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여섯

국립국악관현악단 <정오의 음악회>
가을은 밤보다 낮이 더 풍요롭다
바다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국악관현악에서 찰리 채플린이 직접 만든 영화음악까지. 높고 맑은 가을 하늘 아래 남산 자락에서 즐기는 음악과 여유에 취해 보는 건 어떨까.

낮 시간에 열리는 브런치 콘서트는 코로나 시기에도 다른 공연 대비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티켓 예매 플랫폼 인터파크에 따르면 브런치 콘서트는 2020년 대비 2021년 티켓 판매 금액이 144.7% 증가했다고 한다. 주요 관객층은 40대 이상 여성 관객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 예매자 분포는 40대 여성(36.6%), 50대 이상 여성(24.8%)의 순이고, 성별로는 여성이 86%, 남성 14%로 집계됐다.
브런치 콘서트는 공연장에서 연간 단위 기획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는 관객 개발이 필요하던 2000년대 중반부터 저녁 공연을 관람하기 힘든 주부들을 대상으로 낮 공연이 시작됐다. 예술의전당이 2004년부터 마티네 콘서트를 시작했고, 지금은 <11시 콘서트> <토요콘서트> <마음을 담은 클래식> 등 총 세 가지의 마티네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이제는 여러 공연장의 시즌 프로그램에 브런치 공연이 브랜드화되어 자리 잡았다. 예술의전당 외에도 성남아트센터 <마티네 콘서트>, 고양아람누리 <마티네 콘서트>, 아트센터인천의 마티네 콘서트 <김정원의 낭만가도: 인연> 등이 있다.
각 공연장마다 브런치 콘서트에 차별성을 두기 위해 개성 있는 테마와 아티스트 라인업으로 이목을 모은다. 티켓 가격 역시 가벼운 브런치 한 끼를 즐길 수 있는 정도의 비용으로 저렴하기에 더욱 관객을 모은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브런치 콘서트는 클래식 음악 장르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2021년에 개최된 브런치 콘서트의 86%, 2022년에는 88%가 클래식 음악 장르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기 때문에 14년째 꾸준히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정오의 음악회>는 국내 공연계에 주는 의미가 깊다.
2009년 첫선을 보인 <정오의 음악회>는 한 달에 한 번 공연을 올린다. 쉽고 친절한 해설과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국립극장 대표 상설공연으로 자리매김했다. 아나운서 이금희가 매번 공연마다 편안한 진행으로 국악이 다소 어려울 수 있는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국립국악관현악단에 예술감독 김성진이 부임한 이후부터는 젊은 국악 지휘자들에게 무대 기회를 제공하는 인큐베이팅 역할도 소화하고 있다.

지휘자 유숭산 ⓒ국립극장

물과 달에서 느끼는 심상

이번 11월에도 어김없이 <정오의 음악회>가 우리 곁을 찾아온다. <정오의 음악회>는 ‘정오의 시작 - 정오의 협연 - 정오의 시네마 - 정오의 스타 - 정오의 초이스’ 총 다섯 가지 무대로 구성된다.
음악회의 서곡이라 할 수 있는 ‘정오의 시작’은 작곡가 이귀숙의 국악관현악을 위한 ‘어야디야’가 연주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한국음악학과 교수로 있는 이귀숙은 본래는 서양음악 작곡가로서 활동했다. 2002년에 첫 국악관현악곡 ‘소생된 희망’을 발표하고 이듬해 세계여성음악제(IAWM)(2003) 등에서 연주했다. 이후 그의 작품에서는 전통 장단이 가미되고, 음을 꺾거나 농현을 하는 등의 전통 어법이 나타났다. 이는 작곡가가 어린 시절 농악을 배운 경험을 자연스럽게 작품 세계에 녹인 것이다. 그는 국립국악원 창작 국악관현악 공모전에 3회 연속 당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ARKO 한국창작음악제에서 3회 연속 당선되며 주목을 받았다. 산조아쟁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와운(渦澐)’으로 2013년 대한민국작곡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서 선보이는 국악관현악을 위한 ‘어야디야’는 2020년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명품 재창작> 공연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1994년 초연된 작곡가 김영재의 ‘풍어’를 재창작한 작품이다. 제목인 ‘어야디야’는 ‘어기야디야’의 준말로 힘차게 노를 저을 때 외치는 감탄사다. 서두인 A부분은 경기민요 ‘뱃노래’의 후렴구 ‘어야디야’의 모티프에 착안해 빠른 속도로 악기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다가 느린 템포의 B부분으로 연결된다. B부분에서는 거문도 뱃노래 중 ‘술비소리’ 가락이 서정적으로 노래되다가, 힘찬 출항을 알리는 긴박한 C부분으로 전개된다. 마지막 부분은 동해안 드렁갱이장단이 리드미컬하게 접목되어 만선을 꿈꾸며 노를 저어가는 어부의 희망이 역동적으로 연출됐다.
공연의 끝을 장식하는 ‘정오의 초이스’는 지휘자 유숭산이 직접 선곡한 작품을 연주한다. 왕성하게 활동하는 지휘자 유숭산은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기획공연 <2022 청춘, 청어람> 지휘자로 최종 선정된 바 있고, 국립국악관현악단 지휘자 프로젝트에 참여해 이번 공연의 지휘 기회를 얻었다. 그가 선택한 ‘정오의 초이스’는 작곡가 이정호의 밀양아리랑 주제에 의한 국악관현악 ‘적월(赤月)’로 부산대학교 한국음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이정호가 개기일식에서 볼 수 있는 붉은 달을 음악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개기월식 때 태양 빛 중 파장이 짧은 푸른빛은 대부분 지구를 통과하며 대기 속에 흩어지지만, 파장이 긴 붉은빛만이 지구의 대기권을 지나 달까지 다다르게 되어 달이 붉게 보인다. 이정호는 달까지 이어지는 붉은빛의 긴 파장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자에 가려져 고통으로 사라져버린 의지보다, 더욱 깊숙이 자리한 마음의 힘으로 자신만의 꿈에 닿기를 바라며 ‘적월’”을 작곡했다고 한다.

