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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 II ‘2021 리컴포즈’ 프리뷰
RECOMPOSE, 서로 다른 세 사람이 만나는 접점
2014년에 시작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리컴포즈’ 시리즈는 전통음악을 오늘날의 음악으로 재해석하는 프로젝트로, 여러 음악가에게 '지금의 우리 음악'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올해의 ‘리컴포즈’ 시리즈는 3년 만에 열리는 소중한 무대로, 이를 위해 김택수와 김백찬에게 새로운 작품을 위촉하고, 첫해의 ‘리컴포즈’ 음악회에서 발표된 벨기에 작곡가 보두앵 드 제르(Baudouin de Jaer)의 작품을 재연한다. 삼인삼색 세 작곡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피부로 직접 겪은 한국의 모습을 음악에 담는, 김택수
ㄱㅣㅁㅌㅐㄱㅅㅜ ⓒEstro Studio Haksoo Kim 김택수 ⓒEstro Studio Haksoo Kim

작곡가 김택수는 이번 학기부터 샌디에이고 주립대 교수로 부임했으며, 올해 버를로우 작곡상(Barlow Prize) 수상 소식을 알려왔다. 지난해 12월에는 국악의 기풍을 가득 품은 ‘더부산조’가 뉴욕 필하모닉의 제안으로 연주되기도 했다. 작곡가로 이름이 알려졌을 때는 새로운 소리를 탐구하는 현대음악가의 모습이었는데, 어떤 계기로 ‘한국적’이라는 키워드가 그의 음악에 들어가게 됐을까? “외국에 나와서 좀 더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된 건데요, 제가 한국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제 음악에 녹아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면서도, 당위적인 일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국민학교’를 졸업한 마지막 세대, 겨울날 밤거리에서 “찹쌀떡 사~려!”라고 외치던 소리,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이유도 모르게 분주했던 젊은 시절. 이렇게 피부로 겪은 모든 것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한 한국의 모습이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것들이 가진 ‘한국성’을 찾기 위해서는 그전부터 존재하던 한국 문화와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리컴포즈’ 시리즈는 그런 저에게 영감을 많이 주는 작업이지요.” 이렇게 리컴포즈 시리즈는 그의 음악 세계에 변곡점이 됐다. 하지만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잘 모른다는 점’이 가장 큰 장벽이었던 것 같아요. 국악인이 아닌데 이걸 해도 되는지, 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지 등을 고민하기 시작했죠. 국악기들을 잘 몰라 알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죠.” 하지만 현대음악가에게 낯선 것은 기회가 아니던가? “그만큼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가장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2015년에 문묘제례악에 의한 국악관현악 '아카데믹 리추얼 - 오르고 또 오르면'이 탄생했다.

국악기를 위한 작품들을 작곡할 때 고민하는 방향을 물어보았다. “국악기를 위한 작품을 쓸 때는 저의 ‘서구’적 사고를 더 많이 반영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것이 저의 아이덴티티를 가장 효과적으로 살리는 방법이 아닌가 싶고요.” 이번 공연에서 초연하는 ‘입타령’과 ‘Moto Perpetuo(無窮動, 무궁동)’는 그 연장에 있다. 먼저 ‘입타령’은 전통음악인 가사(歌辭) 고유의 미적 요소들을 확장한 작품으로, 리게티·베리오·황병기·진은숙을 잇는 목소리를 위한 실험적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실험적 음악으로 방향성을 정하는 것, 그리고 ‘가사’를 쓰기로 결정하는 데는 가객 박민희 씨와 나눈 대화가 큰 영향을 주었어요. 낯설면서도 훌륭한 성악 작품이 나오기 시작한 이후 몇 세대가 지난 지금, 이 장르에 대해서 약간 주의를 환기할 수 있는 작품이 되면 좋겠다고 기대하고 있고요.” 그리고 ‘Moto Perpetuo(無窮動, 무궁동)’는 포스트미니멀리즘을 전통악기로 구현한다. “국악을 리컴포즈한 것이 아니고, 양악을 리컴포즈한 작품이에요. 미니멀리즘 자체가 다양한 양상으로 발전했기도 하니, 저도 저만의 접근 방법을 더해서 선보이는 거죠. 또 이 장르를 어떻게 ‘국악화’할지 역시 큰 화두이고요. 여기에서 바쁜 현대사회에 어울리는 가락인 ‘청춘가’가 슬쩍 들어갑니다.” 김택수는 아직 자신의 이러한 작업을 진행형으로 보고 있다. “국악과 서양 작곡의 만남을 계속해서 ‘업데이트’하는 작업은, 제 작품의 퀄리티와 관계없이 최소한 ‘의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이 작품들은 전문가를 위한 실험적 음악일까? 김택수는 이러한 의심을 한마디로 물리친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

