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기하나

국립무용단 ‘홀춤Ⅱ’ 리뷰
전통춤의 진화를 증명하는 무대
‘신전통춤’이란 무엇일까. 전통에 대한 본질, 춤꾼의 역량과 새로운 미감, 전통과 현대 사이 절묘한 균형감각을 보여주는 여섯 무용수의 무대로 한국춤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엿본다

전통이란 무엇인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전통인가. 오늘날 새로운 형식과 주제로 변주되는 전통은 어떻게 불러야 할까. 전통춤을 원형 보존과 전승에 목적을 둔 불변의 유산이라고 정의한다고 해서, 새로운 주제와 구성, 미적 감각으로 재해석되는 시도가 다 한국 창작춤이 되지는 않는다. 아직 범주화되지 않은 영역이 전통춤과 창작춤 사이에 있다. ‘홀춤Ⅱ’는 지난해 ‘홀춤’ 이후 국립무용단이 이 영역을 탐색한 결과를 발표하는 연작이다. 하나의 제목 아래 모인 6편의 작품은 두 한국춤 사이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영토를 각자의 방식으로 증명한다.

현대의 미감을 접목한 전통춤의 변신

경력 30년 이상의 숙련된 춤꾼들이 춤의 내공으로만 무대를 채운다. 무대미술은 자제하고 오로지 춤 자체에 집중하게 하는 ‘전통춤 공연’ 스타일은 지난해 ‘홀춤’의 콘셉트이기도 했다. 이 전략은 춤꾼들의 출중한 역량과 소박한 해석이 맞물려 전통춤의 새로운 맛과 가능성을 느끼게 하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다만 이 연작 공연의 과제는 ‘새로운 전통춤’의 확장 또는 발전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는지에 있었다. ‘홀춤’에서 내세운 날것의 춤맛이 전통춤의 정수와 변화 가능성을 보여준 ‘예선’이었다면, 향후 선보일 시리즈는 ‘새로운 전통춤’이라는 거대한 이름을 감당할 만한 폭과 깊이를 증명해야 하는 ‘본선’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홀춤Ⅱ’의 구성은 주목할 만하다. 이번 공연은 지난 2020년 공연에서 객관적인 평가 지표를 거쳐 우수작으로 뽑힌 3편과 2021년 내부 공모를 통해 선정된 신작 3편으로 이루어졌다. 질적 개선과 양적 보급을 함께 추구하는 의도가 다분한 구성이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이렇게 ‘살아남은’ 작품은 새로운 전통춤이 지닌 깊이의 증거가 되고, 그 진화를 기준점으로 삼은 신작들의 가세는 그 춤의 폭넓은 가능성을 입증하게 된다. 결국 ‘홀춤’ 시리즈는 이러한 장기적 경쟁 구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오늘의 전통춤’을 이끌어내려는 영리한 기획이다.
‘홀춤Ⅱ’는 그런 기획 아래 변화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무대였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세트와 이미지의 활용이다. 별오름극장에서 달오름극장으로 옮기면서 넓어진 무대만큼 춤과 공간의 운용이 달라졌다. 특히 배경 이미지를 통해 춤의 심상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무대미술은 독무의 존재감과 잘 어우러졌다. 오로지 춤에 집중하게 했던 지난 공연이 결국 기존 전통춤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조명과 이미지 등 시각적 요소들을 적절히 동원하면서 현대 공연예술의 미감을 녹여낸 것이 색다른 감상을 제공했다.

박재순의 ‘보듬鼓(고)’

이런 변화는 작년에 이어 돌아온 박재순·정현숙·윤성철의 레퍼토리 작품에서 확연히 나타났다. ‘보듬鼓(고)’로 공연의 시작을 알린 박재순은 퉁소의 구슬픈 소리에 맞춰 진도북춤을 선보이며 여전한 기량을 과시했다. 특히 반복된 동작 뒤로 중첩되는 배경 세트의 먹 번짐 이미지는 변화무쌍한 북춤과 묘한 균형을 이루며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했다. 엇박의 타악과 몸놀림의 매력을 부각한 박재순의 공연은 넓어진 무대에서도 변함없는 장악력을 보여줬다.

