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하나

코로나 장기화 시대, 공연예술과 극장의 의미
극장을 생각한다
극장 방문에 대한 갈증, 현장의 생동감을 누리고픈 소망이 점점 커지는 요즘.
극장의 의미는 더욱 더 새롭게 다가온다.
조금씩 기지개를 켜는 공연계의 움직임 속에서 국립극장의 역할을 곱씹어 본다.
유일무이한 현존성의 예술

극장을 생각한다. 극장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신을 기리기 위한 제의적 의미로 시작됐다는 설, 오락을 즐기기 위한 유희적 이유로 시작됐다는 설…. 이외에도 다양한 설이 난무하지만, 그 기원을 찾아 세월의 풍화에 겨우 기둥만 남은 오래된 극장의 잔해를 계속 뒤질 까닭은 없을 듯싶다. 그러면 ‘우리는 왜 극장에 가는가?’ 저마다 이유가 다 다를 것이나, 종교 의식으로 극장을 찾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질문과 같은 제목의 책에서 이상우 고려대 교수는 이렇게 쓰고 있다.

“배우들은 ‘지금 이곳’에 우리와 함께 있다. 우리들 바로 앞에 존재하고 있다.” 같은 대기를 공유하면서 배우들과 관객들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함께 어떤 경험을 창조하고 동시에 향유한다. 창조하고 향유하면서 그들은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고 어느새 하나의 극장 공동체가 된다. 연극이 상연되는 그 시간 동안 그들은 같은 아우라aura를 경험한 일시적 극장 공동체가 된다. 이러한 실시간의 공동체 경험은 짧은 시간이나마 그들을 열광케 하고 희열에 빠지게 한다. 그러한 즐거움을 기대하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는 극장에 간다.

글쓴이가 따옴표로 강조했듯, 극장은 ‘지금 이곳’을 가장 극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는 무대예술을 다른 예술과 구분 짓는 경계다. 다른 장르의 경우, 수용자들은 창작의 결과를 감상하게 된다. 그러나 무대예술의 경우, 수용자들은 실연자들과 함께 창작 과정을 공유하며, 함께 결과물을 만든다. 발터 벤야민은 논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 작품’에서 ‘아무리 완벽한 복제라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한 가지 요소가 빠져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시간과 공간에서 예술 작품이 갖는 유일무이한 현존성’이라 했다. 공연예술은 이에 대한 가장 적절한 예시일 것이다.

공연예술은 시간과 공간에서 예술 작품이 갖는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갖췄다

공연예술은 시간과 공간에서 예술 작품이 갖는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갖췄다

기술 복제 시대의 무대예술

나아가 벤야민은 이러한 현존성에 더해 다른 무엇으로 대체될 수 없는 고유성을 합해 ‘아우라’라고 했다. 복제 기술을 통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많은 장르에서 아우라가 붕괴하는 동안, 오로지 무대예술만이 오롯이 아우라를 지킬 수 있었다. 적어도 지난해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미증유의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각국 정부는 집합 금지와 대면 제한 조치를 시행했고, 이로 인해 전 세계 수많은 극장이 폐쇄됐다. 그때 타개책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비대면 온라인 공연이었다. 영국의 국립극장과 글로브 극장, 로열 오페라하우스,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해외 유수 기관에서 비대면 온라인 공연을 실시했다. 국내에서도 국공립시설을 중심으로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다.
국내에서는 국립극장이 ‘가장 가까운 국립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전속단체의 대표작들을 온라인을 통해 공개했다. 국립창극단의 ‘패왕별희’를 시작으로, 국립무용단 ‘묵향’, 국립창극단 ‘심청가’, 국립국악관현악단 ‘격格, 한국의 멋’, 국립무용단 ‘향연’, 국립국악관현악단 ‘양방언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인투 더 라이트Into The Light’ 등이 이 사업을 통해 상영됐다. 이들의 총 조회 수는 20만 건을 상회했다. 이외에도 국립극장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무관중 공연 ‘미술관에書 여우樂’을 제작하고, ‘동행, 장벽 없는 극장 만들기’로 국립창극단 ‘춘향’ 무장애(배리어프리) 영상을 제작해 상영했으며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 등이 ‘싹온스크린SAC On Screen’ 온라인 상영회, ‘내 손안의 극장’ 등의 온라인 공연을 시행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중 일부를 영화관을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비대면 온라인 공연은 ‘지금 여기’의 현존성이라는 무대예술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건인 듯 보인다. 이는 마치 벤야민이 옹호하는 아우라를 파괴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사실 벤야민은 아우라의 붕괴를 예고했다. 그는 기술 복제 시대에 아우라의 붕괴는 필연적 현상이라고 선언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그 시점이 당겨졌을 뿐, 언젠가 무대예술도 맞이해야 할 운명이었을까? 그러나 아직 붕괴라는 단어를 올리기엔 시기상조인 듯하다. 비대면 온라인 공연이 현장 공연을 대체하지 못한다는 게 공연계 전반의 인식이다. 아직 아우라가 붕괴할 위기의식을 느낄 단계는 아닌 듯 보인다.
그러나 현장 예술로서 무대예술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지금 여기’의 현존성만을 고집하기에는, 비대면 온라인 공연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할 듯 보인다. 그동안 시간적·경제적 여건 등으로 인해 현장 공연을 관람하지 못했던 처지에서는 비대면 온라인 공연을 반기는 듯싶다. 무엇보다 감염병이 일상화 되면, 이동성에 불편을 느끼는 이들이 더 늘어날 것이다. 지금처럼 당장 자국 내 이동은 가능하지만, 국가 간 이동에 불편이 따르는 기간이 지속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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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여우락 페스티벌 - 이랑×소울지기 ‘대화’ 중계 현장

