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공연예술
평론가상

당선작 요약문
장려상 수상작: 이우정
국립극장이 주관하는 두 번째 공연예술 평론가상이 열렸다. 총 15명이 참여했고,
공연예술 분야의 전문가 4인은 이번 심사를 통해 한국 공연 평론의 미래에 큰 기대를 품게 됐다는 소감을 밝히며
3인의 수상자를 선정했다. 평론의 미래를 보여주는 이들의 글을 만나보자.
<제2회 국립극장 젊은 공연예술 평론가상> 당선 소감 사랑의 마음으로, 시간을 쌓으며 나아가겠습니다

의도는 아니었을 겁니다.
오필리어 역의 배우가 손에 들고 있던 하얀 꽃을 멀리 던졌습니다. 그 꽃은 객석으로 반원의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고 저의 머리로 툭. 그렇게 다시 제 품 안으로 떨어졌습니다. 운명적 마주침인 듯 아닌 듯, 아마 그때부터였지 싶습니다.
머리로, 감각으로 공연을 진짜로 느껴보자며 이곳저곳으로 공연을 보러 가고 세상의 모든 공연을 보고 싶다며, 공연을 공부해 보면 어떨까 하는 객기를 부린 게 말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무모한 결심이 생각보다 쉽게 지치거나 싫증 나지 않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공연을 보고, 읽으면 즐거우니까요. 그렇게 좋은 순간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 오래 기억에 담으려고 조금씩 짝사랑 고백 같은 글을 써봅니다. 그러면 저 나름의 생각이 정리되고 제 안에 공연의 역사가 쌓이는 것 같은, 꽤나 좋은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언제나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를 향해 논리적이고 정확한 글을 쓰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때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고 앞으로도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국립극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이거 이거 큰일 났다’였습니다. 기쁘고 좋은 마음보다, 감사하고 소중한 말씀보다 앞서 덜컥 걱정이 오고 두려웠던 것은 즐거움에서 시작한 글쓰기에 아주 약간이라도 어떠한 ‘책임’이 생기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 고백의 말들이 합당한 것이었는지, 두서없이 흘러가 정확한 마음을 전달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한동안 불안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사랑 고백은 다 그런 거다, 가끔은 말이 모자라 온전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과 따뜻한 시선에서 나온 낱말들은 어느 정도 책임의 부하負荷를 견뎌줄 거라고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사랑의 마음으로 부지런히 공연장을 다니고 최선을 다해 느끼기를 바라며 국립극장에서 손잡아 다독이고 격려하는 것이라고요.

막막한 글을 어렵사리 읽으며 다소라도 그 의미를 찾아주려 하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랜 시간을 학교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학생을 밉다 하지 않으시는 저의 선생님들께도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도록 조급히 채근하지 않고 시간을 주시는 부모님 사랑합니다. 불안해하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계속해서 시간을 쌓으며 나아가겠습니다.

