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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해외초청작 <잉크>
컨템퍼러리 그릭 아티스트
고대 그리스 예술의 미학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18세기 미술사학자 빙켈만의 말,
“Noble Simplicity, Quiet Grandeur(고귀한 단순함, 고요한 웅장함)”은 고대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컨템퍼러리 그릭 아티스트’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의 세계도 딱 그렇다.

공연미학의 극치

파파이오아누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폐막식 총연출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유럽 연극상 특별상(2017)을 수상하고, 에미상과 올리비에상 후보에도 여러 차례 오른 연출가이자 안무가, 무대와 조명 디자이너이면서 배우이기도 한 전방위 아티스트다. 2017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위대한 조련사>를 선보인 바 있는데, 5월 국립극장에서 6년 만에 국내 관객에게 최신작 <잉크>를 내놓는다. 2020년 초연된 작품으로, 지난 1월 아테네 콘서트홀을 시작으로 월드투어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에게 매료된 건 2015년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1회 유러피안 게임 개막식 <오리진스Origins>에서다. 카펫의 나라를 상징하는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민요를 부르는 노인, 달 표면을 눌러놓은 듯한 원형 경기장을 홀로 가로지르며 생명의 풀을 돋게 하는 여인, 대지를 뜯고 나와 탭댄스 같은 민속춤을 추는 수십 명의 남자, 땅에서 솟은 불덩이로 바닥에 그려지는 거대한 헤라클레스의 형상, 개기일식 태양처럼 떠오르는 성화와 원형 경기장 주변의 호수를 장대하게 수놓는 불꽃놀이까지. 민족과 지구와 우주를 한순간에 아우르는 장엄한 스펙터클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규모가 비교적 작은 그의 개인 작업은 결이 좀 다르다. 일단 장르를 정의하기 힘들다. 여러 장르를 섞어놓은 융복합도 아니고, 그저 유니크해서다. ‘장르가 파파이오아누’라 할 만한데, 굳이 정의하자면 순수미술을 공연예술로 자유롭게 재해석한 ‘피지컬 시어터Physical theater’다. 인체의 움직임을 독특하게 연출해 직관적이면서도 알쏭달쏭하며 놀라운 장면의 연속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뒤 무의식을 건드려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생산하는, 그로테스크한 공연미학의 극치랄까.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탄생한 시

<잉크> 무대 위에는 두 남자만 있다. 저 흔한 미디어 테크놀로지도, 비싸고 복잡한 무대세트도 없다. 물줄기를 뿜어대는 스프링클러와 둥근 어항 모양의 수조, 꿈틀대는 문어와 바닥에서 뜯어낸 반투명 장판, 직사각형 테이블과 의자, 배경 막이 되는 검정 비닐 커튼 정도가 도구의 전부다. 스프링클러가 물을 뿜는 소리가 음향 대부분을 차지하고, 아주 가끔 조명을 반전시킬 뿐인 정적인 무대에서 옷을 입은 남자와 벗은 남자가 반투명 장판을 사이에 끼고 레슬링을 벌인다. 그건 마치 프랑켄슈타인과 괴물, 또는 조물주와 인간, 혹은 현대인과 고대인의 치열한 결투처럼 보이는데, 원초적인 관능과 왠지 모를 고뇌로 가득하다. 오직 인간의 몸으로 펼쳐놓는 100퍼센트 아날로그의 ‘단순하고 고요한’ 무대지만, 신비롭게도 ‘웅장하고 고귀한’ 미장센이 독특한 스펙터클을 생산한다. 이것이 바로 ‘무대 위의 시인’이라 불리는 파파이오아누의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시가 탄생한다Poetry can be created out of nothing at all”라는 예술철학의 현현이다.
공연예술가가 되기 전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일러스트레이터와 만화가로 먼저 명성을 얻은 그는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에 크게 영향받았다. 가난한 예술이란 뜻의 ‘아르테 포베라’는 일상에서 아주 흔하고 소박한 재료로 시적인 예술을 창조하는 운동인데, ‘일상의 소재에서 시를 발견하는 것은 관찰자의 눈’이라는 주장이 파파이오아누를 매료했다. 과거 필자와 인터뷰하면서 그는 “시가 어디에나 있다는 걸 상기시켜 주기 때문에 ‘아르테 포베라’ 예술가를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잉크>를 비롯한 그의 소박한 무대가 거대한 시가 되는 이유다.

