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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품은 콘텐츠
역사, 오늘의 무대가 되다
“메시지가 곧 매체다Medium is the Message”. 미디어 학자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이 정의한
실존주의적 미디엄(매체)의 시대는 끝났다. 콘텐츠는 탄생 매체와 무관한 절대적 존재가 됐으며
역사는 강렬한 메시지를 내재한 소재로 콘텐츠 제작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매체의 경계가 무너지고 이른바 콘텐츠의 홍수 시대에도 대중매체인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공통으로 가장 많이 제작되는 분야는 역사적 기록을 재현한 사극이다. 사극은 한국영화에서 가장 빈번히 만들어지는 분야이기도 하고, 드라마에서 늘 인기를 모으는 주요 종목이기도 하다. 또한 성공한 사극 영화와 드라마는 뮤지컬 등 다양한 종류의 문화상품으로(혹은 그 반대의 순서로) 재창조되는데 최근에는 유독 그러한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12월에 개봉한 윤제균 감독의 <영웅>은 2009년에 초연한 뮤지컬 <영웅>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300억 원이 넘는 제작비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뮤지컬로 사랑받은 작품이었기에 영화가 과연 흥행할지 우려가 컸던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영화는 팬데믹 기간과 영화 시장 전반의 불경기라는 이중고를 견디고 326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2022년 한국영화 흥행 5위 안에 드는 기록적인 성취를 이뤄냈다. 영화 <영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오리지널 뮤지컬의 형태를 영화로 크게 변환하지 않고 최대한 보존해 냈다는 것이다. 무대가 구현하지 못하는 공간과 스펙터클을 영화적 영역에서 완벽히 구현함과 동시에 대사와 음악 등 원작의 강점을 그대로 영화에서 재현해 냈다. 원작 뮤지컬의 주연을 맡았던 배우(정성화)를 영화에서 그대로 캐스팅했다는 점 역시 드물지만 흥미롭다.
안중근 의사의 사망 1년 전을 조명한 <영웅> 이외에도 한국 영화산업에서(혹은 여타 매체에서) 역사 속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 콘텐츠는 무수하다. 1919년 <의리적 구토>(김도산)로 첫 한국영화가 탄생한 이래로 사극은 최근까지 제작 편수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영화제작이 어려웠던 식민지 시대조차 가장 성행한 장르 중 하나는 역시 사극이었다. 1923년 제작된 <춘향전>(하야카야 고슈)을 필두로 그 이듬해 제작된 한국 최초의 공포영화 <장화홍련전>(김영환, 1924) 을 거쳐 <홍길동전 (후편)>(이명우, 1936)까지, 고전소설과 조선 시대 역사가 사극의 중심 소재가 되었다.1

1 「1960년대 궁중사극영화 연구: 조선 왕조 소재 작품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 논문, 한상윤, 2012. 14쪽.

