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하나

국립무용단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 윤재원 연출, 장영규 음악감독 인터뷰
샤먼의 일상적 삶을 그리다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 무대 위 무용수는 모두 샤먼이다. 그들이 자신의 운명을 깨닫고 카르마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성장의 순간들이 무용수의 몸을 투과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국립무용단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는 일상적 장면에서 직업인으로서 샤먼들이 나누는 춤의 대화를 통해 서로 안부를 묻는다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라는, 우리가 일상에서 나누는 인사를 그대로 제목으로 가져왔습니다.

윤재원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는 샤먼인 무용수 각자가 자신의 신체에게 건네는 말이자, 서로에게 하는 인사입니다. 영문 제목은 ‘See You, I’m Home’이라고 했어요. 혈연으로 이뤄진 가정이라는 의미의 ‘home’이 아니라 일을 마친 후 돌아가서 쉴 수 있는 편안한 장소이자 트랜스 상태로 굿을 하고 난 다음 원래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찾는 몸의 장소라는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공연, 영화, 여타 미디어에서 샤먼, 무당의 삶을 그릴 때 연희적인 특징에 집중하거나 신비로운 존재로 뭉뚱그리잖아요. 그것이 무당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임은 분명하고, 분명 미스터리한 부분이 있지만 철저히 외부인의 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에서는 굿이라는 익숙한 시각적 장치를 배제하고, 샤먼의 직업적 측면, 현실적인 노동의 장면들을 담아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무당들끼리 치르는 중요한 의식으로 한 사람의 직업인이 탄생하는 자리이기도 해서 외부에는 잘 공개하지 않는 내림굿을 주요 소재로 선택했어요.

직업인으로서 샤먼의 일상을 무용으로 풀어낸다는 게 꽤나 이색적으로 다가옵니다. 무용으로는 그것이 어떻게 풀릴까요?

윤재원 무대 위에 40명이 넘는 국립무용단 단원들이 모두 등장하는데 입무자, 조무자, 주무자, 3그룹으로 나뉘어요. 입무자는 어느 날 무당이 돼야 하는 상황에 부닥칩니다. 손과 발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듯한, 질척한 땅에서 걷고 있는 듯한 모습이죠. 조무자는 무당이 됐지만 아직까지 만신이 되지는 못한 그룹으로 입무자를 이끌어주는 길잡이 같은 존재입니다. 굿을 준비하고 입무자가 안전하게 내림굿을 받을 수 있게 보살피고 마지막에는 정리하는 사람. 회사에서도 중간관리자, 시니어가 제일 일을 많이 하잖아요. 그처럼 가장 일상적인 노동을 안무로 표현할 것이고, 그 때문에 주머니가 여럿 달린 워크웨어 스타일의 의상을 입습니다. 주무자는 무당으로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자유로워진 만신이에요. 우리가 직업의 상황에서도 저마다 다른 방식과 몸짓으로 일을 해나가잖아요. 마찬가지로 다양한 연령대, 저마다 다른 경력을 지닌 무용수들이 어쩌면 단순해 보일 수도 있는 동작들을 무대에서 펼쳐내는데 그들의 컨디션이나 서로의 관계, 각자의 스타일 등이 동작에 투영되어 매우 자연스러운 매력으로 표현될 것 같아요.

윤재원 연출, 장영규 음악감독(사진 왼쪽부터) 윤재원 연출, 장영규 음악감독(사진 왼쪽부터)

이번 작품에서 음악을 맡은 장영규 감독님께선 음악그룹 씽씽, 이날치 등에서 불교음악, 궁중음악, 판소리 등을 다루셨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이실 예정인가요? 아무래도 영화음악을 맡으셨던 ‘곡성’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영규 이번에는 무섭게 안 할 거예요.(웃음) 사실 지금 단계에서는 음악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가 어려워요. 영화건 무대건 음악은 극이 거의 다 만들어진 다음에 잡아놓은 방향을 음악이 잘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예전에 무용가 안은미 씨와 한창 작업할 때도 일단은 무용수들이 아무 음악이나 틀어놓고 한두 시간짜리 무용을 만들어 개막 보름 전쯤 저에게 던져줍니다. 트로트부터 팝, 국악까지 모든 장르가 망라돼 있는 음악에 맞춘 안무죠. 그럼 저는 완성된 안무를 보면서 음악을 만들어 다시 무용가들에게 보냅니다. 그렇게 어쩌면 정반대의 과정으로 작업하면서 그동안 연습했던 것들과 충돌이 생기고 새로운 에너지가 발생하고 종국에는 원래 하려던 것으로 수렴됩니다. 정반합처럼요. 이번에는 그처럼 극단적이지는 않고 부분부분 만들어가고 있는데 일단은 단순한 비트를 무용수분들께 드리면서 ‘음악적인 요소에 너무 영향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안무가 나오면 주제에 맞는 요소들을 채우면서 음악을 완성할 예정입니다.

