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

공연영상화
영상과 무대의 만남,
‘접속’으로 ‘접촉’하는 공연
인류의 미래를 주제로 다룬 20세기의 영화나 소설 속 장면에 나온 기술 중 현재 이뤄지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타임머신만 빼고 거의 다 만들어졌다. 사람들과의 친분도 온라인을 통해 쌓는 시대. 이제 접촉하지 않고 접속한다. 그리고 공연마저 ‘접속’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영상과 공연의 만남, 무엇이 달라졌나

1894년, 뤼미에르 형제가 촬영기와 영사기를 합친 ‘시네마토그래프’를 발명해서 첫 상영을 한 뒤 인류에게 영화와 영상은 친숙한 매체가 되었다. 무용 작품의 경우는 아예 댄스필름이 자리 잡은 상황이다. 영상매체가 처음 등장한 19세기 말에 무대 공연을 영상으로 촬영해서 남기는 것은 기록용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상영을 위한 공연 촬영’이 보편화한 건 2000년대 이후의 일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의 ‘더 멧 라이브 인 HD(The Met: Live in HD)’, 영국 국립극장의 ‘ 엔티 라이브(NT Live)’가 대표 주자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립극장이 2014년 ‘NT Live’를 도입해서 공연 영상을 상영해 오고 있고, 예술의전당은 ‘삭온스크린(SAC on Screen)’이라는 공연 영상화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극장뿐 아니라 예술단체들도 나서고 있는데 해외 예술단체들은 온라인 상영을 유료로 오픈해서 수익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립현대무용단의 ‘댄스온에어(DANCE ON AIR)’ 사업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 댄스온에어는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준비한 공연이 취소, 연기되면서 그 대응책으로 나왔다가 지금은 온라인 상영관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무용단 ‘댄스온에어’ 상영 작품, 이와 연출&김보라 안무 ‘시간의 흔적’ ⓒ국립현대무용단

공연은 극장 안에서 재연되는 순간에 사라지는 영역이었지만 영상으로 남은 작품은 계속 되풀이되면서 이제까지 우리가 공연의 특성이라고 믿어왔던 것을 허물고 있다. 한편 공연의 영상화는 두 가지 숙제를 우리에게 안겼다. 하나는 무대와 영상에서의 연출과 미장센을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 두 번째는 영상을 공개할 플랫폼의 역할이 커졌다는 점이다.

같은 듯 다른 작품, 무대와 영상의 미장센

무대 공연과 영상의 연출에는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공연에서는 무대의 어느 곳을 보든 그건 관객의 자유다. 나는 이것을 ‘관객의 조망권’이라고 표현한다. 영상에서의 연출은 카메라 프레임 안에 무엇을 어떤 이미지로 담을 것인지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이경은 안무작 ‘브레이킹’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무대에서는 세트로 표현됐던 장면이 댄스필름에서는 아예 도심의 빌딩들이 보이는 곳에서 촬영해서 만들었다. 여성 무용수를 들어 올린 장면을 살펴보면 댄스필름*에서는 남성 무용수들의 모습은 상반신만 카메라 프레임 안에 들어가 있다. 이때 여성 무용수의 시선이 머무는 위쪽에 여유를 두고 클로즈업함으로써 관객이 여성 무용수의 손짓과 시선에 더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오프라인 공연 현장에서 창작자는 관객의 시선을 제어하거나 조정할 수 없다. *무용 영화, 무대 춤을 기록하기 위한 영상, 춤 공연을 담은 관람용 영상, 독립적인 예술 형식 등 춤과 영상을 결합한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는 개념을 통칭.

댄스필름 이경은 안무 ‘브레이킹’ ⓒ국립현대무용단

이런 점 때문에 공연은 무대에서 표현될 때와 영상으로 표현될 때 전혀 다른 작품이 되기도 한다. 영상에서의 언어, 무대 공연에서의 언어를 모두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다. 이런 점은 비단 댄스필름뿐 아니라 다른 공연에서도 마찬가지다.

메타버스가 던진 질문, 새로운 플랫폼은 또 하나의 무대가 되는가

공연 영상화가 활발해지면서 미장센의 연출뿐 아니라 플랫폼의 문제도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만들어놓은 작품 영상을 오픈할 플랫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국내 공연 단체들은 대부분 유튜브와 네이버TV를 통해 작품을 공개했고, 평상시 홈페이지를 잘 구축해 놓은 예술단체들은 상대적으로 대응이 쉬웠다. 해외 유수의 예술단체들은 공연계의 넷플릭스라고 할 수 있는 마키티비(Marquee TV)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국립극단이 온라인 극장을 오픈하면서 연극도 시대의 흐름에 합류하고 있다. 최근 메타버스가 빠르게 부상하면서 공연계에서도 이를 주목하는 것 역시 플랫폼 이슈 때문이다. 메타버스 안에 개설된 다양한 종류의 방에는 이미 포럼·발표회·입학식·강의·패션쇼 등 현실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공연 무대의 변화에 큰 담론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SK텔레콤의 경우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ifland)’를 만들어서 처음 공개할 때, 이프랜드 안에서 관계자들과 기자들 모두 아바타로 만났다. 2021년을 마무리하는 제야의 종 행사도 이프랜드 안에서 진행했다. 이제 접촉 없이도 접속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오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 사례다.

메타버스 이프랜드 안에서 펼쳐진 제야의 종 행사 ⓒSKT

공연 무대는 메타버스로 옮겨질 것인가. 공연계에서 영상화와 함께 메타버스에 주목하는 이유는 첫째, 메타버스 내에 공연 영상을 넣어서 상영이 가능한 부분 때문이다. 이미 인기 가수들과 아이돌 그룹들은 게임이나 메타버스 안에서 자신들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해 오고 있다. 이런 경우 아바타들이 모여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더해서 공연을 하나의 축제처럼 기획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공연 자체를 아바타를 통해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메타버스 안에서 아바타들의 동작은 모두 현실에서는 PC의 버튼을 클릭하거나 누르는 것으로 이뤄지는데 이걸 과연 춤이나 연기라고 할 수 있을지, 나의 아바타는 나의 ‘몸’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AR·VR기술이나 관련 기기들이 일상화 될 경우 아바타와 나의 몸은 움직임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겠지만, 그럴 경우 복제된 아바타와 실제의 나 사이에는 어떤 논제가 발생할까. 메타휴먼의 시대에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이라는 무대 자체의 변화뿐 아니라 움직임과 몸에 대한 새로운 문제 제기로까지 어젠다를 확장할 수 있다.

영상은 무대의 대체재로 남을 것인가. 작품을 보여주는 새로운 영역으로 남을 것인가. 무용의 경우는 댄스필름이 등장했지만 오페라와 연극 특히, 음악의 경우는 이야기가 좀 다를 수 있다. 접속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있는 이곳을 ‘실제 같은 가상공간’으로 만드는 기술도 더해져야 한다. 그릇은 달라져도 그 안에 담긴 예술 정신은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의 염원이 아닐까 싶다.

글. 이단비 방송작가·공연대본 작가·무용칼럼니스트. KBS·SBS·YTN과 MBC ‘문화사색’ 작가를 거쳐 현재 한국경제TV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춤 경험과 방송작가 이력의 융합으로 공연예술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무용 칼럼을 집필해 오고 있고, 최근에는 공연 창작 작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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