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
하나

국악관현악의 쟁점과 딜레마 ①
우리 음악의 길을 묻다
한국음악, 나아가 국악관현악이 지닌 동시대적 의미는 무엇일까.
지난 60여 년간 던져온 질문에 우리는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이것이 지닌 딜레마를 짚어보자.

올해도 어김없이 국립극장의 <여우락 페스티벌> 라인업은 국악계 안팎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국립창극단의 초연작 <정년이>와 <베니스의 상인들>은 전석 매진 기록을 이어간 가운데, 공연을 본 이와 보지 못한 이로 나뉘는 진귀한 경험을 한다. 밴드 이날치와 <풍류대장>의 인기를 국악의 동시대적 확장이라 여기는 이들이 많지만, 이러한 미디어적 현상뿐만 아니라 최근 국악 공연장 풍경은 전통음악의 동시대성에 착시를 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초청작으로 무대에 오르는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은 국가 주도적 욕망이 담지된 ‘국악의 세계화’를 넘어, ‘양식으로서의 창극’이 국경 밖으로 확장될 가능성과 함께 전통음악이 동시대성을 획득하는 표지標識로 바라볼 수 있다는 희망도 품어본다.
“오늘 한국 전통음악은 동시대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전통음악을 둘러싼 제도와 담론, 오해와 현실이 농축된 제도화 이후 국악의 딜레마와 고민을 담고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서구 음악의 패권주의가 만연하고 국민은 대중음악의 감수성으로 무장돼 점차 사회의 주변으로 밀려가던 국악은 1960년대 현대적 제도화를 본격화한 이후 한편으로는 전통의 보존과 계승을, 한편으로는 ‘신국악’을 탄생시키며 국악의 국가-사회적 효용을 확인시키고자 했다. 특정 장르와 보유자 전승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재 제도는 원형(현재는 전형)을 설정했고, 국악학은 조선 시대 음악의 사적·체계적 연구를 중심에 놓고 본질주의적 관점을 고수해 왔다. 이러한 본질주의는 국악의 시공간을 과거와 조선으로 규정하며 순혈성을 강조하고, 현재에도 국악이 지닌 보수성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한편 대학 중심의 엘리트 교육제도의 도입은 서구적 근대성에 기반한 현대화의 추구와 특정 방식으로 국악의 예술화를 추동하며 국민의 일상과 괴리되는 현실을 극대화했다. 그런데 이러한 본질주의적 보수성은 국악의 동시대성 확보라는 또 다른 시대적 과제와 모순적으로 충돌하게 된다. 더 나아가 본질주의적 접근은 전통으로서의 ‘원형’이 갖는 권위를 강조해, 동시대 연행과 양식에는 ‘훼손’ 혹은 ‘왜곡’의 라벨을 붙임으로써 동시대 예술로서의 가능성을 차단하도록 기능했다. 즉 전통음악은 현재와 괴리된 보존된 과거의 것이라는, 국악의 본질주의와 텍스트 중심으로 국악의 예술화를 추구함으로써 주변화와 소외로 연결됐다고 진단할 수 있다.
현대적 국악 제도화를 상징하는 사건은 국악관현악의 탄생이다. 초기 국악관현악을 향한 의구심과 비난은 내용을 달리하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지만, 그런데도 국악관현악은 현대 국악의 가장 중요한 현상이자 현장이다. 1965년 최초의 국악관현악은 서구 오케스트라의 모방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양식의 탄생을 선포했고, 국악 작곡가와 지휘자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 됐으며,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한 엘리트 국악인들에게는 ‘악단’이라는 직장을 제공한 현실의 대안이 되었다. 1980년대 국가와 정책 차원의 요청은 다시 한번 대학에 국악과와 전국적인 국악관현악단의 설립으로 이어져 국악의 영토를 확장했다. 그러한 차원에서 국악관현악은 현대 국악의 한복판에 위치한다. 그런데도 오늘 한국 전통음악의 동시대성 획득에 국악관현악을 가장 먼저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서구식 근대화로 시작해 당대 한국 예술로 자리 잡고자 했지만, 국악의 태생적 특성을 서구화된 근대적 양식인 관현악에 담기에 해결되지 못한 수많은 과제는, 앞서 언급한 국악계의 본질주의적 보수성과 충돌하며 앞으로 갈 수도, 뒤로 후퇴할 수도 없는 딜레마의 근거가 된다.
