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하나

김철호 국립극장장 인터뷰
국립극장, 그 나라 공연예술 품격의 상징
해오름극장 리모델링 마친 김철호 극장장을 만나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이 3년 7개월간의 리모델링을 마치고 새롭게 태어났다. 국립극장의 상징물이기도 했던 거대한 중앙 계단을 없애서 관객의 접근성을 높이고, 2층 외곽을 영상 미디어로 노출해 현대적인 느낌을 주었다. 무인 발권이나 자동 검표 시스템 등 현대화된 설비를 도입한 것도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도 22.4미터인 무대 폭을 17미터로 줄이고 전체 객석 수도 1,563석에서 1,221석으로 축소해 관람 환경을 개선했다. 해오름극장 리모델링을 선두에서 기획하고 지금의 극장으로 만들어낸 이가 김철호 극장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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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위상에 걸맞은 새로운 터전

해오름극장은 2017년 10월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김철호 극장장이 부임한 것은 2018년 9월, 이미 선장 없이 공사가 진행된 지 꽤 오래였다. 취임 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과업은 전속단체의 공연을 활발하게 펼치면서, 동시에 해오름극장 리모델링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는 것이었다.

부임 후 상황을 살펴보니 리모델링 진행이 순탄치 않았다. 공사는 기획대로 되지 않았고 이미 예산은 바닥을 보이던 상태였다. 예산에 맞춰 공사를 마무리하든지, 아니면 제대로 된 극장을 만들기 위해 추가 예산을 확보해야만 했다. 이미 400억 원대의 예산이 투여된 상태라 추가 예산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김철호 극장장은 어려운 길이겠지만 국립극장의 기능과 역할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극장으로 짓겠다는 목표로 후자를 선택했다. 공사를 중지시키고 예산 증액을 전제로 모든 분야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전반적인 설계를 다시 했다.

“극장을 새로 지으면 적어도 40~50년은 사용해야 하는데 제대로 짓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국가의 얼굴인 국립극장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 높은 극장이 되어야지요. 대한민국 공연예술의 위상과 국격이 걸린 일이잖아요.”

김철호 극장장은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를 잘 못할 것 같은 성품이지만 자료를 준비하고 스스로를 낮추며 관계 부처의 주무관부터 만나 차근차근 설득해 나갔다. 서른 번이 넘게 국회의원실을 방문해 설득하고 기획재정부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그만큼 국립극장을 제대로 짓는 일이 절박했다. 그의 노력이 통했는지 186억 원가량 증액된 예산이 통과됐다.

올해 9월 2021-2022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을 열기에 앞서 지난 6월 시범 운영으로 국립극장 전속단체의 작품 ‘귀토’ ‘소소 음악회’ ‘산조’를 선보였다. 새롭게 리모델링된 해오름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한 관객, 기자, 공연 관계자들의 호평이 잇따랐다. 국립극장의 직·단원들도 한국 공연예술의 새 시대를 여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고착식 회전무대도 들어내고 작품에 따라 다양한 세트 운영이 가능한 승강무대로 바꾸었다. 회전무대가 필요할 때 조립식으로 만들어 탄력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여러 가지 무대 운용이 가능해지면서 다양하고 자유로운 연출 또한 가능해졌다.

리모델링 작업에서 특히 김철호 극장장이 강조하는 것은 음향이다. 그가 대금 연주자 출신이기 때문에 소리에 민감해서일 수도 있지만 현대 공연장을 평가하는 기준은 음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계에 의존하지 않는 자연음향의 수준이 극장 수준을 결정한다. 자연음향이 잘 들리게 하려면 지을 때부터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는 온전히 자연 음향이 가능하도록 기존 설계를 전면 수정하며 공을 들였다. 48개 어쿠스틱 배너를 설치하는 등 정성을 기울여 리모델링 후 최장 잔향 시간이 1.65초에 이르게 했다. 이는 전통 공연 예술에 최적화된 잔향 시간으로 계산된 수치다. 이전에 비하면 0.3초 정도 늘어났다. 자연 음향뿐만 아니라 전자 음향도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132대의 스피커를 통해 국내 공연장 최초로 몰입형 입체음향 시스템을 갖추고, 어느 자리에서든 균질하고 고급스럽고 풍부한 음향을 들을 수 있게 했다.

