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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기획공연 <우리 읍내>
여전히 유효한 현대 고전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세계에서 하루도 공연되지 않는 날이 없는 공연’으로 불리는 현대 고전 연극,
<우리 읍내>가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다. 작품의 배경을 경상북도 평해로 옮겨
공동체 안에서 영위되는 평범한 일상이 지닌 힘을 보여준다.

손턴 와일더Thornton Wilder, 1897~1975의 대표작 <우리 읍내Our Town>(1938)는 최근까지도 브로드웨이 및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활발하게 공연되는 등 전문가와 관객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 한태숙 연출의 <아워 타운>을 비롯해 많은 기성 극단에서 연극 또는 뮤지컬 형식으로 무대에 올리고 있으며, 연극 관련 전공 및 극 동아리에서 으레 한 번씩은 무대에 올리는 바이블 같은 작품으로 인식된다.

무대·배우·관객의 유기적 변혁

손턴 와일더의 <우리 읍내>가 이처럼 많은 이들에게 선택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와일더의 공적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잊고 지낸 일상과 연극의 본질을 회복하고, 무대와 관객의 관계를 새로이 찾아내려는 움직임에 있다. 다시 말해 와일더는 늘 우리 주변에 있었지만 잊고 지낸, 아주 평범한 일상이 지닌 탁월한 가치를 다루고 있는 극적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필연적으로 무대·배우·관객이라는 연극의 필수적인 기본 3요소를 재정립해 연극성의 회복을 추구한 것이다.
와일더는 세부적인 무대장치에서부터 배우의 동작 하나에 이르기까지 사실성을 강조해 현실의 환영Illusion of reality을 추구한 19세기의 사실주의 또는 그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해 삶의 단편을 정확하게 재현하려 했던 자연주의의 특성에 반기를 들었다. 즉, 연극의 잠재적 가능성을 활용하지 않은 채 우리의 삶에 더는 영향을 주지 않는 작품을 비판한 것이다. 열정이 없는 비극과 풍자가 없는 희극이 그 예다.
연극의 3요소는 무대·배우·관객이다. 그의 눈에는 무대와 객석이 철저히 분리된 프로시니엄 무대, 실제 생활처럼 똑같이 말하고 움직임으로써 현실의 환영을 정확히 재현하려 하던 배우,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은 채 무대에서 주어지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관객 모두가 변혁의 대상이었다. 인간의 신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듯이 연극 역시 3요소가 상호 유기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때, 연극의 특성을 살린 공연이라고 할 수 없다.
와일더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연극을 실현하기 위해서 연극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 모두의 변혁을 꿈꾸었다. 즉, <우리 읍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세계는 무엇인지, 연극의 최종 수용자인 관객의 의미가 무엇인지, 배우 예술은 무엇인지, 극장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제시하고 있고, 그 해답을 행위자와 수용자가 협력해 찾아낼 것을 요구한다.

