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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여우락 페스티벌> 공연소개 ②
청량한 협업
장르 융합, 해외 아티스트 협업은 이제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지만
여름의 <여우락>을 만나면 어감이 청량해진다.
매번 형식을 넘어 내용까지 환기되기 때문이다. 올해 다양한 협업 역시 마찬가지다.

박인혜×정연락×최인환 <종이 꽃밭:두할망본풀이>
7월 1일 19:30, 2일 15:00 달오름극장

굿판에서 지화紙花는 단순히 장식용 종이꽃이 아니다. 일상의 공간을 성스럽게 변화시키는 매개물이다. 신이나 망자의 넋을 모시는 청신請神, 이들을 환대해 극락세계로 보내는 송신送神의 역할도 한다. 결국 지화는 남은 자들의 소망을 담는다. 지화 만드는 일을 “꽃 피운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종이 꽃밭:두할망본풀이>는 생명과 사랑을 노래하는데 그건 결국 삶에서 꽃을 피워내는 일이기도 하다. 두 아기씨가 생불신 자리를 걸고 꽃 피우기 내기를 하는 얘기다. 원작은 제주도의 구전 무속신화 ‘생불할망본풀이’. 서천꽃밭에 오색 꽃을 심은 생불할망은 꽃이 번성하는 만큼 인간에게 아기를 점지하고 다녔다. 이런 생기 넘치는 생명력은 “판소리는 기본적으로 움직이는 예술”이라고 여기는 박인혜의 가창과 맞물린다. 국가무형문화재 동해안별신굿의 무악과 지화를 전수받은 전승교육사인 정연락, 음악그룹 나무 활동을 기반 삼아 전통음악과 협업하는 최인환 역시 소리로 꽃을 지어낸다. 제주도 큰 심방인 서순실 명인에게 배운 무가가 주요 장면에서 신화의 환상성을 꽃처럼 장식한다.

박인혜 × 정연락 × 최인환

스쿼시바인즈×김보미 <신:지핌>
7월 6일 19:30 달오름극장

흔히 신들린 연주라 표현한다. 영적인 존재가 인간에게 들러붙은 것처럼, 무아지경의 황홀경 같은 장면을 선사할 때 들어맞는 수식이다. 그 접신의 정경은 신실음, 넋지핌 그리고 신지핌이라고도 한다. 하드록 밴드 스쿼시바인즈와 밴드 잠비나이 멤버이자 해금 연주자인 김보미의 협업 무대 <신:지핌>은 그런 경지까지 나아가겠다는 각오를 제목에 직접적으로 담았다. 국악계와 인디 신Scene 모두에 새로 불을 지펴내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스쿼시바인즈는 주술적 기운과 풍모로 무형의 음이 육신을 입은 듯 노래하고 연주한다. 전천후 연주자인 김보미는 국악기·양악기를 혼용해 록과 전자음을 넘나든다. 이들이 공연에서 연주의 권한을 자신들이 아닌 신에게 맡길 게 불 보듯 빤하다. 그건 앙금 없는 앙분 상태의 앙상블로 펄펄 끓을 것이다. LED 미디어아트는 열광의 파노라마로 감정의 파열음을 극대화한다.

스쿼시바인즈 × 김보미

사토시 다케이시×황민왕 <장:단(長短)>
7월 8~9일 15:00 하늘극장

<여우락>은 그간 숱한 명무대를 선보였지만 2015년 7월 <타임리스 타임Timeless Time>은 그중에서도 유독 자주 회자된다. 거문고 장인 허윤정, 타악 마스터 사토시 다케이시, 거장 첼리스트 에릭 프리드랜더, 그리고 대중음악 뮤지션 선우정아에 소리꾼 김보라, 타악 황민왕까지 가세한 이 어벤저스 음악가들은 공연 제목처럼 시간을 초월한 음악을 선사했다. 아울러 그 합을 만들어 가는 과정까지 음악에 수렴되는 ‘휴머니티 화음’도 들려줬다. 이때 처음 만난 다케이시와 황민왕이 8년 만에 듀오로 합동 공연을 펼친다. 두 사람의 조합은 서양 타악과 동양 타악의 물리적 만남 그 이상이다. 황민왕은 다케이시의 즉흥연주, 다케이시는 황민왕의 한국 장단과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두 사람의 합은 단순히 타악 물성이 빚어내는 물리적 현현이 아니라 정신적 교감이 빚어내는 현상에 있다. 타원형의 단 위에서 70분간 오로지 두 사람의 연주만이 공연장을 채운다. 이들의 무대엔 단 하나의 클리셰도 없다. 즉흥과 신명의 순간이 난무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장단長短, 즉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라는 익숙한 속담도 이들 덕분에 새로워진다.

황민왕 × 사토시 다케이시

더튠×세움 <자유항(Free Port)>
7월 12일 19:30 달오름극장

고인 물은 썩는다. 모험을 떠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국악밴드 더튠과 뮤직그룹 ‘세움’의 협업 무대 <자유항>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사실이다. 개성 강한 두 팀의 공통점을 굳이 끄집어내자면 그건 유연성. 유연함의 부드러움은 덜 치열하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그 유연함은 어디에든 갈 수 있는 물의 속성과 맞닿아 있다. 물은 경계가 없다. 두 팀의 수용 능력에도 한계가 없다. 지역적 원시성으로 보편적 현대성을 빚어내는 더튠, 허문 곳이라야 새로운 걸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세움의 협업은 음악이라는 바다를 수로水路로 삼고 거침없이 나아가는 듬직한 유람선을 떠올리게 한다. 마음을 활짝 열고 거기에 올라타면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유항自由港’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그건 자신도 모르게 경계를 나누고 한정 짓던 장르의 속박에서 벗어나 음악의 프리패스권을 얻는 일과 같다. 맞다. 우선 떠나야 무슨 일이든 생긴다.