우리 음악의 나무를 서양 기법으로 심어 숲으로 확장하는, 김백찬
ㄱㅣㅁㅂㅐㄱㅊㅏㄴ 김백찬

내가 하루 중 가장 자주 듣는 음악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하루에 두 번씩 꼭 이용하는 지하철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아닐까 싶다. 지하철의 적막한 분위기를 깨고 순간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국악기 사운드, 바로 작곡가 김백찬의 ‘얼씨구야’이다. 2009년부터 서울 지하철에 사용됐으니, 하루 중이 아니라 내 삶에서 가장 자주 들은 음악임이 분명하다.

‘얼씨구야’가 알려졌을 당시, 김백찬은 여러 매체에 ‘퓨전 국악’ 작곡가로 소개됐다. 하지만 10년도 더 지난 지금은 낡은 단어가 된 느낌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퓨전 국악’이라는 말은 한 시대의 음악적 활동상을 표현한 단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현재로서는 ‘퓨전’이라는 단어도 예전만큼의 의미를 갖지 못할 정도로 음악 영역에서는 이미 많은 ‘퓨전’의 결과물이 보편화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작업을 “이 단어로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라고 말한다. 항상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음악을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리컴포즈’ 시리즈에서 초연하는 ‘Knock’는 그 고민의 결과물이다. 이 제목은 “한국 전통음악의 새로운 어법을 두드린다는 의미”로, 그는 “서양의 작곡 기법을 이용해 전통음악의 어법을 기반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숲은 서양의 기법이고 그 안의 나무들은 전통의 어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Knock’의 기반이 된 ‘전통음악의 어법’은 5음 음계와 전통 장단이다. “선율에서 5음 음계는 동양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많은 민족음악에 구성돼 있는 음계입니다. 한국의 전통 장단은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최소 단위의 분박 자체를 해체했다가 합쳤다 함과 동시에 최소 분박이 되는 2분박과 3분박의 경계를 너무나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이 두 가지 전통 어법을 ‘서양의 작곡 기법’으로 확장한다. 우선 5음 음계는 ‘조옮김’을 적용한다. “장조와 단조 음계와 그레고리안 찬트의 선법에서 구성 음은 같지만 배열을 달리함으로써 서로 다른 느낌을 갖게 되듯이, 5음 음계에 본청을 달리해 더욱 다양한 색채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단은 그 특성을 활용해 리듬의 변화로 구조화한다. “장단을 연구하며 알 수 있었던 구조적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 기존의 장단들을 등장시키고 활용해 보고자 했습니다.”

‘Knock’에는 요즘의 국악관현악 작품을 바라보는 그의 우려스러운 시각도 반영돼 있다. “오선보를 사용하고, 서양 클래식 음악의 작곡법과 형식을 기반으로 해 작곡하는 방법이 현재의 국악관현악곡에 보편적으로 쓰이는 작곡 방법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통해 제안한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서양의 현대음악적 어법이 지배적으로 사용되는 창작 국악관현악에, 전통을 기반으로 하여 확장시키는 새로운 어법의 제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가져봅니다.”

