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선율

국립국악관현악단 악장 여미순과의 대화
국악관현악의 새로운 스펙트럼, 김택수의 음악
2022년 2월부터 새롭게 선보이는 ‘마음의 선율’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가들이 직접 국악관현악곡을 소개하는 인터뷰 시리즈다. 앞으로 1년간 이어질 이 인터뷰의 첫 순서는 악장 여미순과의 대화다. 1999년 국립국악관현악단 입단 후 지금까지 꾸준하고 발 빠르게 국악관현악을 접해 온 그는 “큰 그릇에 여러 형태의 음악을 담을 수 있는” 국악관현악곡을 주의 깊게 살펴봐 왔다. 악장으로서, 아쟁 연주가로서, 그리고 한 명의 음악인으로서 그가 바라보는 국악관현악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마음의 선율’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가가 직접 국악관현악곡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먼저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악장님께서는 주로 어떤 음악을 흥미롭게 살펴봐 오셨는지 간단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악장을 맡으며 개인 활동보다는 악단 활동에 전념하다 보니 관현악곡을 가장 많이 접해 왔습니다. 관현악은 규모가 큰 음악이고, 또 큰 흐름 안에서 다양한 음악이 쉴 새 없이 돌아가잖아요. 저도 그런 음악을 좋아합니다. 거대하고 변화무쌍한 음악이요. 또 실험적인 시도도 좋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변화를 추구하고 실험적 태도를 견지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정체성과 제가 좋아하는 음악의 스타일이 기본적으로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소개해 주실 곡으로 지난해 말 2021 리컴포즈 공연에서 연주된 김택수 작곡가의 신작 ‘Moto Perpetuo(무궁동)’(이하 ‘무궁동’)과 ‘입타령’을 꼽아주셨습니다. 이 곡들을 선정하신 계기가 있을까요?

연주가로서의 제 취향이 반영된 선택입니다. 먼저 제가 소아쟁 연주로 직접 참여했던 ‘무궁동’은 난해한 부분이 더러 있어서 보자마자 곡에 애정이 생기는 경우는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연습할수록 조금씩 빠져드는 곡이었죠. 늘 해오던 것들과는 다른 새로운 패턴이었고, 음악 안에서 움직이는 다양한 사고를 경험할 수 있었어요. ‘입타령’은 소아쟁이 편성에 없던 곡이라 관객으로서 접한 곡이었는데 이 곡도 다양한 시도가 많이 이루어져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김택수 작곡가에 대한 앞으로의 기대감도 점점 커져 이 곡들을 소개하게 됐습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김택수 작곡가의 곡을 이번에 처음 연주한 것은 아니죠. 2015년에 초연된 ‘문묘제례악에 의한 국악관현악 ‘아카데믹 리추얼 - 오르고 또 오르면’’도 있었습니다.

네, 그 곡이 김택수 작곡가의 첫 국악관현악곡이었을 거예요. 제례악을 주제로 하지만 현대적 어법을 쓰는 곡이었는데 저는 그때도 굉장히 좋은 느낌을 받았어요. 국악관현악에는 음량이 작은 악기들도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전체 사운드가 작게 들릴 수도 있는데, 그 곡을 연주하면서는 사운드가 굉장히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악기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다고 할까요. 처음엔 다들 낯설어했지만, 초연 이후 나중에 정치용 지휘자님과 함께 공연할 때는 단원들이 먼저 이 곡을 재연하자고 제안할 정도였어요. 저희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위촉을 많이 하는 단체예요. 그런데 이런 현대적인 곡의 경우 재연을 자주 하기는 어려워서 아까운 곡이 너무 많습니다. 연주가 입장에서 초연과 재연의 느낌은 사실 많이 다르거든요. 재연할 때는 좀 농이 익는다고 할까요. 연주가들도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게 되고, 또 지휘자가 달라지는 경우도 생겨서 여러모로 입체적이고 깊이 있는 연주가 돼요.

김택수 작곡가의 곡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계시는군요.

사실은 악단에 오래 있다 보면 첫 리딩부터 이미 숙련된 연주가 나올 때도 있고, 이 곡이 어떤 곡인지 금방 감을 잡을 수 있는 경우도 많아요. 반면 김택수 작곡가의 곡은 처음 악보를 봤을 때도 조금 당혹스러웠고, 이후에도 많이 연습해야 했어요. 그런데 점점 궁금해요. 다음에 이 작곡자는 또 어떤 음악을 어떻게 쓸 것이냐 하는 궁금증으로 발전하는 거예요. 볼수록 매력적이고, 어렵지만 공들여서 잘 해내고 싶은 곡이었죠.

