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하나

2023 <여우락 페스티벌>
두 감독 인터뷰
축제하는 인간들의 즐거운 수다
페스티벌 준비로 분주한 6월의 국립극장. 축제를 앞두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예술감독 이아람, 음악감독 황민왕, 두 사람과 늦은 시각에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재치 넘치는 입담 덕분에
국립극장의 밤은 어느 때보다 다정했다.

그동안 아티스트로서 <여우락 페스티벌>(이하 <여우락>)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던 대금 연주자 이아람과 타악 연주자 황민왕에게 올해는 조금 특별하다. 이아람은 예술감독으로, 황민왕은 음악감독으로 2023년 <여우락>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음악가로서 둘의 합은 이미 음악그룹 나무와 블랙스트링을 통해 증명해 보인 바 있다. 친분이 두터운 두 사람이 꾸리는 이번 <여우락>은 어떠할까. 이아람과 황민왕은 처음 만난 2012년 당시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Q. 두 사람은 꽤 오랜 시간 함께한 걸로 아는데, 인연의 시작은 언제였는지?
이아람 우리가 처음 만난 건 2012년 무용 공연에서다. 내가 먼저 황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같은 대학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황 감독의 음악적 역량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황민왕 그 당시에 사실 엄청 긴장했었다. 전문 연주자를 꿈꾸던 시기였는데 이 감독은 그때부터 이미 여러 단체에서 음악감독으로 활발한 활동을 선보이는 선배였다. 학교에서도 연습실에서 밤새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처음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엄청 열심히 준비해서 연습에 갔던 기억이 난다.(웃음)

Q. 10년 넘는 시간 동안 둘이 함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아람 2014년에 우리가 계속 음악을 함께 해도 되는지 고민이 깊었다. 처음에는 우리 연주를 좋아해 주던 분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지겹다는 표현을 하기 시작하더라. 서울남산국악당 주차장에서 사이다를 마시면서 둘이 진지하게 회의한 기억이 난다. 당시 내린 결론은, 오히려 둘이 아니면 안 되도록, 남들은 절대 흉내 낼 수 없도록 더 열심히 하자고 의기투합했다. 이후로는 스트레스받지 않고 둘이 함께 즐겁게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Q. 각자 처음으로 <여우락>에 선 건 언제였나?
황민왕 2012년 양방언 예술감독과 장재효 음악감독님이 이끌던 해였다. 당시 <여우락>은 축제적인 면모를 살리기 위해 야외무대에서 연희 공연을 선보였다. 그때 ‘민속악단 수리’의 멤버로 참여했고 이후 꾸준히 여우락 무대에 올라, 올해가 무려 10회째 출연이다.
이아람 2011년 바람곶의 멤버로 처음 <여우락>에 섰다. 우리가 함께한 <여우락>은 2015년이었고, 그때는 <Wood & Steel>로 참여했었다. 올해로 9회째 출연이다.

Q. 관중으로 지켜본 <여우락> 무대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공연은?
이아람 2018년 <안숙선의 지음> 무대가 잊히지 않는다. 그동안 <여우락>이 실험적인 시도를 보였다면, 그 공연은 다시 전통을 찾아보자는 의미가 있었다. 김일구 선생님의 산조를 들으며 눈물이 절로 나왔다. 그 공연을 보고 많은 예술가가 우리가 창작을 할 필요가 있을까 되물을 정도였다. 나도 40년 뒤에 저렇게 활동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황민왕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2015년에 선보인 뉴엔 레와 바라지의 <용호상박>이다. 해외 아티스트가 국내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보며 새로운 영감을 받았다.

Q. <여우락>은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의 준말이다. ‘우리 음악’이라는 단어가 조금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황민왕 지금 드는 생각은 여기서 ‘우리’가 갖춰지려면 최소 단위가 ‘너’하고 ‘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하고 ‘나’ 사이에는 여러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너와 내가 함께 혹은 각각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모든 것이 혼재해야 하는데, ‘우리’가 이런 거라고 딱 정의해 버리면 오히려 약점이 될 것 같다.
이아람 나와 황 감독이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 국악의 동시대성·대중화·세계화·장르의 파괴 같은 표현을 가장 싫어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재밌게 할 수 있는 건,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그게 결과적으로 ‘우리 음악’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Q. 이아람 감독은 이전 2018년, 2020년에 <여우락> 음악감독을 지낸 바 있다.
<여우락>에서 ‘예술감독’과 ‘음악감독’의 역할 차이가 궁금하다.