  • 협연 국립합창단
  • 협연 정홍일

아름다운 가을날, 더 풍요롭게 국악 즐기기

브런치 콘서트는 관객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려운 레퍼토리보다는 친숙한 곡을 지향한다. ‘정오의 음악회’ 역시 국악관현악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첫 곡과 마지막 곡 사이에는 대중적인 작품을 배치해 객석의 열기를 뜨겁게 달군다. ‘정오의 협연’에서는 대중가수·뮤지컬 배우·소리꾼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가들과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인다. 이번 11월 공연에서는 국립합창단원의 혼성 4중창 협연을 만나볼 수 있다. 국립합창단은 가을과 잘 어우러지는 한국 가곡 두 곡을 소개한다. 김소월의 시에 조혜영이 곡을 붙인 ‘못 잊어’, 조동화의 시에 윤학준이 곡을 붙인 ‘나 하나 꽃 피어’를 노래할 예정이다. 김소월의 시는 향토적인 체취를 강하게 풍긴다. 그의 시는 운율 그 자체가 음악적이어서 새로운 의미의 민요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못 잊어’는 떠난 사람을 잊지 못하는 슬픔, 시간이 지나 오히려 그 사랑이 잊혀가는 것을 더 슬퍼한다는 내용이다. 노래할 때는 무반주 합창으로 그 씁쓸한 마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나 하나 꽃 피어’는 작곡가 윤학준이 청주시립합창단 위촉으로 작곡한 합창곡을 가곡 버전으로 다시 다듬은 작품이다. JTBC <팬텀싱어2>를 통해 주목받았던 바리톤 김주택에게 헌정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서 ‘정오의 시네마’에서는 찰리 채플린의 첫 장편영화인 <키드>를 소개한다. 1921년 선보인 영화 <키드>는 지난해 100주년을 맞이해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됐다. 영화는 지독한 가난을 겪은 채플린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비극 속에 여러 해학적인 요소를 삽입해 세태에 대한 풍자를 시도했다. 채플린이 영화감독과 배우로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음악에도 깊은 혜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첼로를 즐겼고, 즉흥으로 작곡을 해오던 그는 자신의 영화의 사운드트랙도 직접 만들었다. 무성영화 시대에는 실제로 오케스트라가 스크린 밑에 있는 피트에서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고 한다. 찰리 채플린의 많은 애정이 녹아 있는 사운드트랙을 국악으로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정오의 스타’에서는 2020년 JTBC <싱어게인>에 참가해 2위를 한 가수 정홍일이 함께한다. 이번 무대에서 정홍일은 <싱어게인>에서 불렀던 김수철의 ‘못다핀 꽃 한송이’와 임재범의 ‘그대는 어디에’를 선보인다. 방송 당시 자신만의 감성과 색깔을 더한 강렬한 록 발라드로 두 곡을 불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게다가 오랜 밴드 활동을 마무리하고 발매한 첫 솔로 앨범의 타이틀곡인 ‘숨 쉴 수만 있다면’도 이번 무대에서 들을 수 있다.
서울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고 하면 다들 남산을 꼽지 않을까? 청명한 햇살이 내리쬐는 남산 자락에 위치한 국립극장을 찾아 <정오의 음악회>를 즐겨보길. 가을은 밤보다 낮이 더 풍요롭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될 터이니.

글. 장혜선 『객석』 수석기자, 바른 시선으로 무대를 영원히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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