  • 뮤지컬 <영웅> 포스터
  • 영화 <영웅> 포스터

특히 한국영화의 황금기인 1960년대는 ‘사극의 전성기’라고 할 만큼 많은 수의 사극이 제작되었다. 주로 조선왕조를 배경으로 하는 ‘궁중사극’이 크게 유행했는데, 역사적 사건보다는 역사적 인물에 초점을 맞춘 것이 1960년대 사극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의 사극 영화가 고전소설이나 설화 등을 영화화하는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면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궁궐을 배경으로 한 큰 스케일의 궁중사극이 눈에 띄게 많이 제작되었다.2
196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신상옥 감독 역시 실제 인물을 기반으로 하는 <연산군>(1962), <대원군>(1968), <철종과 복녀>(1963) 등 다수의 궁중사극을 연출한 바 있다.
1970년대에 들어 텔레비전이 주류 대중매체로 부상하면서 영화산업은 심각한 불경기에 시달려야 했다. 또한 1973년 유신헌법 제정과 동시에 이루어진 제4차 영화법 개정은 영화 검열을 한층 더 강화함으로써 이미 힘겨운 영화제작 상황에 더 큰 부담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극 영화는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까지도 꾸준히 제작되는 주류 장르로 남았다. 이쯤 되면 한국 관객, 혹은 시청자들이 사극에 대한 눈에 띄는 선호도를 보여주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할리우드의 웨스턴 장르가 그 전성기(1940년대) 이후에 거의 멸종한 것과는 반대로, 한국의 역사극인 사극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도록 한 번도 정체기를 겪은 적이 없다. 다만 2000년대에 영화산업과 케이블 및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미디어산업 전반이 확장하고 영화 콘텐츠가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되면서 사극은 영화와 텔레비전 화면을 넘어 뮤지컬과 스테이지 예술로 재탄생하는 전천후 인기 장르로 더더욱 부상하게 된다. 역사물 혹은 역사적 인물을 다룬 콘텐츠가 다양한 플랫폼에서 순환 및 변환되는 것이 한국 내에서는 최근 경향인 것에 반해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스튜디오 시대부터 이루어지던 관행이었다. 최초의 유성영화인 <재즈 싱어>(앨런 크로스랜드, 1927)의 탄생과 함께 할리우드는 소리와 음악이 넘치는 영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황금기(1930~1940년대) 할리우드의 5대 메이저 스튜디오 중 하나이던 MGM은 특히 뮤지컬과 스테이지 장르에 특화됐다. <오즈의 마법사>(빅터 플레밍, 1939),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빈센트 미넬리, 1944)와 같은 뮤지컬 영화의 아이콘은 모두 MGM의 지붕 아래에서 잉태된 작품들이다.

2 같은 논문, 20~23쪽.

  • 뮤지컬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포스터
  •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포스터

영화, <뉴시즈>는 1899년 뉴욕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신문사 사장들이 어린 배달부들을 착취하는 것이 관행이 되자 이들이 파업을 일으킨 역사적인 사건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케니 오르테가가 연출을 맡은 <뉴시즈>는 박스오피스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후 비디오 시장에서 대대적인 인기를 누리며 개봉한 지 불과 1년 만에 뮤지컬 공연으로 재탄생했다. 뮤지컬 버전의 <뉴시즈>는 2012년에 브로드웨이로 입성해 1,000회 이상 공연됐다. 지난해 런던 공연을 포함, <뉴시즈>는 현재까지 투어링을 계속하며, 그만의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의 역사 영화, 특히 역사적 인물을 다룬 전기영화가 주로 애국 의사, 왕, 독립운동가 등의 위인을 다루는 경향을 보였다면, 미국의 경우 드라마적 시선에서 흥미로운 인물을 고르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다큐멘터리로도 조명된 뉴욕시의 99대 시장, 피오렐로 라과디아는 <피오렐로!>라는 뮤지컬로 탄생해 1959년 첫선을 보였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의 라과디아 시장은 변호사 출신으로 시장 재임 동안 끊임없는 마피아의 압력과 협박을 이겨내고 뉴욕시의 고질적인 부패와 범죄를 소탕한 업적으로 뉴욕시민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뉴욕의 라과디아 공항의 이름도 피올렐로 라과디아의 성을 따온 것이다. 뮤지컬 <피오렐라!>는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완성도 역시 인정받아 토니상과 퓰리처상Pulitzer Prize for Drama을 수상했다.
한국에서 역시 역사극의 인기는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해 관객의 사랑을 받은 <올빼미>(안태진, 2022)와 <영웅>에 이어 올해 역시 <하얼빈>(우민호)과 <명량>(2014), <한산>(2022)에 이어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가 될 <노량>(김한민), <1947 보스톤>(강제규) 등이 관객을 만날 예정이고,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다루는 공연, <세종 1446>은 현재 전국에 걸쳐 투어를 하고 있다.
어떤 인물이든, 어떤 사건이든 역사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같은 인물과 같은 사건을 소재로 하더라도 늘 다른 이야기처럼 새로운 구도와 설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유독 사극이 많은 한국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우리에게 들려줄 역사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유다.

글. 김효정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영화 학사, 뉴욕대학교에서 영화학 석사,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영화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한양대학교 미래융합인문학부 겸임교수, 수원대학교 영화영상학부 객원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야한 영화의 정치학』 『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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