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여섯

염경애의 강산제 ‘심청가’
진중한 성음, 강인한 통성
비탄의 정서를 넘치게 표현하지 않음으로 자신의 슬픔을 되짚을 여유를 주는 소리,
강산제 ‘심청가’ 한바탕이 펼쳐진다. 진중하면서도 단단한 목구성으로 내공을 드러낼 염경애 명창의 무대다.

“오메 가시나 소리 하겄다.”
박춘성(1921~1995, 본명 박옥심)은 염금향이 선암사 산공부에 데려온 열세 살 염경애의 소리를 듣더니 말했다. 어린 소녀가 부른 ‘심청가’의 ‘아버지 듣조시오’ 대목이었다. 사실 염경애는 이때까지 소리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그저 고모 염금향이 조금 가르쳐준 것을 불렀을 뿐이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염금향을 비롯해 염필남·염현준·염해선 등 소리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자란 아이는 이미 좋은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순천의 소리꾼 염금향이 발굴한 보석

염경애는 어린 시절 ‘수궁가’ ‘심청가’ ‘장화홍련전’ 등 판소리 LP를 듣는 것이 자연스러운 가정에서 자랐다. 특히 고모 염금향은 그녀의 아버지를 많이 아껴 염경애의 가족을 늘 가까이했다. 염경애는 고모가 소리하는 모습을 자주 보곤 했고, 그녀 역시 언젠가는 고모처럼 소리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13세가 된 때, 고모에게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염금향(1932~2010)은 순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명창이다. 언니 염해선이 첫 스승이었고, 뒤이어 1980년에 정응민의 제자인 박춘성에게 ‘심청가’를 배웠다. 이후 1985년부터 약 5년간 성우향에게 ‘심청가’ ‘춘향가’를 배우며 소리의 길을 걸었다. 염경애가 고모에게 배운 소리는 ‘심청가’로 염금향이 박춘성과 성우향에게 닦은 소리다. 늦깎이 소리꾼이었던 염금향은 열심히 소리를 배웠고, 또한 배운 소리를 조카에게 열심히 가르쳤다.
고모의 정성 속에서 소리 기반을 잘 다진 염경애는 이후 성우향·조상현·안숙선 등 빼어난 명창에게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를 학습하며 소리의 내실을 단단히 했다. 그녀를 세상에 알린 것은 2002년 제28회 전주대사습놀이로, 그녀는 만 스물여덟 살의 나이로 당시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명창부 사상 최연소 장원을 거머쥐었다. 당시 스승 조상현 명창의 권유로 경험 삼아 나가본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염경애는 얼떨떨했다. 운이 좋으면 3~4년 후에나 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참가했는데 덜컥 대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쁘면서도 두려웠다. 이른바 ‘상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나태를 경계하고 자신을 채근하며 소리의 길을 걸어왔다.

소리를 갈고 닦는 법을 일깨운 조상현

‘어떤 소리를 해야 하나.’ ‘어떻게 이면을 그려내야 하나.’ 소리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때에 만난 조상현 명창은 새로운 시선으로 판소리를 공부하게 한 스승이었다. 고모 염금향 명창과 성우향 명창이 소리의 기본이 되는 바탕을 가르쳐준 스승이었다면, 조상현 명창은 사설의 이면을 그려낼 수 있는 성음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나만의 색채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를 고민케 했다.
염경애의 소리는 진중하다. 혹자는 ‘장대한 성량’ ‘강인한 통성’ 등으로 그녀의 소리를 표현하기도 한다. 필자는 그녀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커다랗고 무거운 배가 깊은 물 위를 유장하게 그러나 유유히 흘러가는 정경이 그려지곤 한다. 그 배는 강단이 있어, 어떤 파도에도 쉬이 휩쓸리지 않으며 또한 흔들려도 절제를 잃지 않는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고모에게 우직하게 소리하라, 엄중하게 소리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고모는 판소리만의 성음을 지켜주고자 그녀에게 민요도 가르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다진 기본기 위에 호흡을 크게 쓰는 법, 상·중·하청의 폭넓은 음역을 사용하는 법, 옛날 남성 소리꾼의 고제 더늠을 하는 법 등을 조상현 명창에게 배워 익혔다. 스승의 소리는 신묘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놀라웠고 염경애는 조상현을 만나 비로소 소리의 길을 어떻게 닦아가야 할지 알게 됐다. 어떠한 형태와 모형으로 소리 부분을, 나아가 전체를 그려내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염경애는 여성 소리꾼임에도 남성 배역에 필요한 웅장한 소릿조인 호령조, 이른바 우조를 사실적으로 구현한다. 이뿐만 아니라 씩씩하고 호탕한 호걸제 성음도 잘 나오고, 기교가 필요한 경드름도 매끄럽게 낸다. 그녀의 소리가 강한 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다양하게 나타나는 판소리의 여러 성음을 정확하게 구사한다는 평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초연한 슬픔을 그려낼 강산제 소리