이아람 사실 지난 경험에서는 경력이나 연배 차이에서 오는 역할이 구분됐었지만 지금은 크게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딱 반반씩 일하고 있다. 시작하기 전 업무 분장을 했다. 나는 해외 아티스트 섭외에 힘썼고, 황 감독은 전통음악가 섭외를 맡았다.

Q. 아티스트를 섭외하면서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 같은데.
이아람 해외 아티스트에게 많은 메일을 보냈다. ‘읽씹’을 당해서 마음이 많이 다치긴 했지만(웃음), 끊임없이 노력해 좋은 출연진을 구성하게 됐다.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제안한 아티스트 중에는 단 한 명도 거절하지 않고, 수락해 줘 기뻤다.
황민왕 개막작 <불문율>에 서는 윤진철·김동언 명인에게 직접 찾아가 큰절을 올리고 출연을 제안드린 기억이 난다. 언젠가 한 번은 꼭 함께 공연하면 좋겠단 생각을 가지고 있던 분들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Q. 그렇다면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로서 <여우락>에 참여할 때와 지금과 같이 예술감독, 음악감독으로 참여할 때의 차이는 무엇인가?
황민왕 해마다 <여우락>을 보면서 관객 입장으로 불평할 때도 있었다. 각자 무대를 보는 취향이 다르게 마련이니까. 연주자로만 설 때는 사실 페스티벌 전체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내 공연만 즐기면 되는 거니까. 그렇지만 음악감독으로 참여하니 연주자로 서는 <장:단> 무대가 끝나도 한 달 내내 가슴을 졸일 것 같다. 페스티벌이 다 끝나고 칭찬을 들어야 한다는 욕망이 들끓고 있다.(웃음)

(왼쪽)예술감독 이아람, (오른쪽)음악감독 황민왕

축제하는 인간이 모이는 자리

Q. 축제를 앞두고 어떠한 청사진을 그렸나?
황민왕 전체적으로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세대 간의 음악, 전통음악, 장르 간의 협업, 해외 아티스트와의 협업 등 그동안 <여우락>이 해오던 걸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게 가져가기 위해 노력했다.
이아람 패키지 티켓 구매자가 다채로운 경험을 했다고 느끼면 좋겠다. 또한 ‘극복’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뚫고 다시 관객이 많이 모이는 페스티벌이 되길 바란다.

Q. 이번 축제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설명해 준다면?
이아람 올해는 ‘축제하는 인간’이라는 키워드를 꼽았다.
황민왕 코로나라는 이슈가 있었을 때, 혹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생겼을 때 공연예술계 종사자들의 업이 가장 먼저 중단되는 것을 경험했다. 내부적으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이유와 의미를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단어를 떠올리게 됐다.
이아람 늘 공연 때마다 ‘찾아오신 분들에게 후회하지 않을 무대를 보여드리겠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관객 역시 ‘축제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번만큼은 관객도 함께 즐기며 무대를 만들길 기대한다.

Q. <여우락>은 아티스트 간 협업의 장을 지향하고 있다. 실제로 <여우락>에서 인연을 맺은 후 본격적으로 팀을 결성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황 감독 역시 2015년 <여우락>을 통해 처음 만난 사토시 다케이시와 8년 만에 다시 무대를 꾸린다. <여우락>이 이렇게 새로운 협업의 장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황민왕 연주자 입장에서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이 든다. 지금까지 <여우락>에서 선보인 협업은 전반적으로 결과물이 좋았다. 이러한 데이터가 쌓이면서, <여우락>에서 협업하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성공할까?’가 ‘성공할 거야!’가 된 거다. 협업을 하려면 이런 기대감이 제일 중요하다.
이아람 2015년에 <Wood & Steel> 공연을 끝내고 함께 무대를 만든 프랑스 플루티스트인 죠슬렝 미에니엘과 자라섬 페스티벌에도 다녀오고, 프랑스에서 음반 녹음도 했다. 이외에도 죠슬렝이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해 함께 공연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아마 지리적으로 가까웠다면 더 자주 함께했을 것 같다. 또 국립극장 기획팀에선 이희문과 프렐류드, 유희스카처럼 만들어서 잘 팔라고 말한다. 보통 페스티벌에서 만든 결과물은 그에 대한 재산권이 축제 주최 측에 있기 마련인데, 국립극장은 지식재산권에 연연하기보다 공연의 완성도에 관심을 기울인다. 만약 지식재산권이 페스티벌 주최 측에 귀속된다면 아티스트 입장에선 내 모든 걸 쏟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기에 기획팀의 이러한 태도가 인상 깊다.

