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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름극장 재개관 기념 특별기획 전시 리뷰
위대한 유산, 미래를 향해 나아가다
세계적인 도시에는 저마다 그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있듯이 국립극장 안에도 역사와 시대를 상징하는 곳이 있다. 바로 해오름극장이다. 지난 9월에 재개관한 해오름극장은 그 자체로 국립극장이 걸어온 길인 동시에 국립극장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해오름극장 재개관을 기념하는 특별전시회 ‘극장의 여정: 해오름극장이 걸어온 길’은 국립극장을 아껴온 이에게는 기대와 향수를, 국립극장을 새롭게 대면한 이에게는 한국 공연 역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제공한다
국립극장의 성장과 함께한 해오름극장

시간은 숫자 사이 바늘의 움직임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돋아나는 푸른 잎, 무더위 속에서 익어가는 열매, 청명한 하늘과 살랑대는 바람, 손발이 시리도록 얼어붙은 영하의 기온 등 시간은 여러 형태로 모습을 바꾼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제공되지만 누구에게나 동일한 경험을 선사하진 않는다. 때로는 서서히 때로는 숨이 벅차도록 따라가야 할 만큼 시간은 저마다의 속도로 하루를 완성한다. 그렇게 무수히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켜켜이 쌓인 하루는 누군가의 인생이 되기도 하고, 무언가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다른 모습으로, 저마다의 속도로 새겨진 역사는 속절없이 마냥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숱한 장면과 소리로 보존되고 있다. 그리움과 추억이 공존하는 풍경화처럼 가슴에 남는다.

돌이켜 보니 국립극장의 역사가 그렇다. 1950년 설립된 국립극장은 대구와 명동을 전전하며 예술가들을 지원했다. 지금의 남산 기슭에 자리를 잡은 건 1973년 10월이다. 안정적인 공연 장소를 원했던 예술가들과 문화 부흥을 추진하던 정책이 맞물리며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열었지만, 예술을 향한 갈증보다 눈앞의 배고픔이 앞섰던 시기가 아니었던가. 온갖 부침을 거듭해야 했고, 그런데도 국립극장은 꾸준히 성장해 왔다. 그리고 지난 9월 1일, 국립극장은 또 한 걸음의 도약을 준비하며, 재개관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날은 3년 7개월간의 리모델링을 마무리하며 프로시니엄 무대를 갖춘 1,221석 규모의 대극장으로 거듭난 해오름극장의 변화를 공식적으로 선포한 날이기도 했다. 이를 기념하는 특별 전시 ‘극장의 여정: 해오름극장이 걸어온 길’ 역시 관람객을 맞을 채비를 마쳤다. 국립극장이 그간 치열하게 더하고 빼며 남긴 기록, 그 ‘역사의 현장’에 다녀왔다.

ㅈㅓㄴㅅㅣㅅㅣㄹ ㅇㅣㅂㄱㅜ 전시실 입구
그때 그 시절을 돌아보고 지금 여기를 경험하는 전시

전시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 해오름극장의 발자취에 집중한 이번 특별전은 크게 사진전과 주제 전시로 구성됐다. 먼저 올해 말까지 국립극장 문화광장과 해오름극장 내부에서는 시간을 초월한 해오름극장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전이 진행된다. 과거의 극장 사진과 거울을 나란히 배치한 특수 액자와 앞면에는 과거 극장 사진이 인화되고, 뒷면에는 간략한 설명이 기재된 회전형 액자가 ‘그때 그 시절’의 시간과 ‘지금 여기에서’의 공간을 경험하게 한다.

거울액자 및 회전형 액자 거울액자 및 회전형 액자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22년 5월 말까지 진행되는 주제 전시에서는 해오름극장의 면면을 더욱더 깊숙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사회적·시대적 요구에 호응하며 한국 공연예술사와 궤를 함께해 온 극장의 흔적들을 사진, 영상, 미니어처 등으로 재현한 것이 특징이다. 입구는 마치 국립극장의 로비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도록 디자인됐다. 그 끝에는 리모델링을 끝낸 해오름극장을 1:150의 비율로 축소해 제작한 모형이 자리하고 있다. 이가종합건축사사무소가 제작한 이 디오라마는 단면을 통해 건물 외관부터 무대 뒤편까지 그대로 표현했다. 덕분에 새로 단장한 해오름극장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해오름극장 디오라마 해오름극장 디오라마

이번 전시는 국립극장에 오른 공연이 아닌 국립극장 본연의 모습, 즉 공간에 집중했다. 기존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새로운 자료를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국립극장, 명동에 막을 열다’ 섹션에서 재생되는 ‘명동 국립극장의 모습들’(1962) 영상이 대표적이다. 전시를 위해 특별히 편집된 이 영상에는 명동 국립극장에서 첫선을 보인 대종상 시상식과 연극 ‘순교자’의 연습 장면이 포함돼 있다. 비록 흑백의 영상이지만 배우들의 모습 뒤편으로 당시 극장 안의 시설까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명동 국립극장의 모습들(1962) 명동 국립극장의 모습들(1962)

또 이 섹션에는 명동 국립극장 안팎의 건축 분위기를 전달하는 흑백사진과 다양한 공연의 컬러 포스터가 양쪽으로 배치돼 있다.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신인 종합예술제’ 포스터였다. 1962년 신인 예술가를 발굴하기 위해 제정된 신인 종합예술상은 무용, 연예, 국악, 연극 등 총 9개 분야에서 수상자를 뽑았다. 이 포스터는 신인 종합예술상 수상자들이 국립극장에서 선보인 공연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출력’ 버튼 하나로 완성되는 지금의 포스터와 달리 좌우 정렬을 신경 쓰며 수작업으로 완성했을 원본의 포스터가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국립극장 실물 포스터 국립극장 실물 포스터

같은 해 관객들을 만난 ‘산불’의 역동적인 포스터도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한국 사실주의 희곡을 대표하는 것으로,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외에도 광복절을 기념해 KBS교향악단이 개최한 연주회,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 국립국극단(현 국립창극단)의 첫 번째 공연인 ‘춘향전’, 명동 국립극장에서 마지막으로 연 국립발레단의 공연인 ‘국립발레단 제13회 공연’ 포스터 등을 통해 그 시절의 ‘힙한’ 공연들을 만끽할 수 있다.

