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정오의 음악회>
다정한 국악 나들이
“관객을 보면서 이 공연이 15년 동안 이어진 이유가 있구나 생각했어요.”
지휘자 박천지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정오의 음악회> 5월 공연 지휘를 앞둔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건네는 모든 말에 망설임이 없는 걸 보니, 공연에 대한 고민을 꽤 오랫동안 이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2009년 시작해 15년째 관객을 만나고 있는 <정오의 음악회>는 그야말로 국립극장의 스테디셀러 공연이다. 첫 시작부터 ‘대중 친화적인 국악관현악’을 표방했고, 관객의 폭을 넓히기 위해 해설이 있는 브런치 콘서트로 기획됐다. 그 긴 역사의 시작점에 박천지도 함께했다. 2001~2016년까지 국립국악관현악단 타악 수석단원으로 활약했던 그는 첫 공연 당시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정오의 음악회> 첫 시작이 벌써 15년 전이네요. 당시 국악관현악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것, 그러니까 관객 개발의 중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가야 하는지,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때였죠. 전통적인 국악 공연은 대부분 관련 종사자나 전공자가 많이 모이거든요. 반면 <정오의 음악회>는 다양한 관객층을 포용하고, 이제는 마니아층도 생긴 것 같습니다. 낮 공연이어서 분위기가 가볍고 활기차다는 점도 특징이죠.”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음악원 총지휘자로 활동 중인 그는 이번 상반기 <정오의 음악회>의 지휘를 맡았다. 단원으로 서던 무대에 지휘자로 오르게 되니 감회가 퍽 새롭다고 한다. 공연은 ‘정오의 3분’ ‘정오의 협연’ ‘정오의 여행’ ‘정오의 스타’ ‘정오의 관현악’까지 총 다섯 코너로 구성돼 있다. 그중 가장 마음이 가는 코너를 물으니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정오의 3분’과 ‘정오의 관현악’을 꼽는다.

“2년 전에 <정오의 음악회> 무대에 한 번 섰는데 올해는 이렇게 상반기 전체를 맡게 돼 기뻐요. 재밌고 의미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오의 관현악’ ‘정오의 3분’을 제일 좋아해요. 지휘자 입장에서는 협연자 없이 온전하게 자신이 만드는 음악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자리잖아요. 그걸 통해 국악관현악의 정수를 들려줄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공연이 끝나면 마지막 코너인 ‘정오의 관현악’에 관심 있어 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스타 아티스트를 보러 왔다가 국악관현악에 빠져들게 되는 거죠!”

지휘 박천지

다정다감한 한낮의 음악회

공연의 시작을 여는 ‘정오의 3분’은 올해 개설된 코너로, <2022 3분 관현악>에 올랐던 작품 중 한 곡을 다시 무대에 올린다. 당시 10인의 젊은 작곡가에게 연주 시간 3분 내외의 강렬한 작품을 위촉했고, 그때에도 지휘자 박천지가 국립국악관현악단 포디엄에 섰다. 그는 “젊은 작곡가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졌어요. 화성과 선율을 쓰는 표현이 다양해졌죠.”라고 말했다.

“상반기 ‘정오의 3분’에서는 그중 기승전결이 뚜렷한 작품을 골랐습니다. 기술적인 완성도가 높으면서도 멜로디가 쉬워서 관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곡입니다.”

‘정오의 3분’에서는 작곡가 엄기환의 ‘구름정원’을 들려준다. 엄기환은 그동안 클래식 음악계에서 활약한 작곡가인데, 그가 처음으로 도전한 국악관현악 작품이 바로 ‘구름정원’이다. 엄기환은 첫 도전에서 느낀 감정을 미지의 세계인 구름 위의 정원으로 상상하며 곡을 썼다. 특히 25현 가야금의 신비로운 선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구름정원’을 들으면 예쁜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작곡 노트를 보기 전 악보를 리딩하는데 예쁜 구름이 하늘에 떠 있는 게 보였어요. 어릴 적 봤던 사탕 구름이 생각나서 옛 시절의 기억을 이끌어내는 곡이라고 생각했죠. 5월은 가정의 달이니 더욱 의미가 깊을 것 같네요. 아이들 손잡고 오셔서 극장 안에서 구름정원을 떠올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정오의 협연’은 국립국악관현악단원이 협연자로 2중주 협주곡을 선보이는 순서다. “단원의 솔리스트 기량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귀중한 코너”라고 박천지는 힘주어 이야기했다.

“악단 정기 연주회의 협연자는 외부에서 불러오는 경우가 많죠. 스타 연주자를 세워야 티켓 파워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국립국악관현악단 내부에서도 스타를 배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유명한 연주자가 많지만, 더 폭을 넓혀서 그들의 예술성을 보이고 싶습니다.”

5월에 만날 곡은 작곡가 이고운의 해금과 피리를 위한 2중 협주곡 ‘끌림의 노래’다. 음악을 매개로 이끌고 이끌리는 관계를 표현하고자 한 작품으로, 이 음악을 통해 가족과 하나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관악영산회상의 선율을 음악적 주재료로 삼은 곡이기에 아름다운 관악기 선율이 친근한 분위기를 유도한다.

“협연자로는 피리 단원 이상준, 해금 단원 변아영이 함께해요. 이고운 작곡가가 관악영산회상의 전통 선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핵심 포인트는 피리와 해금이 가진 역량을 새롭게 보여준다는 것이죠.”

