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

뮤지컬의 해피엔딩
무해한 행복을 주는 감각
가끔 이런 질문을 해본다. 뮤지컬의 해피엔딩은 마냥 저차원적인 것일까?
사실 전형적인 해피엔딩 구조는 뮤지컬이 학술 대상으로 부적합하다는 인식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꽤 오래전 리처드 다이어Richard Dyer 역시 뮤지컬은 엔터테인먼트이고,
엔터테인먼트로서의 뮤지컬의 본질이나 특성은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음을 지적한 바 있다.

리처드 다이어는 ‘도피Escape’와 ‘소망 충족Wish-fulfillment’이 엔터테인먼트를 기술할 수 있는 두 가지 특성이며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유토피아니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유토피아니즘은 그것이 구체화하는 ‘느낌Feelings’ 안에서 구성되는 것이지, 토머스 모어나 윌리엄 모리스 같은 작가가 만든 유토피아적 세계와 같은 모델을 구축하는 건 아니라고 분석했다.1 리처드 다이어의 분석은 뮤지컬의 해피엔딩 방식과 내용을 설명한다. ‘도피’는 인물이 문제적 상황과 치열하게 경합한다기보다 어찌어찌 그것을 봉합한다는 의미일 것이며 ‘소망 충족’은 인물이 바라는 바가 성취됨, 그러니까 세계는 인물을 끝까지 억압하지 않고 수용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뮤지컬은 왜 이러한 해피엔딩을 고집하는 것일까? 리처드 다이어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뮤지컬의 해피엔딩이 주는 ‘느낌’은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고 어떤 효용성이 있기에 지속되는 것일까?

뮤지컬의 해피엔딩은 다양성과 다원성의 가치가 점점 더 중요해짐에 따라 모순과 갈등이 가득한 지금/여기에서는 판타지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실제로 뮤지컬은, 서로 다른 두 집단 사이의 이해와 수용을 주요 테마로 다루던 브로드웨이의 황금기를 지나 기존 질서와 가치를 질문하고 비극적인 전망을 담는 작품을 생산함으로써 장르의 경계를 넓혀왔다. 한국의 창작 뮤지컬 역시 마찬가지다. 가령 최근에 초연(2022)과 재연(2023)을 거친 <실비아, 살다>(작·연출 조윤지, 작곡 김승민)는 여성 서사 창작 뮤지컬에서 발견되는 전형성을 극복하려는 지향이 돋보인다. 공연은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1932~1963의 생애를 통해 질문될 수 있는 바를 거칠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작품 속 실비아는 천재적이지만 낭만적인 영웅도 아니며, 남성에게 밀려나 괴로워하는 트라우마적 주인공도 아니다. 그녀는 인생이라는 기차 안에서 주어진 삶의 방향과 목표를 끝없이 질문함으로써 삶의 성찰을 진중하게 담아내는 인물로 존재한다. 주체성을 화두로 분화되고 있는 대학로 창작 뮤지컬의 경우, 심지어 날카롭고 서슬 퍼런 어두운 계열의 작품이 주류라는 인식마저 엿보인다.

1 Richard Dyer, “Entertainment and Utopia”, in Rick Altman, Genre: The Musical, Routledge & Kegan Paul, 1981, p. 177.

뮤지컬 <실비아, 살다> 포스터

하지만 여전히 뮤지컬의 해피엔딩이 갖는 위력은 유효하다. 특히 뮤지컬이 동화적인 세계와 만나면 해피엔딩은 더욱 강력한 느낌과 감각을 유발한다. 대표적인 영미권 뮤지컬 <위키드>, <메리 포핀스> 그리고 <마틸다>, 한국의 창작 뮤지컬 <어린왕자>와 <장수탕 선녀님>이 그렇다. 모두 유명한 아동문학을 각색한 뮤지컬로서 어떤 경우는 원작과 달리 완전한 해피엔딩을 선택하기도 했다.

원작은 각각 다음과 같다. <위키드>의 원작은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사악한 서쪽 마녀의 생애The Life and Times of the Wicked Witch of the West』(1995)이며, <메리 포핀스>의 원작은 트레버스의 『메리 포핀스Mary Poppins』(1934) 연작, 즉 『메리 포핀스 돌아오다Marry Poppins Comes Back』(1935), 『메리 포핀스 문을 열다Marry Poppins Opens the Door』(1943), 『메리 포핀스와 이웃집Marry Poppins and the House Next Door』(1988)으로 이어지는 8권의 연작이다. <마틸다>는 로알드 달(1988), <어린왕자>는 생텍쥐페리(1943), <장수탕 선녀님>은 백희나의 동명 소설(2012)이 원작이다.2

2 물론 각 작품의 원작이 아동문학 소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키드>는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 외에도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의 영향을 받았으며, <메리 포핀스> 역시 디즈니 영화 <메리 포핀스>(1964)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놓여 있다. 반대로 <마틸다>는 뮤지컬의 흥행 이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국 영화(2022)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 뮤지컬 <위키드> 포스터
  • 책『사악한 서쪽 마녀의 생애』표지