Q. 이번 아티스트를 매칭할 때 기준으로 삼은 것이 있다면? 이번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의 공통적인 기질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아람 출연 아티스트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젊은 예술가들의 유튜브를 찾아서 리스트를 만들고, 마치 궁합 보듯이 아티스트를 매칭했다. 어떤 음악이 탄생할 것 같다는 상상을 토대로 팀을 묶었다.
황민왕 연륜보다는 실력을 우선 생각했다. 이른바 연주력, 나이를 막론하고 기본적으로 연주력을 갖춘 분을 섭외했다.

더욱 진실성 있는 축제를 향해, 앞으로의 <여우락>

Q. 우리 음악의 미래를 이끌어갈 국악인을 양산해 온 ‘여우락 아카데미’가 탄생한 지 10년이 됐다. 관련 기념 공연도 이번 축제에 준비돼 있다. 그동안 국악계에서 <여우락>이 국악인 인큐베이팅 역할을 어떻게 해왔다고 생각하나?
이아람 최근까지 각자의 아이덴티티에 맞춰 명맥을 이어오는 국악인 양성 프로그램이 꽤 많다. 그중 <여우락>의 장점은 공동 창작에 관해 경험한다는 것이다. 만약 한 아티스트가 이를 통해 자신이 공동 창작과 안 맞는다고 깨닫게 된다면 그것조차 가시적 성과라고 본다.

Q. <여우락>은 마니아가 즐기는 축제라는 인식이 강한 편이다. 그렇기에 대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한 두 분의 의견이 궁금하다.
이아람 대중이라는 장르 안에도 많은 카테고리가 있다. 예를 들어 대중음악 가수인 김필과 싸이도 음악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지 않은가. 우리가 만든 음악이 대중에게 인기가 많으면 대중음악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큰 인기를 끈 이날치도 반복 구간을 삽입하는 등 팝적 요소를 활용해 대중성을 확보했지만, 이들 스스로 자신을 대중음악가라 여기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사람에게 회자되는 게 대중성이라고 생각한다.
황민왕 <여우락>처럼 콘셉트가 명확한 축제에 대중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미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 같다. 대중성에 부합하는 무언가를 달성해야만 한다면, 마니아층을 더 많이 늘리면 되지 않을까. 그 옛날 판소리가 대중화할 수 있었던 건 귀명창 덕분이었다. <여우락>도 마니아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점검하면 좋을 것 같다. 실제로 오랫동안 페스티벌을 지켜본 관객의 이야기가 누구보다 진실성 있지 않을까?

Q. 이번 페스티벌에서 가장 기대되는 공연을 하나씩 꼽는다면?
이아람 개인적으로 킹 아이소바와 느닷의 <리듬 카타르시스>가 기대된다. <여우락>에서 처음으로 전통 아프리카 음악을 선보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언어 소통이 잘 안될 텐데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날것의 상황에서 아티스트가 어떠한 음악을 만들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황민왕 개인적으로 개막작인 <불문율>에 대한 기대가 크다. 21세 때 처음으로 판소리를 듣고 운 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윤진철 선생님의 무대였다. 이듬해 굿판에서도 김동언 선생님의 심청굿을 보고 운 적이 있다. 그래서 이 두 분이 함께하는 공연을 음악감독으로 기획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 설렌다. 그래서 직접 두 분을 섭외하기도 했다. 이 무대는 전통음악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또 아직은 덜 다듬어졌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여우락 아카데미’ 출연진이 꾸미는 <여우락 홈커밍>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두 감독의 재치 넘치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가까이 시간이 흘러가 있었다. 오랫동안 연주자로 함께한 이들의 호흡은 <여우락>을 만들 때도 빛이 났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축제하는 인간이란 주제답게, 축제하는 모든 순간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글. 장혜선 음악 칼럼니스트. 월간 『객석』에서 수석기자로 일했다. 바른 시선으로 무대를 영원히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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