창극이 ‘돌아왔’다.
국립창극단 <귀토 : 토끼의 팔란八亂>

창극은 뮤지컬이나 이슈가 되는 무대 공연만큼 대중적 장르는 아니다. 그럼에도 국립창극단은 창극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을 지속하고 있으며 창극의 대중화, 현대화, 세계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리고 2021년 해오름극장 재개관과 함께 첫 공연인 <귀토 : 토끼의 팔란>(이하 <귀토>)에서 그간의 축적된 노력의 결실로 일견 균형점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창극 <귀토>는 많은 부분 전통 판소리인 ‘수궁가’와 비슷한 궤를 가지고 있지만 ‘창극’임을 십분 살려 연극적 경계를 포착한다. 이는 연출가 고선웅이 천착해 온 연극 방향과 조화를 이루는 협업의 결과로 읽힌다. 그가 <귀토>에 풀어놓은 연극적 감각은 장면의 전환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는 다른 공간이 동일한 판에서 조명으로 구획되어 전환되거나 시간의 흐름이 다른 두 이야기를 맞붙여 내는 등으로 표현된다. 또한, 결을 방해하지 않는 오브제의 사용은 연극적 상상력을 배가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귀토>의 조화調和점으로 전통과 첨단의 기술이 만나 극을 이루고 있다는 것도 언급할 수 있다. 새로이 개관한 극장의 무대 바닥은 LED 패널로 이루어져 있다. <귀토>에서 무대 바닥으로부터의 조명과 전경의 표현이 가능해졌다는 점은 발아래의 사각死角이어서 시각화視覺化되지 못했던 무대 공간을 확장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무대 기술에 아날로그한 배우의 신체가 더해지고 여기에 창극의 중심이 되는 소리가 덧씌워져 토자兔子가 바다를 조우하는 장면은 가히 이 공연의 압권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연극과 첨단의 기술 등 창(소리)이 중심이 아닌 외적 요소들의 적당한 섞임으로만 어설피 구성되지 않았다는 것이 <귀토>의 미덕이다. <귀토>는 국립창극단이 지향하고자 하는 ‘소리’를 중심으로 하는 작품이다. 이는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수궁가’의 대목을 적재적소에 배치, 삽입할 수 있는 선택이 되었으며 익숙함으로 정체성을 공고히 하여 극에 대한 이해를 보완한다.
더불어 전통의 소리가 지닌 중의적인 언어유희의 말맛을 놓치지 않고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귀토>라는 제목은 이를 가장 잘 드러낸다. <귀토>는 자라와 토끼의 이야기도, 돌아오는 토끼의 이야기도, 살아갈 땅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라는 의미도 뿜어낸다. 이는 처음에서 끝으로, 그리고 다시 처음을 예비하게 하는 것처럼 돌아오면서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렇게 돌아오는 극처럼 극장도 돌아왔고1 창극도 새롭게 변화하며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1 창극 <귀토>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이 오랜 리모델링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재개관작으로 공연 자체 이외의 외부적인 의미도 있다.

비울 것과 비우지 말아야 할 것, 한 마디의 차이
: 연극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 2>

극단 하땅세는 신체성과 근본적인 연극성을 중심에 두고 공연하는 집단으로 류전윈 원작, 모우선 희곡의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를 2021년 국제공연예술제의 일환으로 선보인 바 있다. 그 후 1년간의 공연화 작업을 거쳐 2022년에는 희곡 중 2막을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 2>로 구성했다. 소설에서 희곡으로, 다시 연극으로 공연화되는 과정에서 이 작품에는 다양한 방식의 노력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공연에서는 과감한 생략과 근본적인 연극성을 고려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이를 서사에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공연은 연극적 특징을 살리는 동시에 내레이션을 통한 관점의 제시, 음악의 배경을 활용한 프레임의 도입, 조명의 시간 차와 대비를 이용한 편집과 클로즈업 효과 유도와 같은 영화적 기법을 무대에 펼쳐놓는다. 이로써 관객은 서사를 잇는 데 사용한 연극적 상상력에 더해 영화적 상상력까지 향유할 수 있다.
무대는 라이트 하우스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가정집이다. 이곳은 극단이 신체성과 연극성을 최대화해 가장 단순하게Light 구성한 장면이 장소-특정적Site-Specific으로 집중되어 있는 장소가 되며, 이 공연 역시 일정 부분 장소-특정적 연극Site-Specific Theatre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 2>는 연극의 근본에 충실하며 장소-특정적 성격 역시 고려해 구성한 내적인 감탄을 부르는 공연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공연의 주제가 될 수도 있는 그 ‘말 한 마디’가 과연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모호한 지점이 많다. 우선 이 공연은 전편, 엄밀히 말하면 1막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 3대 100년에 걸친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며 이들의 말과 경험은 반복적으로 유사하게 오버랩되어 ‘존재’와 ‘소통’이라는 주제가 전달된다. 그래서 2편의 조청아-우애국으로 이어지는 인물들은 1편의 등장인물인 오모세의 서사와 단절된다면 성취하기 어려운 것이 된다. 이 지점을 2편에서는 다소 고려하지 못했다. 이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나 가볍게 소설의 목차를 참고해 해결되지 않는다. 전달하려는 ‘말 한 마디’는 강한 주제 의식으로부터 비롯돼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말 한 마디’를 더 흐릿하게 만드는 데에 힘을 보탠 것은 앞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만든 ‘생략’에 있다. 가볍고 —물리적으로 가볍다는 의미이지 내용이 의미 없거나 가볍다는 의도가 아님을 밝힌다— 단순한 공연이 오롯이 명확한 공연일 수는 없었던 것은 정확한 ‘말 한 마디’가 구심이 되기보다 창의적 장면 구성만을 더 염두에 둔 탓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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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우정 교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공연예술학 협동과정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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