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

2023 공연예술 소비트렌드
토끼, 날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빠져나와 소비가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는 2023년, 계묘년 새해는 웅크렸던 토끼가
도약하듯 관계·일터·공간·나이 등 모든 것이 재설정 되는 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예측한
‘2023 트렌드 키워드’를 바탕으로 문화예술 공연 시장에서도 변화할 소비성향을 짚어본다.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양극화'

모두가 아닌 개인의 취향을 바라보다
: 평균 실종, 뉴 디멘드, 체리슈머

소비자들은 더 이상 ‘대중’적인 것에 집중하지 않는다. 현재 정치·경제·사회 갈등까지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에 대중의 취향이 아닌 양극화를 넘어선 N극화, 단극화라는 용어가 감지된다. ‘평균 실종’이라는 키워드는 중간 분포에 자리하고 있는 대중이 위축되는 현상에 주목한다. 초고가 프리미엄 공연이든, 저렴하지만 다양한 소재를 품고 있는 소규모 극장 공연이든 이제는 각각의 소비자 집단이 추구하는 다양해진 취향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김난도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교활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놓는다. 약자는 항상 포식자의 습격에 대비해야 한다.”라며 경제위기가 예측되는 2023년에는 한 가지 해답이 아닌 다양한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러한 다양화 된 전략 구상에 있어 ‘뉴디멘드’ 전략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해 볼 수 있다. 다른 곳에서는 충족할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내세워 소비를 이끌어낸다는 ‘뉴디멘드’ 전략은 국립극장과 같이 차별화된 콘텐츠를 보유한 기관에게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매우 대중적인 작품뿐만 아니라 ʻ구체적’이고, 극도로 ‘세분화’ 된 취향을 지향하는 작품까지 고객이 ‘봐야만 한다’는 열망을 갖게 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불가항력적’인 수요를 창출하는 전략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고객에 대한 이해가 전제된다. 가격 면에서도 무난한 공연보다 월등히 비싼 공연이라도 투자할 의지가 많은 고객과 소규모라도 나만의 취향을 비추는 공연을 선호하는 고객 등 각자가 가졌을 수 있는 취향을 섬세하게 정조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다양한 소비자 행태와 국립극장이 가진 콘텐츠와의 접점을 더욱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반대로 극심한 양극화의 또 다른 접점에 감지되는 키워드가 있다. 불황의 지속에 따라 소비자도 꼼꼼해지며 고물가 시대에 최대한 알뜰하고 극대화된 절약 소비를 하는 전략적 소비자를 이르는 키워드 ʻ체리슈머’다.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로 소비심리가 급속도로 냉각되며 소비자들은 소량만을 구매하거나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공동구매를 하는 등의 실속 있는 지출을 하고자 한다. 이들의 알뜰한 소비에 공공의 강점이 발휘될 지점은 없는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MZ세대의 디깅소비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다
: 네버랜드 신드롬, 디깅 모멘텀

각각의 취향만큼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사회, 그 속에서 주목하는 키워드로 ‘네버랜드 신드롬’이 있다. 이는 모든 세대가 조금이라도 더 청년의 활기를 지니려는 현상을 의미한다. 2025년이면 대한민국의 인구 20%가 65세를 넘는 초고령화 사회에서 모든 세대가 조금이라도 더 젊어지려는 욕구는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징조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각자의 나이에 맞는 어떤 세대다움이 아닌 나의 개인적이고 ‘젊은’ 취향에 맞춰 포켓몬을 즐기고, 처음 개봉한 지 30년이 지난 영화 <탑건>의 속편인 <탑건2>에 열광하는 이들이 다양한 세대에 걸쳐 분포되는 이유다. 이는 어쩌면 세대간 양극화를 우려하는 사회에서 다양한 세대 간의 소통에 공통분모가 돼주는 긍정적 영향을 기대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취향적 소비에서 개인의 몰입을 드러내는 키워드로 ‘디깅 모멘텀’이 있다. ‘디깅’ 하는, 즉 ‘단순한 취미라고 하기에 부족할 정도로’ 무엇인가에 진심인 소비자가 늘고 있다. 소비자에게 ‘디깅’이란 ‘채굴, 발굴’이라는 의미와 같이 특정 대상이나 장르를 깊이 파고 들어가 자기 존재를 반영하는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몰입의 정도가 일반인과 다른 ‘디깅러’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시간과 돈과 열정을 투자한다. 코로나 상황 속 불안과 불경기 속에서 일종의 ‘자아 찾기’이자 진짜 행복을 추구하려는 소비자의 움직임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국내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글로벌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찐팬’을 만들 수 있는 문화예술 공연 콘텐츠는 이러한 현상을 반기며 진정 커다란 차별화 전략을 시도할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각 공연 단체를 위한 ‘찐팬’ 만들기야말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공연업계가 장기간 성장하는 데 단단한 주춧돌이 될 것이다.

