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하나

MODAFE 폐막작 호페쉬 쉑터 컴퍼니 <더블 머더>
폭력과 해독의 컬래버레이션
시청각적 쾌와 비판적 사유를 동시에 자극하면서 동시대 춤 예술의 고지를 보여줄 예정이라는 점에서
이번 공연에 거는 기대는 높을 수밖에 없다.

올해 무용계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기나긴 팬데믹 시기 동안 움츠러들 수밖에 없던 활동상에 보상이라도 하듯 폭발적인 공연 연행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오래도록 기다렸던 해외 초청공연이 활발해지면서 상당히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이어지고 있어 무용 관계자와 애호가를 만족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번 가을 시즌에 놓치지 말아야 할 해외 초청공연으로 국제현대무용제MODAFE에서 마련한 호페쉬 쉑터의 <더블 머더Double Murder>가 있다.

이 시대의 현대무용, 컨템퍼러리댄스란?

시대에 따라 클래식발레·로맨틱발레·모던발레 등으로 스타일이 변화한 발레와 마찬가지로, 현대무용 역시 20세기 이래로 여러 변화를 거쳐왔다. 이사도라 던컨이나 마사 그레이엄의 모던댄스, 머스 커닝햄이 선도한 포스트모던댄스, 피나 바우슈로 대표되는 탄츠테아터 등을 거쳐 지금 이 시대의 주도적 무용 경향이라고 한다면 컨템퍼러리댄스Contemporary Dance를 들 수 있다. 컨템퍼러리댄스는 1980년대 프랑스와 벨기에를 중심으로 서유럽에서 생성, 정착, 발전해 작금에 이르러서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있다.
컨템퍼러리댄스는 말 그대로 ‘동시대의 춤’으로 클래식발레나 모던댄스와는 차별화된, 현재 진행 중인 창작 춤을 일컫는다. 상당히 개인적인 예술 사유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일관된 범주화가 쉽지는 않지만, 일종의 본질적인 공식이라고 한다면 ‘개별적인 관조로 이루어낸 해체와 재구성’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구체적으로는 다양한 움직임 영역을 넘나들면서 민속춤·요가·브레이크댄스·무예·아크로바틱·놀이·일상적 행위까지 끌어들이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 타 분야와 융·복합을 활발하게 시도하는데 설치미술·연극·영화·라이브콘서트·패션쇼·서커스·건축·첨단 테크놀로지 등 영역에 한계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장르 파괴적이고 복합매체적 특질로 인해 컨템퍼러리댄스가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창조력과 상상력을 요구받는 21세기의 예술로 훌륭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세계 무용계 사로잡은 호페쉬 쉑터

호페쉬 쉑터는 2000년대 초에 혜성처럼 등장해, 발표하는 작품마다 무용계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강렬한 인상과 감흥을 심어놓으면서 순식간에 안무가로서 존재감을 새겼다. 2008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무용단을 창단해 더욱 탄탄해진 조직력으로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 새들러스 웰스 극장의 부예술가라는 점만 보더라도 그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호페쉬 쉑터는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춤의 방향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명성과 인지도를 확립하고 있다.
영국을 활동 거점으로 삼고 있긴 하지만 호페쉬 쉑터는 1975년 이스라엘 출신으로 피아노를 배우다가 15세에 예루살렘음악·무용아카데미에 입학한 후 무용으로 전향했다. 졸업한 후 오하드 나하린, 빔 반데키부스, 테로 사리넨, 인발 핀토, 자스민 바르디몽 등 쟁쟁한 안무가의 작품에 무용수로 출연하면서 많은 영향과 영감을 받았다.
2002년 영국 런던으로 이주한 후 이듬해 첫 안무작 <프래그멘츠Fragments>를 발표하자마자 영국 무용계의 무서운 신예로 이름을 알렸다. 이어 <컬트Cult>(2004), <반란>(2006), <당신의 방에서>(2007), <정치적 어머니>(2010), <선Sun>(2013), <언터처블Untouchable>(2015), <야만인들>(2015), <군중>(2016), <더블 머더Double Murder>(2021) 등 발표한 작품이 연달아 화제가 되면서 동시대를 대표하는 안무가 반열에 올라섰다. 일찍이 대중에게도 영국 드라마 <스킨스Skins>에 삽입된 감각적인 ‘메시댄스Mexxie Dance’(2008)의 안무가로도 각인돼 있었다.
런던을 거점으로 파리·뉴욕·로마·도쿄·멜버른·리우데자네이루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러브콜을 받은 호페쉬 쉑터 무용단은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내한 공연으로 이미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2010년 첫 내한 공연인 <폴리티컬 마더Political Mother>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젊은 추종자를 대거 양산한 것이다. 2012년 <반란>과 <당신의 방에서> 그리고 2014년 <선Sun>을 통해 다시 한번 동시대의 창작적 감각과 묵직한 사회의식으로 적지 않게 충격을 주었다.

