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기행

김소영의 ‘수궁가’
시작도 마지막까지도 운명인 소리
완창판소리 무대에 서는 김소영 명창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 무대에 서는 명창(名唱)을 만나는 코너다. 완창(完唱), 판소리 한 바탕을 완주하는 것으로 짧게는 세 시간, 길게는 여덟 시간이 걸린다. 고수의 북 장단에 맞춰 오롯이 소리꾼의 기량으로 무대를 채우고 관객과 소통하는 완창 공연은 수십 년 수련한 소리꾼에게도, 그 객석을 채우는 관객에게도 도전이 아닐 수 없다. 1984년부터 매달 이 특별한 무대를 이어온 국립극장은 11월 김소영 명창과 함께 관객들을 용궁으로 초대한다

소리는 내 팔자인가 봐
김소영 명창

고혹적인 연꽃은 졌지만 초록 연잎이 은은하게 출렁이는 전주 덕진공원에서 김소영 명창을 만났다.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소리를 시작하며 전주에 터를 잡은 지 50여 년이 지났으니 ‘소리 고향’은 전주인 셈이다. 그 고향에서 소리꾼으로 활약한 가족들도 쟁쟁하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이 지역 판소리의 맥을 이어온 홍정택·김유앵 명창 부부가 각각 고모와 고모부요, 동초제의 대모 오정숙 명창(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은 아버지의 막내 이모다. 그녀는 자식이 없는 오 명창의 수양딸로 함께 살기도 했으니, 자연스레 소리에 녹아들 수밖에 없었다.

“집안 어른들이 국악을 하셨으니까 배 속에서부터 듣고 자란 거지. 오 선생님 소리할 때면 무대 뒤에서 가방 안고 그 공연을 본 기억이 나거든. 그래서인지 그냥 소리가 좋았어. 청학루에서 소리하는 애들이 천사처럼 보이고. 그런데 집에서는 반대했어. 그때는 국악이 천대받고 전망도 없었거든. 안 가르쳐주니까 혼자 몰래 따라 하고, 아버지한테 들켜서 혼나고. 그래도 나는 소리만 하면 행복한 거야. 팔자였나 봐(웃음).”

운명처럼 소리에 빠져들었지만 그 길을 걷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어릴 때는 국악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던 시절이라 집안의 반대가 심했고, 결혼해서는 여성의 사회생활을 달갑지 않게 여기던 시대라 남편까지 극구 말렸다. 그뿐인가, 집안에 내로라할 소리꾼이 넘쳐났지만 소리는 알려줘도 길을 터주지는 않았다.

“남들은 부러워하는데, 사실 나한테는 아무도 없었어. 전혀 도와주지 않았거든. 오 선생님도 소리만 가르쳐주셨을 뿐 길을 알려주거나 누구한테 부탁 한 마디 안 하셨어. ‘소리만 잘하면 다 얻을 수 있다, 네 실력으로 해라!’ 하셨지. 결혼했더니 남편은 ‘여자는 집에서 살림해야 한다’는 거야. 그 사람이 봤을 때는 내가 돌아다니면서 노래하는 거니까 반대가 아주 심했지. 그런데 아이 낳으면서 몇 년 소리를 안 했더니 아프더라고. 소리 못 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다 잃은 것 같고. 그래서 그렇게 반대하는데 죽기 살기로 했어. 소리하느라 집 나가서 한 달 만에 돌아온 적도 있어. 나도 고집이 보통은 아닌 거지. 그렇게 소리한 거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어. 나는 지금도 소리가 좋아. 이제는 나이 들어서 누가 나한테 뭐라고도 안 해(웃음).”

‘수궁가’를 해봐야 소리의 맛을 안다

국립극장의 11월 완창판소리는 ‘수궁가’다. 김소영 명창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인 만큼 더욱 기대되는 무대다. 그런데 한창 ‘수궁가’를 익힐 때만 해도 솔직히 너무 재미없었단다. ‘심청가’는 효에 대한 이야기고, ‘춘향가’는 사랑 이야기인데, ‘수궁가’에는 죄다 짐승만 나오지 않나. 그런데 그 ‘수궁가’로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돼버린 것이다. 그때부터는 누구보다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파고들었고, 그제야 진짜 재미를 발견했다.

“인간이 모르는 세계가 거기 다 있어. 토끼의 지혜, 거북의 지혜, 하다못해 물고기들도 보여주는 게 있잖아. 목 자체도 다른 작품에는 없는 것이 ‘수궁가’에는 있어. 남자의 목, 여자의 목, 치는 목, 달래는 목이 다 있지. 그래서 (오)선생님이 ‘수궁가’를 해봐야 소리의 맛을 안다고 하셨나 봐.”

김소영 명창

김소영 명창이 선보이는 ‘수궁가’는 동초제다. 동초(東初) 김연수(1907~1974) 선생은 근대 5명창을 비롯한 여러 스승으로부터 학습한 판소리를 토대로 다섯 바탕을 새롭게 집필했다. 그의 소리는 아호를 따서 ‘동초제’라 불린다. 김연수 선생에게 판소리 다섯 바탕을 오롯이 이어받은 오정숙(1934~2008) 선생이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이일주·조소녀·성준숙·김소영 명창 등에게 다시 그 소리를 전달했다.