장영규 음악감독 장영규 음악감독

저는 음악에 맞춰 안무를 짜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연습해서 무대에 올리는 방식을 생각했는데 굉장히 해체주의적 과정으로 음악 작업이 이뤄지네요.(웃음)

장영규 아마 말씀하신 방식의 작업이 더 많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서로 ‘반응’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저만의 방식으로 음악 작업을 해온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배운 게 없어서 ‘다 버리고 기초부터 해보자’라는 식으로 작업한 일이 많아 그런 것도 같습니다. 전통음악 작업을 할 때도 맨땅에 헤딩하듯이 하나씩 하나씩 쌓아나가면서 만들어왔고…. 그게 몸에 밴 것 같아요.

두 분 다 여러 면에서 비슷한 좌표에 위치해 있습니다. 우선 각 프로젝트마다 원래의 포지션에서 여러 방향으로 확장한, 기존에 없던 역할을 자주 맡는 듯 보입니다. 윤재원 감독님은 이번 작품에서는 연출과 미술감독을 함께 맡았고, 전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비주얼 콘셉트 컨설팅을 맡았습니다.

윤재원 처음에는 회화로 시작했고 영상 작업에 관심이 많아 자연히 글을 쓰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이미지와 텍스트가 연결되고 충돌되는 지점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게 되는 것도 같습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는 원작(정세랑 작가의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이 있는 작품을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미술, CG와 함께 어떻게 비주얼화하는 게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타당하고 매력적인 접점으로 만날지 고민하고 풀어내는 역할을 맡았어요. 이를테면 ‘보건교사 안은영’의 제작 초반 단계에 투입돼 영상 매체, 코믹스 등에 젤리가 나온 사례를 리서치해 이미지 북으로 집대성하기도 하고, 직접 그림으로 시안을 그려서 제안하기도 하면서 작업했어요. 공연에서 미술을 담당한 적도 있고 텍스트를 담당한 적도 있는데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처럼 대형 극장, 프로시니엄 무대의 무용 공연 연출과 미술을 담당하는 건 처음입니다.

윤재원 연출 윤재원 연출

장영규 음악감독님께서는 오는 10월 중순부터 북서울미술관의 연례 기획전 ‘타이틀 매치’에 임민욱 미술작가와 함께 전시를 엽니다. 그간 해온 밴드 프로듀싱이나 영화음악 작업과는 또 다른 작업입니다.

장영규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하나둘 맡게 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완성하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괴로워하며 일하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웃음)

또한 두 분은 국악, 전통예술을 직접 하진 않으셨지만 그런 분들과 협업해 대중이 즐길 만한 전혀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냅니다.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이날치도 그렇고 유교 음악에 레이브와 트랜스의 어법을 결합한 일렉트로닉 듀오 HAEPAARY(해파리)의 뮤직비디오를 비롯한 비주얼이 매우 ‘힙’하다고 느껴집니다.

윤재원 국악, 전통예술로 한정 짓고 작업자를 만난다기보다 작품을 풀려고 하는 관점이 포개질 때 작업을 하게 된 것에 가깝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동아시아에 살다 보면 ‘과연 전통이란 무엇이고 얼마나 독립적인가’ ‘이 작업을 오늘날 의미를 갖도록 하려면 어떻게 작업해야 할까’ 고민하게 되는데 해파리는 그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함께 나누고 있는 아티스트들이어서 믿고 맡겨주신 것 같아요. 저의 일은 그런 이해와 신뢰 속에 어떻게 비주얼화할 것인지 구체적인 안을 마련하고 그것을 구현해 줄 수 있는 작업자들을 위한 장을 펼쳐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에서도 오유경(의상), 여신동(조명), 김을지로(3D영상), 임효진(사진) 작가님들을 떠올리고 이분들의 작업물을 잘 화합시키는 게 저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 연출 사진ⓒHasisi Park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 연출 사진ⓒHasisi Park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를 통해 관객에게 꼭 전달하고 싶은 즐거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윤재원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영상화 작업이 많은데 무대 공연만이 줄 수 있는 생생함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안무, 무대, 의상, 음악 모두 그런 매체적 특성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글. 안동선 15년간 패션 매거진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현재는 다채로운 예술 현장에서 온몸으로 감각한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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