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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토’ 무대기술감독 어경준 칼럼
새로운 해오름극장, 기술과 사람을 품다
매일같이 무대와 함께 숨 쉬는 사람에게 극장의 대변화는 어떻게 다가올까
지난 6월, 새로운 해오름극장에 오른 ‘귀토’의 기술감독 어경준의 시선으로 새 무대의 가능성을 점쳐본다

2021년 5월 18일 국립극장은 3년 반가량 진행한 해오름극장의 리모델링 결과를 발표했다. 오랜 기간 우여곡절 끝에 새롭게 단장한 국립극장의 얼굴을 마침내 공개한 것이다. 나는 리모델링 전 여러 작품을 통해 해오름극장의 기술적 환경에 친숙했고, 2016년 리모델링 제안사업자에 기술자문으로 참여하기도 하여 해당 사업의 결과에 기대가 높았다. 다행히 해오름극장 재개관에 맞춰 국립창극단 신작 ‘귀토’에 기술감독으로 참여하게 되어 공연장의 개선된 모습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전 해오름극장은 첫 개관 당시의 관점과 철학을 그대로 담은 역사의 현장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당시의 공연장 건축 관점에는 무대 위의 기술적 환경이나 다양한 전문 기술 분야에 대한 이해와 고려가 다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번 재개관을 통해 이런 부분이 개선됐으며 무대 기술에 현대적 시각이 많이 반영됐다고 생각한다.

상부 장치 - 디자인 유연성의 확보

무대 위에 장치를 매달아 전환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극에서부터 사용된 것으로 오랜 전통의 무대 표현이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공간을 눈 깜짝할 순간에 바꾸고 등장인물이 날아서 무대에 오르게 하는 등 다양한 무대 표현을 위해 매달기 효과의 기술적 환경이 중요하다.

장치봉은 프로시니엄 형식의 극장에서는 중요한 시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해오름극장의 이전 시설은 사용 하중, 구동 속도, 동기 제어 등에 어려움이 있었고, 또한 조명용으로 브리지형 조명봉이 설치되어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무대와 조명의 위치 선택의 폭이 적어 디자인 유연성이 떨어졌다. 새로운 시설에서는 조명 회로가 정해져 있지 않아 어느 것이나 조명·무대·음향·영상 등을 원하는 곳에 사용할 수 있고, 사용 하중과 구동 속도, 동기 제어 성능이 개선되었다. 특히 장치봉의 동기 제어 성능이 중요한 이유는 다양한 형태와 무게의 장치를 상부에 매달기 위해 하중을 분산하는 전략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장치를 가로로 매달아 평면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었다면, 이제 앞·뒤·대각선 등 자유로운 구성이 가능하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또한 무겁거나 부피가 큰 장치를 여러 장치봉으로 모아 달 수 있고, 편·하중 없이 동시에 구동이 가능하다. 물론 아직은 재개관 초기라 최대 성능 범위와 작동 오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할 것이다.

ssss 더욱 자유로운 연출과 구성이 가능해진 장치봉의 모습

상부 그리드는 장치봉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설치되는 장소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매달기 기술이 사용되면서 상부 그리드 설계에 신경을 많이 쓴다. 이전 시설에서는 상부 그리드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불편했지만, 이제는 접근성이 개선됐고, 그리드 위 작업 공간이 확보돼 작업성도 개선됐다. 다만, 그리드 그레이팅의 홈이 좁아 체인모터의 고리가 통과하려면 판을 부분적으로 걷어내야 하거나, 체인모터 추가 설치를 위한 상부 빔 구조가 적절치 않은 등 이동식 매달기 장치를 추가 설치할 수 있는 기술적 고려가 부족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ssss 접근성이 개선된 상부 그리드의 모습
하부 장치 ? 다양한 높낮이로 현대적 스타일 구현

