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
하나

접근성 공연과 극장
열린 공간으로서의 극장
배리어프리, 접근성, 릴랙스 공연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
전지적 시점의 관점을 거부하고, 다양한 시각과 경험을 제공하며,
관객의 폭을 확장하는 현시대의 연극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2023-2024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작품을 살펴보면 ‘배리어프리 공연’이라는 표현이 부쩍 많이 보인다. ‘가장 진화한 형태의 배리어프리 공연’ <합★체>, ‘배리어프리 신작’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재탄생’한 <맥베스> 등의 소개가 그것이다. ‘배리어프리Barrier-free 공연’이란 장애 관객의 극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장벽Barrier’을 ‘없애기Free’ 위한 노력에서 비롯된 용어다. 수어 통역, 자막 제공, 공연 전 무대에서 무대장치를 혹은 로비에서 무대 모형을 만져볼 수 있는 터치 투어 등이 제공되는 공연을 말한다.
국립극장뿐만 아니다. 아르코예술극장 로비에 들어서면 관객 안내를 맡은 수어통역사를 만날 수 있다. ‘접근성 매니저’라는 스태프를 운영하는 민간 극단도 있다. 작가 대본과 별도의 음성 해설 대본을 마련해야 하고, 자막을 준비하는 등 공연 준비 과정 또한 훨씬 복잡하다. 그럼에도 접근성을 높이고자 하는 공연이 늘어나고 있다.

배리어프리는 정말 ‘프리’한가?

‘배리어프리’ 용어에 대한 문제 또한 제기되고 있다. 수어 통역, 자막 제공만으로 정말 ‘프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수어와 자막 제공은 청각장애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무대 터치 투어는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외에도 신체적·정신적 장애의 유형과 종류는 다양하다. 모든 장애 관객을 위한 ‘프리’한 공연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최근에는 ‘배리어프리’ 대신 ‘접근성Accessibility’이라는 용어가 선택되고 있다.
더욱 급진적 형태의 접근성 공연으로는 ‘릴랙스 공연Relaxed Performance’ 개념 또한 논의되고 있다. 처음엔 극장에 입장이 제한된 혹은 소외된 관객인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관객을 대상으로, 이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시도됐다. 극장 공간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공연 전날 무료 하우스 오픈, 공연에 대한 사전 설명, 섬광등 제거, 조명 및 음향 세기 조정, 극장과 로비에 훈련된 스태프 대기, 그리고 잠시 객석을 떠나 있어야 할 경우 공연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휴식 공간을 마련하는 것 등이다.

릴랙스 공연은, 영국에서 1990년대에 논의되기 시작했으며, 자폐 스펙트럼 친화적 공연은 2009년 런던 폴카 극장에서 처음 시도됐다. 이러한 시도는 2011년 미국의 지역 아동극 전문극장에서, 그리고 브로드웨이 디즈니 뮤지컬 <라이온킹> 이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2020년 자료에 따르면, 현재 영국 극장의 20퍼센트는 릴렉스 공연을 제공한다.
실제로 영국 국립극장National Theatre 홈페이지에 공지된 ‘접근성Access’ 항목에서도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수어·음성해설·자막·청각 강화 헤드셋 제공, 보청기를 사용하는 관객에게 직접 사운드를 내보내는 히어링 루프 시스템 지원, 안내견 동반 허용 등은 일반적으로도 알려진 접근성 내용이다. 그 외에 칠드 공연Chilled performance 1, 감각 친화적 공연Sensory-adapted performance, 치매 친화적 공연Dementia-friendly performance 항목에 다양한 접근성 관련 내용이 안내돼 있다. 비록 처음엔 아동과 자폐 스펙트럼 관객을 상대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치매 환자, 아이를 동반한 관객, 감각에 민감한 관객에게 편안한 공연을 제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지받고 있다. 영국과 미국의 주요 극장이 대부분 릴랙스 공연을 실행하는 것만 보아도 그 당위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 1 릴랙스 공연과 유사하게 공연 중 객석에서 관객이 대화하거나 이동하는 것이 자유로운 공연을 의미한다. 단, 릴랙스 공연이 특정 관객을 배려해 공연의 조명, 음향, 동작 등을 수정하는 것과 달리 이 공연 형식은 무대 위 공연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

우리는 극장에서 환대받는 관객인가?

해마다 여름이면 해외 연극 축제를 경험하고 돌아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이나 런던 극장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이구동성으로 부러워하는 일이 하나 있다. “공연 보면서 맥주를 마실 수 있어!” 웨스트엔드 뮤지컬 극장에서도 공연을 보면서 극장 내에서 판매하는 팝콘이나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의 객석 출입구는 공연이 시작돼도 계속 개방돼 있다. 언제든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수 있다. 티켓 확인은 극장에 입장할 때 한 번만 한다. 우리 극장에서는 금지된 것들이다.
우리 극장에는 생수 외 음식물 반입이 금지돼 있다. 인터미션 후 재입장할 때도 티켓을 소지해야 한다. 반면에 우리는 티켓 확인 없이 KTX 열차에 탑승한 지 오래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티켓을 끊지 않고 무임승차하는 승객은 보지 못했다. 우리 극장은 엄격하고 통제된 분위기가 강하다. 우리 스스로도 통제에 익숙하다. 우리는 극장 매표소에서 티켓과 신분증 검사를 받는다. 최근 새로운 유행처럼 접근성 공연이 많이 올라가고 있다. 접근성 개념은, 단지 공연 팀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극장 전체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앞으로 우리 극장은 더 편안한Relaxed 곳, 관객 친화적인 곳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접근성 공연이 시도된 것은 2017년 남산예술센터 공연 <7번국도>에서였다. 극단 ‘여기는 당연히’(이하 여당극)의 구자혜 연출가가 제안한 것에서 비롯됐다. 이후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미아리고개예술극장, 2020), <로드킬 인 더 씨어터>(국립극단, 2021), <퇴장하는 등장>(탈영역우정국, 2023),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2023) 등에 이르기까지 극단 여당극은 접근성 공연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공연에서 장애 관객뿐만 아니라 비장애 관객 또한 기존의 고정된 관극 경험에서 벗어나 다중의 감각으로 공연을 새롭게 경험하고 있다. 최근작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에서는 아예 무대와 객석 구분도 없앴다. “누구도 모든 것(곳)을 볼 수 없는 객석으로 극장을 채웠습니다.”라는 설명이다. 공연의 전지적 시점을 거부하는 공연이다. 접근성 공연이 새로운 연극 실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NT Live를 통해 국내 관객에게 유명해진 이보 반 호프 연출의 <로마비극>(ITA 제작, LG아트센터, 2019) 또한 무대와 객석 구분 없이, 공연이 시작돼도 출입구를 개방한 채 공연했다. 커피를 마시고 샌드위치도 먹으면서 공연을 봤다. 5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관객은 축제처럼 공연을 즐겼다. 국립극장을 통해 NT Live가 소개된 것은 2014년부터다. 내년이면 10년째다. NT Live를 보며 느꼈던 신선한 충격이 아직 생생하다. 이제는 NT Live뿐만 아니라 NT Access 또한 우리에게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을까?

글. 김옥란 연극평론가, 드라마투르그. 연극을 만들고, 비평하고, 연구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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