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기하나

국립국악관현악단 ‘천년의 노래, REBIRTH’ 리뷰
자연음향과 국악관현악

2000년대 이후 우리 음악계에서 거론되기 시작하던 ‘자연음향’이라는 개념은 악기에서부터 작품까지 자연을 추구하는 우리 음악의 관습 속에 습관적으로 인식하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음향’ ‘자연음’이라는 건 마이크나 확성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공연예술을 구현할 수 있다는 면에서 매력적이다. 우리 음악이 가지고 있는 자연 재료나 주제, 이상 등은 ‘자연음향’과 잘 어울리며, 그동안 서구 문화가 바꾸어놓은 기술의 세계에서 한 차원 더 나아가는 예술 관념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환영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국립극장은 지난 2017년부터 대극장인 해오름극장 리노베이션 작업에 들어가면서 국악관현악 연주를 위한 최상의 건축음향 조건을 확보하는 것을 작업 목적 중 하나로 삼았다. 유효 체적을 줄여서 음량을 높이기 위해 기존 객석 1,563석을 1,221석으로 줄이고, 객석의 폭을 축소하고, 측면 반사음 등을 고려한 구조로 재건축해 공연장 내에서 음향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러한 점들을 살리면서 자연음 위주의 공연이 가능하도록 만든 대극장은 음악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대극장에서 자연음향이라니! 근사하지 않은가. 우리도 핀란드 헬싱키의 암석교회에서처럼 확성장치 없이 오르간, 아니 국악관현악을 듣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곡에 따른 음악 확장력의 차이
‘이른 봄 늦은 겨울’ 공연 사진

이번 공연 ‘천년의 노래, REBIRTH’라는 주제는 국악관현악의 시작에서부터 미래를 관통하는 사이, 그 어느 지점을 표현한 용어로 적절했다. 이는 현재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며, 과거나 미래의 환영을 표상하기도 한다. 이번 공연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2021-2022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의 첫 번째 관현악시리즈 공연이자, 국립극장이 남산에 터를 잡은 1973년 이후 지난 약 4년에 걸친 두 번째 리모델링 작업을 마치고 드디어 문을 연 해오름극장의 재개관 기념공연이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지휘 김성진)은 작곡가 나효신·최지혜·우효원에게 세 곡을 위촉했다. 곡마다 국악관현악, 한국 성악 판소리, 합창 등 다른 요소들을 강조한 곡을 위촉했으며, 소개된 작곡가들은 다양한 관점으로 국악을 조명하는 굵직한 작곡가 나효신·최지혜와 국립합창단의 전속 작곡가이자 한국 합창음악 작곡에서 주목받는 작곡가 우효원이다. 특히 합창을 위한 국악관현악을 작곡한 우효원의 곡은 문학평론가이자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의 글을 토대로 한 합창곡을 위촉해 공연 전부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서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저 소나무처럼’(작곡 나효신) ‘흥보가 중 박타는 대목’(작곡 최지혜, 판소리 안숙선) ‘천년의 노래, REBIRTH’(글 이어령, 작곡 우효원, 편곡 박한규, 합창 국립합창단, 테너 존 노)를 발표하면서, 기술적으로 변화한 해오름극장을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세 곡의 위촉곡 발표에서 무엇보다 이목을 끈 것은 자연음향의 구현이 실존이냐 환영이냐 하는 것이었다.

‘따뜻해지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이 떨어지거늘
소나무야, 너는 어찌 눈서리를 두려워하지 않는가
아마도 깊은 땅속 곧게 뻗은 뿌리가 있음을 미루어 알겠노라’

윤선도의 ‘오우가’ 중 한 부분이다. 물과 바위, 소나무, 대나무, 달의 다섯 가지 자연과 벗하며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작곡가 나효신은 이 가운데 소나무를 소재로 곡을 지었다.

나효신의 국악관현악곡 ‘저 소나무처럼’은 60여 명의 국악관현악단 규모를 통해 관악기와 현악기의 잔잔한 어우러짐 속에서 가야금이나 태평소, 피리 등이 차례로 등장하며 호젓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작곡가는 특별한 장단을 드러내기보다는 현대적인 박의 흐름 속에서 악기의 굵은 농현이나 한 음 내 강약을 주로 활용했다. 이러한 강약은 약한 음에서 강한 음으로 나아갔는데, 피리와 같은 관악기나 아쟁이나 해금 같은 찰현악기가 주로 발현했다. 작곡가 나효신은 “소나무의 꿋꿋한 성격을 닮은 음악을 만들고자 했으며, 추상적인 악기로 소나무의 성격을 표현하는 것과 계속되는 희망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찰현악기나 피리 같은 음향 전달이 뚜렷한 악기를 제외하고 음향이 관객석까지 분명하게 전달되는 데는 한계가 있어 시작부터 끝까지 단조로운 느낌을 강하게 준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노무 돈아. 아나 돈아
어디를 갖다가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돈이야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아 박흥부를 찾아오소
나도 오늘부터 기민을 줄란다
얼씨구나 절씨구
‘이른 봄 늦은 겨울’ 공연 사진

