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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지젤>
윌리가 된 시골 소녀의 사랑 이야기
순수한 시골 소녀와 귀족 청년의 사랑 이야기로 낭만발레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1841년 초연한 이래 18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적 레퍼토리로 꼽히는 발레 <지젤>이다.

하이네의 문장에서 세계적 레퍼토리가 되기까지

<지젤, 혹은 윌리들Giselle, ou les Wilis>이란 제목으로 초연된 <지젤>은 공동 대본가 테오필 고티에의 발상에서 시작됐다. 그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책 『독일의De l'Allemagne』에서 “가장자리가 항상 축축한 하얀 옷을 입은 엘프들… 핏기 없는 윌리들과 무자비한 왈츠…”라는 대목을 읽고 이것으로 매우 아름다운 발레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윌리는 결혼 전에 사망한 젊은 여자 유령이다. 한밤중에 무덤에서 일어나 지나가는 남성들을 유혹해 춤추다 지쳐 죽게 만든다. 그는 극장 소속 대본가 쥘-앙리 베르노이 드 생-조르주Jules-Henri Vernoy de Saint-Georges에게 ‘윌리 이야기’를 상의했고, 드 생-조르주가 중세 독일의 라인강변에 사는 소녀가 실연의 고통으로 사망한다는 1막을 구상해 현재의 줄거리가 완성됐다. 작품은 1841년 6월 28일 왕립음악아카데미극장발레단Ballet du théâtre de l'Académie Royale de Musique이 상주 극장 살 르 펠르티에Salle Le Peletier에서 초연했다. 현재의 파리국립오페라발레단Ballet de l'Opéra National de Paris과 팔레 가르니에Palais Garnier에 해당할 것이다. 아돌프 아당의 음악에 장 코랄리Jean Coralli가 군무를, 쥘 페로Jules Perrot가 주역의 춤을 안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를로타 그리지Carlotta Grisi와 루시엥 프티파Lucien Petipa가 초연 주역을 맡았다.
낭만발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발레 <지젤>에는 와이어를 이용해 하늘을 나는 철사 비행이나 포인트슈즈를 신고 발끝을 세우는 기법과 같은 낭만적 연출법이 사용됐다. 거기에 푸르스름한 빛으로 신비함을 더하는 가스 불 조명이 새로 도입되면서 그 인기가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곧 프랑스 발레는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원작은 1868년 이후 파리 무대에서 사라졌다. 다행히 러시아에서 활동을 이어간 쥘 페로와 마리우스 프티파 같은 인물이 참여한 다른 버전의 <지젤>이 20세기까지 연결됐다. 1903년, 프티파의 마지막 재연작이 러시아에서 공연됐고, 1910년에는 발레 <지젤>이 42년 만에 파리 무대에 다시 올랐다. 디아길레프 러시아발레단이 미셸 포킨 안무, 타마라 카르사비나와 바츨라프 니진스키 주연으로 공연한 이후 <지젤>은 전 세계적인 발레 레퍼토리가 됐다.