나홀로 관객 비율

새로운 세상, 새로운 관계를 정의하다
: 알파세대, 오피스 빅뱅, 인덱싱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변화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관계 맺는 방식들도 이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한다. 먼저 주목하는 키워드는 MZ세대 또는 밀레니얼세대 이후의 ‘알파 세대’다. 미래의 공연예술 소비자로 떠오르고 있는 이들은 2010년대 이후 출생자를 뜻한다. 태어난 후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화면을 스와이프하고, 영상통화를 일상생활로 누리며 밀레니얼 세대 부모와 함께 공연을 보러오는 소비자다. 알파 세대에게는 공연 공간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기술과 예술의 융합으로 새롭고 신선한 몰입감 있는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선제적 대응 기술’로서 변화된 소비자의 맥락에 맞춰 최적의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더 매력적이며 흡인력 있는 공간으로서 기능할 것을 요구하는 ‘공간력’과도 맞닿아 있다. 밀레니얼 이상의 시대는 한 번쯤 대학로에서 공연을 보기 전, 공연장에 앉아서 느끼는 설렘과 함께 공연이 끝났을 때의 감동, 환희와 갈채 등 현실적 공간에서 비현실적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이러한 공간이 이제는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공간, 디지털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업무 방식 또한 급변했다. MZ세대와 코로나19라는 상황이 맞물려 조직과 업무 문화의 변화를 표현한 키워드로 ‘오피스 빅뱅’이 있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를 선호하며 직장으로 출근하기 거부하는 사람들과 시키는 일만 최소한으로 하는 ‘조용한 사직’이 선진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구분하고 경계를 공고히 하는 의식 변화의 결과로 업무에서 복지나 보수보다 개인의 ‘성장’을 중시한다. 이들은 디깅을 하는 소비자들과 같이 본인이 가진 시간을 매우 소중한 자산이라고 여긴다. 이에 따라 점심시간, 퇴근 후, 주말 이외의 시간에는 업무와 관계를 단절하고 공연이라는 취미로 접속한다. 자신이 원하는 공연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시간을 투자할 의지가 있는 소비자다. 이러한 인간관계의 변화 키워드로 ‘인덱스 관계’도 있다. 본인의 취향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개인들이 색인(인덱싱)하듯 골라 맺을 수 있는 관계다. 이들은 기존의 관습적인 관계 맺기에서 벗어나 ‘가족’ ‘학교 친구’ ‘회사 동료’와 같은 분류로 사람을 사귀지 않는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 공간에 있다고 관계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취미’ 혹은 ‘취향’이 같은 사람들이 친구가 되며, 이들은 과거 끈끈했던 지연·학연을 거부하며 언제든 새로 생긴 취향 공동체로 갈아탈 수 있는 자유로움을 추구한다. 이들은 꼭 무리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공연에서 나 홀로 관객 비율의 상승률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취향이 안 맞는 친구를 굳이 데리고 가기보다 나 혼자서라도 충분히 즐기고 오겠다는 식으로 관계에서 해방되는 태도를 보여준다.

2021 공연예술조사 보고서

앞서 살펴본 이러한 ‘키워드’들은 공연 기획과 판매 방식이 취해야 할 다양한 변화의 방향을 제시한다. 평균의 실종으로 소비자의 내면을 더욱 섬세하게 관찰하며, 소비자가 ‘디깅’하며 ‘찐팬’이 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보통의 경험이 아닌 ‘탁월한’ ‘차별화된’ 경험을 가능케 해주어야 한다. 꼼꼼한 ‘체리슈머’로 바뀌고 있는 소비자로 말미암아 공연장 또한 ‘핫플’이 될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력’을 가진 곳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또한 전통과 기술 간의유려한 조화를 풀어내는 공연 기획의 챌린지가 예상된다. 피지컬한 공간과 최고의 몰입감을 선사하는 기술, 그리고 시간적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상력이 요구될 것이다. 세계 최대 마케팅 서비스그룹인 WPP의 대표(CEO) 마틴 소렐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품의 가격을 낮추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에는 한계가 없다. 상상력의 한계가 곧 부가가치의 한계인 것이다.” 공연예술계는 예술과 기술의 융합으로 우리 상상력의 한계를 넓혀주는 최전선에서 변화하는 현대인에게 새로운 취향을 제시하는 미래의 등대가 돼줄 것이다.

글. 서유현 서울대 소비자학 박사. 『트렌드 코리아 2021』 공저 및 LG전자 H&A CX Specialist 등 소비문화 전반의 동향과 트렌드 분석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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