그래서 이번 ‘무궁동’ 할 때는 개인 연습을 정말 매일 꼬박꼬박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연습을 많이 했다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 쉴 새 없이 긴장감을 유지한 채로 움직이는데 잠시 쉬고 있을 때도 음악의 흐름에 집중하지 않으면 치고 들어오지를 못해요. 그래서 먼저 테크닉을 익히는 연습이 필요했고, 내가 쉬는 마디에서도 어떤 악기가 나오는지 소상히 악보를 읽어야만 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테크닉이 준비되어 있어도 못 찾아 나오니까요. 그 빈 공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확실히 보기 위해서도 연습을 많이 한 기억이 납니다.

‘무궁동’에서 아쟁의 매력이 돋보인 부분, 혹은 아쟁의 쓰임과 관련해서 흥미롭게 다가온 부분이 있을까요?

‘무궁동’이 처음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곡이잖아요. 이 곡의 템포가 메트로놈 기준으로 180이 될 정도로 빠른 건 아니었는데 곡을 들으면 무척 빠르게 느껴져요. 그 이유가, 36분음표처럼 짧은 음가의 음들이 촘촘하게 계속 움직이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되니 집중력을 잃어버리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아쟁은 바이올린처럼 손가락 움직임만으로 빠른 패시지를 구현할 수 없어요. 줄과 줄 사이 간격이 벌어져 있고, 팔도 움직여야 해서 그렇게 32분음표들로 이루어진 빠른 부분을 열 마디 이상 길게 지속하는 건 악기 구조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최수열 지휘자와 논의한 뒤, 작곡가와 연락해서 현실적으로 연주 가능한 수준으로 수정을 한차례 거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수정본을 받아 보니 그런 잔음들은 없어졌는데 돌이켜 보니 첫 버전으로 해야만 구현할 수 있는 게 또 있을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첫 버전으로 어떻게든 해봐야 하나 또 고민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작곡가가 수정해 준 버전으로 연주했죠.

수정된 아쟁 악보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 ‘거의 연주 불가능한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현하고 싶은 음악’ 사이에서 연주가들이 많이 고민하셨겠네요.

분석해 보면 참 재밌는 게 ‘억지로’는 없어요. 불편하고 어렵지만 그걸 해보려면 무척 많은 연습량이 필요한 거죠. 이걸 좀 나쁘게 말하면 서양음악의 어법을 왜 이렇게 해야만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안 해봤으면 한번 해보고, 해본 뒤에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 알고, 가능한 부분 중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그걸 전제로 또 다른 것들을 써볼 수 있으니까, 그런 시도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편이에요. 나중에 김택수 작곡가에게 왜 그 부분을 그렇게 쓰셨느냐고 물어봤더니, 너무나 간단하고 쿨하게 “선생님, 제가 아쟁을 너무 사랑해서 그렇게 썼어요”라고 하는 거예요. 아쟁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쟁을 사랑해서 그렇게 쓰셨다고 하니 “알지요”라 답했지요. (웃음)

‘입타령’은 어떠셨나요?

이 곡에도 김택수 작곡가의 서양음악 작법이 다 들어가 있어요. 우리가 노출되지 않았던 현대음악의 요소를 만나볼 수 있는 새로운 시도 중 하나지만, 한편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성악곡은 기악곡보다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이잖아요. 만약 다음에도 성악을 사용한다면, 이런 실험적 영역뿐만 아니라 이야기 위주로도 시도해 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판소리는 너름새나 발림 같은 것들을 할 수 있지만 가사와 가곡에서는 몸짓을 이용하지 않고 대부분 정제된 자세로 앉아서 불러요. 그런데 이 ‘입타령’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마스크를 쓰거나 비닐봉지를 뒤집어쓰는 등의 행동을 보여줬잖아요. 저는 그런 점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음향의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기도 했겠지만, 무대에서 실현됐을 때 보이는 영역에서의 차이도 정말 크니까요.

저는 ‘입타령’을 들으며 기악의 영역에서도 무척 다채로운 음색과 음향을 접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색과 음향의 차원에서는 어떠셨어요?

