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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연극 <산불>
전쟁이 앗아간 가치에 대한 고찰
“인간의 존엄성이 죽음 앞에 승리의 찬가를 부르는 것을 들었다.” 오화섭1
“작품 자체는 물론 공연을 포함해서 금년도 연극계가 거둔 가장 큰 성과” 이근삼2
“해방 이후 리얼리즘 희곡의 최고봉이 될 만한 작품이다.” 유민영3

연극 <산불>은 한국의 사실주의 연극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차범석이 쓴 장막 희곡으로 이진순의 연출을 통해 국립극단이 1962년 12월 25일부터 29일까지 명동 국립극장에서 공연했다. 휴전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은 시기에 발표된 <산불>은 한국전쟁 당시 어느 깊은 산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쟁으로 여인만 남은 마을에 젊은 빨치산이 숨어들며 두 과부와 삼각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세 남녀의 원색적 관계가 국군의 토벌 작전으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를 통해 암울한 시대가 빚어낸 이념적 갈등과 인간 내면의 원초적 갈등을 실감 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로그램북에 적힌 작가의 작품 소개에서는 “전쟁이 앗아간 것은 물질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근삼은 한국일보 기고문에서 “6·25의 배경과 로르카의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혼합한 듯한 느낌”4을 준다고 평했고, 유민영은 저서에서 “역사상 최대 비극이었던 분단과 동족상잔을 한 마을에다 몰아놓고 조명한 데다가 인간의 원색적 애욕을 극히 자연스럽게 가미시킴으로써 작품을 밀도 있게 구성”5했다고 적었다. 또한 극적 효과를 높이는 장종선의 무대미술과 박상익·백성희·나옥주·진랑 등 중견 배우들의 연기도 좋은 평가를 얻었다.
전쟁이 남긴 상흔은 너무나 깊은 것이었기에 1960년대에는 이처럼 한국전쟁의 비극과 참상을 그린 작품이 유독 많았다. 어쩌면 이 시대는 예술가와 대중 모두 전쟁이 바꿔놓은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나름의 파토스(예술에 대한 주관적·감정적 요소)를 발견하는 것이 일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산불>은 그러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산불>은 이후 극단 산하·국립극단 등 여러 단체에 의해 꾸준히 공연됐고, 영화로 제작돼 관객과 만나기도 했으며, 국립창극단·국립오페라단에 의해 재해석돼 색다른 공연으로 대중에 선보이기도 했다.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동시대의 구성원으로부터 충분히 인정받은 결과라 하겠다. 6월을 맞아 <산불>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깊은 일이라 생각된다.

  • 1 오화섭, 「승화된 인간의 존엄성 - 산불 공연」, 『동아일보』, 1962년 12월 29일자 5면.
  • 2 이근삼, 「이 해의 가장 큰 수확 - 국립극단 산불 공연」, 『한국일보』, 1962년 12월 29일자 7면.
  • 3 유민영, 『한국현대희곡사』, 새미, 1997.
  • 4 이근삼, 위의 기사.
  • 5 유민영, 위의 책.
1962 <산불> 포스터
  • 1999 <산불> 포스터
  • 2007 <산불> 포스터
※ 공연 정보
· 공연명
국립극단 제29회 정기공연 <산불>
· 공연일자
1962.12.25~1962.12.29
· 공연장소
국립극장(명동)
· 스태프
작 차범석 | 연출 이진순 | 미술 장종선 | 조명 전영 | 무대감독 문명철 | 효과 홍두표 | 음악 박창근
· 출연진
김노인 박상익 | 양씨 백성희 | 점례 나옥주 | 귀덕 김금지 | 사월 백수련 | 최씨 진랑 | 쌀레네 노경자 | 정임 박수현 | 병영댁 이순 | 규복 박성대 | 원태 강계식 | 대장 고설봉 | 끝순이 최정순 | 이웃아낙 손경자, 김혜경 | 군중1 한정원 | 공비 조현배, 박경득 | 사병 김순철, 이진수 | 아낙 최소자, 최오 | 동리아이 채윤희, 정현철

※ 공연예술박물관 이용 안내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은 약 45만 점의 공연예술 자료를 보존하고 있다. 공연예술 아카이브 플랫폼 ‘별별스테이지(http://archive.ntok.go.kr)’를 통해 누구나 쉽게 자료 검색이 가능하며, 박물관으로 직접 방문하면 더 많은 자료를 이용할 수 있다.
문의 | 공연예술자료실 02-2280-5834

글. 민덕홍 공연예술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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