화가의 눈과 몸으로 구현하는 초현실주의

시각예술 분야에서 활약하던 그는 우연히 무용에 빠져 미국에 건너가 일본의 부토舞踏와 에릭 호킨스 안무 테크닉을 배웠고, 독일에서 연출가 로버트 윌슨과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슈를 만난 감동으로 공연계에 정착하게 됐다. 로버트 윌슨과 피나 바우슈는 파파이오아누의 예술을 극과 극에서 지탱하는 기둥과 같은 존재다. “로버트 윌슨의 차가움과 초현실주의, 비주얼 파워와 피나 바우슈가 가진 휴머니티의 거대한 힘을 사랑한다”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의 유니크함은 순수미술 전공자답게 ‘화가의 눈’으로 공연을 만든다는 데 있다.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에서 고대 회화 속 이미지들이 살아 움직이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위대한 조련사>에서 렘브란트의 ‘해부학 수업’과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비롯해 라파엘·엘 그레코 등 서양미술사를 잔뜩 오마주한 이유다. <잉크>에도 루벤스나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크로노스’의 이미지,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리들리 스콧의 영화 <에일리언>의 장면들을 비주얼 레퍼런스로 삼았다. <위대한 조련사>에서 자신을 참조한 장면도 있다.
파파이오아누가 활용하는 레퍼런스는 단순한 콜라주가 아니라 무대에서 움직임을 통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탈바꿈되어 살아난다. 인체를 분절하고 짜깁기해 연출하는 기괴한 장면들은 ‘몸으로 구현하는 초현실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초현실주의로부터 마치 꿈속에서 만나듯 이상한 분위기와 상황을 창조하는 것이 매력적이라는 걸 배웠다”라면서 “무언가를 꿈처럼 창조하는 것이 내가 이야기를 가장 잘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도 했다.

그리스적 아이덴티티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그리스적 아이덴티티’다.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의 클라이맥스에서 거대한 가면 모양 조각상이 쪼개지며 중심의 토르소를 드러낸 것처럼, 그의 ‘그리스적 아이덴티티’는 고대 그리스 미술의 시그너처인 대리석과 누드, 분절된 인체상으로 드러난다. 그 본질은 ‘정신성과 섹슈얼리티의 공존’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 사람은 정신성과 섹슈얼리티를 드러냄으로써 인간 존재를 이해하려 했고, 두 가지는 그리스 예술에 늘 공존해 왔다. 나는 그걸 아주 좋아해 항상 발견하려고 노력한다”라고 말했다. 파파이오아누가 생산하는 이미지들이 늘 벌거벗은 몸뚱이 하나로 환원되며, 그 자체로 철학적이면서도 에로틱한 이유다.
<잉크>에서 풍기는 선명한 동성애적 분위기도 ‘그리스적 아이덴티티’의 일종이다. 그에 따르면 “호모 섹슈얼리티가 아니라 호모 에로티시즘의 표현”이며, 에로티시즘이란 “박물관에 가면 고대 그리스 예술에서 느껴지는 바로 그 느낌”이다. 늘 남성 누드를 모티프 삼는 그의 무대가 발산하는 ‘호모 에로티시즘’이 모든 대중에게 소구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는 “나는 그리스 남성이고 동성애자로서 세상을 보는 관점을 제안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여성 아티스트가 페미닌한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미국 아티스트가 미국인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듯, 자신은 ‘그리스인 동성애자 남성’의 관점으로 예술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럼 알쏭달쏭한 <잉크> 무대가 향하고 있는 건 무엇일까. 움직이는 초현실주의 회화와 같은 무대에서, 그리스적 아이덴티티를 내세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두 남자의 격렬한 뒤엉킴은 아버지를 죽여야 사는 아들과 아들을 잡아먹어야 사는 아버지의 싸움일 수도 있고, 벌거벗은 내면과 사회적 아이덴티티의 싸움일 수도 있고, 어쩌면 새것과 낡은 것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박물관에 갇힌 고대의 전통을 무대로 끄집어내 동시대인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파파이오아누의 무한한 창조력의 비밀은 결국 근원적 휴머니티, 어쩔 수 없는 인간 존재에 대한 측은지심에 있는 것 같다.

글. 유주현 중앙SUNDAY 기자. 2010년부터 공연·영화·미술·음악 등 문화예술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글을 써왔다. 삶의 현장 너머에서 꿈꾸는 사람들의 판타지를 들여다보고 해석하기를 즐긴다.

사진. ⓒ Julian Momm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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