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한 마디

카미유 생상스
운명의 여정
알려지지 않은 모차르트로 불릴 만큼 타고난 재능을 지녔음에도 자신의 재능을 부각하기보다
나름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한 음악가.
신중하고 학구적인 자세로 후배들의 귀감이 된 그는 어떤 삶을 살고, 무슨 말을 남겼을까.

프랑스의 음악가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aëns, 1835~1921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단연코 ‘동물의 사육제’다. 그런데 생상스는 이 작품의 발표를 망설였다. 평생 그가 작곡하고 발표했던 수많은 작품과 달리 ‘동물의 사육제’는 미공개 작품으로 남기려 했다. 하지만 주변의 권유로 생상스는 14악장 중 ‘백조’의 출판을 허가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막판에 결심을 바꾼 덕분에 지금까지도 생상스가 창조한 동물 음악이 전 세계 어린이를 만나고 있다.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기준이 엄격했던 탓일까, 아니면 작곡 후의 변심이었을까. 어떤 쪽이든 이 작품이 그의 사후에 출판 및 흥행한 사건은 그가 음악가로 자신의 세계를 신중하게 지켜온 사람이었음을 알려주는 일화로 기억하면 좋겠다.

카미유 생상스는 1835년 프랑스 파리 6구에서 태어났다. 당시 정부의 서기관으로 일했던 그의 아버지는 안타깝게도 폐결핵에 걸려, 갓난 생상스를 남겨둔 채 숨을 거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생상스는 유복한 어머니와 집안 어른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그의 전기 기록에 따르면 그는 두 살 때부터 피아노 등 음악 공부를 시작했는데, 또래 아이들보다 언어 습득 능력과 음악성이 뛰어났고 라틴어·물리학·수학까지 빠르게 익혔다.

그는 4세 때 “어머니! 주전자 안에 오케스트라가 들어 있어요!”라는 말을 했을 만큼 소리를 음악으로 인식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어머니는 생상스의 천재성을 믿었고, 5세부터 대중 공연을 시작할 수 있게 도왔다. 10세가 된 생상스는 파리의 저명한 연주회장, 살 플레옐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B장조’를 연주하며 파리에 데뷔했다. 이후 그는 13세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해 피아노와 오르간, 작곡을 집중적으로 배웠다. 졸업 후 그는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프랑스의 피아니스트·오르가니스트·교수·음악학자로 활동하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이름을 남겼다.

당시의 음악학자들은 생상스를 두고 “알려지지 않은 모차르트”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생상스는 특별히 자신의 재능에 연연하지 않았다. 피아노 연주에 대단한 재능이 있었지만 오르간에 더 관심이 많았기에 오르간 연주와 작곡에 더 시간을 많이 썼다. 또 파리에서 가장 훌륭한 오르가니스트만 취직할 수 있었던 마들렌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하며, 오르간에 대한 애정을 마음껏 펼치기도 했다. 우연한 기회에 프란츠 리스트가 마들렌 성당에서 생상스의 오르간 연주를 들었는데, 리스트는 그를 두고 “세계 최고의 오르간 연주자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 둘은 음악적 우정을 나누며 지냈다. 1870년 5월 29일 독일 바이마르에서 리스트와 생상스는 리스트의 ‘축제의 함성, S.101’을 피아노 듀오로 연주했고, 생상스의 작품을 리스트가 지휘해 초연하기도 했다.

여러 활동을 통해 프랑스의 중진 음악가 대열에 오른 그는 프랑스 음악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고, 젊은 프랑스 작곡가들의 롤 모델이 됐다. 그는 프랑스의 젊은 음악가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파리 국민음악협회를 설립했다. 독일의 고전음악을 기반으로 한 당시의 음악 풍조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낀 프랑스의 음악가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에콜 니데르메이에르 음악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가브리엘 포레 등 여러 제자를 길렀고, 프랑스 음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867년에 레종 드 뇌르 훈장(슈발리에), 1913년에 최고 단계인 그랑 크로를 받았다.

그는 영국에서도 인기가 상당히 좋았는데,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학위도 받았다. 음악학·철학·심리학·천문학·고고학 방면으로도 조예가 깊었던 만큼 음악 철학에도 깊이가 있었는데,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음악은 자유롭고 표현의 자유가 무한대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코드, 불협화음 또는 잘못된 코드는 음악 안에 없다. 모든 음표 집합은 합법적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음악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 “예술은 아름다움과 개성을 창조하는 것이다. 감정은 그 후에야 나오며, 예술은 감정 없이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감정이 있을 때 훨씬 더 좋다” “천천히, 그다음에도 천천히, 그리고 마지막까지 천천히 연습해라” “우아한 선들, 조화로운 색상들, 그리고 아름다운 화음에게서 완전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예술가는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 등 예술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깊은 생각도 많이 남겼다. 한 사람의 예술가로 음악가로 그가 남긴 작품과 생각은 생상스라는 한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나아가 우리가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혀주는 데 도움을 준다. 그가 남긴 말 중에서 그의 삶을 가장 잘 투영하는 유명한 말을 소개한다.

생상스는 작곡가로 평생 약 450편의 작품을 남겼다. 매우 성실하고 꾸준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과나무가 사과를 맺듯, 그 또한 음악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시와 수필에서처럼, 마음에서 피어난 어떤 간절함마저 느껴진다. 그는 오페라·발레·관현악곡·협주곡·가곡 등 모든 분야를 고루 섭렵했다. 재미있는 점은 그는 유독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 그는 자신이 베토벤 이후의 후대 세대로 피아노 소나타를 꼭 써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더 해야겠다는 재치 있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가 발표를 꺼린 피아노 소나타 두 작품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는 여행을 무척 즐겼다. 평생 27개국을 179차례 방문했다. 연주 여행인 공적인 일도 있었지만 개인적 휴가를 위한 여정도 포함한다. 이탈리아·스페인·모나코·영국·미국 등 다양한 곳을 방문했다. 특히 그는 따듯한 기후의 이집트·알제리 등을 좋아했고, 여행에서 돌아온 감흥을 작품에 녹이길 즐겼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프리카’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카프리체 아라베’ ‘피아노 협주곡 5번 이집트’ ‘알제리 조곡’ 등이 대표적이다.

생상스의 말처럼 한 그루의 사과나무가 어떻게 계절을 버티고 살아가는지 한 번쯤 들여다보아도 좋은 계절이다. 지금의 결실 혹은 길고 긴 인생의 결실을 위한 나만의 사유를 만끽하며 생상스의 음악에 귀 기울여보는 것도 좋겠다.

※ 참고 자료
『Saint-Saens: On Music and Musicians 』, 2008, Camille Saint-Saëns, Roger Nichols,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
『Camille Saint-Saëns: A Life』, 2012, Brian Rees, Faber & Faber

글. 정은주 음악 칼럼니스트. 서양 음악가들의 음악 외(外)적 이야기를 발굴해 소개하며 산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발칙한 예술가들』(추명희·정은주 공저), 『나를 위한 예술가의 인생 수업』을 썼다. 현재 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 월간지, 『월간 조선』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부산mbc <안희성의 가정 음악실>에 출연하고 있다.

일러스트. romanticize
<월간 국립극장> 구독신청 <월간 국립극장> 과월호 보기
닫기

월간지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 구독 신청

뉴스레터 구독은 홈페이지 회원 가입 시 신청 가능하며, 다양한 국립극장 소식을 함께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또는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편리하게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회원가입 시 이메일 수신 동의 필요 (기존회원인 경우 회원정보수정 > 고객서비스 > 메일링 수신 동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