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

서커스의 과거와 미래
독창적 길을 열다
서커스가 공연예술 장르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오늘날 관객에게 서커스는 ‘빅 톱Big Top’에서 펼쳐지는
스릴 넘치는 퍼포먼스와 스펙터클이지만, 그 기원과 역사에 대한 견해는 학자마다 다르다.
서커스의 기원부터 모던 서커스가 태동하기까지,
그리고 오늘날의 컨템퍼러리 서커스로 이어지는 진화 과정을 살펴보자.

역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서커스의 출발점을 1768년으로 본다. 물론 고대 로마 시대를 기원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지만, 서커스를 구성하는 곡예는 6천 년, 저글링은 4천 년, 줄타기는 3천 년의 역사를 갖고 있음을 떠올린다면, 서커스의 기원을 말하기는 쉽지 않다. 고대 로마에서 ‘서커스’라는 단어는 오늘날과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다.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공연장인 ‘키르쿠스 막시무스The Circus Maximus’는 전차 경주를 위한 경마장이었지만, 매년 9월에 15일 동안 야생동물 사냥과 공개 처형, 검투사의 결투가 벌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단 몇 명의 검투사가 코끼리 20마리와 싸우는 경기도 있었다고 하는데, 폭력적 스펙터클을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으로 선보이는 공연장은 가장 큰 규모로 확장했을 때, 25만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고대 로마의 서커스와 현재 서커스의 유사점은 관중을 즐겁게 한다는 것 뿐, 아주 많은 차이가 있다.

모던 서커스에서 컨템퍼러리 서커스로

2018년은 모던 서커스가 태동한 지 250주년이 되는 해였다. 기병대 장교였던 필립 애스틀리Philip Astley는 1768년 런던에 원형으로 된 공연장을 만들고, 기수가 빠르게 질주하는 말 위에서 여러 안무를 선보이는 ‘트릭 라이딩Trick riding’ 같은 승마 묘기를 선보였다. 1770년에는 마장마술 사이의 막간을 공중곡예와 광대, 저글링, 줄타기 등으로 채우기도 했다. 마장마술은 태곳적부터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고, 광대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했지만, 다양한 묘기를 한 공간에서 펼쳐 보이며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창안했다는 점에서 애스틀리는 ‘모던 서커스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모던 서커스에는 오늘날 서커스 애호가들이 필수 라인업으로 기대하는 다양한 묘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저글링, 공중곡예, 균형잡기, 광대놀음, 줄타기, 외발자전거 타기, 복화술, 마장마술과 동물 조련에 이르는 각종 묘기는 ‘빅 톱’이라고 불리는 대형 천막 안에서 펼쳐졌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모던 서커스 양식은 미국과 유럽으로 빠르게 전파되었고, 20세기 초 더욱 확산되며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컨템퍼러리 서커스의 창의적 진화

애스틀리의 쇼가 인기를 지속하며 점점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상류층과 하류층을 아우르는 모든 계층의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사회 계층의 구분이 엄격하고 격차가 심했던 시기에 신분에 상관없이 대중을 하나로 모으는 엔터테인먼트의 역할을 모던 서커스가 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모던 서커스와 컨템퍼러리 서커스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컨템퍼러리 서커스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예술 형식을 차용하거나 규칙을 실험하고, 재창조하며, 재발명한다는 데 있다. 산업 측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컨템퍼러리 서커스를 꼽자면, 1984년 캐나다 퀘벡에서 기 라리베르테Guy Laliberté가 설립한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가 될 것이다. 하지만 상업 서커스에 ‘예술’의 관점을 더해 현재의 아트 서커스 개념을 가능하게 만든 출발은 1970년대 등장한 뉴 서커스New Circus 혹은 누보 서커스Nouveau Cirque의 흐름이다.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회변혁 운동은 1990년대까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과 북미의 가치와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상상력의 힘을 강조하고 엘리트 극장과 대중오락 극장으로 나뉘던 경향을 통합하려는 시도는 서커스를 ‘모두를 위한 예술’로 진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 시기에 서커스는 학교 설립을 통한 전문성 강화와 심미적 예술로서 지위를 확보한다.
무엇보다 동물 조련이나 이국적인 야생동물을 전시하던 형태의 모던 서커스 형식에 변화가 생겼는데, 훈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학대와 감금 같은 폭력적 상황을 문제로 제기하며, 뉴 서커스는 ‘동물이 등장하지 않는 서커스’를 지향했다. 또 19세기 후반부터 미국에서 P.T. 바넘P.T. Barnum이 붐을 일으긴 ‘기괴한 쇼Freak Show’의 인종차별과 장애인 착취 문제가 지적되면서, 인권을 침해하거나 신체적 차이를 조롱하고 희화화해 웃음을 자아내는 방식도 배제되었다.
뉴 서커스의 움직임은 모던 서커스에서 선보이던 묘기에 신화 혹은 연극적 서사를 결합해 공연의 스토리텔링과 주제 전달에 집중하는 경향을 낳았다. 전반적으로 심미적 영향, 캐릭터의 구축, 기술과 조명 효과, 스토리 전개, 오리지널 음악의 사용과 화려한 의상 디자인을 강조하며 콘텐츠의 주제와 서사를 분명히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태양의 서커스 외에 내한 공연을 선보인 ‘서크 엘루아즈Cirque Éloize’, ‘세븐 핑거스The 7 Fingers’, 빅토리아 채플린과 오렐리아 티에레의 ‘서크 인비저블Le Cirque Invisible’ 등은 모두 뉴 서커스에 해당한다.
컨템퍼러리 서커스는 모던 서커스의 선형적 승계로도 볼 수 있지만, 무용과 연극, 철학과 미학의 접목을 통해 ‘예술’의 영역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차이점이 많아 완전히 새로운 장르로 보는 경향도 있다. 특히 독창적 사고에서 출발해 다양성을 만들어내고, 협업이 이루어지며, 또 다른 영역으로 진화한다는 점에서 ‘창의성’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카발리아, 슬라바 폴루닌, 요안 부르주아

