다채로움이 앞으로 해파리의 행보를 기대하게끔 한다.

글.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 세태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예술가를 향한 애정이 깃든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힙합은 어떻게 힙하게 됐을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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