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스밍

대중음악평론가 한동윤이 추천하는 서도밴드의 음악
조선 팝의 창시자 서도밴드
서도밴드 ⓒ어트랙트엠

거의 빗발치듯 쏟아졌다. 최근 2년 사이 대중음악을 다룬 기사에서 ‘조선’과 ‘힙’이라는 단어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대중음악과의 퓨전으로 현대성을 도모하는 국악인들이 주목받으면서부터다. 이 흐름의 포문은 판소리와 팝을 결합한 음악을 들려주는 이날치가 열었다. 2020년 현대무용 팀 엠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출연한 한국관광공사의 한국 홍보 영상이 네티즌의 입소문을 타면서 단숨에 유명해졌고, 이 영상에 쓰인 노래를 제공한 이날치 또한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이날치와 마찬가지로 민요 록 밴드 씽씽에서 세포 분열한 오방신과, 추다혜차지스 같은 그룹도 많은 음악 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매체들은 이런 개성 강한 국악인들을 소개할 때면 으레 ‘조선’과 한국에서는 ‘멋지다’ 정도의 뜻으로 통용되는 영어 단어 ‘힙’을 덧붙였다.

이 ‘조선의 힙’을 뽐내는 그룹으로 서도밴드가 빠질 수 없다. 리드싱어 서도, 건반 연주자 김성현, 기타리스트 연태희, 베이스 연주자 김태주, 드러머 이환, 타악기 연주자 박진병으로 이뤄진 서도밴드는 자신들을 ‘조선 팝 창시자’라고 일컫는다. 한국의 전통 색채를 나타내면서도 팝 뮤직, 즉 대중음악의 요소도 갖춘 작품을 선보이겠다는 포부와 지향을 ‘조선 팝’이라는 자신들만의 신조어로 묘사한 것이다. 여기에 ‘창시자’라는, 매우 대담한 장식을 추가했다. 어떤 뮤지션이 기존에 접하기 쉽지 않았던 색다른 음악을 한다고 할 때 본인을 창시자라고 명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름에는 음악에 대한 자신감도 깃들어 있다.

특별하면서도 자부심 충만한 음악 세계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검증됐다. 서도밴드는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방영된 JTBC 예능 ‘풍류대장 - 힙한 소리꾼들의 전쟁’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 프로그램에는 김준수·고래야·장서윤·토리스·누모리·고영열 등 내로라하는 국악인이 대거 참가했다. 서도밴드는 심사위원들과 시청자의 마음속에 깊이 파고들며 이 별들의 전쟁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 실력과 감각은 물론 대중성과 매력을 두루 겸비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부분 참가자가 1라운드에서는 가요 히트곡이나 유명 팝송을 국악으로 재해석해 불렀다. 반면에 서도밴드는 창작곡을 선택했다. 같은 해 출시된 데뷔 미니 앨범 ‘Moon: Disentangle’에 실린 타이틀곡 ‘뱃노래’였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익숙한 노래를 고르는 편이 유리하다. 특히 일반적인 오디션이 아닌 국악이 중심이 된 방송이기에 잘 알려진 작품에 전통음악의 숨결을 불어넣었을 때 원곡과의 차이가 더 도드라져 보일 수 있으며, 참가자의 성향과 특기를 부각하기에도 수월하다. 하지만 서도밴드는 그런 보편적인 계략을 좇지 않았다. 자신들의 음악에 멋과 경쟁력이 있음을 확신한 결정이다. 같은 제목의 민요를 토대로 한 ‘뱃노래’는 행진 악대 스타일의 드럼 연주로 강건한 기운을, 돌림노래 방식의 코러스로는 몽환적인 느낌을 발산했다.

sEODo BAND - Boat-song, 출처 : 서도밴드 공식 유튜브

서도밴드는 ‘풍류대장’에서 라운드마다 흡인력 있는 무대를 펼쳤다. 노래의 구성은 단단했으며,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의 성격이 이질감 없이 잘 어우러졌다. 이 사항이 서도밴드의 으뜸 장기다. 국악의 색을 분명히 드러내지만 어디에서도 과함이 없다. 대중음악과의 조합과 안배가 적당해서 전통음악을 즐겨 듣지 않는 이들에게도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갈 수 있다. 데뷔 미니 앨범의 공동 타이틀곡 ‘City Lights’는 아예 국악의 인자를 배제하다시피 하고 펑크(funk)에 집중하기도 한다.

sEODo BAND - City Lights, 출처 : 서도밴드 공식 유튜브

서도밴드의 균형 잡힌 퓨전은 당연히 서도와 멤버들의 조화를 통해 나온다. 서도는 어린 시절에는 판소리를 익혔고, 대학에서는 대중음악 작곡을 전공했다. 이 덕에 대중음악의 틀을 짓고 전통음악의 가창을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멤버들은 서도와 함께 곡들의 윤곽을 그리고 준수한 연주로 견고한 기반을 마련한다. 서도밴드에는 여느 전통음악 퓨전 그룹과 달리 국악기를 연주하는 멤버가 없지만 몇몇 노래의 가사가 보유한 고전적 성격, 서도의 가창만으로도 충분히 국악의 형상을 드러낸다. 이 부분과 팝의 문법에 대체로 충실한 반주가 끈기 있게 유대함으로써 서도밴드만의 특징이 완성된다.

서도는 솔로 시절 2019년 세 번째 싱글 ‘사랑가’를 발표하면서 자신을 ‘조선 팝 아티스트’라고 공식적으로 알렸다. 그 신선한 칭호는 더할 나위 없이 적확했다. ‘사랑가’는 한국 전통음악의 성질과 현대 대중음악의 양식을 기막히게 잘 아우르고 있었다. 세련되게 진화한 국악 퓨전이라 할 만했다. 사실상 조선 팝은 그때 시작됐다. 한국만의 이 ‘힙한’ 장르는 서도밴드를 통해 또 한 번 성장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한 덕에 추진력도 얻었다. 조선 팝이 더 많은 이에게 전파될 시간이 왔다.

[M/V] sEODo - Sarang-Ga (사랑가), 출처 : 미러볼 뮤직 Mirrorball Music 공식 유튜브
글.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 세태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예술가를 향한 애정이 깃든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힙합은 어떻게 힙하게 됐을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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