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기

국립무용단 ‘다섯 오’ 리뷰
한국적 고유성의 현대적 발현

2021-2022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국립무용단의 첫 공연으로 ‘다섯 오’(9.2.-5., 국립극장 달오름)가 펼쳐졌다. 이 작품은 손인영 예술감독 부임 이후 첫 안무작으로 원래 2020년에 공연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순연됐고, 2021년에 들어서 관객과 만나게 된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안무자가 본질적으로 추구하고자 한 것은 ‘현대적 한국무용’이다. 손인영은 국립무용단 단원으로 활동한 이래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무용교육학을 공부했고,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에서 한국 창작춤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등 한국무용의 시대적 표현 방법에 대한 화두를 지속적으로 고민한 인물이다. 이러한 여정 속에서 그는 한국무용의 고유성과 더불어 이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총체성을 발현하고자 했고, 이번 공연에 응집되어 나타난 것이다.

‘다섯 오’ 공연 사진

특히 이번 무대에서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동양철학의 근본 원리인 ‘음양오행’을 중심에 놓으면서도 이를 사회적 관점으로 바라보며 새로운 감각을 전해 주려 했다. 음양오행은 음(陰)과 양(陽) 그리고 다섯 가지 기본 물질인 화(火), 수(水), 목(木), 토(土), 금(金)을 말하는 것으로 상생(相生)과 상극(相剋) 속에서 양가적 가치가 만들어지고, 이들의 순환 속에서 우주가 움직이는 철학적이면서도 일상성이 스며든 논리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순환적 질서가 어그러졌을 때 인간에게 재앙이 찾아올 수밖에 없는데, ‘다섯 오’에서는 그 문제적 상황을 환경으로 보고 현존의 상황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원리로 음양오행을 수용해 작품에서 풀어놓고자 했다.

‘다섯 오’는 크게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1막은 카오스처럼 혼돈의 상황을 알린다. 그런데 이는 태초의 상황이 아닌 어둡고 모든 것이 파괴된 불모의 상태이다. 이런 암울한 상황 속에서 다섯 처용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역할은 근본 원리를 다시 일깨우는 존재로 자리한다. 이는 처용무의 벽사의식이나 초월적 의지의 표현을 담아내는 것이 아닌 질서를 바로잡는 구도(求道)의 상징이다. 이들의 모습은 오방색의 화려한 치장이 아닌 하얀 가면을 쓰고, 정제되고 담백한 움직임 속에서 선지자로 실존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다섯 오’ 공연 사진

2막은 음양오행에서 발생하는 상생과 상극의 관계성보다는 각각 그것들이 가지는 긍정적 특질을 나열해 표상으로 발현하고자 한다. 이는 나무, 불, 물, 흙, 금을 생성과 충돌, 소멸의 구조가 아닌, 이들이 지닌 장점을 부각해 오행의 순환성을 그리고자 함이다. 이는 의상이나 무대장치 등에서 보이는 시각적 이미지를 직시적으로 전달해 재현의 양상을 만든다.

먼저 나무(木)는 녹색에서 느껴지는 생성과 안정감을 표현하는데 군무의 탄력적 움직임 속에서 발현된다. 이런 안정적인 이끌림은 불(火)의 상승 구조로 역동적 변환을 가져온다. 이는 승무(僧舞)의 수용으로 이루어지는데 상승과 수평의 공간적 움직임 속에서 우주의 기운이 분출되어 강한 에너지를 느끼게 해준다. 이는 빨간색이 갖는 강렬한 이미지와 선형적 몸짓 속에 담겨지고, 생성과 변화의 논리를 양산한다.

이어 물(水)의 감정은 씻김굿으로 수용되는데 순백의 분위기 속에서 유동적이면서도 정제된 움직임이 만들어지고, 맺힌 것에 대한 풀림과 해소가 이루어진다. 이는 점진적 구조에서 잠시 휴식을 전해 주면서도 성과 속의 경계에서 소통을 이루어 순환적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씻김굿의 본질을 그대로 나타낸다.