레트로 감성 가득한 볼거리, 즐길 거리

국립극장이 명동에서 남산으로 이전하는 과도기 역시 특별한 공간으로 표현됐다. 미니멀하게 재현한 극장 공간의 왼쪽에는 기공식 뉴스를, 오른쪽에는 남산 무대에 첫 번째로 오른 공연인 ‘성웅 이순신’ 장면이 그림자로 연출됐다.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이 작품은 대서사 역사극이다. 남산 국립극장 초기에는 이처럼 대규모 무대를 활용한 작품이 다수 제작됐다고 한다. 관람객의 움직임을 감지한 센서에 따라 변화하는 설치 작품 또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국립극단 ‘성웅 이순신’ 그림자 연출 국립극단 ‘성웅 이순신’ 그림자 연출

남산 국립극장 시대를 본격적으로 담아낸 전시 후반부는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골라 갖는 공연 티켓도 그중 하나다. ‘더 크게, 더 높게, 남산 위로’ 섹션에서는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5건의 복제 공연 티켓을 가져갈 수 있다. 과거에는 인쇄된 표에 좌석 등 관람 정보를 직접 적어 사용했다. 아쉽게도 전시장에 소개된 발권기는 2015년 이후 실제 사용하고 있는 자동화 기계다. 참고로 가장 인기가 많은 티켓은 ‘아이다’라고.

발권기 옆으로는 개관 당시의 뉴스들이 정리된 스크랩북이 배치돼 있다. 흔치 않은 ‘컬러’ 영상의 뉴스들을 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반대편 벽에는 실제 국립극장 스태프들이 입었던 의상들이 전시됐다. 이 검은색 의상들은 해오름극장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사람들을 상징하는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스태프들의 노동을 대변한다. 발길을 조금 더 옮기면 시간을 관통하는 통로와 마주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비대면 동작 인식이 가능한 인터랙티브 기술이 탑재된 장치를 통해 해오름극장의 여러 장소 중 하나를 선택한 다음 각기 다른 2가지 연도를 비교 감상할 수 있다.

신문 스크랩북 설치벽, 동작 인식 인터랙티브(왼쪽 사진부터) 신문 스크랩북 설치벽, 동작 인식 인터랙티브(왼쪽 사진부터)
최초로 일반 공개되는 회전무대 설계 자료

이어지는 ‘권위에서 포용으로’ 섹션에서는 다양한 문화 행사, 국내외 교류 공연으로 대중에게 친숙해진 공간으로 변모한 국립극장의 모습을 다뤘다. 대형화, 전문화에 따른 공간 확장과 색채의 선명함으로 다양성과 개방성을 강조했다. 특히 이곳에서는 1970년대 해오름극장의 회전무대 설계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로 일반에 공개된 것이다. 일본의 도호무대주식회사가 작성한 이 자료 곳곳에는 시설 담당자가 한국어로 번역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해오름극장 회전무대 설계 자료 해오름극장 회전무대 설계 자료

또한 이 섹션에는 2006년 전주세계소리축제 폐막작으로 초연돼 큰 호평을 받은 창극 ‘청’이 해오름극장 무대에서 어떻게 탈바꿈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도 ‘토끼’(2011), ‘메디아’(2013), ‘프란체스카’(2013), ‘국화’(2013), ‘공명’(2015) 등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 다수의 작품에 실제 사용된 의상들을 감상할 수 있다.

국립무용단 ‘묵향’ 의상, 국립창극단 ‘수궁가’ ‘메디아’, 국립극장 ‘단테의 신곡’ 의상(왼쪽 사진부터) 국립무용단 ‘묵향’ 의상, 국립창극단 ‘수궁가’ ‘메디아’, 국립극장 ‘단테의 신곡’ 의상(왼쪽 사진부터)

인간이 과거를 돌아보는 이유는 그 시절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하기 위함이다. ‘극장의 미래’ 섹션도 이와 같은 포부를 담았다. 이를 위해 연차별 국립극장의 발전 방안을 담은 도서를 진열해 시각적인 효과를 주었다. 이 도서들은 자료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관객과 동행하는 국립극장의 앞날을 염원하고 관객들이 직접 국립극장에 기대하는 바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한 오색실 체험은 전시의 마무리를 담당한다. 이외에도 해오름극장과 극장 로고, 극장 캐릭터인 엔통이 모양의 블록 키트를 조립해 볼 수 있는 전시 연계 프로그램이 계획돼 있다.

관객참여프로그램-오색실 체험 관객참여프로그램-오색실 체험

‘극장의 여정: 해오름극장이 걸어온 길’ 전시는 내년 5월 31일까지 진행되며, 관람료는 무료다. 단, 코로나19 확산으로 관람 인원이 시간대별 10명으로 제한되는 만큼 공연예술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예약해야 한다.

글. 김지윤 네이버공연전시판을 운영하는 경향신문과 네이버의 합작회사 ㈜아티션에서 공연전시 담당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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