꿈에 그리던 음악을 국악에서 실현한, 보두앵 드 제르
ㅂㅗㄷㅜㅇㅐㅇ ㄷㅡ ㅈㅔㄹㅡ(Baudouin de Jaer) 보두앵 드 제르(Baudouin de Jaer)

꿈을 꾸는 사람은 언젠가 그 꿈을 현실로 실현할 기회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 순간이 올 때, 그 꿈을 과거의 추억으로 묻어두었다면 입가를 씰룩거리는 미소로 화답하며 지나가겠지만, 여전히 꿈을 놓지 않은 사람은 그 기회를 붙잡아 현실로 만든다. 벨기에의 작곡가 보두앵 드 제르는 바로 후자에 해당한다. "거문고를 접하기 전, 저는 가야금 곡을 쓰며 15개의 저음이 있으며 바닥에 놓을 수 있는 형태의 피아노를 상상했고, 그것을 '피아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가야금 연주자 이화영 선생님이 그분의 친구인 이정아 선생님과 거문고를 저에게 소개해 주셨고, 저는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토록 꿈꾸던 악기를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심지어 저는 어릴 때도 일종의 ‘미니 거문고’를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만든 기억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 세계는 이후로 급격히 변화했다. “현재 저는 다른 서양 악기를 위한 곡은 더는 쓰지 않고 거문고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제 두 개의 음반으로 발매됐을 정도로 거문고를 위한 작품은 상당한 분량이 됐다.

그가 한국 전통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2001년 전주세계소리축제에 초대됐을 때다. “이 축제 기간에 야외에서 판소리를 들으며 한국 전통예술을 처음으로 접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고, 분명 저의 작업에 토대가 돼준 순간이었습니다. 본질을 추구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후 그는 여러 명인을 만나면서 국악기를 배웠고, 점점 더 국악기의 구체적인 특징에 매료됐다. 이후 거문고는 그의 인생 악기가 됐다. 거문고는 그가 꾸는 꿈의 실체일 뿐만 아니라, 그가 찾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있는 악기였다. 그리고 이제 그의 관심은 거문고를 넘어 한국의 전통음악 전반으로 뻗어 있다. “대금의 부드럽고 떨리는 소리, 해금의 노래하는 것 같은 소리, 북소리, 거문고의 깊은 현, 가야금 현을 타고 물 흐르듯이 들리는 소리는 우리 안에서 울려 퍼지며, 우리를 또 다른 깊은 차원으로 데려가 줍니다.”

2014년에 발표한 국악관현악 작품 'The Lion Dance'는 그의 꿈을 현실로 바꾼 또 하나의 기회였다. “북청사자놀음의 멜로디에서 출발했지만, 멜로디를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서 새로운 멜로디를 다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사자 이야기를 다시 만들기도 했습니다.” ‘사자 이야기’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이 작품의 도입부는 숲속에 있는 젊은 사자의 ‘사진’ 36장으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조금씩 떠오르는 달에 중요한 역할이 부여되며, 이러한 달을 양금으로 표현했습니다. 시퀀스마다, 즉 36개 이미지 하나하나가 나올 때마다, 양금의 음은 떠오르는 달처럼 고음으로 향해 갑니다. 이 모든 것을 꽤 빠르게 연주하면 마치 16mm 영화처럼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음악을 ‘시각주의적 음악’이라고 부릅니다. 이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으로 소리를 하나하나 채우는 것입니다.”

작곡자는 국악관현악단의 연주자에게 한 가지 주문을 했다. “이 작품은 청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는 사자의 삶에 관한 이야기로, 오케스트라의 모든 음악가가 작품의 이야기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음악이 깊은 수준의 생기를 얻어 관객과 공명할 수 있습니다.” 공명이란 두 존재가 동질성을 가질 때에 가능하다. 즉, 보두앵 드 제르는 자신과 연주자, 그리고 감상자가 'The Lion Dance'를 통해 대화하며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The Lion Dance'뿐만 아니라, 그가 추구하는 음악의 이유이기도 하다.

국립국악관현악단 ‘2021 리컴포즈’의 프로그램은 미묘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갖고 있는 세 사람의 음악이기에 더욱 흥미롭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각자의 길을 가고 있지만, 국악관현악은 이들이 공통의 목적으로 조우하는 장이 됐다. 경계를 넘나든다는 점에서 하나로 통한다는 것, 바로 ‘리컴포즈’ 시리즈가 바라보는 우리 시대의 가치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 공연 사진 국립국악관현악단 공연 사진
글. 송주호 음악 칼럼니스트로서 월간 ‘객석’, 월간 ‘SPO’ 등에 기고하고 있다. 공연 해설자로 무대에 서기도 하며, 화음챔버오케스트라와 현대음악앙상블 ‘소리’ 등 여러 연주 단체의 공연 기획에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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