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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단 <온춤>
가장 전통적인, 보다 현대적인
독무부터 군무까지, 국립무용단원 10인의 안무가가 재해석한 전통춤 9편이
다채로운 형태로 무대 위에 올랐다.
그 순간, 우리는 전통춤의 진화를 함께 목도했다.

국립무용단의 <온춤>은 3년 전 <홀춤>이란 기획에서 출발했다. 전통춤을 재해석한 다채로운 독무였다. 최초의 공연은 두 명이 함께하는 <겹춤>이 됐고, 다시 모두가 함께하는 <온춤>이 되었다. 과거의 것을 자기화하는 무대는 흔하지만, 이번 기획의 핵심은 음악이다. 장단과 음악은 춤사위만큼이나 중요하다.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를 쓰지 않은 발레는 이미 그 백조가 아니듯이, 이번 <온춤>은 무려 여섯 명의 음악감독을 두고 새 부대에 맞는 새 술을 만들었다. 10명의 안무가, 9편의 작품. 재료는 ‘한량무’ ‘진도북춤’ ‘진쇠춤’ ‘살풀이춤’ ‘신칼대신무’ ‘바라춤’ ‘사랑가’ ‘검무’다. 독무부터 군무까지, 매우 돋보이는 무대와 고민이 필요한 아쉬운 무대가 공존했다.

풍경 다른 숲속, 두 편의 한량무
<산산수수> & <산수놀음>

윤성철은 선비의 고고한 정신을 담은 조흥동류 ‘한량무’를 바탕으로 <산산수수>를 선보였다.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음악이다. 거문고 소리가 두드러지는 육중한 선율 속에, 춤의 감정선 또한 묵직하다. 음악감독 박우재가 춤의 고전성에 육중함을 더했다. 안무자가 끌어들인 이미지는 산수의 자연인데, 산뜻한 푸른 숲이 아니라 앙상하고 안개가 자욱한 숲속이다. 여기서 앙상한 나무는 또 다른 우리 춤,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의 시그너처라고 할 수 있다. 신로심불로에서 어느새 노인이 된 남자의 인생무상 정서가, 춤사위를 한결 점잖게 끌어내린다. 나무둥치에서 일어나며 시작하는 윤성철의 춤은 걸음걸음마다 안개를 걷어내는 연출 외에는 기존의 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산수놀음>은 반대로 가볍고 신선하다. 선비 복장의 두 사람이 산뜻한 푸른 숲에서 풍류를 즐긴다. ‘한량’을 서울·경기 춤의 고고한 선비보다는 놀고먹는 풍류사랑꾼으로 해석한다. 움직임은 생활 밀착형이다. 산뜻한 연핑크와 연두색 도포를 입은 두 사람(황태인·이도윤)이 농이나 장난을 주고받듯, 부채로 피리 부는 시늉을 한다든지 서로 ‘너 먼저’ 하며 장난스러운 수신호를 보낸다. 한국춤이 단전의 강한 힘으로 땅을 묵직하게 누르는, 발레와는 다른 의미의 꼿꼿함이 있다면, <산수놀음>은 사뭇 일상적인 움직임의 ‘놀음’을 포착한다. 도포와 부채라는 핵심만을 차용해 한복 입은 현대춤으로 신선하게 자기화한다. 여기에는 음악감독 김용하의 세련된 감각 역시 기여한 바가 크다.

