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한 마디

황병기
성어락에 이르는 배움
국악을 전공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가슴에 새겨진 가락을 오래도록 익히고, 공부하고, 사유했다.
끊임없이 정진하는 삶을 살아온 작곡가이자 가야금 명인인 황병기가 남긴 말엔 어떤 힘이 담겨 있을까.

황병기(1936~2018) 전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는 우리나라의 음악 역사를 개척한 프런티어다. 스승의 가락을 오롯이 전수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국악계의 전통에 맞섰던 청년 황병기는 서양음악처럼 우리 음악도 작곡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박물관에 진열된 채 멈춰진 유물과 같은 소리를 익히는 것보다 자신만의 새로운 우리 소리 만드는 일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열외 행동에 별나다는 소리도 들었고, 선배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받았다.

하지만 그에게 이러한 환경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63년 그는 우리나라 가야금 역사상 최초로 현대 가야금곡 ‘숲’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그는 서양에서 발명한 오선지에 가야금과 손잡을 수 있는 모든 영역의 소리를 그렸다. 그가 작곡한 작품은 가야금을 위한 현대적인 작품 양식부터 영화음악, 우리 무용을 위한 음악, 크로스오버까지 다양했다. 그 작품의 공통점은 기존의 정해진 틀을 하나씩 깼다는 점이다. 이렇게 그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황병기표’ 우리 음악을 만들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2003), 금관문화훈장(2018) 등 다수의 상도 받았다.

그의 시작은 옳았다. 그 시작으로 그의 뜻을 따르는 후배가 하나둘 나타났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국악계에는 작곡이나 작곡가의 개념이 없었는데, 그의 도전에 저마다 용기를 낸 후배 국악 작곡가가 탄생했다. 그들이 만든 국악 창작 작품은 존재한 적 없던 국악 창작 음악이라는 분야를 활짝 열었다. 분명 그는 우리 음악계의 프런티어다. 우리나라에서 황병기라는 이름이 하나의 길로 남았다. 또한 그는 우리 음악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호흡하는 세계 곳곳의 민족음악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중에서도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의 조화를 근사하게 다루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한 예로 첼로를 켜는 현의 방식을 가야금에 적용해 기존의 튕기는 음색이 아닌 길게 늘이는 독특한 가야금 음색을 이끌었다.

그는 보통의 음악가처럼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장한나 같은 경우다. 황병기는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을 졸업했다. 한국전쟁 당시 경기중학교 3학년이던 그는 국립국악원에서 운명처럼 가야금을 배웠다. 그 시절 그의 가슴에 익힌 가야금 가락이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법대에 진학한 이후에도 그는 가야금에 대한 배움을 놓지 않았다. 결국 서울대 법대생의 가야금 사랑은 KBS 주최 전국 국악콩쿠르의 최우수상 수상(1957)으로 이어졌다. 국악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그의 실력은 널리 인정받았다.

이때부터 그는 국악인의 길을 스스로 개척했다. 서울대 음대 국악과 출강을 시작으로 30년 넘게 몸담은 이화여대 국악과의 명예교수까지 지냈다. 대한민국예술원의 부회장,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음악감독을 역임했고,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연주자로 무대에 섰다. 국악 작품의 작곡부터 가야금 연주, 때때로 영화음악과 크로스오버 무대의 연주까지 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도전했다. 대표작은 ‘침향무’(1968), ‘밤의 소리’(1990), ‘춘설’ ‘달하 노피곰’(1997) 등이며, 가야금 계보인 ‘정남희제 황병기류’를 남겼다. 오직 가야금과 우리 음악에 대한 배움이 이끈 결과였다.

황병기가 걸어온 길을 들여다보면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만 이룰 수 있는 일뿐이다. 평생 배움의 기쁨 속에 살았다. 배움에 대한 그의 특별하면서도 단순한 철학은 저서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논어 백 가락』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그가 평생 손수 적어 틈나는 대로 읽은 『논어』의 백 가지 구절에 그의 생각을 엮은 에세이다.

이 책에 담은 배움에 대한 그의 진솔한 생각을 소개한다. 참으로 담백하고 또 솔직한 그의 인품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명문장이다.

“결국 어떻게 자신을 갈고닦느냐의 문제이다. 사람의 본성은 누가 더 낫고 더 못하고 할 것 없이 비슷하지만, 원래의 씨앗을 어떻게 가꾸어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게 하느냐는 본인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다. 나는 지금도 늘 하루에 몇 시간씩 시간을 내어 가야금을 연주하고 새로운 곡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공부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악기의 명인이라도 최상의 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좋은 소리를 내더라도 그보다 더 좋은 소리가 있으므로, 항상 미치지 못하는 듯이 연습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가야금을 배운 지 60여 년이 됐지만, 여전히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뿐만 아니라 조금만 연습을 소홀히 하면 모처럼 얻은 성음을 놓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든다.”

그는 같은 책에서 인간의 본성은 자연과 같다고 했다. 그저 존재하는 대상으로 우리는 자신을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항상 무언가를 배우는 데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움을 삶의 동력으로 삼았던 그의 작품 ‘침향무’가 6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관현악시리즈Ⅳ <부재不在>에서 연주된다. 이 작품은 1968년 그가 꿈꾸던 새로운 조현으로 창작된 작품으로, 불교음악인 범패의 음계를 바탕으로 동양과 서양의 정서를 표현한다.

특히 이날 공연에는 AI 지휘자가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지휘하는 순서도 마련돼 있다. 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배움을 즐긴 황병기 작곡가가 생존해 있다면, 얼마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즐겼을지 상상해 보게 되는 무대다.

마지막으로 그가 으뜸으로 손꼽았던 『논어』의 문장을 소개한다. 우리 삶이 결국 음악에서 완성된다는 공자의 가르침에 그 또한 깊이 공감했다. 그의 삶을 이끌고 채운 음악에 대한 믿음을 키운 문장이리라.

“흥어시興於詩, 입어례立於禮, 성어락成於樂
“사람은 시에서 배움을 일으키고, 예에서 원칙을 세우며, 악에서 삶을 완성한다.”

※ 참고 자료
황병기,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논어 백 가락』, 풀빛, 2011.

글. 정은주 음악 칼럼니스트. 서양 음악가들의 음악 외(外)적 이야기를 발굴해 소개하며 산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발칙한 예술가들』(추명희·정은주 공저), 『나를 위한 예술가의 인생 수업』을 썼다. 현재 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 월간지, 『월간 조선』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부산mbc <안희성의 가정 음악실>에 출연하고 있다.

일러스트. romantic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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