현재의 서커스가 퍼포먼스에 연극적 기법을 적용하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놀라운 곡예와 시각적 효과를 강조하는 등 스펙터클과 예술성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지만, 기존 서커스의 전통과 방식을 지키려는 움직임도 함께 존재한다.
여전히 동물을 무대에 등장시키는 단체 가운데에는 태양의 서커스 공동 설립자인 노르망 라투렐Normand Latourelle이 2003년부터 시작한 ‘카발리아Cavalia’가 있다. ‘인간과 말의 마법 같은 만남’을 강조하며 말과 기수가 나누는 ‘교감’에 초점을 맞춘 첫 번째 마장마술쇼 <볼티주Voltige>는 재정적 위험과 회의적인 전망 속에 어렵게 개막했지만, 곧바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2년 정도 투어가 가능할 것으로 예견했던 공연은 10년이 지나도록 지속되었고, 2011년에 초연된 카발리아의 두 번째 <오디세오Odysseo>에 이어 2022년 <일루미Illumi>라는 세 번째 공연을 선보이기에 이르렀다. 각기 개성이 다른 150마리의 말을 마구간에 보유하고 있으며, 2천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흰색 빅 톱 공연장을 투어 지역마다 펼치는 카발리아는 “인내와 신뢰, 깊은 존중을 바탕”으로 조련사와 말이 서로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공연을 선보여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목적을 둔다.1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자아내는 묘기 사이에 희극적인 웃음을 선사하는 광대의 역할은 뉴 서커스에서도 친숙한 레퍼토리가 되는데, 광대 예술의 부활을 꿈꾸며 성공적인 행보를 보이는 대표적 예로는 ‘슬라바 폴루닌Slava Polunin’이 있다. “러시아 광대의 전설”로 불리는 폴루닌은 현재까지 전 세계 관객을 대상으로 일상을 축제로 바꿀 수 있기를 꿈꾸며, 전통적인 광대의 역할이 강조된 공연을 선보인다.2 1994년 런던에서 단 200명의 관객으로 시작한 <스노우쇼Slava’s Snowshow>는 입소문을 타고 매진을 이어가며, 30년간 120개가 넘는 도시를 사로잡았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와 마르셀 마르소의 무언극에 매료되어 광대 예술에 연극적 구성을 갖춘 마임 쇼를 창안한 폴루닌은 1980년 TV 프로그램에 등장해 인기를 얻게 된 자신의 광대 캐릭터를 중심으로 하나의 완전한 공연을 만들어냈다. <스노우쇼>에는 폴루닌이 광대로서 오랜 시간 축적해 온 모든 아이디어와 기술, 부활을 꿈꾸는 이상이 포함되어 있는데, “규칙을 깨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광대를 통해 모든 관객이 어린 시절의 ‘행복’을 되찾고, 일상에서 벗어나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3

  • 1 Liam Klenk. "The Story Behind Cavalia, One of The Largest Shows on Earth." Theatreartlife. 13 Nov 2022. Web.
  • 2 Helen Nugent. "Interview and Competition: Slava - The Man Behind the Snow Show." Northensoul Webzine. 11 Oct 2017. Web.
  • 3 Vladimir Belogolovsky. "Slava Polunin wants to convince people that they have wings." STIRworld. 5 Aug 2022. Web.
슬라바 폴루닌 <스노우쇼>

오늘날 서커스 예술은 상당히 다양한 형태의 묘기와 규모, 예술 형식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그 확장세가 잦아들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올해 <기울어진 사람들He Who Falls>로 첫 내한 공연을 한 프랑스의 아크로바틱 퍼포머이자 안무가인 ‘요안 부르주아Yoann Bourgeois’는 서커스와 현대무용을 결합하고, 원심력과 중력, 작용과 반작용 같은 물리적 현상과 힘의 관계를 작품으로 구현하는 특징이 있다.
서커스와 현대무용을 모두 공부한 부르주아는 서커스를 구성하는 저글링, 아크로바틱, 공중곡예와 같은 묘기가 항상 힘의 균형을 맞추는 일과 관련이 있음을 인지한다. 여러 개의 계단을 오르면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다시 트램펄린에 의해 튕겨져 계단 위로 올라서는 움직임의 반복은 부르주아를 대표하는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는데, 최근 프랑스 관객이 촬영한 영상이 SNS를 타고 급속도로 퍼지면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중가수의 뮤직비디오나 유명 디자이너의 패션쇼, 세계적인 브랜드 광고를 위한 협업을 통해 서커스가 한층 더 확장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부르주아는 여러 다른 장르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도 서커스가 중심을 잃지 않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트램펄린과 턴테이블, 추와 시소를 활용한 플랫폼에서 중력에 저항하거나 원심력, 뉴턴의 운동법칙에 맞서는 퍼포머들의 고군분투는 관객에게 긴장과 몰입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세상과 조화를 이루고자 끝없이 애쓰는 모든 인간의 삶을 상징한다.

요안 부르주아 <기울어진 사람들>
글. 주하영 공연비평가.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객원교수. 2017년부터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 풍경> 비평칼럼을 언론매체 ‘인터뷰365’에 연재하고 있으며,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진제공.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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