윤성철 안무 <산산수수>
황태인 안무 <산수놀음>

죽음을 보다, 삶을 보다
<심향지전무> & <다시살춤>

두 편의 여성 홀춤은 극명하게 다른 곳을 바라본다. 우선 정현숙의 <심향지전무>는 이동안류 ‘신칼대신무’에 바탕을 둔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빌며 저승길을 닦는 원작의 감정선을 따라간다. 안무자는 진도씻김굿의 ‘지전춤’ 역시 받아들였다고 프로그램 북에 적는데, 의식의 목적과 춤의 도구가 매우 유사한 춤이다. ‘지전춤’은 한지를 갈가리 잘라 만든 저승길 노잣돈 즉 지전을, ‘신칼대신무’는 대나무 양쪽에 그 지전을 매달아 양손에 든다. 정현숙은 ‘신칼대신무’의 신대를 사용하며 양손을 돌리고 뿌리는 기본 사위를 들여온다. 느린 장단에 맞춘 침통한 시작부터 점차 빠르게 볶아가는 신명의 해소까지 ‘신칼대신무’를 재구성한 셈이다. 동선은 무대의 중앙부만을 사용해 최소화하면서, 몸의 펼침을 더욱 넓히고, 강하게 맺고 끊으며 부각한다. 음악은 이아람이 맡았다.
정소연이 바라보는 것은 반대로 삶이다. <다시살춤>은 아픔을 감내하며 나아가는 생의 의지에 초점을 맞췄다. 크게 보면 ‘살풀이춤’인데 ‘소고’를 사용한 점이 독창적이다. 소고와 소고채를 긴 살풀이 천의 양쪽에 묶어 하나의 무구로 만든다. 움직임은 오히려 전통춤보다 직관적이다. 소고로 상체를 가리듯이 덮고 소고채로 자기 몸을 찌르듯이 타성을 내어 상처와 고통을 보여준다든지, 손을 툭 떨구듯 소고로 치마폭을 내리치는 체념의 정서처럼, ‘살풀이춤’의 절제와 상반되는 감정 표출을 자연스럽게 끌어간다. 무구를 하늘로 던지거나 무게감을 장착한 천을 크게 회전시키는 등 볼거리도 갖추었다. 정소연의 섬세한 표현력이 유효하다. 그는 소고채를 비녀처럼 머리에 강하게 꽂고는 감내하는 삶의 의지를 빠른 장단으로 승화한다. 마지막엔 털어버리듯 소고를 던지지만 긴 살풀이 천으로 머리와 여전히 연결된 채다. 지긋지긋해도 버리려야 버릴 수 없이 딸려 오는, 그것이 삶이란 안무자의 메시지가 강하게 드러난다. 타악기에 구음을 더한 곡은 박천지가 맡았다.

정현숙 안무 <심향지전무>
정소연 안무 <다시살춤>

교방춤·의식춤·민속춤의 다양성 더하기
<단심_합> & <바라거리> & <월하정인>

김회정의 <단심_합>은 검무를 바탕에 둔 춤이다. 진주교방의 맥을 이어 김수악-김경란으로 전해진 춤. 그중에서도 작고한 스승의 구음에 김경란이 독무를 얹은 ‘구음검무’를 재료로 삼았다. 독무로 초연한 작품을 이인무로 재연했으며 이번 공연에서 10명의 남녀 무용수가 출연하는 군무로 완성됐다. 손에 한삼을 끼고 추는 한삼사위, 맨손으로 검을 든 것처럼 추어나가는 맨손사위, 의상을 뒤로 묶는 자락사위, 검을 들고 추는 칼사위 등의 큰 틀을 따르지만, 동선이나 집단의 형태가 상당히 다르다. 보통의 검무처럼 넓게 선 직선 형태가 아니라, 뭉텅이로 하나를 이루듯 원형에 가깝게 모여 다닌다. 검 쓰는 동작은 폭을 좁혀 몸의 범위를 잘 벗어나지 않는다. 즉 ‘집단성’을 강조하며, 더욱 차분한 분위기로 세련미를 추구한다. 김보라 음악감독의 구음에 맞추어 노문선·정세영·엄은진·김회정·박미영·이민영·조용진·황태인·박준명·이도윤이 열정적으로 춤췄다.
김은이의 <바라거리>는 ‘바라춤’에 뿌리를 두었다고 밝힌다. 악한 것을 물리치고 장소를 정화하기 위해 불교 의식에서 추는 춤이다. 그 본질이 몸으로 공양을 올리는 것이기에 바라가 허리 아래로 내려가거나 머리 뒤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라춤’의 원칙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천에 매단 바라를 바닥에 끌고 다니는 움직임에 방점을 둔다. 의미는 버리고 악기를 취했으니 전통을 표방함이 의아하다. 김현숙이 둥근 단 위에서 중심을 잡고, 유일한 남자 무용수 이태웅이 주요한 이미지로 두드러지면서, 여성 4명(김미애·김은이·이윤정·전정아)이 개인보다는 집단으로 보좌한다. 음악감독은 이승호가 맡았다.
박기환과 박지은이 함께 안무하고 출연한 <월하정인>은 같은 제목을 가진 신윤복의 그림을 토대로 ‘사랑가’와 ‘태평무’ 일부를 조합한 사랑의 춤을 선보인다. 영상으로 방 안과 야외를 구분해 보여주어, 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여인과 달밤에 그를 찾아온 선비의 만남을 구체화한다. 여인은 그림의 인상처럼 도도하고 새침한 춤사위를 보여주다가 마지막엔 친밀하게 끌어안은 모습으로 집 아닌 어딘가로 향한다. 기혼 남성의 은밀한 만남을 포착한 신윤복의 그림에서는 여인이 머리를 가리고 있으나, 이 춤에선 여인 또한 머리를 틀어 올렸다. 움직임과 정서는 신무용의 관성에 충실하다. 음악은 이아람이 맡았다.

