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국립무용단 시즌 프리뷰
전통은 움직임이자 관점이다
2021 국립무용단 레퍼토리시즌

국립무용단의 2021-2022 레퍼토리시즌은 어느 때보다도 압축적이고 알차다. 그럴 수밖에 없다. 코로나로 인해 지난해 공연이 연기와 취소를 반복하면서 2019년 말에 부임한 손인영 예술감독이 구상한 청사진도 상당수 유예됐기 때문이다. 새 시즌을 맞아 쏟아내듯 풀어내는 신작과 레퍼토리들은 지금 여기에 집중하면서도 통시적 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국립무용단의 고민과 지향점을 담아낸다

다채로운 신작의 향연
aaaaa ‘다섯 오’ 콘셉트 사진

시즌의 시작은 손인영 예술감독의 신작 두 편이다. 맨 처음 선보일 ‘다섯 오’(9.2.-5.)는 오래된 신작이다. 지난 시즌을 여는 작품으로 준비됐다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상향되면서 공연 직전에 취소됐기 때문이다. 담금질을 거쳐 돌아온 작품은 더욱 근원적인 질문만 남겼다. 인간의 이기심이 전 지구적 재앙으로 돌아오는 상황에서 춤은, 춤추는 이는, 그리고 국립무용단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섯 오’는 당장 다음 주를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수천 년을 이어온 음양오행(陰陽五行) 이론을 불러온다. 음양오행의 핵심은 ‘순리’이다. 순리의 세상에서 밝음과 어둠은 대립하는 힘이지만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하며 만물을 변화시키고 소멸시킨다. 또한 세상을 구성하는 여러 속성(나무·불·흙·금속·물)이 공존하며 조화를 이룬다. 하지만 ‘다섯 오’는 만물의 순환과 조화가 깨져버린 상황에서 시작한다. 관객은 황량한 풍경을 뒤로한 채 다섯 처용의 안내에 따라 성장의 나무, 원숙의 불, 죽음의 물, 균형의 흙, 강인한 금속을 차례로 둘러본다. 각 장면에선 안무자 고유의 움직임이 다양한 전통춤 레퍼토리의 움직임과 어우러지며 창작춤과 전통춤을 뒤섞는다. 또한 ‘춤’이라 인식되는 움직임 외에 택견, 지신밟기 등 우리 문화에 축적된 몸짓과 지식까지 포섭하며 전통적인 움직임의 차원을 확장한다. 여기에 자연의 순리를 성찰하고 인간의 길을 묻는 음양오행은 춤이 몸의 움직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이기도 함을 드러낸다.

예술은 현실을 견인하고 대안을 연습케 한다. ‘다섯 오’에서 음양오행의 세계를 둘러보는 초현실적인 여행이 끝나면 다시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 신명의 축제를 벌이며 자연과 상생하는 법을 모색한다. 대안을 엿보고 연습을 거친 후에 마주한 현실은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국립현대무용단과의 작업으로 주목받아 온 작곡가 라예송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하고, 무용·연극·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미술감독 정민선이 무대·의상·영상디자인을 맡았으며,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드라마투르그 남기윤이 참여했다.

손인영 예술감독,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 ㅋㅗㄴㅅㅔㅂㅌㅡ ㅇㅣㅁㅣㅈㅣ, 장영규 음악감독 (왼쪽부터) 손인영 예술감독,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 콘셉트 이미지, 장영규 음악감독 (왼쪽부터)

손인영 예술감독의 두 번째 신작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11.11.-13.)는 무당의 내림굿을 주제로 무속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대작이다. 무당은 인간과 신, 땅과 하늘을 잇는 존재이다. 무당을 매개로 하여 사람들은 신을 구하고 죽은 자를 떠나보내며 자신의 운명과 마주한다. 그렇다고 마냥 무거울 것 같지는 않다. 이날치 밴드를 이끄는 장영규 음악감독,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콘셉트 작가인 윤재원 연출 및 미술감독,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로 주목받은 의상디자이너 오유경 등 대중예술 트렌드를 이끄는 이들이 대거 참여하기 때문이다. 깊은 이야기를 발랄하게 던질 협업을 기대한다.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는 또한 한 개인이 신내림에 저항하다가 받아들이고 내림굿을 거치며 무당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 삶으로 돌아온 무당은 다른 이들이 거대한 공포를 이겨내고 삶의 고통을 다스릴 수 있도록 돕는다. 무대 위 무용수들은 무당이자 무당을 품는 공동체가 된다. 해오름극장을 가득 채울 이 대작의 안무를 손인영 예술감독이 책임지되 국립무용단 단원인 김미애·박기환·조용진·이재화가 조안무로 참여한다. 이러한 중첩의 안무 방식은 작품에 양감을 더하고 섬세함을 끌어올리는 전략이거니와, 길게 보면 대형 작품을 만드는 경험을 다음 세대로 전수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sssssss ‘홀춤+겹춤’, 박재순의 ‘보듬鼓(고)’, 윤성철의 ‘산산수수’(왼쪽부터)

2021년을 마무리하는 ‘홀춤+겹춤’(12.3.-4.)은 국립무용단 단원들이 안무한 일인무와 이인무를 선보이는 무대이다. 지난해 기획한 ‘홀춤’을 확장했다. 평생 춤을 수련해 온 무용수들이 전통춤을 재구성하거나 새롭게 창작해 몸에 밴 춤사위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치켜든 손가락, 떨리는 호흡까지 감지되는 무대에 홀로, 혹은 둘이 서서 자신에게 새겨진 어휘를 읊는다. 거대 조직에서 대작의 부품이 되는 데 익숙한 단원들이 춤꾼으로서, 그리고 안무가로서 각성하게 되는 기회이다. 1부에선 2020년에 ‘홀춤’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산산수수’(윤성철 안무), ‘보듬敲(고)’(박재순 안무), ‘심향지전무’(정현숙 안무)를, 2부에선 공모를 거쳐 새롭게 선발된 작품을 선보인다. 겨우 2년 차에 레퍼토리가 쌓이고 역사성이 생겨났다. 단원들을 안무가로 성장시키고, 갈라 공연에 적합한 작품을 발굴하며, 검증된 작품을 쌓아가는 ‘홀춤+겹춤’은 작품과 인재의 지속가능성을 헤아리는 단출하고도 영리한 기획이다.

글. 정옥희 무용연구자 및 비평가. 춤과 춤이 아닌 것, 무용수와 무용수가 아닌 이 사이의 경계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나는 어쩌다 그만두지 않았을까’ ‘이 춤의 운명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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