이번 완창에서 염경애가 들려줄 소리는 강산제 ‘심청가’다. 이 소리는 서편제의 시조로 알려진 박유전(1835~1906)이 전라남도 보성의 강산 마을에 오래 살면서 구축한 소리로, 정재근·정응민·정권진·성창순·성우향·조상현·박춘성 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현재 정회석·김영자·이임례·이순자·유영애 등이 보유자로 지정돼 활발하게 전승하고 있다.
강산제 소리는 김세종판 ‘춘향가’와 함께 전승되면서 ‘보성소리’라는 범칭을 부여받기도 했는데, 보성소리의 일반적인 특징은 우아한 사설과 아정한 방식의 노래다. 매우 점잖게 불리며 절제된 감정의 미학을 추구한다. 또한 장단의 변화나 엇붙임, 시김새 등의 음악적 요소가 고도로 발달했다. 이는 민중으로부터 출발한 판소리가 양반 좌상객을 주요 청중으로 받아들이며 나타난 특징으로 조선 후기에 활동한 박유전의 지향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까닭으로 강산제 ‘심청가’는 서편제의 시조라 일컬어지는 박유전이 창시했음에도 서편제의 특징으로 언급되는 처절함보다 한층 절제된 소리로 표현된다.
기실 ‘심청가’는 전승 오가 가운데 슬픔이 가장 농축된 작품이다. 곽씨 부인의 죽음과 심청 부녀의 가난한 삶 그리고 이어지는 부녀의 이별과 심청의 죽음은 이야기의 전반부를 철저히 비애의 정서로 이끈다.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심청가’를 들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강산제 ‘심청가’는 감정의 과장과 날것의 슬픔보다 먹먹한 슬픔으로 눈물을 만들어낸다. 이에 대해 염경애는 ‘초연한 슬픔’이라 말한다. 즉, 비탄의 정서를 넘치게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에게 자신의 서러움으로 이를 되짚을 시간을 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심청이 아버지와의 이별을 앞두고 부르는 ‘눈 어둔 백발 부친’ 대목은 세마치장단으로 거뜬거뜬하게 시작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남겨진 아버지에 대한 심청의 비감을 절제 속에서 정교하게 만들어나간다. 이러한 방식의 표현은 다른 바디의 ‘심청가’가 들려주는 매력과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진중하면서도 단단한 목구성으로 여러 성음을 분명하게 구사할 수 있는 염경애에게 강산제 ‘심청가’는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 다져진 내공으로 ‘심청가’를 온전히 들려줄 그녀의 무대를 기대해 본다.

※ 참고자료
유영대, 「강산제 판소리와 정권진의 보성소리 : 정권진 창 심청가」,『한국음악사학보』10, 한국음악사학회, 1993.
최혜진, 「정응민 바디 심청가의 성립과 전승 실태 연구」,『판소리연구』 20, 판소리학회, 2005.
한정훈, 「판소리 창자 염금향의 생애와 순천 지역에서의 역할에 대한 고찰」,『지방사와 지방문화』17, 역사문화학회, 2014.

글. 송소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20세기 창극의 음반, 방송화 양상과 창극사적 의미」(2017)로 박사 논문을 제출하고 판소리와 창극 관련한 연구를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월간 국립극장> 구독신청 <월간 국립극장> 과월호 보기
닫기

월간지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 구독 신청

뉴스레터 구독은 홈페이지 회원 가입 시 신청 가능하며, 다양한 국립극장 소식을 함께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또는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편리하게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회원가입 시 이메일 수신 동의 필요 (기존회원인 경우 회원정보수정 > 고객서비스 > 메일링 수신 동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