저희 해오름극장에서는 아시다시피 확성된 음향을 안 쓰잖아요. 전통악기가 지닌 소리 자체가 좋아서 그 매력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얼마 전 대대적인 리모델링도 마쳤죠. 그런데 상대적으로 음량이 큰 악기와 작은 악기가 있을 때, 자칫 음량이 작은 악기의 음색이 잘 살지 못하면 어떡하나 싶어서 평소에도 늘 고민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의 개인적 취향일 수도 있지만, 김택수 작곡가 곡에서는 그 어떤 악기도 죽어 있지 않더라고요. 모든 악기가 적재적소에 톡톡톡 튀어나오는 거예요. 그게 작곡가의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이 악기는 소위 선율 담당, 이 악기는 깔아주는 담당, 이런 식으로 역할을 정해 놓은 경우도 간혹 있는데, 김택수 작곡가의 곡에서는 각자의 개성을 지닌 악기들이 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도록 곡이 쓰인 것 같았어요. 전체적으로 이번 신곡에서도 그런 인상을 받아서 김택수 작곡가의 음악에 더 호감이 가기도 했었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정말 많은 국악관현악곡을 다뤄오셨을 텐데 최근에 연주한 곡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이제껏 20년도 더 넘는 긴 시간 동안 국악관현악을 해왔지만, 최근의 작품을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요. 이제껏 쌓아온 것들도 있지만 지금 저희는 그 과정에서 ‘정점’을 늘 갱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그 현재에 대해 말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또 저는 개인적으로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국립단체로서 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타 단체에서 시도하기 어려운 실험적인 시도를 과감히 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돌이켜 보면 리컴포즈 공연뿐 아니라 레퍼토리 시즌에서도 항상 새로운 음악을 했던 것 같아요. 대체로 새로운 곡을 만나면 어려웠고, 지금도 신곡이 눈앞에 떨어지면 마찬가지일 거예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희의 능력도 조금씩 좋아졌겠죠. 어렵지 않았다면 아마 음악적으로 발전하기 힘들지 않았을까요? 지금까지 국악관현악이 이렇게 먼 길을 걸어왔고, 저도 그와 함께 먼 길을 가고 있으니 함께 발전하며 더 나아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택수 작곡가의 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지만, 혹시 연결해서 생각나는 다른 한 곡을 꼽아주실 수 있을까요?

2019년에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양방언 작곡가에게 위촉한 ‘아리랑 로드-디아스포라’라는 곡이 있는데요. 이 두 곡을 나란히 놓고 보면 여러모로 재미있는 비교 포인트가 많습니다. 김택수 작곡가의 음악에는 전문가들이 귀 기울일 수 있는 부분이 많은 반면 양방언 작곡가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기 쉬운 크로스오버 음악을 만들죠. 처음 양방언 작곡가에게 신작을 위촉할 때 공연 전체를 맡기려고 했지만 여러 제약이 있어서 공연의 절반을 맡게 됐었어요. 그리고 이와 비슷하게, 지난 리컴포즈 공연에서 김택수 작곡가도 서로 다른 두 곡이었지만 공연의 절반을 맡아서 이끌어갔더랬죠. 두 공연 다 최수열 지휘자가 지휘를 맡았고요.

또 다른 점을 꼽아보자면, 양방언 작곡가의 ‘아리랑 로드-디아스포라’는 서사가 뚜렷하기 때문에 제목만 들어도 이 곡이 어떤 이야기와 정서를 담고 있을지 다 알 수 있어요. 하지만 김택수 작곡가의 곡들은 천천히 들여다봐야 그 작곡가의 사고를 이해할 수 있죠. 대중적이고 품위 있는 양방언 작곡가의 음악, 그리고 전문적이지만 흥미진진한 김택수의 음악. 둘의 차이점과 공통점이 뚜렷한데,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이 다양한 방향을 모두 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식생활에서 다양한 음식을 먹고 즐기듯, 음악에서도 다양한 작곡가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이 두 작곡가는 앞으로도 저희와 함께 서로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좋은 인연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어요.

김택수 작곡가의 곡이 연주된 후, 최수열 지휘자가 악보를 들어 관객에게 보이고, 객석에 앉아 있던 작곡가가 일어나 인사하는 모습.
마지막으로 ‘국악관현악’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상투적인 말이지만, 우리 본연의 감성에는 스스로도 잘 모르고 있는 내재된 감성이 있을 수 있어요. 그리고 저는 감히, 그 감성 중 하나가 우리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음악을 들으러 올 기회가 단 한 번이라도 생긴다면 그다음부터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내재된 감성을 찾을 수도 있고, 이후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으러 오실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리고 국립단체로서 그런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죠. 지금 저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아주 좋은 호흡을 맞춰가며 또박또박 걸어가는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앞으로 국악관현악에 대한 관심이 점점 많아져서, 저희가 안정적으로 꾸준히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더레이터. 신예슬 음악비평가, 헤테로포니 동인. 동시대 음악에 관한 의문으로 비평적 글쓰기를 시작했다. 음악학을 공부했고, ‘음악의 사물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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