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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국립국악관현악단 <디스커버리>
발견의 즐거움
새로운 시즌의 서막이 열렸다. 지휘자와 악단 그리고 관객이 서로의 특별함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로 풀어낸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 안에서 무엇을 상상하고 무엇을 돌이켜볼 수 있었을까.

마음이 거기에 있지 않으면

2023-2024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첫 무대에 오른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관현악시리즈Ⅰ <디스커버리> 공연이 열렸다. 여자경의 지휘로 다섯 작품이 연주됐다. ‘디스커버리’라는 공연 제목에서 얼핏 ‘작품 발굴 기획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스쳤지만 이날 연주된 레퍼토리 중 위촉 초연작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디스커버리: 발견’의 의미에 관심이 쏠렸다. ‘찾아내지 못했거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무엇을 찾아낸다’는 사전적 풀이에 집중하면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기획 의도를 살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함께하고 싶은 새로운 지휘자를 찾았고, 지휘자는 처음 만난 국악관현악 연주자와 그들의 악기 소리, 그리고 작품에서 발견한 ‘무엇’을 펼쳐 보였으니, 이제 관객이 ‘디스커버리’에 동행할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중의 관심과 참여를 촉발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디스커버리 전략’에 흥미가 동했다.사서삼경의 하나인 『대학』에 나오는 그 유명한 ‘심부재언心不在焉’ 구절도 생각났다. ‘마음이 지금 하는 일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는 말이다. ‘마음’으로 음악회에 함께하자는 국악관현악단과 지휘자의 권유가 모처럼 즐거웠다.

무대 위에 펼쳐진 새로운 의미망

이번 공연의 선곡과 연주는 전체적으로 적절하고 알맞았다. 국악관현악 청중에게 비교적 친숙한 작품인 이해식의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1990)과 최성환의 국악관현악 ‘아리랑환상곡’(1970, 이인원, 계성원 편곡)을 처음과 마지막에 배치하고, 맨 가운데에 국악관현악 작품인 ‘Knock’(김백찬 작곡, 2021)를 넣은 뒤 그 앞과 뒤에 첼로 협주곡 ‘미소’(최지혜 작곡, 2022)와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금희악기점’(성찬경 작곡, 2022)이 차례로 연주됐다. 다섯 작곡가의 각기 다른 관현악 어법과 음향이 색다르게 전환되면서 지루할 틈이 없었고, 그중에서도 첼리스트와 피아니스트가 협연자로 나선 ‘미소’와 ‘금희악기점’은 전체 연주의 투 톱Two top으로 자리했다. 각기 다른 상황에서 탄생했음에도 19세기 말엽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시대상과 서사를 담아낸 두 작품이 국악관현악과 서양 악기의 이상적인 접점을 추구하는 여자경 지휘자를 만나 이전에 없던 새로운 의미망을 구축했다. 개별성이 강한 다섯 작품이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따로 또 같이’ 존재했다. 새로운 관계의 항을 구축해 내는 ‘디스커버러’ 여자경의 면밀한 분별과 판단이 스마트하게 작동한 일면이겠다.

국악관현악 지휘와 ‘발견’