정현숙의 ‘심향지전무’
윤성철의 ‘산산수수’

신칼대신무의 풀고 떨쳐내는 동작에 지전춤의 무구(舞具)를 이식한 정현숙의 ‘심향지전무’는 의상과 소품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남은 자의 그리움을 담아내는 무속의 정서와 몸짓은 배경의 소용돌이 이미지와 맞물려 동양적 세계관을 연상시킨다. 또 산과 강, 바다 등 자연이 주는 감성을 표현한 윤성철의 ‘산산수수’는 거칠고 힘 있는 붓의 필치(筆致)로 표현한 산세(山勢)의 그림으로 남성춤인 한량무의 성격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아울러 이 세 편의 레퍼토리 작품은 새롭게 만들어진 음악을 활용하며 기존 전통춤 공연과 더 확실한 차별성을 띤다. 이처럼 현대의 미감이 더해진 시청각적 변주를 통해 전통춤의 정신과 기법은 오늘의 춤으로 시나브로 거듭나고 있었다.

오늘의 전통춤에 남겨진 과제

‘홀춤Ⅱ’에서 신작들의 역할은 새로운 전통춤의 확장된 가능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기존 레퍼토리 작품에 자극을 주는 데 있다. 레퍼토리 작품들이 질적 개선에 매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면, 신작들은 ‘여기까지도 가능하다’라는 창의적 해석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홀춤Ⅱ’에서 첫선을 보인 세 작품에서는 기존 전통춤의 본질과 형태 변화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 결과 각자의 해석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미개척된 영역을 탐험하는 대담함이 돋보였다.

김회정의 ‘단심(丹心)’
정소연의 ‘다시살춤’

구음검무를 재해석한 김회정의 ‘단심(丹心)’은 예인 자신의 존재를 투영해 기존 검무의 형식미에 개성을 불어넣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 화려한 의상과 무구, 강렬한 구음과 다채로운 동작이 결합된 공연은 한 편의 가무극 같은 시청각적 쾌감과 서사성을 갖추고 있었다. 도살풀이춤에 소고춤을 결합한 정소연의 ‘다시살춤’은 두 춤에 대한 무용수 본인의 생각을 담아낸 에세이로 눈길을 끌었다. 타악을 하는 데서 오는 물리적 고통과 도살풀이춤을 추면서 느꼈던 심리적 치유의 경험을 하나의 춤에 녹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출 수밖에 없는 예인의 삶을 내밀하게 고백하는 작품이었다.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김은이의 ‘바라거리’ 역시 줄에 묶은 바라를 돌리고 때로는 땅에 끄는 등 기존 바라춤의 형태를 해체하는 실험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런 시도들은 개성보다는 정확한 고증을 우선하는 고전적 의미의 전통춤이나, 한(恨)이나 신명 같은 지난 세기의 미의식과 확연히 구분되는 태도라는 점에서 새로운 춤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은이의 ‘바라거리’

새롭다는 것은 결국 다르다는 의미다. ‘새로운 전통춤’이란, 전통의 본질을 이어가면서 동시에 기존의 전통과는 다른 무언가를 증명해야 하는 이중의 과업을 떠안은 예술이다. 오래전 학계와 평단에서 대두된 용어 ‘신(新)전통춤’은 이 복잡다단한 춤 현상을 비교적 무난하게 담아내는 표현이다. 기존의 것과 다르기 위해서는 동시대의 감성과 소통은 필수다. ‘홀춤Ⅱ’에서도 그런 고충이 두드러졌다. 가령 빈 무대를 홀로 채워야 하는 홀춤의 책무와 절제된 배경 이미지의 조화는 과연 ‘신전통춤’의 이름에 걸맞은 무대 연출이었다. 다만 공연의 강렬한 여운을 충분히 음미할 새 없이 바로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는 빠른 전환에서는 현대 공연의 감성을 의식하는 조급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새로운 전통춤의 영역을 탐색하는 실험인 ‘홀춤’ 연작은 결국 춤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무대이다. 그 과정에서 현대적인 새로움에 이끌리기 쉽지만, 사실은 전통의 정신이라는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최근 전통적 요소를 소재로 한 수많은 현대 창작 공연이 가는 길을, 신전통춤도 굳이 따라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채움과 비움, 전통과 현대의 정신과 해석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낸 ‘홀춤Ⅱ’의 균형감각이야말로 신전통춤이 가져야 할 기준점일지 모른다. 어쩌면 ‘홀춤Ⅲ’라는 제목으로 돌아올 다음 무대가 얼마만큼 깊고 넓어진 신전통춤의 세계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글. 송준호 공연 저널리스트. 대학원에서 무용미학과 비평을 전공하고 ‘주간한국’과 ‘한국일보’, ‘더뮤지컬’을 거쳤다. 공연예술의 다양한 변화를 주시하며 대학에서 춤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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