“동초제가 재밌어. 옛날에는 소리가 구전으로 내려오니까 오자가 많았어. ‘내려간다’가 ‘내려온다’가 될 수도 있고, ‘붉은 잠’이 ‘붉은 점’이 되기도 하고. 그걸 신재효(1812~1884) 선생님이 한 번 정리하셨고, 김연수 선생님이 다시 작업한 거야. 일일이 한약방 다니면서 약 이름도 하나하나 고치고, 장단도 파생된 거 고치고. 그래서 동초제 '수궁가'는 오자도 없고, 장단 붙임새가 정말 교묘하게 재밌어. 객석에 빨리 전달되고.”

공연을 위해 따로 준비하는 것은 없다. 그야말로 찌르면 바로 나올 정도로 몸에 밴 작품이지 않나. 게다가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공연에는 이른바 귀명창(판소리 감상하는 능력을 제대로 갖춘 사람)들이 많아 든든하다.

“무대에서 관객들 시선 보면 귀명창인지 아닌지 알거든. 추임새 나오는 거 보면 바로 알지. 귀명창들이 있으면 정말 재밌어. 교감이 되니까 힘도 안 떨어지고. 그런데 소리를 잘 모르는 관객이 많으면 나 혼자 끌고 가야 하니까 배로 힘들지. 멀뚱멀뚱 쳐다만 보니 뭔 소리를 해(웃음).”

그렇다고 무대를 쉽게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소리는 좋지만, 무대는 여전히 무섭다.

“나는 지금도 무대가 ‘호랭이’처럼 무섭고 두려워. 옛날에는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서웠다면 지금은 내가 어떤 소리를 하고, 내려와서 어떤 평을 받을까 두렵지. 옛날 내 소리를 들어보면 청이 높아서 막 질러대. ‘애기’ 소리지, 지금 들어보면. 그런데 그때는 계속 소리를 하니까 ‘소리힘’이 있어. 그런데 나이 들면서는 장시간 소리하는 게 아니라 짤막짤막하게 하니까 소리힘이 없어져. 근육 빠지는 것과 같아. 그래서 공연 앞두고는 그 소리힘을 채우려고 꾸준히 노력하지.”

내 소리 이어갈 좋은 제자 남기고 싶어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 이제 무대에 서는 시간보다는 무대 밖에서 소리를 가르치는 시간이 더 많다. 집안의 내로라할 스승들로부터 소리를 배웠다면 이제 그녀가 그 내로라할 스승인 것이다.

“도움받은 거 하나 없다고 했지만, 나한테 그분들의 모습이 있어. 감사하지. 소리는 구전이잖아. 눈을 보고 입을 보니까 다 닮는 거야. 그래서 오래된 제자들은 내 성격까지 닮아. 내 안에도 선생님의 선생님, 그 선생님까지 다 있겠지. 좋은 점은 다 내려받은 거야. 무형문화재는 그 사람의 삶, 그 일생을 이어가는 거니까. 나도 맨날 제자들한테 ‘소리만 잘해’라고 말해. 그런데 우리 때처럼 죽기 살기로 하는 게 안 보이면 속상해. 아무리 재주가 있어도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 소리를 하려고 마음먹었으면 소리하다 죽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해. 나는 소리하다 죽는 게 소원이야. 얼마나 행복한 일이야. 그리고 사람이 돼야지. 예술을 떠나서 사람이 완성돼야 해.”

‘득음(得音)’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을 것 같다.

“득음했다? 나 득음 못 했어. 득음했다는 건 그야말로 목에 아무런 구애 없이 모든 걸 해야 해. 그런 사람이 어딨어. 나는 오래전에 목에 뭐가 생겨서 감기만 와도 소리하기 힘들고, 좀 기분 나쁘고 속상해도 목이 안 나와. 그게 무슨 득음이야. 내가 새소리 시늉은 내도 새처럼 못 울어. 그게 어떻게 득음이야. 득음은 죽어도 못 해. 내가 이 정도 구사할 수 있다는 거겠지.”

김소영 명창

1993년 남원 춘향국악대전 판소리 명창부 장원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명창 반열에 올랐고, 2012년 각종 국악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명창들이 한자리에 모여 펼친 제1회 독도사랑 국악사랑 대한민국 국창대회에서 최고상으로 국창의 칭호를 얻었다. 2017년에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도 지정됐으니, 오정숙 선생 말씀처럼 소리로 얻을 수 있는 건 다 누린 셈인데, 더 바라는 것이 있을까.

“없어. 다 이뤘고 돈 욕심도 없고. 다만 사후에 어떻게 내 이름이 남을 것인지가 숙제지. 국악 관련 책자에 어디 한 줄이라도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긍정적으로 실렸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좋은 제자를 남겨야 해. 많을 필요도 없어. 동초 선생님이 오 선생님 한분 남겼는데 동초제가 이렇게 퍼졌잖아. 한두 명이라도 내 소리를 그대로 낼 그런 제자를 만들고 싶다, 내 남은 바람이야.”

김소영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수궁가) 보유자
약력
동초제 수궁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완창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 단원(1988.10.~1991.12.)
정읍시립정읍사국악원 판소리 교수
익산국악원 판소리 교수
군산시립국악원 판소리 교수 역임 등
사사
오정숙 사사
수상 내역
1993 제20회 남원 춘향국악대전 판소리 명창부 장원(대통령상)
2012 제1회 독도사랑 국악사랑 국창대회 독도상(국창상)
글. 윤하정 사직서 내고 유럽 공연 기행 떠난 전 방송기자, 공연 전문 인터뷰어. 투어 이후에도 ‘유럽여행’ ‘문화예술’을 키워드로 말하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의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을 펴냈다
사진. 박정훈 사진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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