지휘자 여자경은 친절했다. 단원과 교감하는 무언의 몸짓, 작품 읽기를 통해 자신의 음악 생각을 아주 차분하고 여유 있게 풀어내는 몸동작에 친절함이 넉넉하게 배어 있었다. 과장된 행동이나 놀라운 반전을 보여주려는 의도는 전혀 감지되지 않았으며, 조금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절제하며 파고드는 탐색형 지휘자의 면모도 내보였다. 아마도 여자경 지휘자가 국악관현악을 처음 연주한다는 프로그램 해설이나 공연 홍보 글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번 공연이 그의 국악관현악 첫 무대라는 사실을 눈치채기 힘들었을 것이다. 처음이라서 어색했다거나, 부족한 면은 ‘발견’되지 않았다. 노련하고 여유로운 지휘에 두말없이 음악 혼을 불 지피는 단원들의 ‘발견’을 모든 청중이 공유했을 것이다.
팸플릿에 실린 다섯 작품 해설에 포함된 ‘지휘자의 발견’도 무척 반가웠다. 선곡한 작품의 주요 음악 요소와 특징을 압축한 짧은 글을 읽으며, 여자경이 제시한 국악관현악 작품의 핵심 키워드들에 주목했다. 여러 작품에서 여자경이 발견한 ‘반복을 통해 익숙해지는…’ ‘힘이 있는…’ ‘흥이 나는…’ 등의 음악 내적인 전개가 국악관현악의 음향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됐다.
‘첫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쓰인 문장은 감상에 선입견을 제공하는 글이 아니라, 악보에 담긴, 혹은 악보 너머에 존재하는 작곡자의 음악 생각을 함께 살펴보자는 권유처럼 읽혀서 좋았다. 만일 콘서트 전후에 지휘자와 함께하는 ‘디스커버리 토크’가 있었더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참석해, ‘힘’과 ‘흥’의 발견에 대해 좀 더 세밀한 이야기를 청했을 것이다. 지휘자와 함께 국악관현악 작품을 탐색하고 체험하는 ‘디스커버리 학습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봤다.

작품 면면에 담긴 생각들

연주된 개별 작품 중 이해식의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은 전체적으로 밀도 높게 유지된 국악관현악 사운드로 작곡가 이해식 특유의 리듬감과 다이내믹을 살려내 경쾌했다. 쉽고 단순한 주제 선율이 반복되면서 점층적으로 쌓여가는 에너지가 마침내 흥으로 분출되는 유려함에 즐거웠다. 그런 중에 정악 가야금 합주로 시작되는 도입부의 친숙함 대신, 25현 가야금의 명징함을 선택한 점, 금속 타악기 소리 울림을 마치 중국 음악에서처럼 강하고 도드라지게 드러낸 점이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지휘자의 어떤 발견이었을까?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에 금속성 울림의 잔향은 오랫동안 여자경의 버전으로 기억될 듯하다.
최지혜 작곡 첼로 협주곡 ‘미소’는 작품의 모티프가 된 선교사이자 교육자이던 ‘로제타 셔우드 홀’ 스토리와 첼리스트 주연선의 매혹적 연주가 돋보였다. ‘아름다운 곡’이라는 관객의 환호와 찬사에 동의하면서도, 그리고 빼어난 첼리스트의 연주에 반했음에도 한편으로 여러 질문이 따라붙었다. 초연 때 국악관현악과 서양 오케스트라 편성에 전자 음향을 더한 90인조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전제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작곡가가 고려한 국악기와 양악기의 배합 비율과 사운드 이미지가 있었을 텐데, 이번 무대에서 새롭게 시도된 편곡과 악기의 구성은 적절한 것이었을까? 연주의 완결성이 초연 때에 비해 한결 개선되었음에도 작품 연주를 위한 최적의 편성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서양 악기와 협연하는 데 적절한 편성 아이디어’가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될 필요가 있었겠다.
성찬경의 ‘금희악기점’은 작곡자 성찬경의 피아노 협연으로 초연된 이후, 이번 무대에서는 오은철의 연주로 선보였다. 이야기의 내러티브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국악관현악이 마치 전통음악의 ‘병주’처럼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스며 동화됐고, 빛났다. 국악관현악과 서양 악기의 만남이 이럴 수도 있다는 발견이 새로웠다.
김백찬의 ‘Knock’는 국악 음계 활용과 장단의 변주, 음악의 큰 틀을 지탱하는 전통음악의 ‘호흡’ 구조에 주목하면서 국악관현악의 기본 어법을 탐색한 작품이다. 소재적 면에서 다른 네 작품과 결이 달라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이 작품을 여자경은 모범생처럼 곡의 이면을 분석하면서 동시에 국악관현악의 재미를 담뿍 얹어 내놨다. 최수열이 지휘한 초연 때도 인상 깊었던 이 작품을, 좀 더 깊이 있게 만들었으며, 국악관현악의 음악적 정체성을 반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버전을 갖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다.

글. 송혜진 숙명여자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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