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
하나

국공립무용단의 사명 ②
시대가 원하는 변화
국공립무용단의 운영체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열악한 환경의 민간단체에 비해 예산·시설·단원 등 모든 면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 구조를 갖추고 있으니
그만큼 책무에 대한 기대와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오랜 세월 동안 같은 문제에 대한 지적이
반복되고 있는 데도 그 개선점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는 분명 진지하게 되짚어봐야 한다.

「2021 공연예술조사」(문화체육관광부·(재)예술경영지원센터 발간)에 따르면 공연예술 단체 수는 2021년 기준 양악(1,258개)과 연극(1,139개)이 비슷하게 많고, 다음 순으로 국악(779개)과 무용(490개)이 집계됐다. 양악과 국악을 ‘음악’으로 합치면 무용·연극·음악 세 장르 중 음악 단체가 압도적으로 많다(2,037개). 무용은 음악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가장 적은 수다.
이 중 국가 및 광역·기초 지자체에서 설립한 단체를 합한 국공립단체 수는 양악 251개(20%), 국악 60개(7.7%), 무용 26개(5.3%), 연극 22개(1.9%) 순이다. 양악의 경우 기초 지자체에서 설립한 공립단체가 248개나 된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만큼 참여 및 향유 인구가 많다는 것이고, 기초예술 중 가장 대중적인 장르임을 의미한다. 한편 연극은 국공립단체 수는 적지만 총 단체 수가 양악과 같은 수준으로 많은 데다 주로 장기 공연을 하기 때문에 총 공연 횟수는 가장 많은 편이다. 그만큼 관객과 자주 만난다. 이에 비해 무용은 가장 적은 수의 단체가 활동하고 있어 전공자들의 취업이 어렵고, 많은 대학 무용과가 폐과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26개 국공립무용단의 역할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지난 20년 동안 국공립무용단에 관한 진단은 활발하게 이어져 왔다. 2000년 국립발레단이 법인화하고 2002년 처음으로 예술노조가 출범한 이후 예술성과 공공성을 모두 지향해야 하는 국공립단체의 정체성과 효율적인 운영 방안에 대한 열띤 논의를 통해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주로 무용 잡지를 중심으로 좌담과 포럼 등을 열어 공론화했는데 문제는 동일한 지적과 진단이 반복된다는 데 있다.

3년 임기로 교체되는 단장 및 예술감독의 선출 방식과 선출 시기, 역할 및 자질 등이 논란의 주된 대상이 됐다. 1990년대 국내에 예술감독제가 도입됐지만 무용계는 기존의 단장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겸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단장과 노조의 갈등이 부각되면서 임금, 단원 평가, 복지 등 단체 전반에 걸친 운영관리가 시급하게 다뤄졌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과 시급성을 인식하면서도 대대적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몇몇 단체를 제외하고는 예술감독 개인의 창작 활동 무대로 전락하고, 따라서 단체를 대표할 만한 독창적인 레퍼토리 부재라는 결과를 낳았다.

국공립무용단의 세부 장르를 보면 발레는 국립발레단과 광주시립발레단이 있고, 현대무용은 국립현대무용단과 대구시립무용단이 있다. 나머지 단체는 모두 한국무용을 춤 언어로 사용하는데, 그러다 보니 단체마다 특색을 찾기 어렵고 그만큼 경쟁력도 떨어졌다. 예를 들어 과거 국립무용단, 서울시무용단, 국립국악원무용단, 서울예술단 등이 각각 고유한 색깔을 가지고 있었던 데 반해 지금은 모두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평가다. 누군가는 전통을 고수하고 보전해야 하며, 누군가는 전통을 재해석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전통을 바탕으로 동시대적 창작에 전념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한국무용은 우리 고유의 것이니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더욱이 한국무용은 다른 세부 장르보다 무용수 수명이 가장 긴 편이다. 그렇다면 해외 발레단이 연령에 따라 단원을 소그룹으로 나누는 경우처럼 연령별로 적합한 레퍼토리를 개발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이런 다양한 시도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한국무용·발레·현대무용 등 세부 장르 중에서 한국무용 단체들이 선구적으로 개혁에 앞장서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한국무용 단체 중 가장 대표적이고 오래된 국립무용단을 살펴보자. 국립무용단의 미션은 명확하다. 국립극장 소속의 다른 두 단체(국립창극단·국립국악관현악단)와 함께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한 동시대적 공연 작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동시대성同時代性’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는 ‘현재의 사회가 나타내는 특유한 성격이나 성질을 반영하는 특성’이다. 컨템퍼러리 예술이 추구하는 바로 ‘그’것으로, 의미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작품 속에 춤으로 담아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호에서 국공립단체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꾀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조직 내부의 목소리를 들어보겠다고 했다. 우연히도 지난 4월 11일, 국립무용단의 새 예술감독이 취임했고 비장한 포부를 들을 수 있었다. 2013년 <묵향> 초연 이후 강한 티켓 파워를 자랑하던 국립무용단이 몇 년 새 관객 동원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원인에 대해서도 신임 예술감독은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3개년 사업계획에 개선점을 담아내려고 고심하고 있었다.

국공립무용단이 장기적으로 발전하려면 모든 관계자가 참여하는 협업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의사결정과 문제 해결을 촉진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예술감독 혹은 단장이 선출되면 임기 초에 구체적인 실행 목표를 시기별로 제시하도록 하고, 적절한 기간마다 중간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될 때 비로소 단원 모두가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감독 한 명에게 모든 권한과 책임이 집중되는 구조를 최대한 탈피하는 대신 새로운 도전을 할 때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예술감독이 단체를 대표할 만한 레퍼토리를 꼭 직접 안무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본인의 신작으로 예술적 능력을 인정받으려 한다면 관객의 객관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 다각도의 비판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새로운 실험이 실패한다고 해서 비난받는다면 창조적 예술 활동은 불가능하다. 최종 평가는 관객이 한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화를 추구할 때 비로소 혁신이 이루어질 것이다.

글. 장인주 무용평론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무용을 전공하고 무용미학을 공부했다. 서울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월간 국립극장> 구독신청 <월간 국립극장> 과월호 보기
닫기

월간지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 구독 신청

뉴스레터 구독은 홈페이지 회원 가입 시 신청 가능하며, 다양한 국립극장 소식을 함께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또는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편리하게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회원가입 시 이메일 수신 동의 필요 (기존회원인 경우 회원정보수정 > 고객서비스 > 메일링 수신 동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