화목한 분위기는 ‘정오의 스타’에 오르는 뮤지컬배우 최재림을 통해 정점에 이르게 될 것이다. 2009년 뮤지컬 <렌트>로 데뷔한 그는 2010년 KBS2 <남자의 자격> 합창 편 출연을 통해 인지도를 높였다. 한국 뮤지컬계 중심에 있는 그는 지난해 <썸씽로튼><아이다><킹키부츠><마틸다>에 오르며 분주히 활동했다. 이번 무대에서는 <동반자><갈무리>에 이어 제6회 한국뮤지컬어워즈 남우조연상을 안겨준 뮤지컬 <시카고>의 ‘All I Care About’을 노래한다. 그렇다면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 협업할 때의 어려움은 없는지 궁금해 박천지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협연자가 관객과 친해질 수 있을까를 제일 먼저 고민해요. 그다음은 국립국악관현악단 역시 어떻게 하면 무대에서 같이 빛날 수 있을까 생각하죠. 국악관현악이 단순히 반주 역할로 끝나는 게 아니길 바라요. 뮤지컬을 국악 버전으로 들어도 좋다는 평도 듣고 싶습니다. 편곡을 맡은 선보미 작곡가가 이러한 편곡에 능해요. 저랑 호흡도 잘 맞아서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바로 반영해 주죠. 편하게 작업하니 결과물이 잘 나오는 것 같습니다.”

  • 작곡가 이고운
  • 뮤지컬배우 최재림

시원한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국립극장

그래도 사방이 꽉 막힌 극장보다는 가족과 가까운 바다에서 바람이라도 쐬고 오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이번 <정오의 음악회>에서는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길 예정이니 가벼운 걸음으로 극장에 오길 바란다. ‘정오의 여행’은 세계 여러 나라의 전통음악을 국악관현악으로 재해석해 영상과 함께 들려주는 코너다. 5월은 박한규가 편곡한 ‘바다가 있는 풍경’을 연주한다. 사이판·티니안·로타 등 15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북마리아나 제도의 ‘Marianas Faluwei’를 모티프로 완성한 곡이다. 1년 내내 깊고 푸른 바다가 눈앞에 넘실대는 북마리아나 제도와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각각 다른 매력을 품은 곳을 소재로 어떠한 음악이 탄생할지 궁금증이 든다. 주한 마리아나관광청에서 제공한 마리아나 풍광 영상을 함께 감상할 수 있어 진정한 휴식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3월에는 한국의 ‘밀양아리랑’과 베트남 노래를 섞었어요. 4월에는 아리랑과 프랑스 샹송을 모티프로 곡을 만들었는데 굉장히 잘 어울려서 놀랐죠. 편곡을 맡은 박한규 작곡가의 상상력이 대단하더군요. 결국 서양이든 동양이든 음악은 같은 곳을 지향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국가 간의 화합은 이렇게 문화적으로 이뤄지는 게 빠르겠구나 하는 걸 확인하는 시간이 될 거예요.”

국악관현악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정오의 관현악’에서는 작곡가 박범훈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뱃노래’를 연주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의 해안 지방에는 많은 뱃노래가 전해온다. 이 곡은 나발·북·징 등을 통해 대해大海의 존재를 묘사하며, 돛을 올리고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곡이다.

“‘어기야 디여어차’ 하는 뱃노래 모티프로 작곡된 작품인데요. 출항부터 노를 저어가는 과정까지 그립니다. 화성 전개와 리듬 구성을 보면 노를 젓는 과정에서 느끼는 희망에 관한 이미지가 떠올라요. 각자 꿈꾸는 유토피아를 생각하게 되죠. 힘찬 에너지를 주는 곡입니다.”

박천지에게 ‘정오의 관현악’ 프로그램 선정 기준을 물으니,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가장 잘 연주하는 작품을 우선적으로 꼽는다.”라고 자신감 있게 밝혔다. 이번 상반기에 선보인 작곡가 박범훈과 백대웅의 작품은 대부분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초연한 작품이기에 의미가 크다고 한다.

“‘정오의 관현악’에서 선보인 곡들은 국립국악관현악단만큼 잘하기가 드물어요. 초연 때 함께한 단원도 많기 때문에 추억이 떠오르기도 할 테고요.”

그는 앞으로 <정오의 음악회>와 같은 프로그램이 더욱 많아져서 국악관현악을 더 널리 알리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또, 공연의 지휘를 맡으며 국악관현악이 앞으로 가야 할 지점을 확인하게 됐다고 한다. 박천지는 “낯선 국악관현악 곡이라도 어떤 방식으로 다가갈지에 대한 고민이 잘 해결된다면 더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봄의 절정 5월, 아직 가족들과 함께할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면, 국립극장으로 나들이를 떠나보기를. 다정한 기운과 시원한 바다가 당신을 맞이할 것이니.

글. 장혜선 음악 칼럼니스트. 대학에서는 음악, 대학원에서는 연극을 공부했다. 바른 시선으로 무대를 영원히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글을 쓴다.
<월간 국립극장> 구독신청 <월간 국립극장> 과월호 보기
닫기

월간지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 구독 신청

뉴스레터 구독은 홈페이지 회원 가입 시 신청 가능하며, 다양한 국립극장 소식을 함께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또는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편리하게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회원가입 시 이메일 수신 동의 필요 (기존회원인 경우 회원정보수정 > 고객서비스 > 메일링 수신 동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