이러한 본질주의적 보수성과 현대성의 충돌은 국악기 개량에 대한 논의와 전개 과정을 통해 잘 드러난다. 서구적 근대화에 기반한 전통악기 중심의 대규모 현대적 관현악단은 한국 전통음악계뿐 아니라 식민지를 겪은 많은 비서구 지역에서 발현됐다. 1950년대 중국과 북한에서는 이를 위해 대대적인 전통악기 개량을 국가 주도로 진행해 1960년대 말 완성했다. 현대 예술을 추구한 일본 방악계의 일각에서도 현장의 작곡가와 연주자의 주도로 악기 개량이 진행됐다. 홍콩·대만·싱가포르의 중화관현악단은 개량된 악기를 기반으로 현대적 연행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국악계는 국악관현악이라는 새로운 양식은 출발시켰지만 새로운 양식의 핵심이라 할 악기 개량에는 보수성으로 인해 소극적 태도를 견지할 수밖에 없다. 악기 개량의 소극성은 연주자들의 결연한 의지로 극복한 연주 기량 향상에 힘입어 점차 음향적으로 질 높은 오케스트레이션과 예술성을 획득해 가고 있다. 그러나 국악의 현대화를 가장 먼저 실천한 연행이었고, 현대 국악계를 지탱한 기둥이었지만 국악의 동시대성을 견인했다고 평가받지 못하는 국악관현악은 우리 시대 국악의 계륵이 됐다.
국악이 동시대성을 획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당대의 시대상을 담은 국악관현악곡을 탄생시키는 것인가? 서구식 오케스트라와 구별되는 악기 배치, 음향, 연주 형태를 담은 새로운 한국적 양식을 완성하는 것인가? 국악관현악은 과연 이 시대의 양식이 될 수 있을까? 국악관현악의 동시대성은 어떻게 획득 가능할 것인가? 새롭게 창작된 이 시대의 창극처럼 국내외에서 초청받는 것을 지칭할까? 대중 미디어나 대중음악의 어법이나 형식과 결합한 국악가요나 ‘힙한 국악’처럼 당대의 음악 어법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할까? 혹은 양악 클래식처럼 예술 마니아의 수요에 부응하도록 예술화에 더욱 매진해야 할까? 오랫동안 사회에서 주변화돼 외면해 온 동시대 관객이 국악 공연장을 찾게 되는가? 그렇다면 동시대 국악은 기획·홍보·마케팅에 집중해 관객 확보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동시대성을 획득하는 길이며 답인가? 국악관현악을 둘러싼 동시대성의 획득에 관한 질문은 지난 60년간 반복적으로 던져졌으나 여전히 난제다.
짧게는 150년, 길게는 300년간 서구 음악 문화의 한복판에서 완성돼 온 서양 관현악과의 일차원적 비교를 통해 국악관현악을 비하하는 양악계·평론계·관객 일각의 가혹한 평가는 서구 패권의 전 지구적 음악사를 망각한 듯 보일 뿐만 아니라 여전한 서구 중심의 우리 음악 현장의 현실을 깨닫게 한다. 국악관현악을 향한 “아류”라는 질타와 동시대성 획득에 관한 질문은 우리 사회에 던지는 것이 마땅하며 더 나아가 그것은 타당하며 온당한지, 그것을 비판하고 질문할 자격을 갖추었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국악관현악의 당대 소통을 위한 노력은 연행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연주자·작곡가·지휘자가 당면한 과제이지만 동시대적 존재 의미를 찾아내고 동시대성을 구성하는 데는 당대의 평자와 관객도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오늘날 전통음악계의 창조적 에너지가 당대 예술계에 울림을 주고, 사회적 소통과 대화의 매개가 되는 현상을 바라보며 국악의 현대화를 위해 탄생한 국악관현악이 동시대성을 획득하며 시대의 예술이 될 수 있기를, 그 길에 동참하고 응원하는 동시대 관객이 더욱 많아지기를 희망해 본다. (※ 8월호에 이어집니다.)

글. 김희선 국민대학교 교수이며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을 맡아, 학술과 현장의 소통을 이끄는 매개자로 활동한다. 국악의 현대화 과정에 관심을 두고 국내외 학술지와 매체에 다양한 주제의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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