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2023 <여우락 페스티벌> 공연소개 ①
한시적 자율 지대
관객은 예술가의 협업 속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장면을 목격하거나
작지만 흥미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올해로 14회를 맞는 <여우락>은 전통에 관한 폐기된 상상력을 불러들이고
미래를 언약하는 새로운 장소가 될 수 있을까.

이번 <여우락>은 ‘축제하는 인간Homo Festivus’을 주제로 23일간 총 12개의 공연을 선보인다. 포문을 여는 개막작은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 윤진철 명창과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부산기장오구굿’ 예능보유자 김동언 명인의 <불문율>이다. 불문율은 문서나 글로 규정돼 있지 않지만 사회 구성원이 암묵적으로 따르는 규율을 뜻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국악계의 오랜 불문율을 깨고 판소리와 굿을 하나의 무대로 소환한다. 판소리 강산제 ‘심청가’와 동해안별신굿의 ‘심청굿’을 두 명인의 호흡으로 주고받으며 ‘심청’이라고 하는 심원한 서사를 다시 들여다본다.

윤진철×김동언 <불문율>
6월 30일 19:30 하늘극장

‘심청굿’은 안질眼疾을 퇴치하고 눈을 밝게 하여 어업을 잘할 수 있도록 비는 굿거리로, 우리에게 익숙한 ‘심청가’의 서사와 동일하다. 또한 다른 악사들을 물리고 장구 반주만을 동원하며 고도로 숙련된 무당이 노래와 춤을 연행해 판소리와 유사하면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심청가’ 예능보유자 고 정권진 명창의 마지막 제자로 보성소리의 정수를 보여주는 윤진철 명창과 동해안별신굿 예능보유자 고 김석출의 셋째 딸로 태어나 아홉 살 어린 나이로 굿판에 나서 일평생을 예술에 몸 바쳐 온 김동언 명인의 농축된 음악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윤진철 × 김동언

천하제일탈공작소 <가장무도:탈춤의 연장>
7월 4~5일 19:30 하늘극장

전국 각지의 탈꾼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시간도 마련돼 있다. 천하제일탈공작소의 <가장무도>는 대중으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내는 탈춤을 모색하기 위해 천하제일탈공작소와 여러 지역의 탈꾼들이 합세해 2019년부터 제작하고 있는 시리즈다. 올해 <여우락>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가장무도:탈춤의 연장>은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 각 지역의 특색 있는 전통 탈춤뿐만 아니라 탈꾼들의 해석이 가미된 탈춤을 한 무대에 모았다. 15명의 탈꾼과 11명의 악사가 함께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탈춤과 재담, 음악을 조명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오브제와 그라피티 배경, 하늘극장 전면에 설치된 마당석을 사용해 탈춤의 열린 구조와 연희적 효과를 극대화할 예정이다.

천하제일탈공작소

프로젝트 여우락 SYNERGY <시너지(SYNERGY)>
7월 8일 19:30 달오름극장

프로젝트 여우락 SYNERGY <시너지(SYNERGY)>에서는 현재 국악계에서 주목받는 5명의 솔리스트가 합을 맞춘다.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첼로가야금 멤버로 활동하는 첼리스트 김 솔 다니엘, 전통 타악기와 철현금을 사용해 서정적 사운드를 제시하는 한솔잎, 피리 연주자와 프로듀서를 오가며 클랜타몽, 리퀴드사운드의 멤버로 활동하는 목기린, 이목(E:MOK)의 멤버로 전통음악의 문법에 천착한 음악을 탐구하는 조봉국, 밤 새와 니어이스트퀄텟 멤버로 활동하는 소리꾼 김보림은 각자의 음악적 영역을 바탕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든다.
이번 무대는 서로 적응해 통합되는 과정을 뜻하는 시너지라는 제목처럼 각 연주자가 한 곡씩 맡아 프로듀싱하는 코리더Co-leader 작업 형식을 취한다. 김보림의 미발표곡 ‘와와덜이야’, 한솔잎의 싱글 앨범 수록곡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등 재편곡한 곡과 공동 창작한 새로운 곡을 구성해 솔리스트의 면모와 다섯 음악가의 협업이 빚어낸 세계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프로젝트 여우락 SYNERGY