뮤지컬은 모두 판타지다. 애초에 마법사의 세계를 다루는 <위키드>를 제외하고, 다른 작품은 현실에 판타지를 삽입함으로써 테마를 구축한다. 위 작품에는 마법사·마녀·마법과 초능력을 가진 존재들, 그리고 선녀가 살고 때로 정체를 규정하기 어려운 존재도 등장한다. 뮤지컬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들을 호출하거나 인물에게 숨겨져 있는 초월적 자질을 끌어낸다. 현실의 문제는 세부적인 방향은 달라도 모두 어른과 아이 사이에 놓여 있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 놓인 문제는 ‘과거의 나’ ‘꿈과 이상향’ 혹은 ‘아이다움’이 인정되고 회복됨으로써 해결되는데, 여기에 판타지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현실의 문제를 현실적인 해법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판타지를 통해 ‘아이의 세계’를 인정하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함으로써 해결한다. 위 작품들이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는 것은, 그 해결 방식이 유쾌하고 통쾌하며 동시에 따뜻한 감성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이는 가족 단위의 관객을 끌어안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메리 포핀스>는 에드워드 시대(1901~1910) 런던을 배경으로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불화했던 뱅크스 가족이 모두의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악동’ 제인과 마이클 남매는 이야기의 핵심이며, 마찬가지로 부모인 조지와 위니프레드의 갈등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제인과 마이클은 보모의 도움이 필요한 악동이지만, 실은 부모 역시 서로의 성향 차이로 불화하고 있다. ‘이상한’ 보모 메리 포핀스는 마치 마녀처럼 하늘에서 등장해 ‘설탕 한 스푼’의 철학과 마법으로 이들을 사로잡는다. 아이에게는 부모의 진짜 모습을 보도록 유도하고, 부모에게는 원래의 자신을 회복함으로써 현실의 심리적·물리적 억압을 극복하도록 돕는다. <마틸다>는 반대로 어른으로 상징되는 현실의 무감각하고 무분별한 질서를 뛰어넘기 위해 ‘악동이 되어야 하는’ 마틸다의 이야기를 담는다. 마틸다의 부모는 ‘딸’ 마틸다를 이유 없이 구박한다. 책과 수학을 좋아하는 천재 마틸다는 오빠를 편애하는 부모에 의해 끝없이 ‘괴상한 아이’로 부정당하다 결국에는 무시무시한 트런치불 교장선생님이 운영하는 크런쳄 초등학교에 보내진다. 하지만 마틸다는 숨겨져 있던 초능력과 특유의 기지를 발휘해 친구들과 함께 트런치불을 몰아내고, 자신의 이야기 속에 부재하던 주인공을 현실에서 만나 함께 산다는 해피엔딩을 맞는다. 동명의 원작 소설을 무대로 옮긴 <위키드>는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비튼 뮤지컬로, 이야기는 ‘서쪽 마녀는 정말 사악했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된다. 차별과 혐오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 떠난 엘파바, 그리고 현실 속에 남기로 결심한 글린다는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지만 서로 삶의 목표가 ʻ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영원히 응원하는 친구 사이로 남는다는 차원에서 해피엔딩의 감각을 보여준다.

한국 창작 뮤지컬 <어린왕자>의 ‘나’는 사막에 불시착한 후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소년 ‘어린왕자’를 만난다. 그리고 나는 친구가 필요했던 어린왕자의 이야기에 매료되고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결국 어린왕자는 떠났지만 나는 ‘마음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어른으로 살기 원한다. <장수탕 선녀님>은 세련된 사우나 대신 허름하고 낡은 장수탕에서 엄마와 함께 목욕하던 덕지가 선녀님을 만나면서 삶의 중요한 가치를 배운다는 이야기다. 장수탕의 선녀님은 ‘선녀와 나무꾼’의 그 선녀로 덕지와 냉탕에서 함께 놀다 덕지가 내민 요구르트를 먹는다. 덕지가 ‘소중한’ 요구르트를 할머니에게 양보한 이후 둘은 친구가 되고 냉탕에서 오래 놀다 감기에 걸린 덕지는 비몽사몽 간에 선녀님의 치료를 받고 낫는다. 이로 인해 오래된 것과 ‘마음 씀’의 가치가 해피엔딩의 감각으로 구현된다.

위 작품에서 해피엔딩이 주는 유토피아적 감각은 초월적이고 직선적이다. ‘스텝 인 타임Step in Time’이 펼쳐지는 2막의 <메리 포핀스>, ‘내가 어른이 되면When I grow up’으로 돌입하는 <마틸다>의 2막 초반, ‘널 만났기에For Good’가 가창되는 2막 마지막의 <위키드>는 결국 갈등이 해결될 것임을 암시하지만 그것이 그저 단순하거나 무책임한 차원이 아님을 알려준다. 현실과 판타지가 부딪치면서 오히려 현실의 문제가 더 부각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초월하고자 하는 인물의 ‘의지’와 ‘감각’이 장면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위키드> 역시 두 인물이 서로를 부정하지 않고,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어떻게든 서로 이해하려 노력한다. 이것은 무해한 감동을 주며 때로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어린왕자의 옷을 입고 등장한 ‘나’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는 <어린왕자>, 장수탕에서 노는 벌거벗은 선녀님과 덕지의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무해한 행복을 주는 감각이 공연의 핵심에 있다.

그러므로 뮤지컬의 해피엔딩이 주는 그 ‘느낌’은 ‘구원의 감각’에 있다. 뱅크스 가족이 재결합하지 못했다면, 마틸다가 지긋지긋한 집에서 나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다면, 엘파바와 글린다가 서로 증오하며 관계를 끝냈다면, ‘내’가 어린왕자의 정신을 잃어버렸다면, 그리고 덕지가 선녀님과 친구가 되지 못했다면, 우리는 극장 안에서의 무해한 행복을 아름다운 것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마저 박탈당했을 것이다. 이것은 더 건강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감각이다.

글. 최승연 뮤지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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