흙(土)은 검정 의상을 입은 남성 무용수들의 역동적 택견 움직임에서 구현된다. 이는 정형적이면서도 반복적 몸짓이 아닌 미시적인 변용 속에서 상승을 위한 토대를 조성한다. 이는 풍물로 고조된 장단 속에서 앞서의 실존적 몸짓에서 공간적 확장을 이룬다. 여기서 흑(黑)은 어두운 정조가 아닌 모든 빛을 포용해 금(金)의 기운으로 전환되어 집단적 신명을 이룬다. 이는 무음악과 은현(隱現)의 행위에서 이루어지는 2인무와 유동적 군무에서 이상적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수행성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은연중에 바닥에 비추어지며 환상적 구조 속에서 감정을 배가하기도 한다.

‘다섯 오’ 공연 사진

3막은 오행의 재현 이후 다시 다섯 처용의 등장을 맞는다. 이들의 몸짓은 앞서와 크게 변화가 없다. 그렇지만 이들은 음양오행의 상징이기에 어려운 현실에서 위안이면서 마음을 다잡게 하는 근원으로 새로운 깨달음을 전해 준다. 결국 현실의 문제는 인간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자문(自問)하게 하며 홀로 남은 무용수의 쓸쓸한 움직임으로 마무리한다.

‘다섯 오’는 그리 어렵지 않게 오행의 본질과 이미지를 춤으로 그려낸다. 이는 오행을 정반합의 변증법적 갈등 구조가 아닌, 대립하지만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는 성질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한 측면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절정에서 강한 카타르시스나 극적 구조를 만들지 않으며 마무리에서도 유려하게 매조지지 못한 완만함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는 본질과 원형의 현존과 개별적 이미지를 완연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나열해 명확하게 주제 의식을 전달해 주는 장점이 있다. 이는 기본을 거스르고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꾸짖음이고, 무위자연의 철학적 인식이 작품에 그대로 투영된 면모이다. 이와 함께 이러한 단형적 서사 구조와 상징적 구성은 무대미술과 음악을 통해 공감각적 변용을 주면서 작품을 더욱 질감 있게 만든다. 이는 색감이 갖는 보편적 정서와 국악기마다 가지는 음색의 의미가 조화를 이루며 합을 이룬 결과이다.

이 작품은 현대적 한국무용을 지향했다. 최근 한국무용에 바탕을 둔 창작무용의 방향성은 동시대적 감각을 짙게 담고자 하는 특질이 있다. 이는 한국적 감성에 집중하는 것을 지양하고, 동시대적 안무법과 무대 구성법을 강조하는 창작관에 바탕을 둔다. 이러한 면모는 고답적이지 않고, 동시대적 감각을 전해 주어 한국 창작무용을 확장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인식은 글로컬리티(glocality), 지역성과 세계성, 즉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를 강하게 실천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현대무용과 경계가 뚜렷하지 않으면서 한국 문화의 고유성이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문화의 보편적 정서를 전해 주면서도 민족문화의 변별적 특수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섯 오’ 공연 사진

‘다섯 오’는 전통과 민속춤을 계승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동시대적이고 현대적인 창작 활동을 펼치고자 하는 국립무용단의 모토를 충실하게 실천한 전형성을 보여주었다. 문화 원형의 본질을 함유하면서 이를 스타일리시(stylish), 즉 유행을 선도하면서 한국적 정서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섯 오’는 동시대적 담론을 생산하면서도 국립무용단의 정체성을 영속시킨 작품으로 기억할 수 있을 듯하다.

글. 김호연 춤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공연예술을 공부하면서 ‘한국근대무용사’ ‘전통 춤의 변용과 근대 무용의 탄생’ 등을 저술했다
<월간 국립극장> 구독신청 <월간 국립극장> 과월호 보기
닫기

월간지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 구독 신청

뉴스레터 구독은 홈페이지 회원 가입 시 신청 가능하며, 다양한 국립극장 소식을 함께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또는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편리하게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회원가입 시 이메일 수신 동의 필요 (기존회원인 경우 회원정보수정 > 고객서비스 > 메일링 수신 동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