기존 무대 바닥에는 직경 20미터 원형무대가 붙박이로 설치돼 있었고 그 안에 크기가 다른 3대의 승강무대가 내장돼 회전운동을 기반으로 한 장면전환이 주 기능이었다. 새로운 극장에서는 14미터 폭에 4미터 깊이의 리프트 4개가 줄지어 설치되어 바닥 아래에서 올라오는 수직운동이 주 기능이 되었다. 회전운동 바닥에서 수직운동 바닥으로 변경한 것은 공연장 무대 기계의 관점에서는 성격의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회전운동은 서로 다른 공간이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전환된다는 점과 전체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고, 수직운동은 새로운 공간 혹은 인물의 극적인 출현과 등장 및 소멸 등을 표현할 수 있으며, 부분적이고 단계적인 변화를 표현한다는 특징이 있다. 현대 공연의 경향이 여러 장면을 한 무대에 올려놓고 회전시켜 전환하는 오페라 스타일에서 높낮이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현대적 스타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있겠다.

ssss 현대 공연예술의 경향을 보다 유연하게 담아낼 수 있게 된 무대 바닥의 변화
왼쪽은 리모델링 공사 전 회전무대가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해오름극장 무대의 평면도, 오른쪽은 리모델링 공사 후의 평면도
작업 동선 ? 신속한 무대전환과 수납의 개선

기존 극장은 본무대 폭이 22미터에 달해 좌우 무대 외곽 작업 공간이 협소했고, 사용하지 않는 다양한 시설과 장치를 무대 양옆에 수납해 공연 중 전환 장치들의 수납과 전환이 어려웠다. 새로운 극장에서는 폭이 17미터로 줄어 좌우 작업 공간이 넓어졌고, 무대 외곽 상부에 매달기 시설을 이용해 사용하지 않는 음향반사판 등을 들어 올려 바닥에 작업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본무대 측면 프로시니엄 높이에 작업 동선을 추가해 장치봉 측면 작업이 가능하도록 하여 조명 설치 시 배선 및 장치를 매다는 것에 대한 작업성도 개선됐다. 다만 장치제작소에서 본무대로 이동하는 동선이나 무대에서 객석 상부로 이동하는 동선 등이 복잡한 점은 아쉽다. 공연 중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려면 기술 스태프들이 창고·제작소·무대·상부·하부·객석 등으로 안전하고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의 연결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ssss 과거의 무대 상수 작업 공간(왼쪽). 리모델링 후(오른쪽)
극장의 극적 환상

서양 극장의 역사를 참고하면 르네상스 극장부터 시각적 환상과 착시가 중요한 쟁점이 됐다. 갇힌 실내에서 하늘, 지하세계, 바다, 숲속, 거대한 저택과 궁궐 등 다양한 공간을 실제처럼 믿을 만하게 표현하는, 완벽한 환상과 착시를 구현하는 것이 전통이 됐다. 이를 위해 극적 환상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 요소들을 숨겨 관객의 공감을 유도했다. 그런 면에서 기술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것은 극장의 오래된 불문율이며, 무대 위 작품의 극적 효과와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집중도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공연 기술의 미덕이다. 새로운 공연장 환경을 만들며 여러 신기술이 극장에 도입되었다. 이런 기술이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무대 뒤에서 극적 도구로 훌륭히 사용되길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ssss 과거의 객석 공간(왼쪽). 리모델링 후(오른쪽)
사람 중심 기술

기존 공연장은 크기와 규모로 압도하는 권위주의적 분위기를 준다는 평가가 있었다. 극장의 폭이 넓고 커 무대와 관객 간의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감도 없지 않았다. 새로운 극장에서는 무대의 폭과 객석의 크기를 줄이고 좌우 벽면에 붙은 객석을 추가해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가깝고 친근해진 느낌으로 개선되었다. 건축의 중심은 사람이다. 그 공간을 이용하는 관객·출연자·운영자·기술스태프 모두에게 편리하고 안전하며 반갑고 친절한 공간이어야 한다. 누구나 편하게 들어와 거닐다 앉고 쉬며 각자의 경험을 나누는 장소, 편리하고 안전한 직장,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작의 희열로 가득한 놀이터로 해오름극장은 많은 사람의 수많은 손길이 닿아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손길과 숨이 공연장의 성격으로 완성될 새로운 해오름극장을 기대한다.

글. 어경준 무대 기술의 이론화와 전문화를 위해 공연 제작 현장, 예술교육 현장, 공연예술가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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