박기환·박지은 안무 <월하정인>
정관영 안무 <너설풀이>
김회정 안무 <단심_합>

휘몰아치는 장단, 노련한 타악 변주
<너설풀이> & <보듬고>

정관영의 <너설풀이>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춤이다. 풍물에서 꽹과리 치는 쇠재비의 춤, 즉 ‘쇠발림’만을 독립된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때 ‘너설’은 꽹과리채 하단에 달린 긴 천을 의미하는데, 제목처럼 채를 거꾸로 들어 너설을 한삼처럼 풀어 날리는 사위를 중심에 둔다. 타악춤의 직선적인 강렬함을 천의 부드러운 날림으로 감싸 안는다. 풍물에서 짝을 지어 연주를 주고받는 ‘짝쇠’는 손뼉치기 놀이처럼 해석했다. 마주 본 채로 혹은 기차놀이 하듯 일렬로 서서 서로의 꽹과리를 두드리며 민속춤의 정겨움을 이식한다. 그러나 의상은 파스텔 톤으로 현대화하고 악기는 창백한 달처럼 희게 칠한다. 화려한 기교도 기교지만 백미는 휘몰아치는 장단 속에 턱, 일시에 멈춰버리는 순간이다. 신명은 동에서 나오고, 희열은 정에서 나온다. 정관영·조용진·조승열·최호종의 노련한 춤사위가 흥을 더했고, 꽹과리를 위한 풍성한 음악은 이아람 감독이 맡았다.
박재순의 <보듬고>는 진도북춤에 승무 북 가락을 접목해 밀고 당기는 변화의 폭을 넓힌다. 품에 안고 추는 진도북춤의 모양새에서 <보듬고(鼓)>란 제목이 나왔다. 홀춤으로 선보이던 것을 남성 5인무로 확장했는데, 본래 타악 전공으로 이미 국립무용단의 인기 소품을 안무해 왔기에 노련미가 있다. 그 자신의 북 기량이 뛰어나기에 수북(우두머리 북꾼)으로서 이세범·황용천·송설·이석준을 이끈다. 현대적 변용이나 깔끔한 구성의 세련미보다는 관객과 호흡하는 신명의 무대였다. 반주는 이아람이 주도했다.

김은이 안무 <바라거리>
박재순 안무 <보듬고(鼓)>
글. 윤대성 심리학과에서 뇌를 들여다보다가 운명의 장난인지 무용계 한가운데 착지했다. 외부자로, 때론 내부자의 시선으로 공연예술계를 바라본다. 한국춤평론가회 최연소 회원이자 월간 『댄스포럼』 편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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