다시, 지금 여기의 예술

한편 팬데믹으로 변한 풍경 중 하나는 객석에서 발견할 수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 극장은 좌석 간 거리 두기를 시행해 심한 경우 객석의 30퍼센트부터 여유롭게는 70퍼센트를 운영했다. 객석 수는 줄었지만, 매진 세례를 이루는 공연이 늘어난 것은 반가운 현상이다. 비대면 온라인 공연으로도 감상 가능한 공연을 현장에서 관람하려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은, 여전히 공연의 현존성을 경험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방증하는 듯하다. 물론 현재의 공연 촬영 및 편집 기술이 현장 공연을 능가하기는 어렵다. 비대면 온라인 영상 대부분은 현장의 모습을 담기에 급급할 뿐 현장의 온도를 전달하진 못한다.
한편 매진과 관련해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먼저 소비자의 관점에서 ‘보복 소비’와 ‘풍선효과’의 결과라는 것이다. 지난해 공연을 못 본 데 대한, 그리고 여행이나 외식 등 다른 문화생활이 제한된 상황에서 벌어진 반사이익이라는 의견이다. 반대로 제작자의 관점에서 또 다른 분석도 있다. 먼저 예년에 비해 적은 공연 편수로 모객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으며, 현재 흥행이 검증된 제작사의 대표 레퍼토리거나 스타 배우가 출연하는 공연이라는 점이 매진에 한몫했다는 진단이다. 이유가 무엇이건 객석을 다 열어도 지난해의 손실을 만회하기 어려운 시절에, 매진 세례를 이룬다는 건 반가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해오름극장 재개관을 앞둔 국립극장의 시름이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국립극장은 지난 3년간의 리모델링을 마치고 오는 9월 해오름극장을 재개관한다. 전속단체(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의 면면에서 알 수 있듯, 국립극장은 전통예술에 기반한 동시대적 창작을 미션으로 삼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공연이 위축된 상황에서 1221석 규모의 극장에 전통 기반의 공연이 과연 관객을 얼마나 모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제 근심을 내려놓아도 될 듯싶다. 국립창극단의 신작 ‘귀토’가 98퍼센트를 넘기는 객석점유율을 기록하며 호평 받은 것이 좋은 신호탄이 될 듯하다. 이는 아주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앞선 진단과 달리, 매진 세례를 이루는 대학로 연극이 늘어나는 현상은 관객이 스타 캐스팅과 레퍼토리 공연에 연연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다시 극장을 생각한다. ‘우리는 왜 극장에 가는가?’ 나는 견디러 간다. 책은 덮을 수 있고, 영화나 비대면 온라인 공연은 멈출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벌어지는 무대예술은 옴짝달싹할 수 없이 견뎌야 한다. 그 안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을, 그리고 그들 사이의 갈등을 지켜봐야 한다. 때로는 목격자의 분노로, 때로는 공범의 죄책감으로 사건을 지켜본다. 도망칠 구석은 없다. 견뎌내야 한다. 그렇게 그 시간을 견딘 자에게는 보상이 주어진다.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고,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을 이해하게 된다. 1(1°)도 정도 세상을 바라보는 지평이 넓어지거나, 1도(1℃) 정도 따듯한 인간이 된다. 어떤 공연은 그렇게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이끈다. 그래서 나는 극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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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 리모델링 후 다시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친 해오름극장의 모습

글. 김일송 공연계 각종 용역을 대행하는 심부름센터 이안재와 희곡집·아카이빙북 등 공연서적을 출판하는 책공장 이안재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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