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한 마디

주세페 베르디
예술적 여정 너머 위대한 우정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이자
19세기 이탈리아를 다독여준 주세페 베르디.
내면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그가 추구하는 예술의 쓸모이자 목표다.

2023년 탄생 210주년을 맞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제왕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 그는 자신을 후원하던, 이탈리아 정계와 문화예술계의 거물 안드레아 마페이(Andrea Maffei, 1798~1885)의 아내 클라리나 마페이(Clarina Maffei, 1814~1886)와 깊은 우정을 나눴다. 마페이 부부는 19세기 일어난 이탈리아 통일운동인 리소르지멘토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베르디도 조국 통일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 자연스레 클라리나 마페이는 친구보다 더 가까운 사이로 지냈다.

클라리나 마페이는 1834년 이탈리아 사교계에서 가장 유명한 모임인 ‘마페이 살롱’을 열었다. 이곳에는 이탈리아의 문인·예술가·학자·리소르지멘토 인사들이 모여 예술과 문학에 대해 토론하곤 했다. 당대 최고의 이탈리아 대문호로 칭송받던 알렉산드르 만초니(Alessandro Manzoni, 1785~1873)도 이 모임에 참석하는 걸 즐겼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알렉산드로 만초니의 대표작은 『약혼자The Betrothed』로, 세계 문학사에서 손꼽는 이탈리아 역사소설이다.

베르디는 영국의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파파’라고 부를 정도로 문학을 동경했다. 클라리나 마페이의 친한 친구이기도 한 작가 알렉산드로 만초니를 향한 베르디의 마음이 뜨거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현명했던 클라리나 마페이는 소중한 친구 베르디를 위해 자신의 또 다른 친구 알렉산드로 만초니를 찾아갔다. 알렉산드로 만초니는 자신보다 서른 살이나 어린 음악가 베르디의 존재를 무척 반가워했다. 그는 “이탈리아의 영광 주세페 베르디에게, 롬바르디아의 어느 늙은 작가로부터”라는 메모를 적은 자신의 사진 한 장을 베르디에게 보냈다. 이때부터 베르디와 알렉산드로 만초니는 짧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노인이 된 작가와 음악가가 된 청년은 서로 직접 만날 날을 기다렸다.

베르디는 자신을 위해 애쓰는 클라리나 마페이에게 감사 편지를 자주 썼다. 그중 1867년 5월 24일 베르디가 쓴 편지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다. 이 편지는 베르디가 예술에 대해 가진 철학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자료이자, 베르디의 우상 알렉산드로 만초니와의 만남을 주선하던 클라리나 마페이에 대한 고마움이 담긴 말이다.

1867년 5월 24일 이탈리아의 산타가타에서 지내던 베르디가 클라리나 마페이에게 보낸 편지 중

드디어 1868년 6월 베르디는 꿈에 그리던 영웅, 알렉산드로 만초니를 만났다. 이후 베르디는 혼란스러운 이탈리아를 하나로 이끈 노인을 향한 존경심이 더욱더 커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둘의 우정이 오래가지 못한 점이다. 고령의 문학가는 아흔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베르디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그를 추모했다. <만초니 레퀴엠>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렉산드로 만초니 추모 1주기이던 1874년 5월 22일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마르코 성당에서 <레퀴엠>을 초연했다. 만초니를 그리는 베르디의 마지막 노래는 심지어 큰 흥행을 거뒀다.

오페라로 글을 모르던 사람들까지 울고 웃기던 베르디, 또 베르디와 같은 마음에서 어려운 글에서 쉬운 글로 계속 작품을 썼던 알렉산드로 만초니. 두 사람이 살다 간 기록을 살펴보며 어쩌면 둘은 솔메이트로도 손색없는 우정을 나눴겠다 싶다. 예술의 쓸모와 예술에 진심으로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하던 두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 만났더라도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상상하며, 이탈리아의 역사에 두 사람이 남긴 흔적이 의미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베르디가 추구하던 예술의 목표다. 그의 탄생 210주년을 축하하며, 그의 음악에 한 번 더 귀 기울여보리라 다짐한다.

참고 문헌
전수연, 『베르디 오페라 이탈리아를 노래하다』, 책세상, 2013.
프랭크 월커, 『인간 베르디』, 미국 시카고 대학교 출판부,

글. 정은주 음악 칼럼니스트. 서양 음악가들의 음악 외(外)적 이야기를 발굴해 소개하며 산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발칙한 예술가들』(추명희, 정은주 공저), 『나를 위한 예술가의 인생 수업』을 썼다. 현재 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 월간지, 『월간 조선』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부산mbc <안희성의 가정 음악실>에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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