신유진×리마이더스×저클×도리 <여우락 홈커밍>
7월 15일 19:00 문화광장

국립극장 문화광장에서는 ‘여우락 아카데미’ 10주년을 맞이해 역대 아카데미 수료생 4팀이 <여우락 홈커밍>을 마련한다. 밴드 이날치의 멤버로 이름을 알린 소리꾼 신유진은 그간 조명받지 못했던 판소리 대목을 골라 직접 구성한 사운드와 건반 연주를 곁들여 각 대목의 특색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거문고·가야금 듀오 리마이더스는 재즈 드러머 최요셉과 함께 1집 앨범 「Essential」과 싱글 앨범 「신새가락별곡」의 수록곡을 연주한다. 피리밴드 저클은 2022년 21C한국음악프로젝트에서 은상을 수상한 ‘가위바위보!’와 밀양아리랑의 선율을 차용한 ‘날 좀 보쇼Show’, 동요 ‘동네 한 바퀴’ 등 관악기의 특성을 살린 음악을 선보인다. 사물놀이 레퍼토리에 대한 여러 해석을 시도하는 연희그룹 도리는 영남농악가락, 호남우도농악가락, 웃다리농악가락을 통해 정립한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펼쳐낸다. 각 팀의 무대뿐만 아니라 판소리, 기악 명곡, 대취타 등 전통 레퍼토리에서 출발한 창작곡을 합동 무대로 꾸려 많은 예술가가 거쳐 간 여우락 아카데미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신유진
리마이더스
저클
도리

유순자×손영만 <추갱지르당>
7월 19~20일 19:30 하늘극장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호남여성농악 포장걸립 상쇠 보유자 유순자 명인과 국가무형문화재 김천금릉빗내농악 8대 상쇠 손영만 명인의 합동 무대도 기대를 모은다. 유순자는 부포놀음의 대가이자 상쇠놀음의 명인으로 ‘춤추는 바람꽃’으로 불린다. 11세에 유랑을 시작해 전국을 누빈 여성 농악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손영만은 ‘손꽹만’ 하면 김천 시내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꽹과리에 능한 예인으로, 김천금릉빗내농악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진 주인공이다. 유순자와 손영만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활동한 탓에 함께 무대에 설 기회가 드물었다. 이번 무대는 30여 년 만에 두 명인이 한 무대에서 호흡을 맞춰 의미가 남다르다.
공연의 제목인 <추갱지르당>은 경상도 쇠 구음의 ‘추갱’과 전라도의 쇠 구음 ‘지르당’의 합성어로, 두 지역의 음악을 한자리에서 만난다는 공연의 콘셉트를 직관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두 명인의 인생을 담은 짧은 영상과 농악의 도입에 해당하는 얼림굿을 시작으로 호남여성농악, 김천금릉빗내농악, 삼도판굿, 소리굿, 명인들의 개인 놀이까지 지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농악을 선보인다. 청배연희단, 호남여성농악단 보존회, 김천금릉빗내농악 보존회의 빈틈없는 연주와 무한한 역동성, 공간을 가득 채우는 신명과 유연하고 재치 있는 재담도 주요한 관전 포인트다.

유순자 × 손영만

장영란은 『호모 페스티부스: 영원한 삶의 축제』에서 ‘쉬노도이Synodoi’, ‘파네귀리스Paanegyris’, ‘헤오르테Heorte’ 등 축제를 지칭하는 고대 그리스 단어를 나열하며 축제의 근본적 특성을 도출한다. 그에 따르면, 축제는 ‘만남’ ‘모임’ ‘즐거움’을 토대로 유대감을 만들어 내는 장치다. ‘전통’과 ‘협업’ 그리고 ‘실험’이라는 키워드를 관통하며 한시적으로 형성되는 자율 지대는 우리에게 어떤 만남의 장소를 선사할까. 3주간 이어지는 축제의 현장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로 우리를 데려다 놓을 것이다.

글. 성혜인 음악평론가. 전통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는다. 음악비평동인 ‘헤테로포니’ 필진, 비평지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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