무대·음향·조명·기계 등 최고의 공연을 올릴 수 있는 환경을 갖춘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극장으로 하드웨어를 마련한 셈이다. 그는 재임 내내 리모델링 과정이 한바탕 전쟁을 치른 것 같다고 말한다. 지금의 해오름극장이 완성되기까지 많은 관계자들의 역사적인 책임감과 노력, 혼신을 다한 예산 확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국립극장 가족들과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이 힘을 모으고, 자부심 있는 국립극장을 만들겠다는 사명감으로 임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건축음향 디자인을 담당한 (주)게누인 컨설팅 임재선 실장님과 훌륭한 자연 음향을 완성할 수 있도록 자문해주신 조현의 한양대학교 ICT융합학부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특히, 공사 총 책임을 맡아 진행해주신 박문수, 김진현, 홍의석 시설관리팀장님과 무대장비의 총 책임을 맡아주신 김호성 무대기술팀장님, 극장 곳곳의 기능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꼼꼼히 챙겨주신 이동현 공연기획팀장님, 예산확보를 위해 함께 뛰어주신 여청구 기획총괄팀장님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어려운 일은 저도 함께 헤쳐나갔지만, 성과는 동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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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의 역할

국립극장은 여느 극장과 다르다. 어떤 수준과 품격의 공연을 올리고, 방향성을 담아내느냐에 따라 그 나라 공연예술의 품격이 결정된다. 모두의 극장이기 때문에 기초예술과 순수예술뿐만 아니라 대중예술까지 온전히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들이 편하게 수준 높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환경, 극장 자체의 기능과 품격을 끌어올리는 것, 이것이 김철호 극장장이 생각하는 국립극장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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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은 하나의 악기와 같아요.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죠. 좋은 악기를 섬세하게 길들여 세계적으로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좋은 극장이 완성됐으니 이제 어떤 콘텐츠를 담아내느냐는 과제가 남았다.

국립극장에는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 세 개의 전속단체가 있다. 우리의 언어와 소리, 몸짓을 바탕으로 동시대적인 작품을 만들어왔다. 전통을 기반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과거의 전통에 머물지 않고 지금의 관객과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미 국립극장은 전속단체의 인기 레퍼토리를 바탕으로 훌륭한 시즌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다. 제작극장을 표방하는 곳의 꿈인 레퍼토리화와 시즌제가 가장 먼저 자리 잡고 잘 운영되는 곳이다.

“국립극장에는 공연기획·마케팅·무대관리·운영·교육·홍보·전시·박물관·창극단·무용단·관현악단 등등 다양한 부문의 훌륭한 인재들이 함께하고 있어요. 예술단의 아티스트는 두말할 필요도 없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분들이 이곳에 모입니다. 최고의 기량을 갖춘 아티스트와 경험 많고 노련한 예술감독과 지도단원, 그리고 뛰어난 기획자, 무대예술가, 행정가……. 이분들이 있었기에 시즌제가 성공할 수 있었어요. 이분들이 국립극장의 미래입니다.”

김철호 극장장은 그 스스로도 예술가이지만, 작품 제작에 개입하기보다는 뛰어난 예술가들이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소통하고 생각을 공유하며 지원하는 데 힘을 기울인다. 특히 국립극장은 공공성을 추구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2020년은 국립극장의 개관 70주년을 맞는 해였다. 각 국립예술단체와 협업으로 축하 공연을 준비했으나 코로나19로 아쉽게도 추진되지 못했다. 70주년 이후 국립극장의 본격적인 새 출발은 해오름극장의 리모델링 완성으로부터 시작된다. 좋은 작품을 온전히 담아낼 터전이 마련됐으니 이제 새 시대를 열고 최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일만 남았다.

글. 박병성 공연칼럼니스트, 공연한오후 대표. 공연예술만의 매력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고, 그것을 이야기하고 기록해서 함께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뮤지컬 탐독’이 있다
사진. 박정훈 사진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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