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을
주는 곳

피크닉
마음 끌리는 대로, 걸음 이끄는 대로
고요가 그리워지는 날이면 그곳으로 간다.
울창한 빌딩 숲을 지나, 파다한 고철의 늪을 건너.
남산 기슭을 따라 걸으면 옛 흔적을 간직한 붉은 벽돌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한적히 편지를 쓰기에, 혹은 좋아하는 책을 읽기에 마땅한. 제곱미터와 가격으로 표기되는 네모반듯한 공간을 말하는 건 아니다. 하루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을 보내는, 자그마한 칸막이 안쪽 공간은 더더욱 아니다. 어느 날 훌쩍 산책 떠나듯 다녀올 수 있는 도심 속 공간, 거기에 문화와 예술이 흐르는 곳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복작복작한 인간사가 얽히고설킨 남대문시장과 힐튼호텔 사이. 국립극장이 위치한 남산과 서울로를 잇는 회현동 언덕에 자리한 피크닉piknic은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이들에게 때론 휴식처가, 때론 안식처가 돼주는 열린 공간이다. 1970년대 제약회사의 사무실과 물품 창고로 쓰이다 버려진 장소. 오래된 건물의 호젓한 분위기는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접목해 과거와 현재 사이의 틈새를 간직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전시관·카페·상점·레스토랑, 그리고 온실이 유기적으로 공존하는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전시를 관람하고, 여운을 곱씹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한다. 온실에서 키운 질 좋은 허브와 채소로 만든 음식을 먹고, 사계절 풍경이 변하는 옥상 정원에서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며 저마다 피크닉을 즐긴다. 실제로 눈길 닿는 곳마다 삼삼오오 놓인 의자와 편안히 앉아 휴식을 취하는 이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어쩌면 지친 다리를 위한 배려일까 싶지만, 가만히 앉아 눈앞의 풍경을 훑어보면 그 절묘한 배치에 감탄이 흘러나온다. 옛 건물이 주는 정취와 현대식으로 개조한 인테리어, 제멋대로 자란 식물과 누군가의 정성으로 잘 가꿔진 정원, 소박한 주민들의 삶과 방문객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섞여 눈 닿는 모든 곳이 근사한 그림이 된다. 하루가 멀다 하고 허물고 짓기를 반복하는 서울 한복판에 이토록 꾸밈없이 정직한 공간이라니. 시원한 바람이 부는 어느 날엔가는 이곳에서 온종일 편지를 써도 좋겠다.

온실에서 자란 유기농 채소는 이충후 셰프의 ‘제로 컴플렉스’에서 식재료로 사용된다.

당신의 취향을 찾아드립니다

익숙함에서 다정함을 느끼고, 새로움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 유행을 따르기보다 변치 않는 고유의 취향을 담아내는 것. ‘경험을 디자인한다’라는 피크닉의 모토는 1년에 두 번 열리는 전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뮤지션이자 설치미술가, 사회운동가로서의 류이치 사카모토를 다각도로 조명한 <류이치 사카모토: LIFE, LIFE> 전을 시작으로 회복과 자연성, 정원을 테마로 한 이색 전시, 컬러 사진의 선구자 사울 레이터Saul Leiter의 국내 첫 회고전까지. 개관 이후부터 특유의 실험적인 시도를 이어오고 있는 피크닉이 새 전시 <프랑수아 알라르 사진전: 비지트 프리베>로 봄 전시의 막을 연다.
프랑수아 알라르François Halard는 전 세계 예술가와 명사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 그리고 그 속에 녹아든 사적인 취향을 사진으로 기록해 온 작가다. 전시의 타이틀인 비지트 프리베Visite Privée는 사적인 방문 또는 은밀한 방문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작가가 9년 전에 발표한 사진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정원을 거쳐 전시관으로 입장하는 동선, 손을 대면 삐거덕 소리가 날 것만 같은 나무 문은 타인의 공간에 방문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입구에 들어서 처음으로 보이는 작품의 제목이 ‘비지트 프리베’인 데서는 작은 디테일까지 챙기는 섬세함마저 느껴진다.

타인의 집을 여행하는 듯한 관람 동선이 인상적이다.

1층부터 4층까지 아우르는 넓은 전시 공간 역시 ‘사적인 방문’이라는 콘셉트에 맞추어 개별적인 방으로 구성해 몰입도를 높였다. 이곳에서 관람객은 이브 생 로랑의 거실에서부터 디자이너 코코 샤넬의 화려한 아파트, 아티스트 루이스 부르주아의 남루한 작업실, 르네상스 거장 라파엘로의 천장화로 장식된 16세기 궁전. 그리고 작가 자신에게 휴식이자 영감의 장소인 아를의 자택에 이르기까지 200여 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때로 인테리어 사진작가로 오해받지만, 알라르가 피사체를 통해 전하고 싶은 것은 누군가 머물렀을 장소, 그곳에 남은 타인의 삶과 예술혼이 아닐까. “예술가가 죽은 후 남겨진 공간에서 그들의 흔적을 찾곤 한다. 일종의 ‘소울 헌팅’이랄까. 존경하는 사람들의 생애를 기억하고 해석하며, 그 삶을 연장하는 나 나름의 방식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숨겨진 방에서 작가의 삶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인터뷰는 피크닉에서 진행했다.
피크닉 바로가기 http://www.piknic.kr

취재. 편집부 사진. 김성재 SSSAUN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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