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선

건축가 텐들러 다니엘
인생을 바꾼 한옥
낡고 오래된 집이라 여겨질지 모르는 한옥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삶의 방향을 바꾼 사람이 있다.
한옥을 사랑하는 남자 텐들러 다니엘이다. 그가 말하는 우리 문화, 한옥은 어떤 모습일까.
다니엘이 설계한 한옥, 체부동.
2020년 서울우수한옥으로 선정됐을뿐만 아니라
2021 대한민국 한옥공모전에서 한옥준공부분 올해의 한옥상을 수상했다.

나는 1980년, 독일 카셀에서 독일인 아버지와 한국 파독 간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 덕에 한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다. 누구의 강요나 강제 없이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를 접해서인지 ‘한국’이라는 곳은 늘 나에게 흥미롭고 좋았다. 어릴 때 한국에 계시던 외할머니가 몇 년간 독일에서 함께 지내면서 더욱 자연스럽게 한국 정서와 문화를 흡수할 수 있었다. 우리 집 마당에는 늘 항아리가 있었고, 고추와 깻잎 밭이 있었으며 곰팡이가 피어오른 메주가 매달려 발효되는 과정을 보며 자랐다. 독일 친구들에게 우리 집은 그냥 “한국 집”이었다. 그럼에도 자라면서 한국말은 많이 잊어버렸다. 한국인 친구를 찾기가 어려웠고, 어머니가 독일어를 무척 잘하셔서 할머니가 한국에 돌아간 이후로는 한국말을 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애정과 흥미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한옥과 만나게 된 건 방학 동안 한국에 방문했을 때다. 그 당시 둘째 이모가 전라도 광주의 한옥에 살았다. 나는 그 한옥이 흥미로웠다. 화장실이 헛간에 있었고, 세수는 대야에 물을 담아서 해야 했고, 변기는 좌식이었지만, 밤에는 요강을 사용했다. 방에 요강이 있는 것이 재밌었다. 누군가에겐 그저 낡고 불편한 집인 그런 곳이었다. 물론 나 역시도 지금에 와서 그때처럼 살고 싶지는 않지만, 돌이켜 보면 곳곳이 추억으로 가득한 집이었다. 밤에는 사촌들과 좁은 방바닥에 요를 깔고 잤는데 우리는 밤새도록 몰래 게임을 하고 놀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잊어버린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스무 살, 대학교 입학하기 전에 연세대학교 한국어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그동안 목동에 거주하는 이모의 아파트에서 지냈다. 이때 아파트 생활의 편의성을 알게 되었지만, 한옥이 지닌 매력이나 한옥에 대한 추억이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었다.

어학당을 졸업하고 다시 독일에서 대학교에 입학했다. 괴팅엔 대학교 국제경제학과 들어갔다. 경제에 대한 관심이 많아 택했지만, 어쩐지 내 길이 아닌 것 같았다. 어느 여름방학 때 서울에 있는 경제연구소에서 인턴 실습을 하다가 마음먹었다. 내 인생을 바꾸고 싶다고. 하지만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생각하던 끝에 한옥이 떠올랐다. 나는 늘 본능적으로 한옥을 좋아했다. 그리고 사라져 가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 그래서 한옥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 당시 한국에서는 한옥에 대한 연구 자료가 많지 않았고, 공부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이때 한옥문화원 장명희 부원장님(현 원장님)의 조언에 따라 독일로 돌아와 건축학과에 다시 입학했다.
지금은 한국인 동기와 함께 설계 아틀리에를 운영하면서 한옥을 설계한다. 처음 독립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처음으로 내게 한옥 신축을 의뢰한 젊은 부부가 종종 떠오른다. 아들 둘을 키우는 부부였는데, 이들은 어느 순간 ‘한국인이 왜 한옥을 지을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이를 시작으로 한옥의 매력에 심취하게 되었고 결국 그들만의 한옥을 짓게 된 것이다. 젊은 부부의 생각은 나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현재는 1970년대의 단독주택 대수선 공사를 하고 있다. 비록 한옥은 아니지만 한옥에서 배운 것과 한옥의 개념을 가지고 설계하니 의도하지 않아도 한옥이 지닌 특징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예를 들면 실내화가 된 중정 마당, 안방의 한지 도배 같은 것들이다. 이렇듯 해를 거듭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은 덕에 이제는 한옥 건축가라는 나만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 한옥에 빠져 삶이 달라졌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한옥을 지으면서 ‘한국인’ 그리고 ‘우리’라는 표현에 대해 배우고 있다. 앞으로도 이 일을 하며 한국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다.

가끔 나는 왜 한국의 전통문화, 한옥에 매혹당했는지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어머니의 사랑 때문일까. 할머니의 따뜻함 때문일까. 이 두 가지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분명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먼저 한옥에는 몇백 년간 조상들이 살아온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니 몇천 년간 이어져 온 조상의 미학과 지식이 담겨 있다. 둘째, 한옥은 시간과 삶과 문화가 켜켜이 쌓여 거주하는 이에게 맞춰지는, 살아 있는 공간이다. 가끔 우리가 설계한 한옥을 보고 몇 평이냐고 물어보는 이들이 있다. 답을 해주면 대부분 더 클 줄 알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아마도 한옥에 깃든 풍성한 삶의 흔적이 한옥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끝으로 내가 생각하는 한옥의 가장 특별한 매력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지속 가능한 공간이라는 점이다. 한국 사람 대부분 나를 외국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한옥을 통해 나의 문화적 뿌리와 미래를 이끄는 원동력이 이곳에 있음을 발견한다. 과거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위대한 힘, 이것이 내가 계속해서 한옥을 짓는 이유다.

서울시에서는 한옥건축 활성화를 위해 2016년부터 서울우수한옥 인증제를 시행하고 있다.
2021년 서울우수한옥으로 선정된 서희재는, 은평구 진관동에 위치한 한옥으로 다니엘이 설계했다.
글. 텐들러 다니엘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한국인으로 자랐다. 지금은 건축 아틀리에 어반디테일을 운영하며 한옥을 짓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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