더튠 × 세움

킹 아이소바×느닷 <리듬 카타르시스(Rhythm Catharsis)>
7월 13~14일 19:30 하늘극장

리듬은 단순히 음악의 3요소가 아니다. 삶의 태도다. 지리멸렬한 삶에 대해 큰 목소리로 분노를 토하는 대신 율동감 있는 신체적 운동으로 사력을 다해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행위니까. 결국 좋은 리듬을 빚어내는 일은 세상에 숨어 있는 희망의 박동을 찾아내는 것과 같다. 서아프리카 현악기 콜로고Kologo의 명인인 킹 아이소바King Ayisoba, 한국의 사물놀이 느닷Newdot은 그렇게 음악과 삶에서 약동하는 리듬을 톺아봐 왔다. 특히 아이소바는 가난, 부패, 결혼 풍습과 같은 가나의 사회·정치적 화두를 음악에 녹여내며 그 가운데에서 희망을 찾고자 애써왔고, 고국의 문화유산도 지켜왔다. 농악을 대표로 하는 ‘선반’(서서 연주하는 형태)과 사물놀이를 대표로 하는 ‘앉은반’(앉아서 연주하는 형태) 모두 완벽하게 수행하는 ‘수륙양용’의 연희 그룹인 느닷은 전통을 바탕으로 새 레퍼토리를 개방하는 ‘사물놀이의 현재진행형’을 보여주고 있다. 킹 아이소바는 이번 공연에서 올해 1월 발매한 새 앨범 「워크 하드Work Hard」 수록곡을 비롯해 격렬한 무대를 우리 음악과 함께 선보인다. 비타협적일 것 같은 킹 아이소바의 느닷없는 강력함에 느긋하게 장단을 맞출 수 있는 팀은 또 느닷밖에 없다. 우리 장단과 리듬의 다양성을 목도하는 짜릿함이 거기에 있다. 그게 생명력이다.

킹 아이소바
느닷

모듈라서울 <lull~유영>
7월 18일 19:30 달오름극장

조금은 과감해져 볼까. 범패는 넓은 의미에서 ‘앰비언트 뮤직’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법하다.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음악을 가리키는 범패는 자연, 만물에서 출발한 음악이니까. 일렉트로닉 음악 중 하나인 앰비언트 뮤직 역시 의식적인 음악 감상에 목적을 두지 않고, 환경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청취하는 음악에서 출발했다. ‘주변의’ ‘둘러싼’이라는 뜻처럼 공간감을 조성하는 것이 특징인데, 반복되는 구조 등을 통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가사가 있더라도 노래라기보다 소리에 가까운 범패 역시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전자음악 창작집단 모듈라서울이 범패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범패는 다른 말로 어산魚山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중국 삼국시대 조조의 아들 조식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조식이 산둥성 서쪽의 어산에서 듣고 감동한 소리가 그 기원이라는 얘기다. 노랫가락이 물고기가 유영하는 형태와 닮았다고 해서 어산이라고 불린다는 맥락과 겹친다. 이번 공연 제목이 ‘유영’인 까닭이기도 하다. 불교 의례에 활용되는 불전사물佛殿四物인 범종·법고·목어·운판의 소리와 전자음악이 만 헤엄치는 일만 남았다. 불교 의식 최고 권위자 조계종 어산어장 인묵스님과 어산종장 동환스님이 특별 출연한다. 어장은 범패를 가르치는 승려를 가리킨다.

모듈라서울

손열음×이아람 <백야(Polarnacht)>
7월 21~22일 19:30 달오름극장

꿈에서도 그리기 힘든 조합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대금 연주자이자 프로듀서 겸 작곡가인 이아람의 만남은 국악계와 클래식계에서 단숨에 화제가 됐다. 각각 30대와 40대의 나이임에도 거장의 반열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아티스트들이다. 특히 두 음악가는 음악은 물론 삶에서도 충분히 존중받을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화려한 이번 프로그램 중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은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미니멀 양식의 대표 주자인데 삶 역시 단순함의 미학을 추구하며 구도자적이고 수도자적인 삶을 살아간다. 각각 클래식과 전통음악에 대한 넓은 지식과 깊은 애정을 바탕 삼아 음악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미학적 성취를 찾아가는 손열음과 이아람이 꿈꾸는 독야청청獨也靑靑의 백야白夜와 닮았다. 손열음과 이아람은 3곡의 소품이 만나는 서사시 ‘Our Imperfection’, 토이 피아노와 단소의 호흡 ‘Lullaby’, 뛰어난 연주자로서 명성을 새삼 확인하게 해줄 ‘흘림’ 등을 초연한다. 즉흥곡 ‘황종평조 Eb Major’, 새롭게 구성하는 ‘문묘제례악’은 새로운 서사를 예고한다. <여우락>과 함께 우리 여름을 지키는 대표적 음악 축제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을 지난해까지 맡았던 손열음, 올해 <여우락>의 새 예술감독이 된 이아람 사이에 나눌 얘기는 무궁무진하다. 그것이 음악이 되고, 축제가 되고, 삶이 될 것이다.

손열음 × 이아람
글. 이재훈 기자, 2008년 말 뉴시스에 입사해 사회부를 거쳐 문화부에서 약 10년간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무용 등 공연을 담당했다. 현재는 대중음악을 맡고 있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네이버 문화재단 온스테이지 기획위원으로도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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