시청각적 쾌와 비판적 사유를 동시에 자극하는 작품

80분가량의 작품은 두 파트로 나뉘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클라운스Clowns>와 <더 픽스The Fix>라는 두 작품이 이어져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전반부를 이루는 <클라운스>는 원래 2016년 네덜란드댄스시어터를 위해 제작된 작품으로 BBC에서 방송되어 엄청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캉캉 팡파르에 맞춰 무용수들이 한 무리의 광대를 연상시키는 표정과 몸짓을 펼치면서 시작된다. 이윽고 그들은 목을 베고, 뇌를 쏘고, 창으로 가슴을 찌르고, 목을 조르고, 배를 가르는 등의 갖가지 살해 방식을 엽기 찬란하게 실행한다. 발랄한 음악, 인형 같은 꾸밈, 밝은 분위기로 행해지는 끔찍한 행태는 소름 끼치는 부조리함으로 새겨진다. 반복되는 폭력에 대한 군중의 무뎌짐과 무관심을 냉소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더 픽스>에서는 이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막연한 희망을 제시하기보다 현실적 방향을 열어 보인다. 어둑한 조명, 음침한 음악, 무채색 의상에다가 우왕좌왕하는 것 같은 무리의 사람들로 인해 무대 공간은 무언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이윽고 조여오는 폭력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가는데 인간미를 갖춘 호흡으로 관계적 공감을 형성해 간다. 마침내 관객과 접촉해 이러한 관계적 공감을 통한 치유를 완성시킨다. 인간성 회복이라는 목표는 멀리 있는 것 같으면서도 바로 우리 곁에 있다. 그 선택은 우리 몫이며 궁극적으로 우리 책임이기도 하다는 것을 되새기게 한다.

호페쉬 쉑터의 작품은 춤과 음악과 조명의 일체성이 뛰어나다. 비유하자면, 춤이라는 몸에 음악이라는 심박동과 조명이라는 시신경이 더해져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한 작품을 완성한다고나 할까. 호페쉬 쉑터는 현대무용에 민속춤·클럽댄스·제스처·일상적 행위 등을 효과적으로 융해해 넓은 스펙트럼의 움직임을 자랑한다. 피아노와 드럼을 배워서인지 그는 음악성도 탁월한데 전작처럼 <더블 머더>의 음악 역시 직접 작곡했다. 조명 또한 작품의 분위기를 때론 무겁게 때론 예리하게 때론 흥겹게 때론 섬뜩하게 조성한다. 춤과 음악과 조명이 일체성을 띤 채 사회 비판적 주제를 강렬하게 표현하는 방식은 곧 호페쉬 쉑터의 차별화된 예술적 특질이다. 시청각적 쾌와 비판적 사유를 동시에 자극하는 수작秀作에 빠져볼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겠다. 호페쉬 쉑터의 <더블 머더>는 10월 14~15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모다페 폐막작으로 국내 초연된다.

글. 심정민 무용평론가이자 비평사학자. 현재 한국춤평론가회장으로 『춤』과 『댄스포럼』에 무용 평론을 연재한다. 국립현대무용단 이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소위원, 국립극장 70년사 편찬위원을 필두로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국립극장 등에서 심의·평가·자문 등을 맡아왔다. 저서로는 『무용비평과 감상』(2020)과 『새로 읽는 뉴욕에서 무용가로 살아남기』(2016)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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