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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합창단 <한국의 사계: 추억의 한국 가곡>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가을 문턱에 들어선 요즘, 이 계절에 잘 어울리는 음악회가 열린다. 10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리는 <한국의 사계: 추억의 한국 가곡>이다. 국립합창단과 클림오케스트라가 함께하고 솔로이스트들도 같이할 예정이다.

가곡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음악 장르다. 우리 정서를 우리말 가사로 삼고 있는 가곡은 아무래도 가사가 없는 기악 음악이나 독일어, 이탈리아어로 된 외국 노래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한국 가곡이 진짜 우리나라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느냐, 혹은 그 가사와 음악 관계의 농밀함이 서구의 리트(Lied)를 따라갈 수 있느냐 하는 논쟁은, 그 나름대로 의미 있으나 가곡을 들으며 따뜻이 데워지는 내 마음을 가로채지는 못한다.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애쓰지 않아도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아름다움, 애틋함, 흥겨움, 그리움이 어느새 우리 맘에 스며든다. 요란하거나 거창하지 않아도 마치 어느새 스며드는 계절처럼, 겨울 지나 다가오는 봄처럼 그렇게 “눈부시게 아름답게만 치르는 이 엄청난 비밀”(첫 곡 ‘무언으로 오는 봄’에서)이 우리 노래, 가곡을 통해서 전해진다.
이 연주회에서는 14곡의 우리 가곡을 봄·여름·가을·겨울의 네 계절로 분류해 연주한다. 예컨대 ‘무언으로 오는 봄’ ‘강 건너 봄이 오듯’이 봄을 대표하는 노래라면, ‘하우’(여름비), ‘바다로 가자’와 같은 곡은 여름 노래다. ‘아! 가을인가’와 ‘뱃노래’, ‘그리운 금강산’ 등이 가을의 노래로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꽃잎이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13번째 곡 ‘동심초’에서) “순결한 님의 목소리”가 “흰 눈 되어 오는” (14번째 곡 ‘눈’에서) ‘동심초’와 ‘눈’은 겨울을 드러낸다.

계절을 노래하고 계절의 변화를 주제로 삼는 음악회는, 지극히 음악적이다. 결국 음악이란 시간에 따른 변화를 느끼는 예술이고, 그 변화 속에 내 마음 한 자락을 담그는 일이다. 무심히 지나치면 느끼지 못할 그 시간의 미묘한 변화가,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그저 나와는 무관한 세상의 변화가 아니라 자신처럼 내 마음의 굴곡으로, 내 마음의 출렁거림으로 느껴지게 마련이다. 계절을 노래하는 음악회는 그러므로 흐르는 시간에 공감하고 그 시간을 되새겨 내 것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경험이 될 것이다.
가곡만큼이나 우리에게 가까운 또 다른 장르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합창이다. 혼자 부르는 노래도 좋지만 같이 부르는 노래에는 다른 매력이 있다. 합창은 남의 일이 아니다. 노래방에서 헤어지기 전 고래고래 부르는 마지막 노래도 합창이고, 야구장에서 열심히 부르는 응원가도 합창이다. 물론 국립합창단의 합창에는 뭔가가 더 있다. 때로는 같이, 때로는 따로 부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듣기 좋은 화음으로 마음을 풀어놓는가 하면, 어떨 때는 날카로운 불협화음으로 긴장을 만들기도 한다. 마치 우리네 삶의 매듭처럼 그 합창에는 절묘한 굽이굽이가 있다. 혹 가사를 몰라도 때론 그 굽이굽이를 따라 흘러가면 마음속 한 켠 숨어 있던 감성이 서서히 떠오를 텐데, 아름다운 우리말 가사와 함께하니 더 이를 나위가 없다.
아무리 좋은 것도 잠깐이지 한 시간 넘도록 합창을 들으면 지루할까 염려한다면, 그마저도 쓸데없다. 가곡의 주요 부분을 모아서 만든 오케스트라 서곡부터 시작해 우리말로 할 수 있는 다양한 합창의 매력을 모두 보여줄 테니 말이다. 때로는 우리 전통적 리듬과 가락을 가진 노래로, 때로는 조금 더 현대적 음악으로 합창을 들려준다. 어떤 노래는 오케스트라 반주로, 또 다른 노래는 반주 없이 오롯이 사람 목소리만으로 노래한다. (아카펠라 a capella라고 하기도 한다.) 본래 독창을 위한 곡을 합창으로 편곡한 곡이 있는가 하면 합창을 위해 만들어진 곡도 있다. 오가며 들어본 익숙한 것이어서 흥얼거리며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는가 하면, 이번에 새로 알게 될 또 다른 아름다운 곡도 있을 터다. 합창으로만 이루어진 노래가 있는가 하면 중간에 솔로가 들어가 있는 노래도 있다. 4계절의 다양한 감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감성을 표현하는 방식도 참 다양하다. 지루할 틈이 없다.

국립합창단은 지난여름을 아주 뜨겁게 보냈다. 영국 작곡가 본 윌리엄스(Vaughan Williams, 1872~1958)의 오케스트라와 합창, 솔리스트를 위한 대규모 교향곡 1번, ‘바다 교향곡’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연주했는가 하면, 우리나라 작곡가 최우정의 합창음악극 <눈사람>을 최초로 연주하기도 했다. 그사이에 외국 성악가들로 이루어진 합창단과 함께 우리 가곡을 알리는 음악회까지 곁들였다. 어느 하나 탄탄한 실력과 치밀한 연습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해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을 텐데, 빼어나게 해내어 우리 합창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합창단을 이끄는 지휘자의 능력도 돋보인다. 합창뿐만 아니라 그와 비슷하면서도 슬쩍 다른 결을 갖는 오케스트라의 결까지도 잘 이해하는 상임지휘자 윤의중의 리더십과 빼어난 해석이 없었다면 그 뜨거운 여름의 행보는 불가능했을 일이기도 하다.
이제 그 합창단과 지휘자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가곡과 합창이라는 선물을 들고, 이 계절 가을에 우리를 찾아온다. 연주회에 가서 음악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이 가을이 흠뻑 무르익을 터다.

글. 정경영 음악학자이자 현재 한양대학교 작곡과에서 음악학을 가르치고 있다. 음악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 외에 음악의 감동을 말과 글로 ‘번역’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 황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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