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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의 변천: 미학적 관점을 중심으로 ②
대극장(해오름극장)의 비례 체계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나타나는 전체 비례 관계는 매우 오랫동안 고심한 후 나타난 결과물이다. 이희태는 그때까지 종교 건물들을 설계하며 하나의 공통된 비례 개념을 구사했다. 건물의 전체 비례가 보통 정사각형 두 개, 즉 1:2로 구성되도록 했다. 이것은 혜화동 성당, 서강대학교 예수회관, 그리고 절두산 순교성지의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립극장에서도 이와 유사한 비례가 나타나지만 그 관계는 명료하지 않다. 그 대신 정사각형의 구성이 평면에 적용된다. 국립극장에서 대극장과 소극장의 평면은 거의 정사각형을 유지하는데, 그렇다면 왜 이희태는 정사각형의 구성을 종교시설과 사무실 시설에서는 입면에 적용하고 문화시설에서는 평면에 적용한 것일까? 이것은 이희태 건축을 관통하는 주요 원칙이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건물의 형태와 기능이 고려됐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즉 당시 문화시설들은 기념성이 강조되어야 했고 이를 위해 건축가는 외부의 네 면을 열주로 처리하려 했기 때문에 건물의 네 면이 동일한 위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경우 정사각형 평면은 건축가의 의도를 충족시키는 데 매우 적절한 방식이라고 본다. 실제로 이희태가 설계한 문화시설은 공주박물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네 면이 열주들로 구성된 동일한 파사드를 가졌다. 이처럼 정사각형 평면이 중시된 까닭에 국립극장 대극장의 경우 전면 파사드의 비례 관계는 종교시설처럼 명료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2층 바닥에서 지붕 아래까지의 높이가 거의 20m(정확하게는 19.3m)에 이른다. 전면의 폭은 13개의 베이로 구성되어 있고, 한 베이가 5m 간격이기 때문에 전체 건물 폭이 65m에 이른다. 이 경우 이희태가 선호하는 1:2의 비율이 되기 위해서는 대략 한 베이를 초과하게 된다. 이처럼 비례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건물의 기념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면 기둥의 숫자를 짝수로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국립극장은 전면의 열주가 모두 14개이다. 애버리 피셔 홀의 경우 그 숫자는 모두 10개이다. 이렇게 기둥 수가 짝수인 것은 기념성을 가진 모든 건물의 일반적인 원칙이었다. 일반적으로 대칭축을 사용할 경우 견고한 요소로 중심을 채우는 것을 피해야 한다. 미노스 문명을 제외하면 고대의 신전과 궁전의 전면은 늘 짝수의 기둥으로 되어 있다. 그렇게 해야만 그 중앙에 하나의 문이 설치될 수 있다. 국립극장에서도 기념성을 확보하기 위해 비례상의 불일치를 감수하면서까지 이 같은 원칙을 충실히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국립극장 대극장의 입면 비례 체계 국립극장 대극장의 입면 비례 체계

대극장에서 열주 뒤에 있는 벽체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로비 부분은 알루미늄 커튼월로 구성되어 있다. 그 처리 방식은 당시 유행했던 것으로, 이희태는 그것을 무역센터를 설계하며 이미 사용한 바 있었다. 건물의 전면을 이처럼 투명하게 처리하려 한 것은 링컨센터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거기서도 유리로 된 시원한 전면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발코니에 난 회랑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로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부 모습이 보이고 거기서 무언가 색다른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에 비해 극장 부분의 벽체는 모두 벽돌로 마감되었다. 벽돌을 세워서 쌓은 것이 특이한데, 대극장과 소극장은 벽돌벽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기둥과 발코니 난간의 마감은 노출 콘크리트를 일일이 정으로 쪼아서 만들었다. 당시 이희태는 외부를 석재로 구성하고 싶었으나 예산상의 제약으로 이런 방법을 사용했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대극장의 벽체에는 알루미늄 커튼월, 벽돌, 노출 콘크리트의 세 가지 재료가 단순하면서도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2017년 이후 시작되어 현재 완공된 리모델링은 입면에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로는 건물 전면의 계단이 철거되어 객석으로 진입하는 동선이 1층 로비가 아닌 지상층을 통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이희태가 처음에 구상했던 기념성과 비례 구성이 약화됐다. 시각적으로 볼 때, 전면의 진입 계단은 기단과 그 위의 상층부를 명확하게 분리하는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그런 의도가 사라졌다. 대신 이 같은 변화로 전면 계단에 가려졌던 지상층의 공간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보상을 받게 된다. 전면 계단과 함께 대극장의 벽체도 한결 투명하고 경쾌한 커튼월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건물은 한층 현대적인 인상을 주지만 외부 열주와 커튼월 사이의 관계가 다소 어색한 것도 사실이다.