작곡가 최지혜의 창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흥보가 중 박타는 대목’은 안숙선 명창의 소리와 국악관현악으로 약 12분간 초연됐다. 최지혜는 국악기 각각이 가지고 있는 섬세한 힘을 잘 이해하고 있는 작곡가로, 특히 국악관현악에서 장단의 힘과 국악기를 활용한 안정된 화성, 재치 있는 선율을 잘 표현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생동감 있는 도입부와 독특한 리듬 등으로 판소리 흥보가를 재해석했다. 박타령에 들어갈 때는 보통 느리고 슬픈 노래로 시작해 빠른 박자로 끝을 내는데, 이 대목을 품은 국악관현악은 판소리의 절절한 가락을 오히려 중용적으로 표현해 외?내면화된 슬픔을 기운차게 이어간다. 악보가 가진 에너지로 음악을 끌고 가는 것에 비해 관현악기들의 음향 표현은 충분하게 고르지 않아 안타깝다. 가령 활을 쓰지 않는 현악기의 경우 객석에서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고, 관악기 역시 관대 크기나 서의 유무에 따라 음량 차이가 컸다.

횡포에 음악으로, 강압에 시로 대항하는 우리
긴 동굴의 시간을 기다리고 마침내 맞이하는 아침
신시의 아침에서 만나자
-이어령, ‘한국인의 신화’ 중

한국의 문학을 비롯해 문화 전반을 평론해 오던 이어령의 글은 ‘천년의 노래, REBIRTH’에서 우효원의 곡으로 초연됐다. 국립합창단의 합창과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주목을 받은 테너 존노가 참여한 이 곡은 ‘신시(神市)의 아침’을 전주곡으로 하여 그동안 이어령이 발표해 온 글 중 몇 부분을 발췌해 합창으로 지었다. 한국 합창에 대한 시도는 김성진 예술감독이 취임 시 국악관현악으로 구현해 보고자 했던 강한 바람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합창 작곡에서 잘 알려진 우효원은 국악기를 부피 있게 사용해 꽤 균형 잡힌 음향을 만들어냈다. 타악기나 거문고 타점들을 활용해 국악만의 이색적인 음색을 곳곳에서 포착했고, 피리를 사용하는 방법도 깔끔하다. 글이 가진 기개가 음악으로 곧 이어졌다. 하나의 대본으로 작성된 합창곡이 아니기 때문에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규모가 있는 작품으로 평가한다. 30여 분 길이의 이 곡에서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합창단원 120여 명이 마스크를 쓰고 등장했는데, 관객 중 혹자는 이를 두고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자연음향은 차치하고, 우리는 제대로 된 합창의 공명조차 감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른 봄 늦은 겨울’ 공연 사진

다시 한번 자연음향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자연음향은 기술이 구현하면서 저하시키는 자연음을 되살려내고, 이를 관객이 환상이나 환영이 아닌, 실존하고 실재하는 것으로 느낄 수 있게 함으로써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다. 자연음향의 구현은 그동안 국악이 가진 실제 음색과 음향을 서구의 일방적인 방식으로 양식 면에서나 기계적으로 보편화하는 것에 대한 반감으로 형성된 하나의 시도는 아닐까. 자연적 음 재료나 자연적 음 구현이 주체를 표현하는 동시에 과거의 지배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반작용은 아닌가. 물론 확성장치를 통해 구현되는 우리 악기 소리는 많은 것이 깎여나가고 탈락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연음향이 추구하는 이러한 음 색깔의 전달과 국악관현악의 구현은 다른 문제이다. 이미 우리가 구현하고 있는 국악관현악의 구조는 음향과 음량에 따른 구조는 아니다. 음악의 명료도나 음성을 잘 전달할 수 있는 길이도 소극장이 아닌 약 1,200석 대극장에서 자연음향으로 구현하기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목표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악기와 음향·악곡을 분석하고 이에 맞는 공간을 연구하는 인간의 행위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행위가 인간 본성이며, 이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예술의 본질인 이상 이루지 못할 것은 없지 않은가. 그것은 결국 구현되는 기술과 예술의 문제이며, 의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자본과 시간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글. 정우정 음악평론가. 한국음악, 한국춤, 현대 예술에 관련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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