무의미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장치

작가는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몇 가지 흥미로운 극적 장치를 가져온다. 첫째, <우리 읍내>는 ‘없음’으로 ‘있음’을 표현한다. 즉 특별한 인물이나 사건, 갈등 등 드라마의 필수조건이라 여겨지는 것을 제시하지 않는다. 거기다 연기에 필요한 소품도 웬만한 것은 다 생략해 버렸지만, 이를 통해 평소 의미 없던 평범한 일상의 일들을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둘째,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더욱 분명히 하고자 맹목적인 감정이입에서 오는 그릇된 환상의 폐해를 없앨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빈 무대, 상징성 강한 마임과 더불어 무대감독이라는 매우 흥미로운 극적 장치를 전면에 배치한다. 즉, <우리 읍내>는 분명 ‘지금, 여기에서’ 무대와 객석 간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극장주의Theatricalism의 특성인 연극적 약속Theatrical convention이 광범위하게 활용되는데, 무대감독의 존재는 결국 우리가 잊고 지낸 평범한 일상생활의 탁월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일깨우기 위한 극적 의도의 소산인 것이다. 셋째, <우리 읍내>는 연속적인 이야기와 깨어지지 않는 환영이라기보다는, 연극적인 장치로서 각 장면이 독립적으로 처리되는, 일련의 변화되고 부서진 장면이다. 이러한 삽화적 구조는 반복되어 제시됨으로써 평범한 일상에서 빚어지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인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조명하는 방법에 관한 생각을 한층 더 강화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읍내>의 인물은 실재가 아닌 실재의 상징으로서 그려지고 있다. 그들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아버지·어머니·소녀·소년처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살아갈 보편적 인물이다. 개별적 성격 묘사는 최소로 축소돼 있으며, 각 인물은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대로 전 세계 모든 이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본질적인 사고만을 드러낼 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 읍내>에는 드라마가 성립하기 위한 기본 요소가 작가의 의도에 의해 상당 부분 배제돼 있다. 관객에게 특정한 시공간을 연상시킬 만한 무대장치는 물론이고 여타의 대소도구도 제시되지 않는다. 또한 극적 전개에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개별 인물의 성격 역시 부여하지 않으며, 인물 간의 갈등 상황이나 이렇다 할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는다. 이는 관객이 거리를 두고 각 장면의 행위를 관찰하게 함으로써 일상의 소중함을 새롭게 인식시키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 읍내>는 1900년대 초 미국 뉴햄프셔주의 그로버즈 코너즈라는 작은 읍내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사건을 그리고 있으나, 특정 지역의 거주민 이야기를 넘어서서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게 된다.

공동체 울타리 속의 일상

한편 국립극장 기획공연 <우리 읍내>는 그간 극적 환영을 위한 여타의 대소도구 없이 오로지 잘 훈련된 연기자의 몸과 창발적으로 빛을 발하는 의자 등의 사물만으로 관객에게 새로운 극적 체험을 선사한 임도완 연출이 맡는다는 사실에 기대가 매우 크다. 더욱이 우리 정서에 좀 더 부합할 수 있도록 원작의 시공간을 경상북도 평해(배경과 인구수 등이 원작과 가장 유사한 지역)로 각색해 국내 관객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혔다. 거기다 무장애 공연으로서 비장애인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장애인을 주요 배경으로 설정했으며, 농인 배우가 직접 출연하는 것은 물론 수어통역·자막·음성해설까지 준비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새삼 깨닫게 된 ‘일상의 소중함’을 ‘우리’라는 공동체 울타리 속에서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기에 관극의 기쁨이 배가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날 <우리 읍내>의 연극 장치는 처음 발표되던 시기와 달리 그리 흥미롭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재의 관객은 브레히트 계열의 극장주의 작품에 상당 부분 익숙해 있고, 또한 동시대의 연극 양식은 과거와 달리 사실주의와 비사실주의가 혼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읍내>는 여전히 연출자에게, 연기자들에게, 그 외 무대형상화 종사자 및 새로운 극적 체험을 맛보려는 관객에게 커다란 자극과 도전이 될 여지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지금, 여기’의 무대라는 특수한 시공간의 이점을 최대한 살린 연극적 약속을 통해 잃어버린 연극성을 되찾으려는 손턴 와일더의 의도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 소박한 공연이 이 시대 우리에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주 먼 옛날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일상의 소중함을 무대와 객석이 합일된 마음으로 공유하길 소망한다. 또한 진정한 연극적 재미와 감동을 창출하려는 무대형상화 종사자와 공동생산자로서 그 역할이 증대된 관객에게 적지 않은 울림을 주었으면 한다.

글. 이신영 성결대학교 파이데이아(교양)학부 교수. 금천연극협회장이자 (사)한국연극협회 감사로 활동하며, 극단 노을과 창작집단 유희자에서 상임 연출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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