영혼의 언어가 된 춤

국립발레단은 2011년 이래로 프랑스 출신 파트리스 바르Patrice Bart가 1991년에 재구성한 버전을 공연한다. <지젤> 초연 150주년을 기념해 만든 이 작품은 그간 축적된 기교적 화려함을 모두 계승하면서도 “춤이 영혼의 언어가 된” 1841년의 원형을 따르고자 했다. 춤이 영혼의 언어가 된다는 의미는 아마도 낭만주의 시대의 감성을 의미할 것이고, 그 감성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우선 친절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그 때문인지 파트리스 바르 버전은 다른 발레단 작품에 비해 마임이 섬세하고 강조점이 명확한 것이 특징이다.
1막의 주요 마임은 알브레히트와 그의 시종 윌프레드의 대화로 시작된다. “이렇게 입으니 평민 같아 보이니?” “백작님, 이 가장이 오래갈 것 같습니까? 건너편 집 소녀와 결혼하지 못할 것은 뻔합니다.” 지젤은 두 손가락을 펴서 들어 올리는 알브레히트에게 “너무 성급하게 사랑을 맹세하는군요.”라며 “그가 나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꽃점을 친다. 질투에 찬 힐라리온이 등장해 두 손을 모아 심장에 대며 “이 남자를 사랑하니?”라고 묻고, “칼을 찾는 태도로 보아 그는 틀림없는 귀족이다.”라는 몸짓을 보인다. “윌리가 된 소녀는 매일 밤 무덤에서 나와 춤을 추어야 한다는 무서운 전설이 있단다.”라는 어머니의 마임은 지젤이 심장이 약하다는 점과 그로 인해 사망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바틸드는 지젤에게 목걸이를 선물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있니?”라고 질문한다. 포도 여왕이 된 지젤의 베리에이션에서는 테오필 고티에가 초연을 보고 놀라 기록한 브와야지 쉬르 라 푸엥트Voyage sur la pointe, 한 발끝으로 뛰며 전진하는 동작가 재연된다. 사냥 나팔과 칼의 귀족 문장이 같은 것을 확인한 힐라리온은 “이 칼이 저자의 것이다.”라며 소리치듯 손짓한다.
“알브레히트, 왜 이런 누추한 옷을 입고 있어요?”라는 바틸드의 질문, “이 사람은 내 애인입니다.”라는 지젤의 고백, “나는 이 실레지아의 백작과 약혼한 사이란다.”라는 바틸드의 당황한 모습이 이어진다. 이제 지젤은 실성해 죽어간다. “너의 질투가 만든 결과를 봐라!” “바로 너 때문이야!”라는 연적의 싸움, 지젤을 안은 어머니가 오열하는 중에 막이 내린다.
떠다니듯 가벼운 기교로 유령들의 세계를 묘사한 2막의 마임은 단순하다. 군무 전체가 흰색 의상을 입어 ‘발레 블랑Ballet blanc’ 장면으로도 꼽힌다. 무덤을 찾아온 힐라리온이 공포에 질려 달아나는 짧은 도입부를 지나면 윌리 여왕 미르타의 차갑고 긴 솔로가 이어진다. 여왕의 신호로 시작된 군무는 유연하고 리드미컬하며, 이 춤이 끝나면 마법의 나뭇가지를 든 미르타가 “오늘은 새로운 동료를 맞이한다.”라며 지젤을 불러낸다. 지젤은 빠르게 회전하며 무덤에서 빠져나온 해방감을 표출한다. “질투로 인해 지젤을 죽게 한 그를 죽을 때까지 춤추게 하라.” “지젤의 불성실한 애인에게도 역시 죽음에 이르는 춤을 명한다.”라는 마임에서는 두 팔을 위로 올려 돌리는 ‘춤추다’와 주먹 쥔 두 손을 교차하는 ‘죽다’가 강조된다. 지젤이 두 손을 모아 애원하며 “그를 살려주세요.” 다시 미르타가 “그는 죽어야 해.”라는 일련의 장면 이후 윌리들은 한 손을 귀에 댄 ‘새벽 종소리 듣기’ 포즈를 마지막으로 흩어진다.

인물과 장면 연결하는 음악

긴 공연사를 자랑하는 <지젤>이 거의 동일한 구성을 현재까지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돌프 아당의 명확한 음악 덕분으로 보인다. 음악이 요구하는 등장인물과 장면이 있어 음악 자체가 극적이다. 힐라리온이 등장할 때마다 들리는 강한 리듬, 1막 도입부의 꽃점을 치는 멜로디를 마지막 실성 장면에서 다시 듣고 슬픔을 공감하는 연결성, 윌리들에게 배정된 신비한 왈츠, 힐라리온과 알브레히트를 잡아 올 때의 공포 분위기,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애절한 아다지오 선율이 춤으로 채워진다. 파트리스 바르 버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마도 ‘농부 2인무Peasant Pas de deux’일 것 같다. 매우 길게 연결된 기존의 2인무에 안무자는 6인, 혹은 8인 군무를 덧붙였다. <지젤>의 옥에 티 같았던 이 파드되에는 황당한 탄생 일화가 있다. 1841년 파리 초연 전에 발레리나 나탈리 피츠제임스가 안무자 장 코랄리에게 자신의 솔로를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당이 작곡할 형편이 아니어서 독일 작곡가 프리드리히 부르크뮐러의 ‘라티스본의 추억’에 안무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번 무대에서는 ‘농부 2인무’가 군무의 유도로 시작되고, 이어지는 솔로 춤의 일부도 군무가 맡는다. 마지막 역시 군무가 합세하여 화려한 볼거리로 변했다. 단체에 따라 이 춤이 포도 축제에 배정되기도 하는데, 바르 버전에서는 사냥 나온 귀족을 환대하는 장면이다.

안무가 파트리스 바르

1975년부터 <지젤>을 공연해 온 국립발레단은 여러 버전을 경험했다. 파리오페라발레단과 같은 레퍼토리를 지닌 현재까지의 경력으로 미루어 <지젤>은 가장 자신 있는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이번 해오름극장(5월 23~27일) 공연에서도 일사불란한 군무, 배역에 충실한 등장인물들을 기대한다. 지젤 역은 특별히 중요하다. 1막 전반부의 지젤은 밝고 다소곳하나 후반부에는 처연하다. 2막에서는 여왕에게 맞서 연인을 살려낼 만한 강단을 지닌 영혼이어야 한다. 이런 성격 변화 때문에 두 막을 고루 잘 해내는 발레리나를 만나면 매우 기쁘다.

글. 문애령 이화여대에서 발레를, 판테온-소르본 파리1대학에서 예술철학을 공부했다. 『객석』 예술평론상 당선 이후 무용 리뷰를 쓰고 있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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