리모델링 후의 해오름극장 리모델링 후의 해오름극장
국립극장의 내부 공간

이희태가 국립극장을 설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바로 이 건물이 연극 외에도 오페라, 발레, 교향악 연주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다목적 홀을 설계하도록 요청받은 데 있다. 외국의 극장들은 대부분 단일 목적의 용도를 갖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당시로서는 경제 여건상 이런 요청이 불가피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대 설계에 여러 기능을 고려해 그 기능들이 동시에 수용되도록 했다. 이를 위해 400평 크기의 무대는 직경 20m의 회전무대를 비롯해 2대의 이동무대, 승강무대,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 피트, 사이클로 라마 등이 설치됐고, 다목적 공연에 대비한 11.5m×24m의 프로시니엄 아치를 두게 됐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기능을 동시에 수용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극장 기능이 떨어지게 되어 건립 초기에는 그 기능과 역할이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렇지만 이 건물에 이어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이 연이어 지어지면서 서양 음악, 합창, 발레, 오페라 등의 기능은 모두 이들 건물로 이전되고, 현재는 국악을 중심으로 주로 담당하면서 이런 점들은 시정되고 있다.

국립극장 대극장의 평면 비례 체계 국립극장 대극장의 평면 비례 체계

관람객들이 객석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매우 의례적 과정을 거친다. 열주들을 바라보면서 전면 계단을 올라서면 넓은 외부 테라스가 등장하고, 이곳을 통해 대극장 내부로 들어서면 커다란 로비 공간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로비 공간의 전면 양측에는 상부로 올라가는 두 개의 대형 계단이 곡선 형태로 나 있으며, 그 위로 공간이 천장까지 그대로 뚫려 있다. 그 공간은 스케일이 대단히 커서 매우 장중한 느낌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짜임새가 없어서 산만해 보이기도 한다. 거기서 나타나는 계단은 서구의 고전건축에서 보이는 중심 계단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예산 관계로 사용된 재료의 질이 떨어졌고, 또한 시공 마무리가 꼼꼼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허술한 느낌을 준다는 데 있다. 이런 로비 공간을 거쳐 대극장의 관람석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지만 2017년 이후 실시된 리모델링 과정을 거치면서 이희태가 처음 구상했던 대극장의 내부 공간은 많이 바뀌었다. 우선 전면 계단의 철거로 관객들은 이제 지상층으로 진입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그동안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던 지상층에 매표소를 비롯해서 다양한 부대시설이 설치되었다. 이 같은 시설 배치는 1층에 있는 로비 공간을 한결 넓고 쾌적하게 만들었다. 또한 최적화된 공연 관람을 위해 객석 수를 1,500석에서 1,200석으로 축소했다. 이 과정에서 객석의 단차를 크게 하여 편안한 관람 가시선을 확보했고, 프로시니엄의 폭도 22m에서 17m로 조정되었다. 마지막으로 공연을 지원하는 다양한 시설을 현대화해 공연 준비가 더욱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

소극장(달오름극장) 건물의 조형성

소극장은 대극장 우측을 돌아서면 나타난다. 이 두 건물은 가운데 높이 솟은 무대 부분을 공유하면서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다. 현재 이 두 건물 사이에 야외무대가 설치되어 있지만 이희태가 설계할 당시에는 야외무대를 고려하지 않았다. 소극장은 이희태가 그때까지 설계했던 건물과 유사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어서 대극장에 비해 비례와 형태 구성이 훨씬 뛰어나다. 대극장과 같이 지나친 스케일의 과장도 없고, 또 원형 기둥에도 이상한 장식물들이 덧붙어 있지 않다. 전체적으로 건물 스케일이 달랐기 때문에 건축 조형을 다루는 방식이 대극장과는 달랐다. 먼저 기둥의 배열 방식이 달랐다. 원형의 기둥이 5m 간격으로 늘어서 있는 대극장과는 달리 여기서는 기둥이 쌍주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대극장의 기둥들이 주는 딱딱함과 엄숙함 대신에 훨씬 자유롭고 풍부한 느낌을 준다. 또한 그들은 간격이 5m-2m-5m-2m로 번갈아 가며 세워지면서 건물에 일정한 리듬을 부여한다. 이런 리듬은 모서리 부분에서 다소 달라지는데, 거기에는 쌍주 형식이 아닌 기둥 한 개가 서 있다. 마찬가지의 기둥 형식을 도입한 절두산 순교성지에서는 모서리 부분을 아예 비워둔 것에 비해 여기서는 건물이 좀 더 견고한 윤곽선을 갖게 된다.

국립극장 소극장의 열주 체계ⓒ정인하 국립극장 소극장의 열주 체계ⓒ정인하

이희태는 대극장과 소극장을 조형적으로 연관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먼저 이 두 건물이 만나는 부분에 재료를 동일하게 처리하고 난간이 있는 로지아를 동일하게 돌렸다. 또한 건물 외부를 둘러싼 열주들도 이런 난간을 따라 계속해서 이어졌다. 건물의 높이와 폭의 비례를 거의 유사하게 유지하려 했다. 대극장의 경우 계단 위로부터 20m:65m의 비례로 되어 있다면, 소극장의 경우 10m:33m의 비례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높이와 폭이 정확하게 절반의 크기로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관계들을 통해 대극장과 소극장은 일관된 비례 체계를 가지면서 전체적으로 일관성을 부여받게 된다.

글. 정인하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출처.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학술대회 자료집

*해당 원고는 2021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재개관 기념 학술대회 ‘국립극장 그 여정과 미래’자료집에 실린 글을 재게재한 것으로, 필자의 의도는 ‘월간 국립극장’의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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